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 남아공 고인류학 연구 100주년, ‘인류의 요람’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 가다

    인류의 조상은 어디서 탄생했을까. 어떻게 진화해서 지금의 우리가 됐을까. 그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 중 하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인류의 요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있다. 이곳은 전 세계 고인류 화석의 절반이 발견될 정도로 중요한 장소다. 지금도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2월 5일(현지 시각), 남아공 고인류학 연구 100주년을 맞아 인류의 요람 세계유산인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을 직접 둘러보고, 이 땅의 연구자들이 인류의 기원을 좇는 의미를 되물었다. 

     

    윤주영

     

    2025년 12월 5일, 기자가 직접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 진입하고 있다. 오리걸음을 걸어야 할 정도로 좁은 통로를 지나면 약 200만 년 전의 고인류 화석이 발견된 장소가 나온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연구소에 배열된 화석과 화석 모형들.
    고인류 화석은 물론 개코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 화석이 지금도 발굴되고 있다.

     

    12월 5일 오전 10시 남아프리카공화국 하우텡주. 따가운 햇살 아래로 초록빛 전원이 펼쳐졌다.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혼잡한 교외 판자촌을 통과해 남서쪽으로 한 시간여 차를 타고 달린 후였다. 이 목가적인 풍경이 인류의 기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차에서 내려 방문객 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가이드 트레버 부틸리지 씨가 기자단을 맞이하는 환영 인사를 건넸다. 


    “스테르크폰테인(Sterkfontein) 동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리틀 풋’과 ‘플레스 부인’ 등 여러 중요한 고인류 화석이 발견된 곳이죠.” 가이드는 기자단 너머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어서 설명했다.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5km 떨어진 ‘라이징 스타’ 동굴계에서는 그 유명한 호모 날레디(Homo naledi)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반대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는 인류 최초로 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었죠.”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을 포함해 중요한 고인류 화석 발견지가 모인 이 일대는 1999년 ‘인류의 요람(Cradle of Humankind)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동굴은 방문객 센터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올리브나무와 잡목 사이를 걸어 동굴로 걸어갔다. 소와 말이 풀을 뜯는 전원 지하에는 복잡한 동굴계가 촘촘히 들어차 있다. “올리브나무는 석회암 지형을 좋아해요. 올리브나무가 자란다는 건 주변에 동굴이 있다는 증거죠.” 가이드가 설명했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일대는 약 26억 년 전 얕고 따뜻한 바다였다. 바다에 살던 플랑크톤이 가라앉아 엄청난 두께의 석회암 지층이 형성됐고, 시간이 지나 융기한 석회암이 빗물에 녹으면서 거미줄 같은 동굴계를 만들었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인근에서만 300개가 넘는 석회동굴이 발견됐을 정도다.


    안전모를 쓴 채로 가이드를 따라 가파른 동굴 입구를 걸어 내려갔다. 머리를 숙여 좁은 입구를 통과하니 싸늘한 공기에 소름이 돋았다. 어둠에 눈이 적응되자 높고 좁은 동굴의 천장이 보였다. 바로 여기서 인류의 기원을 밝힐 위대한 발견이 이뤄졌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과학기자들이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골드러쉬 와중에 발견된 인류의 선조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이 현대인의 관심을 받은 건 19세기 말이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일대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이어졌다. 자연스레 금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석회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광부들이 동굴에서 석회암을 채굴하다 우연히 화석을 발견했고, 이를 학자들에게 보냈어요. 본격적인 연구가 193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가이드의 말처럼, 동굴 여기저기에 부서지고 깎여나간 종유석과 석순의 잔해가 보였다. 화석은 그런 석회암들 사이, 위에서 쏟아진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각력암에서 발견됐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서 처음 중요한 고인류 화석이 발견된 시기는 1947년이다. ‘플레스 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화석은 약 250만 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화석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완벽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두개골로 알려졌다. “이 철창 뒤편에서는 ‘리틀 풋’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현재도 연구 발굴이 진행 중이라 들어갈 순 없어요.” 리틀 풋(little foot)은 작은 크기의 발목뼈 4개가 먼저 발견돼 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의 별명이다. 이후 추가 조사를 통해 주변에서 무려 전체 뼈의 90%를 회수하면서 초기 고인류의 가장 완전한 골격 화석으로 거듭났다.


