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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쇼미더맛 제6의 맛 쟁탈전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국물이 일품인 잔치국수, 찬물을 붓고 무를 숭숭 썰어 넣어 맑게 끓여낸 복지리, 겉을 바삭하게 구운 삼겹살….

 

각기 다른 음식이지만 공통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맛이 있다. 쓴맛, 단맛, 신맛, 짠맛에 이어 다섯 번째 맛으로 인정받은 감칠맛이다. 감칠맛은 고기나 생선, 버섯, 해조류 등 재료 자체에서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맛을 가리킨다.

 

일본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는 일찍이 1907년 감칠맛을 내는 분자인 ‘글루탐산나트륨(MonoSodium Glutamate)’을 발견해 학계에 보고 했다. 소위 ‘MSG’로 불리는 그 분자다. 하지만 감칠맛이 제5의 맛으로 공식 인정받은 건 1980년대 이후 혀에서 MSG와 결합하는 미각 수용체가 발견되고 나서였다.

 

80년 동안 학계에서 감칠맛이 기본 맛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해서’라는 이유였다. 일본어로는 ‘우마미(うま味)’ 중국어로는 ‘선미(鮮味)’라고 불릴 만큼 아시아에서 감칠맛은 친숙하다. 하지만 달고 짜고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서양인들은 감칠맛이 낯설다. 지금도 감칠맛을 표현하기 위해 특정 회사에서 만든 스테이크 소스나 멕시코풍 스낵을 예로 들 정도다.

 

최근 전 세계 과학자들은 감칠맛에 이어 ‘제6의 맛’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맛이 생존과 직결돼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맛은 기호나 취향의 영역이 아니었던가. 미국의 화학자 게리 보샹 박사는 지난해 10월 국제 학술지 ‘생리학및행동’ 저널에서 에너지원인 포도당에서는 단맛이, 세포 내 신호전달에 필요한 나트륨에서는 짠맛이 난다며 맛과 생존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doi:10.1016/j.physbeh.2016.05.007).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쾌감은 사실 몸에서 필요한 성분을 섭취하도록 부추기는 본능인 셈이다.

 

기본 맛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학적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우선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특징이 있어야 한다. 즉, 특정한 맛을 내는 특정 분자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분자는 혀에 있는 미각 수용체와 결합해야 한다. 미각 수용체가 받아들인 맛 정보는 촉각 정보를 전달하는 3차신경이 아니라 미각신경을 따라 대뇌까지 전달돼야 한다.

 

이들 조건을 만족시키는 맛 후보는 현재까지 4개다. 이들은 제6의 맛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제6의 맛으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맛 분자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맛 분자와 결합하는 수용체와 미각 신경이 활성화하는 원리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국제 학회에서 전문가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오늘의 메뉴는 하얗고 걸쭉한 크림소스에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베이컨을 얹은 파스타, 혀에 감기는 듯한 연어 구이, 그리고 체다 치즈를 잔뜩 뿌린 감자튀김이다. 디저트로는 땅콩을 솔솔 뿌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앞으로 몇 달 동안 이탈리아 음식은 못 먹을 것 같다. 신 김치를 잔뜩 먹어야 사라질 것 같은 이 느끼함. 느끼함도 맛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2012년 리차드 매티스 미국 퍼듀대 섭식행동연구센터 교수는 고기와 생선, 견과류 등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느끼한 맛에 주목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아몬드와 코코넛, 호두, 아몬드버터, 올리브오일을 1분간 입에 넣고 씹거나 오물거리다가 뱉게 했다. 그리고 가스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분석기로 타액을 분석했다.

 

그 결과 팔미틴산과 올레산, 리놀레산, 스테아린산 등 비(非) 에스테르형지방산의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 매티스 교수는 2013년 2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발행하는 화학 분야 저널인 ‘케미컬 센스(Chemical Senses)’에 이 결과를 발표하며, 이 정도 농도라면 미각을 자극해 맛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doi:10.1093/chemse/bjs095). 하지만 매티스 교수의 주장은 당시 학계에서는 무시당했다. 기름의 물리적 특성이 미끄럽고 점성이 있는 만큼 느끼함은 맛이 아니라 촉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매티스 교수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추가 연구를 진행했다. 기름 특유의 미끄러움과 끈적임을 없애기 위해 리놀레산에 유화액을 넣어 용액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용액을 각각 0.06%, 0.15%, 0.38% 농도로 만들어 종이를 적신 뒤 실험참가자 735명에게 45초간 입에 물고 맛을 보게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지방산 맛을 여전히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도가 낮을 때는 고기나 버터를 떠올렸지만, 농도가 높을수록 가죽 끈 맛이나 플라스틱 맛 등으로 표현하며 불쾌해 했다.

