존경하는 김은경 선생님,
선생님이 아직 살아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또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하시겠지만, 정말 진심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어제 자주 가는 박물관 앞에서 우연히 가수 오지은 씨를 보았습니다. 관광하러 오신 거겠지요. 거의 백이십 년 만에 처음 보는 셈이었지만 분명 그분이 틀림없었습니다. 일행이 여럿 있어서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 또한 아직도 살아계셨다는 것을요.
네, 별 일 아니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즈음 사람들은 요절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나 다 여전히 살아 있으니까요. 저는 그분들이 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습니다. “이자람이 살아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만으로도, 또 한 해가 지나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이자람 씨가 백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 있습니다.
좋아하던 스포츠 스타들도, 영화배우들도, 가수들도 모조리 살아 있고, 만화가나 소설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저도요. 또 제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물론 싫어하는 인간들도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있어서 세상이 점점 좋아졌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선생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사람들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들이 계속해서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살 가치가 있는 곳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제가 제일 위안으로 삼는 것은 바로 존경하는 김은경 선생님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이따금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다는 것, 직접 보지 않아도 근황을 자주자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저에게 무슨 변고가 생기면 선생님께서도 제 소식을 곧바로 전해 듣게 되시리라는 것. 그래서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진심입니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진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 모든 고민에 변하지 않는 상수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이 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사실 선생님이 진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지은 씨도, 이자람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실, 진짜 저는 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 주변에는 말이지요.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이런저런 기술 덕분입니다. 지구에 무슨 대재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모두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만큼 큰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원래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느릿느릿한 시한폭탄 앞에 우리 대부분은 겨우 백 년도 버텨내지 못할 연약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설령 운 좋게 버텨낸다 하더라도 그 싸움은 분명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참하게 만들고 말았겠지요. 달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극도의 피로감 정도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존재를 보존하는 보다 튼튼하고 효과적인 방법들이 고안된 덕분이었겠지요. 방법이야 수도 없이 많았고, 아시다시피 우리 모두가 같은 방식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타고난 신체보다 견고한 용기에, 혹은 존재를 보존하기에 보다 적합한 용기에 존재를 담아 보존하는 것. 더 젊고 건강한 몸에 정신을 옮겨 담는 것, 혹은 아예 육체의 제약을 벗어나 정보의 형태로 정신의 본질을 걸러내는 것.
논란이 끝나고, 모두가 문명을 받아들이듯 자연스럽게 제시된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 보다 견고한 용기로 옮겨가기 시작한 그때에도 저는 선뜻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안전하게 존재를 옮기는 절차라고는 했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 고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시절, 우리가 디지털이라고 부르던 문명을 생각해 보세요. 디지털 세계에서 무언가를 전송한다는 건 사실은 원본과 구별되지 않는 사본을 만들어 전송받는 쪽에다 재현하는 일이 아니었습니까? 전송이라는 말은 속임수에 불과한 표현이었지요. 원본이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옮겨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똑같은 것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었습니다.
존재를 전송하는 기술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에게는 아무래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방식이든, 혹은 정보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든, 뇌세포의 연결망을 그대로 복사해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발상은 실은 디지털 문명 시대의 “전송”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행위로 보였다는 뜻입니다. 존재를 옮기는 게 아니라 똑같은 존재 하나가 더 생겨났다는 의미겠지요.
물론 남는 정신은 하나뿐입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전송이 일어나고 나면 원래 정신이 담겨 있던 신체에는 정신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 케이스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역설적이게도 영혼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증명되고 만 셈입니다. 반례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저로서는 오히려 납득하기 어려운 증명이었지만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그런 방식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저는 사실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제가 아는 그 친구가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원본과 구별되지 않는 똑같은 사본이 생겨났기 때문이지요. 저는 전송된 친구가 원본이든 사본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어떻습니까? 저한테는 구별되지 않는 똑같은 친구였는데요.
