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예외없이 일본의 법을 무시한 고래사냥은 계속됐다. 벌써 10년째 일본은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고래를 무자비하게 잡아들이고 있다.
지난 4월 8일 일본 시모노세키항에는 4백40마리의 밍크고래를 실은 포경선 니신마루호가 당당하게 입항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경고는 전혀 안중에 없었다. 더구나 고래를 잡은 곳은 국제포경위원회(IWC)가 1994년 보호지역으로 정한 남극이었다. 또한 일본은 상업적인 고래잡이에나 쓰이는 고래공선(factory ship)을 이용했다. 3척의 고래잡이배와 한척의 고래 추적선을 거느린 거대한 니신마루호를 연구용 고래잡이배로 봐달라는 일본의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옹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오히려 당당했다. 5월 16-20일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의 50차 연차회의에 참석한 일본은 노르웨이와 더불어 상업적인 고래잡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또 무스카트로 떠나기 앞서 한국, 중국, 러시아와 함께 북서태평양의 고래를 관리하는 국제기구인 ‘북서태평양고래관리위원회(가칭)’를 설립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든든한 받침목도 괴어 놓았다. 이는 상업적인 고래잡이를 지지하는 그룹을 조직해 포경을 금지하는 국제사회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결과 50차 연차총회에서 공해를 고래의 성역으로 정하자는 아일랜드의 제안은 큰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북반구 참고래 1천마리 미만
현재 일본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잡은 고래가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팔려 나가고 있다. 고래고기는 돼지고기나 쇠고기보다 10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또 일부 고래고기는 학교 급식에도 사용된다. 학생들에게 고래고기에 대한 입맛을 익히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고래 연구자들인지 고래업자인지 하는 사람들은 고래공선을 공개해 일본인들의 관심을 끊임없이 고양시키고 있다. 연구용 고래잡이라는 국제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일본은 국민들에게 상업적인 고래잡이마저 허용돼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일본의 행동에 조심스럽게 동조하는 나라들이 있다. 노르웨이, 러시아, 그리고 한국 등이다. 노르웨이나 러시아에서는 고래고기를 스테이크를 해서 먹거나 소시지를 만들어 먹고 있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까지 동해안에서 고래 가게들이 성시를 이뤘다. 포항 구룡포와 울산 장생포는 대표적인 포경 전진기지였다. 그런데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가 포경을 금지하는 바람에 고래잡이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법 고래잡이까지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자연보호기금은 1994년 한국에서 판매가 금지된 고래고기가 발견됐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일식집에서 초밥용으로 고래고기가 판매되는 모습을 비디오로 담아 증거물로 제시했다. 상황이야 어떻든 우리 정부는 1993년 5월 과학적인 측정에 의해 어족자원의 보전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고래잡이는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상업적인 고래잡이를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하나, 아니면 고래잡이는 계속 금지해야 하는가. 이를 판단하기 위해선 현재 5대양을 누비는 고래가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이는 고래가 가지고 있는 기름의 정도, 나이, 크기, 종족 번식과 수, 분포 등을 고려한다면 상업적인 고래잡이를 허용해도 된다고 말한다.
고래잡이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로 증기기관선을 앞세운 고래공선이 등장할 때부터다. 이때부터 고래에 대한 무차별한 학살이 시작됐다. 특히 흰수염고래, 수염고래처럼 빨리 움직이는 것도 작살의 표적이 됐다. 이러다 보니 20세기 초에 이르러 참고래, 혹등고래 등 고래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참고래는 많아야 5천마리(북반구에선 1천마리 이하), 혹등고래는 2만마리, 흰수염고래는 5천마리 미만이다.
그래서 1925년 국제연맹(현 UN의 전신)은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고래산업을 규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30년 국제포경통계국이 만들어졌다. 1년 후에는 22개 나라가 서명한 포경규제협약이 제네바에서 체결됐다. 이것이 고래잡이를 규제한 최초의 국제협약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 칠레, 아르헨티나, 러시아(옛소련), 독일 등은 여기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포경규제협약은 고래공선으로 고래를 잡는 것만 규제했을 뿐, 자국 해안에서 고래를 잡는 것까지 규제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1946년 12월 워싱턴 DC에서 조인된 ‘포경 규제를 위한 국제협정’에 따라 다시금 만들어진 것이 국제포경위원회다. 국제포경위원회는 1949년 설립됐으며, 현재의 회원국은 40개국이다. 본부는 영국 케임브리지 히스톤에 있으며, 매년 회원국을 돌면서 연차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국제포경위원회는 출범하면서 각국의 고래 포획 할당량을 정하는 등 고래잡이를 강력하게 규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각 나라에서 고래를 얼마나 잡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을 뿐더러, 설령 더 잡는다고 해도 징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국제포경위원회도 설립된지 50년이 지났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포경보다 환경파괴가 더 문제
대체 고래는 매년 얼마나 희생되고 있으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931년 포경규제협약이 체결되던 해에는 4만3천마리의 고래가 희생됐다. 또 국제포경위원회가 출범한 후인 1961년에는 6만6천마리의 고래가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최근 몇년간 국제포경위원회가 집계한 자료(표1)를 보면, 올해는 1천6백마리 정도가 목숨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일본과 노르웨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3분의 2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자신들이 잡는 고래 때문에 지구상의 고래가 멸종되리라고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일본이 가장 많이 잡고 있는 밍크고래는 최근 증가세에 있다.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들은 참고래, 흰수염고래, 양자강돌고래, 인더스강돌고래 등이다. 참고래는 각국의 보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늘지 않고 있다. 원인은 배와 충돌하거나 다른 고기의 그물에 걸려 희생되는 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흰수염고래의 경우 최대의 적은 불법 고래잡이다. 이처럼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들은 근친교배가 늘어나면서 더욱 번식률이 떨어지고 있다.
한편 양자강과 인더스강 등에 사는 돌고래는 댐건설, 수질오염, 수상교통의 발달, 남획 등으로 사라지고 있다. 1992-1994년 중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양자강에 사는 돌고래는 1백마리 미만이다.
고래를 사라지게 하는 진짜 이유는 사실 포경이 아니라 인간이 바다에 처놓은 그물, 환경오염, 소음, 인간이 만든 시설물들이다. 이들은 고래가 서식하는 환경 자체를 망쳐놓고 있다. 1990년 한해 동안 태평양과 인도양에 처놓은 그물 때문에 죽어간 고래는 31만-1백만마리라는 국제포경위원회의 발표도 이를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