 

매티스 교수는 “지방의 질감은 무척 좋지만 맛 자체는 불쾌하다”며 “지방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원이지만 많이 섭취하면 비만과 당뇨 등 질환에 걸리기 쉬운 만큼 본능적으로 양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연구는 2015년 10월 ‘케미컬 센스’에 실렸다(doi:10.1093/chemse/bjv040).

 

지방산과 결합하는 미각 수용체도 발견됐다. 2011년 필립 베스타르 프랑스 부르고뉴대 식품생리학과 교수팀은 설치류의 혀에서 지방산과 결합하는 미각수용체 2개(CD36, GPR120)를 확인했고, 이들 지방산이 미각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인간의 혀에도 CD36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CD36의 역할이 면역세포와 지방세포, 근육세포, 장세포 등에서 지방산과 결합해 세포 내 신호 전달에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산 맛이 제6의 맛으로 인정받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매티스 교수는 혀에 있는 CD36과 지방산의 결합 여부와 미각신경 자극 메커니즘을 연구 중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처럼 고기를 푸짐하게 먹은 날에도 왠지 밥이 빠지면 섭섭하다. ‘치맥’ 대신 치킨 옆에 고봉밥을 퍼 두고 ‘치밥’을 즐긴다는 사람도 있다. 매일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혹시 밥에도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침에 든 효소인 아밀레이스가 탄수화물(당류)을 포도당으로 잘게 부숴 단맛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한다. 밥을 오랫동안 씹으면 느껴지는 달콤한 끝 맛이 좋은 예다. 하지만 밥에는 단맛 이외에도 특유의 맛이 있다. 밥, 빵, 국수, 파스타 등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바로 그 맛이다.

 

임주연 미국 오리건주립대 식품과학공학과 교수팀은 밥, 빵, 파스타, 감자 등 탄수화물에 단맛 외에도 특유의 맛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11월 ‘케미컬 센스’에 발표했다(doi:10.1093/chemse/bjw088). 임 교수팀은 실험참가자 22명의 혀에 락티솔을 바른 뒤 각종 탄수화물 용액을 맛보게 했다. 락티솔은 포도당이나 과당 등이 들러붙는 단맛 수용체(hT1R2, hT1R3)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실험참가자들은 포도당이나 맥아당, 수크랄로스가 든 용액을 맛보고도 단맛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포도당이 든 용액만은 가려냈다. 단맛 이외에 특유의 녹말맛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포도당이 단맛 수용체가 아닌 다른 미각 수용체에 붙어 녹말맛을 느끼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포도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미각 수용체와 결합해 녹말맛을 내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미각 수용체를 찾은 다음에는 실제로 미각 신경이 활성화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더니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시금치와 케일에서는 쓴맛이 난다. 단순히 쓴맛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톡 쏘면서도 혀끝에 침이 감도는 묘한 맛이 있다.

 

커피나 자몽 등 우리가 흔히 쓴맛으로 인지하는 성분은 유기 화합물인 ‘퀴닌’이다. 재미있게도 퀴닌 수용체는 폐와 기도에도 있는데, 퀴닌이 붙으면 기도를 확장할 수 있어 천식 치료제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쓴 채소 중에서 퀴닌이 없는 종류도 많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모넬화학감각연구소 행동유전학자인 마이클 토도프 박사는 시금치, 케일, 청경채, 비터멜론에서 나는 톡 쏘는 듯한 쓴맛은 칼슘 맛이라고 주장했다.

 

토도프 박사는 2008년 쥐 실험을 통해 혀에서 칼슘이 결합하는 수용체(T1R3, CaSR)를 찾았다(doi:10.1152/physiolgenomics.90200.2008). 그전까지 CaSR 수용체는 뇌와 장, 신장에서 칼슘을 감지해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T1R3 수용체는 단맛 수용체로만 알려져 있었고, 나중에야 감칠맛 수용체라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이들 두 수용체는 사람에게도 존재한다.

 

토도프 박사팀은 2012년 실험참가자들의 혀에 락티솔을 바른 뒤 젖산칼슘 용액을 맛보게 했다. 실험참가자들은 락티솔을 바르기 전에는 ‘쓴맛이 감도는 신맛’이 난다고 표현했지만, 락티솔을 바른 뒤에는 이 맛이 느껴지긴 하나 약해졌다고 답했다.

 

재미있게도, 락티솔을 바른 뒤 참가자들이 단맛은 전혀 느끼지 못한 반면 칼슘맛과 감칠맛은 약하게 느꼈다. 토도프 박사는 T1R3 수용체에 어떤 분자가 붙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져 단맛이나 감칠맛, 또는 칼슘맛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단맛 수용체를 이루는 성분(hT1R2, hT1R3)은 락티솔로 모두 차단되지만, hT1R3와 CaSR이 결합한 칼슘맛 수용체는 락티솔에 의해 절반만 차단되는 셈이다. 이 연구는 ‘사이언티픽 리포트’ 2012년 7월 6일자에 실렸다(doi:10.1038/srep00496).

