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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바보의 金, 황철석

광물이야기 시즌2 ➒ 철과 그 광물들 下

 

2000년대 초 서울 어느 유명 백화점에서 광물 전시회를 열었다. 해외 대형 자연사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수준의 멋진 광물들이 전시됐는데, 최고로 주목을 받았던 전시회의 스타는 단연 황철석이었다. 노랗게 번쩍이는 광택과 매끈한 기하학적 결정이 마치 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황철석은 ‘바보의 금(fool’s gold)’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겉모습은 금과 비슷하지만, 황철석은 철과 황이 결합한 광물로 금보다는 흔하다. 조흔색으로 손쉽게 금과의 차이를 알 수 있는데, 금이 노란색인 반면 황철석은 검은색이다. 또 비중은 금의 4분의 1 정도이며, 단단하기는 금보다 월등하다. 금의 상대 굳기가 2.5인데 비해, 황철석은 6이다.

 

 

황철석에서 시작된 미다스 왕 신화


약간의 과학적 지식만 갖고 있으면 쉽게 금과 황철석을 구별할 수 있지만 광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황철석을 진짜 금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신화나 역사서에는 이런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미다스 왕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소원을 빌어 무엇이든 그의 손길이 닿으면 황금으로 바뀌게 만드는 능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이 능력으로 뜻하지 않게 딸을 황금으로 만들어버린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신화와 전설은 현실에 상상이 더해진 경우가 많다. 미다스 왕 이야기도 그렇다. 미다스 왕의 경우 오늘날 터키 지역에 기원전 8세기경 있었던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실존 인물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겨났을까. 프리기아왕국은 황철석과 황동석이 풍부하게 산출되는 지역에 위치했다고 한다. 황금을 닮은 황철석과 황동석이 풍부했던 프리기아 왕국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의 말이 입소문을 통해 ‘온통 황금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부풀려지면서 만들어진 교훈적인 이야기라는 해석이 많다.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신화를 해석한 것이지만, 실제 역사 기록에도 ‘바보의 금’과 관련된 사건이 있다. 16세기 후반 영국의 탐험가 마틴 프로비셔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대륙으로 떠난 항해에서 캐나다의 한 섬에 도착해 노랗게 번쩍이는 광석을 발견했다. 이 광석은 금이 다량 묻힌 금광석으로 인정받았다. 일반 투자자는 물론 왕실도 지원에 나섰고, 그는 1577~1578년 유럽인 최초로 신대륙에서 광산을 운영했다.

 

그는 여기서 채굴된 광석을 우여 곡절 끝에 영국 본토의 제련소로 보냈지만, 금을 얻지는 못했다. 금이 아니라 황철석이었던 것이다. 결국 대박을 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광석들은 도로 포장용 자갈로 사용됐다.

 

 

황산 제조용에서 태양광전지 소재로


황철석의 영어 이름(pyrite)은 불꽃을 뜻하는 그리스어(PYR)에서 기원했다. 황철석이 부싯돌과 부딪혔을 때 불꽃이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 실제 황철석은 16~17세기경 점화 도구로 많이 쓰였다. 황철석은 주로 황산 제조용 원료로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천연가스에 밀리면서 딱히 쓰임새가 없어졌고, 멋진 모양을 가진 표본만 수집가들의 사냥감이 됐다. 또 어린 학생들의 금 찾기 체험 놀이에서 금 대신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황철석이 산업적인 용도로 부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황철석은 일회용 배터리에 음극으로 사용되며, 싸고 풍부하다는 장점 때문에 최근 태양광전지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비록 별명은 바보의 금이지만, 사실은 인류에게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광물인 셈이다. 현대판 ‘미다스의 손’이라 할 수 있는 과학기술에 황철석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지섭_director@naturehistory.com
광물 수집가이자 이야기꾼. 현재 희귀광물 3000여 점을 전시하는 ‘민 자연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 30년 넘게 근무하다 부사장으로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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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지섭 민 자연사연구소장
  • 에디터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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