다만, 제 스스로에게만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복사된 저는 제가 될 수 없었거든요.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저는 너무나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영생을 맞이하기 위해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영생을 하게 되는 건 제가 아니라 결국 복제된 저일 것만 같았습니다. 복제된 저는 분명히 복제 이전에 제가 갖고 있던 기억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이고, 자아가 연속되는 느낌 또한 의심 없이 가질 수 있을 게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원본인 저는 어떨까요? 시간의 시련을 견뎌낼 수 없는 불완전한 육체에 갇혀 있던 제 존재의 원본도, 불멸의 신체에 담긴 제 두 번째 “전송된” 자아와 완전한 합일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정말로 그럴까요? 진짜 영생을 얻는 건 결국 사본뿐인 게 아닐까요? 원본은 정말로 전송되는 걸까요? 아니면 구별할 수 없는 사본이 다른 곳에 만들어지는 순간, 영구적인 손상을 입고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상태에 접어드는 건 아닐까요?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는 “의료” 분야에 관해 약간의 전문지식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별로 실용적이지 않은 게 되고 말았지만, 그래서 이름조차 거의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시절에는 꽤 유용한 지식이었던 생물형 신체 보존과 수리 기술에 관해서요.
그리고 저는 결국 보고 말았습니다. 존재가 전송되는 순간, 보통 사람들은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대단히 짧은 순간 동안, 원본을 담은 신체와 전송받을 신체 양쪽 모두에 동일한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는 증거를요.
그 순간을 볼 기회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주위 사람 모두가 영생을 얻은 후 그에 따르는 마음의 안식과 여유를 얻게 된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연구를 계속하고 나서야 겨우 얻게 된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순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 일을 한 것은, 그 순간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싶었거든요. 누구보다도 간절히.
그래서 저는 그 실험을 계획했습니다. 전송되는 사람의 옛 신체와 새 두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당시까지 알려진 가장 미세한 시간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장치와 이론이 필요했고, 그 대부분은 제 스스로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그 일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탓입니다. 또한 실험 대상을 고르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실용성도 없었고, 사회적인 효과도 크지 않은 실험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그 실험을 하기까지 10년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제 신체의 수명을 생각하면 영원만큼이나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 실험의 결과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진짜로 정신이 전송되는 것이라면 두 개의 신체에 담긴 영혼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옮겨간다”는 건 이 경우에만 유효한 말이니까요. 그런데 실험 결과, 두 존재 모두가 깨어있는 시간이 포착되고 만 것입니다.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완전히 동일한 두 개의 똑같은 영혼이 같은 시간에 세상에 존재했다는 말입니다.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단지 그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제가 정해 놓은 기준에 의하면, 양쪽 모두가 동시에 살아있다는 증거가 너무 분명했거든요. 저는 곧바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정신은 전송되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혹은 누군가의 의심스러운 개입으로 인해, 복제된 직후 원본이 파기될 뿐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저는 그 결과가 꽤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영생의 꿈이 정말로 사라져버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복제된 저를 대할 때도 불편함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하겠지요. 그게 진짜 제가 맞는지 확인할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그런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연속성을 누리는 게 제가 아니라 제 사본인 상황은, 제 사본에게 그런 완전한 세상을 내 주기 위해 원본인 제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 같은 건, 절대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자연사할 때까지 전송을 거부하고 처음 부여받은 신체의 노화를 끝까지 지켜보는 편이 나았지요.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최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저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영생의 길에 접어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 영생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는 했다는 말씀입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습니다. 남들처럼 존재를 전송하기는 하되, 완성된 두 번째 신체에 제 정신을 일시불로 옮기지 않고, 긴 시간을 들여 아주 천천히 제 정신의 일부분씩만을 전송하는 해법이었습니다. 뇌 기능을 여러 개로 구분해서 그 일부분만을 새 두뇌에 복제해 원래 있던 두뇌와 새 두뇌가 함께 해당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기간을 거친 다음, 적응이 완전히 이루어졌다 싶은 시점에 기존 두뇌에서 그 기능을 담당하던 영역을 서서히 정지시켜버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뇌에 한해서만요.
신체의 다른 부분은, 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신체를 사용했습니다. 저한테 중요한 건 존재한다는 느낌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뿐이었거든요. 신체가 바뀌면서 몸의 감각이나 취향이 바뀌는 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변화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이해합니다. 이쪽이 더 위험해 보인다는 점을요. 돈도 훨씬 많이 들고, 하나하나 그렇게 적응 기간을 거쳐 가며 조정하는 일 자체도 만만치 않게 힘든 과정이었죠. 무엇보다 살아있는 기존 뇌의 일부를 조금씩 죽이는 행위는, 웬만한 전문가들은 말도 못 꺼내게 할 만큼 기괴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자연히 일은 더 꼬여만 갔습니다. 그러다 일이 반쯤 진행됐을 때 닥친 위기는 말 그대로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제 몸에는 두 개의 뇌가 들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노기술로 만들어진 인공두뇌가 기존 뇌와 포개진 상태로 구축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두 뇌 사이의 연결은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바로 옆에 붙어있었거든요. 꺼버린 기능을 인공두뇌가 대체하는 일 또한 생각만큼 기괴한 일은 아니었지요. 인공신경망이 아무 문제없이 작동해 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구축되다 만 그 두 번째 뇌가, 갑자기 오작동을 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딱 절반쯤 전송이 완료된 상태에서 말이지요.