 

토도프 박사는 사람들이 칼슘맛에 묘하게 끌리면서도 쓰다고 불쾌해하는 이유에 대해 “칼슘은 세포 간 신호 전달이나 뼈 성장 등 우리 몸에서 꼭 필요한 성분이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신장 결석이나 심장질환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며 “미량만 섭취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단맛을 내는 포도당이나 짠맛을 내는 나트륨에 비해 역치가 낮다”고 설명했다.

 

 

큰 솥에 호박과 토마토, 가지, 콩, 양파, 닭고기, 그리고 소의 뒷 다리 뼈를 넣었다. 그리고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까지 오랜 시간 약한 불에 뭉근하게 고았다. 해가 넘어가고 달이 올라오고 별이 뜰 때까지 국물을 휘휘 젓다가, 마지막으로 ‘마법가루’를 한 꼬집 뿌린다. 마녀가 만드는 마법수프 얘기가 아니다.

 

감칠맛을 제5의 맛으로 인정받게 만든 일본 과학자들이 이번에는 제6의 맛에 도전하고 있다. 감칠맛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한 식료품 회사인 아지노모토에서 풍미를 연구하고 있는 수의생리학자 요시다 신타로 박사팀은 몇 가지 펩티드 성분이 ‘마법가루’ 같은 ‘코쿠미(kokumi)맛’을 낸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푹 끓인 고깃국이나 발효가 잘 된 된장이나 간장, 치즈처럼 조리 시간이 길어질수록 코쿠미가 많이 생기는데, 이런 코쿠미가 단맛이나 짠맛, 감칠맛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doi:10.1016/j.foodchem.2013.03.070).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고기와 젖, 채소 등을 오랫동안 끓이거나 발효 시키면,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여러 가지 아미노산이 생겨나 풍미가 깊어진다고 설명해왔다. 그런데 연구팀은 펩티드 중에서도 글루타티온과 글루타밀-바릴-글리신(glutamylvalyl-glycine)은 칼슘맛 수용체 분자인 CaSR과 결합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이 연구는 2012년 4월 ‘미국공공과학도서관 온라인학술지(PLoS ONE·플로스원)’에 발표됐다(doi:10.1371/journal.pone.0034489).

 

코쿠미가 칼슘맛 수용체를 이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지자, 이 수용체를 발견한 토도프 박사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코쿠미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코쿠미 자체로는 아무 맛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맛 성분과 함께 있을 때에만 깊고 풍부한 맛이 나게끔 시너지를 내는 성분을 맛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아지노모토 연구팀은 감칠맛과 마찬가지로 동서양의 식문화 차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류미라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팀이 펩티드가 칼슘맛 수용체와 결합해 코쿠미맛을 낸다는 연구 결과를 2015년 발표한 바 있다(doi:10.1016/j.bbrc.2014.11.114). 연구팀은 펩티드가 칼슘맛 수용체에 붙어 쓴맛의 인지 과정을 방해하면서 훨씬 깊은 맛을 느끼게 만든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를 이용해 소금(나트륨)을 적게 넣으면서도 짠맛은 향상시킨 펩티드를 개발해 국내 특허를 출원했다.

 

류 연구원은 “한국 음식에는 된장이나 조선간장, 새우젓, 미역국 등에 코쿠미가 많다”면서 “예를 들어 조선간장을 만드는 동안에는 누룩곰팡이의 효소가 단백질을 다양한 펩티드로 분해해 코쿠미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쿠미를 제6의 맛으로 인정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토도프 박사와 의견을 같이 한다. 류 연구원은 “코쿠미는 다른 맛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할 뿐, 엄밀히 말해 독립된 맛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매운맛이나 떫은맛은 입안 점막을 자극하는 압력이나 온도 변화 등 촉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후보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반면 신맛 수용체에 들러붙어 미각을 활성화시키는 ‘물맛’과 탄산음료 등에서 톡 쏘는 ‘이산화탄소맛’, 불에 구울 때 나는 ‘직화맛(불맛)’ 등도 제6의 맛 후보로 거론된다.

 

인류 생존의 관점에서는 어떤 후보가 제6의 맛으로 선정되는게 좋을까. 과학자들이 밝혀내고 있는 후보 가운데 해당 음식을 떠올렸을 때 단번에 공감할 수 있는, 나만의 ‘제6의 맛’을 정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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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사진

    G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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