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내년 2월, 첫 학부 졸업생을 배출한다.
2004년 첫 삽을 뜬 지 14년 만이다. DGIST는 2011년 석·박사 학위과정을 개설하고, 2014년 첫 학부생을 모집하며 그간 숨가쁘게 달려왔다. DGIST는 과학기술 특성화대학 ‘맏이’인 KAIST나 ‘둘째’인 GIST(광주과학기술원)가 하지 못한 일도 과감하게 시도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無)학과 단일학부제도를 운영하면서 모든 신입생을 기초학부에 소속시키고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 기초 과목을 수강하게 했다. DGIST 1회 졸업생이 될 4학년 학부생 3명을 만나 DGIST의 강점을 들어봤다.
DGIST는 국내 최초로 모든 학생이 전자교재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개발한 전자교재만 40여종이다. 올해 8월에는 교보문고에서 수학 분야 전자교재 1종을 출판해(9월 중 1종 추가 출판 예정) 누구나 사볼 수 있게 했다.
3학년 때 연구 시작, 수업은 저널로
DGIST 학생들은 단순한 문제풀이를 반복하지 않는다. 1, 2학년 때 배운 기초과목을 토대로 3학년 때는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를 스스로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3학년 학생들이 5~6명씩 한 팀을 이뤄 1년 동안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부공동연구프로그램(UGRP·Undergraduate Group Research Program)이 대표적이다.
임진택 씨(22)는 지난해 UGRP에서 딥러닝 알고리듬을 활용해 교통량을 최적화한 도로를 설계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를 마친 뒤, 그는 외과수술 로봇을 개발하는 DGIST 로봇공학전공 스마트연구실로 진학을 결정했다.
임 씨는 “미생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UGRP 연구를하며 기계학습이 실생활의 다양한 문제를 푸는 데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향후 기계학습을 접목해 더욱 정밀한 수술로봇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DGIST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도 많다. 예컨대, 3학년 생명과학 과목들은 교과서가 아니라 최신 생명과학 논문을 교재로 삼는다. 현재 학계에서 어떤 주제가 가장 주목받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일찌감치 자신이 어떤 연구 주제에 흥미를 느끼는지 가늠할 수 있다.
오혜린 씨(22)는 지난해 생명과학특강 수업을 통해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의학이 최근 활발히 연구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DGIST 뇌인지과학전공 대학원에서 인턴십을 하며 세포내의 대사물질과 대사회로를 연구하는 대사체학(Metabolomics)이라는 분야를 알게 됐다. 이를 통해 대사체학과 영상의학을 결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교과서로만 지식을 배우거나 전공을 정해서 과목을 들었다면, 이런 진로를 고려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이를 연구하는 곳이 없어 해외로 눈을 돌렸고, MRI를 이용해 대사체 분석을 할 수 있는 영국 노팅엄대 의대 박사과정에 진학이 최근 확정됐다. 오 씨는 “영상을 통해 비침습적으로 대사체를 분석해, 뇌질환을 조기에 효율적으로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국내 2000개 연구실 정보 제공 벤처 창업
DGIST는 기업가 정신 함양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학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실제 제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1, 2학년 과목에 기술경영과 기업가정신이 포함돼 있고, 벤처 투자자들의 특강도 수시로 열린다. 매년 교내 창업경진대회도 주최한다.
최혁진 씨(22)는 국내 2000여 개 연구실 정보를 제공하는 벤처기업 ‘랩바이랩’을 창업하고 올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대학생이라는 신분 외에 ‘대표’라는 명함이 벌써 생긴 셈이다. 최 씨는 “실제 사업을 하려면 기술 외에도 세무, 투자 등을 잘 알아야 한다”며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교내 기술창업혁신센터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DGIST 학부생은 동서양철학, 예술사, 비교역사학 등 인문학과, 악기와 태권도 등 예체능 과목도 수강하면서 융·복합 인재로 거듭나고 있다. 최 씨는 “회사대표가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어야 변호사와 투자자, 팀원 등 여러 사람의 의견을 제대로 조율할 수 있다”며 “1, 2학년 때 들었던 인문학 과목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