원래 뇌를 반쯤 꺼버려서 더는 되돌릴 수도 없게 된 시점. 감히 혼자서만 진짜 영생을 꿈꾼 죄로 저는 그만 절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생지옥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저는 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꿈을 꾸었고,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섞여버린 감각 때문에 쇼크 상태에 빠져있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세계가 일그러져 있었는지 제가 일그러져 있었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아마 그게 그거였던 것 같습니다. 절망하는 법조차 잊은 그 끝없는 지옥에서, 존재가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습니다. 그것만 놓치면 편안해질 수 있었거든요. 그것만 내려놓으면.
그런데 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판단은 제가 아니라 제가 전 재산을 걸고 한 계약이 대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뒤 틀린 세계를 천천히 기어서 전진해야 했습니다. 아, 그 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걸 알아야 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그런 것을 알아서는 안 됩니다.
어쨌거나 저는 그 끈적끈적한 사막을 헤쳐 나왔고,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영생이 허락된 세상을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우리 모두가 영생이라고 믿는 이 얼마간의 시간이면 저한테는 충분한 보상입니다.
그 절망 속에서 헤매던 기간에 저를 돌보던 분들이 한 일은 문제가 된 인공두뇌의 기능을 몸 밖에 있는 장치에 옮겨 놓은 후 그 부분을 아예 새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감각은 몰라보게 회복되었고, 의식도 점차 제자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몸 밖으로 빼 놓은 기능들은 머릿속에서 겹쳐져 있는 두 개의 뇌보다는 연결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저는 사람의 얼굴을 표정보다 느리게 알아봤습니다. 사물의 이름이 약간 늦게 떠올라서 대화 중에 멈칫거리는 순간도 많아졌습니다. 말수가 줄고, 보다 자주 어리둥절해하는 사람이 돼 있었지만, 그렇게 보는 세상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특히나 표정을 얼굴보다 먼저 알아보는 것은 꽤나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반가움이, 사람보다 먼저 저에게 닿곤 했거든요. 걱정스러운 마음이, 역할보다 먼저 저를 어루만졌고요.
“큰일을 해 내셨어요. 정말 놀라운 분이세요. 어떻게 이렇게 잘 버텨내셨는지, 저희로서는 상상도 안 된답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기억을 새로 생긴 두뇌에 새겨 넣었습니다.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거든요. 의심의 여지없이 완전한 진심이었죠.
모든 기능이 제 몸 안에 있지 않고 옆에 놓인 기계에 정신의 일부를 의탁하는 상황이다 보니, 외출도 할 수 없고 사적인 시간도 거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 좋았습니다. 이미 지옥을 경험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다시 모든 기능이 머리 안으로 들어가고, 뇌를 끄고 켜는 과정도 절반을 훌쩍 넘겨 70, 80, 그리고 99 퍼센트에 이르렀습니다. 100 퍼센트는 되지 않는다더군요. 105 퍼센트나 110 퍼센트가 될 수는 있지만요. 그동안 노화하고 손상된 생물학적 뇌를 복구하려면 인공뇌가 조금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요.
존경하는 김은경 선생님,
이제 충분히 설명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진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제 인생에서 가장 고단했던 시간을 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선생님으로 인해 진정으로 위안과 보람을 얻습니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선생님과 그들이 살아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이 무슨 미친 고백일까요? 왜 이다지도 부끄러운 이야기를 존경하는 선생님께 털어놓아야 하는 걸까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께 바라는 건 위로가 아닙니다. 용서 같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놀랍게도 저는 대단히 실용적인 이유로 선생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가 되기 위해 모아둔 재산을 전부 소진해버린 저는, 조금은 청빈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 물론 금전적인 도움을 바란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는지 선생님께 설명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가이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본소득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지만 역할을 찾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저는 역사를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를 사랑합니다.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을 즐기고, 헤어질 때 문득 뒤를 돌아봐 주며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주는 이들을 편애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늘을 좋아합니다. 시간대마다, 어떤 코스로 걸으면 햇빛을 덜 받고 인상을 찌푸리지 않은 채 도시를 즐길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어서, 특히나 동양인 관광객들에게 꽤 인기가 많습니다. 예약도 필요 없고 연락처 같은 것을 남길 필요도 없이 정해진 시간대에 약속된 장소에 나타나기만 하면 되는 워킹 투어이지만, 요즘은 팀을 나눠야 할 만큼 참가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미친 도시에는 그들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끝도 없이 넘쳐납니다.