    오랫동안 연구가 진행됐음에도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은 여전히 신비한 장소였다. 조명이 없으면 눈앞의 손바닥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좁은 틈을 오리걸음으로 통과하려니 사방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플레스 부인과 리틀 풋도 어두운 동굴에서 길을 잃고 추락했거나, 포식자에게 사냥당해 내부로 끌려들어왔거나, 외부에서 죽은 유해가 씻겨 동굴 내부에 쌓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이다. 동굴 내부에도 아직 탐사되지 않은 구간이 많다. 1984년에는 탐사대원 한 명이 길을 잃고 3주 동안 갇혀 있다 아사한 사고도 일어났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출구로 나오니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의 연구를 이끈 두 고인류학자, 로버트 브룸과 필립 토비아스의 흉상이 보였다. 두 흉상은 초여름 남반구 햇빛을 받아 강렬한 명암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남아공의 고인류학이 100년여 동안 만들어온 영광과 수치의 세월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ㅡㅡㅡㅡㅡ

    남아공, 진정한 인류의 요람

    전체 넓이 470km2, 제주도 4분의 1 크기에 달하는 ‘인류의 요람’ 유네스코 세계유산 내에서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의 절반이 나왔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중요한 발견이 이어졌다. 인류의 요람에서 발견된 중요 고인류 화석을 종과 함께 소개한다.

     

    [367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리틀 풋’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서 발견된 리틀 풋 화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인류 화석으로, 추정 연대는 367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 발목뼈부터 발견돼 리틀 풋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매우 딱딱한 퇴적암에 들어 있어, 1997년 발견 후 20년 동안 돌을 깎아낸 끝에 2017년 마침내 공개됐다.

     

    [235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 ‘플레스 부인’
    플레스 부인은 가장 널리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화석 중 하나다. 235만 년 전 살았던 플레스 부인의 두개골에는 뇌의 용적이 작으면서도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의 특징이 남아 있었다. 이는 고인류의 진화에서 직립보행이 뇌용량의 확대보다 먼저 일어난 중요한 사건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발견 후 반 세기가 지났지만 플레스 부인이 진짜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다.

     

    [198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A. sediba)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는 2008년 8월 15일, 말라파 동굴에서 고인류학자 리 버거의 어린 아들이 발견한 신종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 고인류의 특징을 둘다 갖춘 종으로, 중간 단계의 진화를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받는다.

     

    [180만~120만 년 전]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Paranthropus robustus)
    1938년부터, 인류의 요람 일대에서는 기존과 다르게 생긴 고인류 화석이 발굴됐다. 다른 고인류 종들과 공존하며 살아간 이들은 매우 큰 어금니와 턱을 가졌고, 이를 이용해 섬유질이 많은 질긴 식물을 잘 섭취할 수 있었다. 발견자인 로버트 브룸은 이들에게 ‘인간 옆의 다른 고인류’이자 ‘강건하다’는 뜻을 가진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33만 5000~23만 6000년 전]

     

    호모 날레디(Homo naledi)
    최근 10년 사이 고인류학계에서 가장 큰 발견은 ‘호모 날레디’다. 발견된 화석만 1550점 이상으로, 단일 고인류 화석 중 가장 큰 규모다. 더욱 특이한 것은 현생 인류와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뇌 용적은 훨씬 작았다는 점이다. 이전 고인류와 많이 달라서, 단연 고인류학계를 흥분으로 몰고간 미스터리 인류라 할 수 있다.

    Wits University, José Braga; Didier Descouens(W), Ditsong Natural History Museum(W), eLife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결정적 현장

     

    고인류학자들에게 고인류학의 성지를 꼽으라면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의 두 지역을 꼽는다. 대개는 유명한 화석인 ‘루시’를 포함해 다양한 고인류 화석과 석기가 발견된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 등 동아프리카 일대를 떠올리지만, 현대적 의미의 고인류학이 시작된 곳은 남아공이다. 약 100년 전인 1924년, 당시 비트바테르스란트대 교수였던 레이먼드 다트가 학생이 가져온 원숭이 두개골 화석을 연구하다가 이 두개골이 원숭이가 아닌 고인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타웅 마을에서 발견돼 ‘타웅 아이’로 불리게 된 이 화석은 뇌의 용량은 작았음에도 두발로 서서 걸었다는 직립의 증거가 남아있었다. 이를 토대로 다트는 이 화석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는 종명을 붙이고 타웅 아이가 원숭이와 인간의 특징을 모두 갖춘 고인류 화석이라 주장했다. 지금은 당연하다 생각되는 이야기지만, 당시 그의 주장은 몇십 년 동안이나 외면당했다. 우선 당시 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에서 뇌의 용량이 커지는 일이 먼저 일어났다고 여겼다. 더 중요하게도, 유럽 백인으로 구성된 주류 학계는 열등하다 여긴 흑인이 사는 아프리카가 인류의 기원이라고 믿기 힘들어했다. 심지어 이들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필트다운인’ 화석이 1912년 영국에서 발견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타웅 아이를 시작으로 남아공에서 다양한 고인류 화석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필트다운인 화석은 1953년 위조품임이 밝혀지며 고인류학 역사상 가장 큰 사기 사건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고인류학자인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남아공은 100년이 넘는 고인류학 연구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고인류학이 자리를 잡기 이전인 20세기 전반에 주요 자료가 발견됐고, 여기에 식민제국주의 역사까지 더해지면서 동아프리카의 고인류학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Science Photo Library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서 리틀 풋 화석을 발굴 중인 고인류학자들. 이 사진은 발굴 작업이 한창인 2010년에 촬영됐다.

     

    고DNA 분석과 AI로 다시 뛰는 고인류학

     

    동굴을 나오자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연구의 총책임자 욥 키비가 기자를 동굴 바깥 연구실에서 50m가량 떨어진 발굴 현장으로 데려갔다. 철제 난간이 설치된 아래로 거대한 구멍이 검은 아가리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키비 총책임은 그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발굴 현장 구석의 지층을 가리켰다. 


    “여기, 위 지층에 박힌 뼈가 보이나요? 210만 년은 됐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 붉은 지층 사이로 흰색의 갈비뼈가 보였다. 연구실에는 처리를 기다리는 화석들이 쌓여있었다. 남아공에서 고인류학 연구가 시작된지 10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이곳에서는 세계 첨단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008년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가, 5년 후에는 ‘호모 날레디’라는 신종 고인류가 발견됐다. 호모 날레디는 약 23~33만 년 전, 현생 인류와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뇌 용량이 인간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던 고인류다. 그럼에도 시신 매장 등 여러 문화 활동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받았다. 이 교수는 “(남아공이) 21세기 들어 굵직한 발견과 연구 성과를 계속 내며 주목받고 있다”며 “흑인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20세기 고인류학의 한계를 넘어 21세기 고인류학을 이끌 잠재력을 지닌 핵심 지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남아공의 고인류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2025년 12월 2일 프리토리아에서 만난 디푸오 위니 코틀링 요하네스버그대 고생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재 고인류학 연구의 트렌드는 오래된 분자를 분석하는 것”이라 답했다.


    “예전에는 고인류의 종류를 동정할 때 형태적인 부분만 봤어요. 화석 수량이 많지 않으니 불완전했죠. 여기에 DNA와 단백질 분석이 더해졌어요.” 고DNA 분석은 고인류 화석에 남아있는 오래된 DNA를 추출해 다른 인류와의 근연 관계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어금니 화석 하나만 가지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인류인 ‘데니소바인’의 존재를 밝혀내는 등 근래 뜨겁게 달아오른 분야다. 이 방법으로 최근 남아공 연구진들이 150~1만 200년 전 사이 살았던 28명의 고대 남아프리카인 유전체를 분석해 현대 인류의 기원이 남아프리카였다는 연구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기도 했다. doi: 10.1038/s41586-025-09811-4 


    고DNA 분석에 더해지는 방법이 ‘고단백질 분석’이다. 고DNA와 마찬가지로 화석에 남은 오래된 단백질을 분석한다. 코틀링 책임은 “기술이 발전해 이제는 180만 년 전의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 화석에서도 단백질을 추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태적 분류에 DNA와 단백질 분석이 합쳐져 복잡한 고인류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창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AI)도 한창 도입하는 중”이라며 “인간이 발견하기 힘든 화석 사이의 유사성을 찾거나, 고인류가 살던 당시의 생태를 복원하는 등 AI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어 연구 속도가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 2025년 12월 5일,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연구의 총책임자 욥 키비가 발굴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가리킨 지층에서 흰색의 화석이 튀어나온 모습이 보인다.