최근에 투어 참가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레퍼토리는 암살자 지베르티가 암흑가에서 파문을 당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보통 이런 식으로 시작됩니다.
“30만 인구 중에 7만 명이 갱인 데다, 경찰의 권위가 우체국보다도 못한 무법천지 도시였지만, 그래도 룰은 있었습니다. 집 앞에서 전쟁을 벌일지언정,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는 건 악당들 사이에서도 금기였거든요.”
그러면 누군가 묻곤 합니다.
“무고한 시민들도 많이 죽었다던데요.”
“물론이죠. 물론 영화에 나오는 것만큼 잘 지켜진 룰은 아닙니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아시죠?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허공에 대고 총을 두 번 탕탕 쏜 다음 상대를 향해 총을 겨눴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 두 번의 총성이 울려 퍼지면 험한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서둘러 몸을 피해야 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몸을 납작 엎드려야 했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암살자가 엉뚱한 데다 대고 총을 두 번이나 쏜다는 건 저격 대상한테도 미리 경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 총알이 총구를 떠나기 전에 먼저 자기 이마에 총알이 날아와 박힐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래서 어느 날 지베르티는 그만 그 둘의 순서를 바꾸고 말았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들어보신 분이 별로 없으실 겁니다. 저격 대상인 마피아 보스의 심장에 먼저 한 발을 쏘고 그 다음에 허공에 두 발을 쐈거든요. 임기응변이었죠. 지베르티 본인에게 더 치명적인 임기응변이었지만요. 자, 지베르티가 만인의 웃음거리가 된 현장이 바로 저 골목 뒤쪽입니다. 모두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저는 서른 명의 관광객을 이끌고 그늘을 따라 제가 조금 전에 가리킨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주 잠깐 햇빛이 머리 위를 달궜지만 채 다섯 걸음도 내딛기 전에 다시 그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골목 끝에서 저는 그 사람을 보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말이지요.
그 사람을 만난 이후로 저는 그 근처를 다니기가 두려워지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우선 투어 코스를 바꿔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늘 밖으로 걷는 시간이 많아져버렸죠. 투어를 끝까지 완주하는 참가자 수가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평범해졌으니까요.
워킹 투어는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서 팁을 내는 사람들 덕분에 유지가 되는 사업이랍니다. 중간에 낙오할 때도 팁을 내고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숫자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습니다. 미안한 생각이 들면 아예 얼굴을 보지 않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도 적지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크게 지장은 없었습니다. 그래봐야 어차피 소일거리였지 직업으로 생각하고 하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사실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일이야 안 맞으면 새로 찾으면 그만이었지만, 그 사람을 그곳에서 마주쳤다는 건, 정말이지 제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한 일 역시, 팁을 내지 않고 슬그머니 낙오해 버리는 투어 참가들과 비슷한 선택이었습니다. 아예 얼굴을 보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저는 휴가를 떠나서 열흘가량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고향이 있는 한국으로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 그 사람을 만난 이상, 이제 어디에서 다시 그와 마주치게 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애초에 제가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 가이드로 정착하게 된 것 역시 바로 이런 순간을 예감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지금쯤 제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길게 뜸을 들이나 궁금해 하시겠지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지만, 곧바로 결론을 이야기하기가 두렵습니다. 백 년도 넘는 그 옛날에 남들보다 유난히 더 죽음을 두려워했던 만큼, 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결론을 내 줄 수 있는 건 제가 아니라 선생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선생님께 이토록 부끄러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입니다.
휴가에서 돌아온 저는 마침내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열흘이나 비겁하게 유예기간을 두기는 했지만, 언제까지나 피할 수 있는 결론은 아니기도 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암살자 지베르티가 스스로의 명예를 내팽개쳐버린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빨라진 것을 보면서 스스로가 조금은 대견하게 여겨졌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결국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으니까요. 만인의 웃음거리가 된 지베르티와 달리 상대에게 총을 겨누기 전에 일단 하늘에 대고 두 발의 총성을 울릴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내심 그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열흘이나 지났으니 그가 일부러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 한 그를 다시 만날 가능성은 희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었다면, 그저 쏙 빼닮은 누군가를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두 번 다시 마주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해가 지고,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가로등이 꽤나 부담스러운 불빛을 머리 바로 위에서부터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퉁이를 돌아 암살자 지베르티의 무대로 들어서는 순간, 저는 그만 심장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지만, 반드시 일어날 것만 같았던 바로 그 일이.
그곳에 그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무 의미도 없어졌지만, 예전의 우리라면 “중년의 외모”라고 설명했을 겉모습을 한 사람. 갈 곳을 잃은 듯 가로등 사이를 하염없이 오가는 그의 발밑에는 그림자가 하나도 드리워있지 않았습니다. 두 개의 가로등 중 그 어느 것도 그의 형체를 포착해 내지 못한 셈입니다. 아마 그 길거리를 오가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 밤, 오직 저만이 그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저의 원본, 갈 곳을 잃은 저의 영혼, 제가 여태껏 믿고 살아온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 그는 죽은 저의 영혼이었습니다.
김은경 선생님,
이제 제가 선생님께 부탁드리려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짐작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고고심령학이었던가요? 솔직히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전부 다 신뢰하지는 않았습니다. 혼령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이제는 선생님께 이런 간곡한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게 된 것 또한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심령학은 믿지 않습니다. 아니, 유령이나 귀신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혼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줄곧 원본을 보존해야겠다는 발상이 달리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선생님이 예전에 하셨던 학문은 결국 혼령을 활용한 고고학이라고 하셨지요? 혼령 자체를 연구하지는 않지만 고고학적 증거를 얻기 위해 오래된 혼령을 발굴하고 분석하는 학문분야라고요. 그 말씀을 믿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 못해도 백 년은 된 제 영혼도 선생님의 학문이 다룰 만큼 오래된 혼령일까요?
장비를 가지고 여기로 날아오셔서, 혹은 혼령을 알아볼 수 있는 동료들을 데리고 오셔서, 죽은 저의 영혼을 봐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실 저는 아직도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저야말로 제 유일한 원본이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제 존재의 연속성을 놓쳐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혼령이 진짜로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기보다는 제 인공두뇌가 만들어낸 환각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도 생각합니다. 그 끔찍한 고통을 겪는 동안 저에게 일어난 일은 본질적으로 그런 종류의 일이었습니다. 감각이 섞이고 인지한 세상과 안쪽에서부터 튀어나온 기억이 혼재되며,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된 대신 봐야 할 것은 볼 수 없게 된 상황.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유령일 겁니다. 걱정이 만들어낸 착시일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늪 속에서, 길을 잃은 제 원본이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복제돼서 전송된 다음 영원을 살아가는 자아는 어차피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고, 그것은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명제이니까요. 어떤 방식으로 존재를 옮겼든, 사본에게는 원본이 가지고 있던 기억이나 존재의 연속성에 관한 감각이 온전히 자기 것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부디 이곳으로 날아오셔서, 이 지긋지긋한 고민을 끝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그 혼령이 제 원본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은, 저에게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돼버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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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소 선생님,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여서 읽고 또 읽고 몇 번을 거듭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모두가 흥미를 보이더군요. 다들 선생님의 요청을 들어드리는 일에 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노파심이 앞서네요. 어떤 삶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사는 편이 훨씬 더 온전한 삶에 가까우니까요.
그러나 노파심은 짧게 끝내고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선생님께서 원하시면 저희는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편지를 보내기 전에 바로 달려갈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그렇게까지 무례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제 동료가 그러더군요.
연락주세요. 날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 드리겠습니다.
백 년 된 혼령이면 그 혼령이 선생님의 “원본”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도 그다지 까다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 복식은 충분히 연구가 돼 있거든요. 아마 1-2년 범위 안에서 연대를 특정할 수 있을 겁니다.
불러만 주세요. 결론은 최대한 빠르게 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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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김은경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여전하시네요. 선생님의 그런 태도가 저에게는 언제나 삶의 지표가 됩니다. 제한 최저속도가 시속 130km인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찾아오세요, 언제든. 결말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와서 그 사람을 만나주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