     


    2 스테르크폰테인 발굴 현장의 화석 처리 담당 기술자 아벨 몰레폴레가 자신의 작업물 앞에 서 있다. 그는 1967년부터 일한 아버지 데이비드 몰레폴레의 뒤를 이어 1999년부터 스테르크폰테인 발굴팀으로 일했다. 20년 동안 리틀 풋 화석을 발굴한 당사자 중 한명이기도 하다.

     


    차별의 증거에서 자긍심의 상징으로

     

    코틀링 책임에게는 연구만큼이나 중요한 목표가 있다. 바로 자신과 같은 흑인들이 고인류학에 더 관심을 갖고 연구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 것이다. “지금 아프리카에는 탈식민주의 연구의 바람이 불고 있어요. 에티오피아부터 남아공까지, 식민지를 지배했던 백인이 아니라 이 땅에서 나고 자란 흑인들이 직접 화석을 연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의미죠.”


    아프리카 대륙은 여러 유럽 국가에 식민지로 착취당한 과거를 갖고 있다. 남아공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계와 영국계 백인이 지배했던 남아공은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시행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악명을 떨쳤다. 약 반 세기 동안 남아공 인구의 10% 정도 되는 백인이 정권을 장악해 90%의 흑인을 모든 분야에서 차별하고 통제했다.


    고인류학에도 자연스럽게 그 영향이 미쳤다. 레이먼드 다트, 로버트 브룸과 같은 초기 고인류학자 모두가 백인 남성이었다(플레스 부인을 연구한 브룸은 본인이 인종차별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나아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실시한 국민당 정부는 고인류학 연구를 차별 정책의 근거로 쓰기도 했다. ‘다양한 고인류가 공존한 과거를 보라. 인종은 본질적으로 다르니 다른 인종끼리 분리돼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를 밝혀낸 백인 과학자들은 남아공을 통치할 자격이 있다’는 논리였다. 


    어두운 과거를 돌이켜보던 코틀링 책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 아마도 남아공의 1세대 흑인 여성 고인류학 연구자일 거예요. 이전까지 흑인들은 연구자라는 꿈을 꾸기도 힘들었죠.” 1981년생인 코틀링 책임은 남아공 역사의 격동기를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다. 1990년,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을 주도하던 넬슨 만델라가 출소했다. 인종차별 정책이 흔들리면서 처음으로 남아공 흑인들에게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했다. 


    “저는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이후, 부모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러 가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당시 남아공에는 억압받았던 흑인들이 백인에게 폭력으로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감돌았어요. 그러나 이때 당선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흑백 통합의 기치를 내걸었죠.”


    당시 흑백 통합의 상징 중 하나로 쓰인 것 또한 고인류학이었다. “뼈 화석을 보세요. 검은 피부를 가졌든, 흰 피부를 가졌든, 뼈의 색깔은 같아요. 우리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거죠.” 코틀링 책임은 “심지어 남아공의 국장에도 동굴 벽화가 그려져 있을 정도”라며 국장을 찾아서 보여줬다. 과연 국장에는 인종 간의 화해를 상징이라도 하듯, 동굴 벽화에서 나온 두 인물이 손을 맞잡고 있었다.


    백인 남성 일색이던 남아공 고인류학계는 점점 다양한 성별과 인종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남아공의 과학도 꾸준히 변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코틀링 책임은 말했다. “이제 고인류 화석은 우리의 고향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자부심의 원천이자, 남아공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상징입니다. 제 사명은 남아공의 고인류 화석을 보존하고, 저와 같은 흑인 연구자를 앞으로도 꾸준히 길러내는 겁니다.”


    남아공 취재 일정의 마지막 날인 12월 5일, 요하네스버그의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에 들렀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수립과 철폐에 이르는 차별의 역사가 온전히 보존된 장소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박물관 입구 긴 복도에 걸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의 두개골 화석이었다. 원숭이와 별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작아 보이는 복제품 두개골 화석 옆에는 화석의 기원에 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이 설명이야말로 모든 남아공인들이 미래를 향해 던지는 말 아니었을까. 

     

    2025년 12월 2일 만난 디푸오 위니 코틀링 요하네스버그대 고생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그는 고인류학이 남아공인들에게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인류의 기원은 남아프리카의 고대 암석과 퇴적층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이 먼 기원의 흔적이 담겨 있어, 공통된 아프리카 뿌리를 반영합니다.
    약 20만 년 전의 한 조상으로부터,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대륙으로 진출해 세계를 채웠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들의 후손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남아프리카공화국 하우텡=이창욱
    • 도움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 디자인

      박주현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