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 15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우주로 떠났던 토성 탐사선 ‘카시니(Cassini)’가 9월 15일 토성 대기에 충돌해 불타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길이 6.8m, 폭 4m인 카시니는 2004년 우주 탐사 역사상 최초로 토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토성과 그 고리 사이의 혹독한 여행에서 살아남아 13년 동안 놀라운 사진들을 보내왔다.
카시니의 위대한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2005.01
토성의 최대 위성 ‘타이탄’에 착륙하다
카시니로 불리는 토성 탐사선의 공식 명칭은 ‘카시니-호이겐스(하위헌스)’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제작한 궤도선 카시니와, 유럽우주국(ESA)이 제작한 탐사선 호이겐스가 결합된 형태다. 이들은 2004년 7월 1일 지구로부터 약 13억km 떨어진 토성 궤도에 도착했다. 1997년 10월 지구를 떠난 지 7년 만이었다. 인류 역사상 첫 토성 궤도 진입 성공이다.
토성에 도착하고 6개월 뒤 호이겐스는 카시니에서 분리됐고, 2005년 1월 14일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Titan)’에 착륙했다. 인류가 만든 탐사선이 화성 궤도 너머에 착륙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지름이 달의 1.5배 정도인 타이탄은 태양계 위성 중에서 두껍고 짙은 대기를 가진 유일한 위성이다.
호이겐스는 타이탄의 대기와 지질을 탐사했다. 그 결과 타이탄의 대기가 지구와 유사하게 대부분 질소로 이뤄져 있고 소량의 메탄이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질소와 메탄의 혼합물이 복잡한 유기화합물을 만들어냈을 수 있다는 단서를 잡은 것이다. 지구의 초기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2005.07
‘살아 있는’ 엔셀라두스를 보다
호이겐스와 분리된 카시니는 토성의 궤도를 돌면서 얼음 위성인 ‘엔셀라두스(Enceladus)’를 근접 비행했다. 그러던 중 남극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호랑이의 줄무늬처럼 구불구불한 협곡에서 증기와 얼음 구름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깊이가 300m에 이르는 이 협곡이 엔셀라두스 땅 속에 있는 바다에서 따뜻한 증기가 제트처럼 분출하며 남긴 흔적이라고 추측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7년 과학학술지 ‘네이처’에는 제트가 뿜어져 나오는 위치가 엔셀라두스에서 가장 따뜻한 ‘핫 스팟’이라는 분석 결과가 실렸다(doi:10.1038/nature06217).
2006.07
타이탄에서 액체 바다를 발견하다
카시니는 토성의 궤도를 돌면서 타이탄과 한 달에 한 번 조우했다. 종종 근접 비행도 했다. 그 결과 타이탄에 액체 상태의 ‘바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타이탄에는 무려 수십 개의 바다가 있었다. 그 중에는 길이가 32km를 넘는 바다도 발견됐다. 지구 밖 천체에서 바다가 발견된 건 처음이었다.
훗날 과학자들은 카시니가 레이더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바다가 메탄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학자들은 이 바다가 대기에 메탄을 공급하고, 이것이 다시 비로 내려 표면의 얼음이 되는 메탄 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했다(doi:10.1002/2014JA020394).
2006.09
‘반지’를 완성하다
가스형 행성인 토성과 목성을 놓고 볼 때, 토성이 목성을 유일하게 능가하는 부분은 고리다. 카시니는 2006년 3시간 동안 촬영한 165개의 이미지를 조합해 이전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상세한 고리의 모습을 공개했다.
카시니는 두 개의 희미한 고리(G고리, E고리)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 고리들은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태양이 고리의 바로 뒤쪽에 왔을 때만 밝아졌다. NASA 연구팀은 E고리의 일부가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분출된 얼음입자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후에도 카시니는 고리와 관련된 수많은 데이터를 전송했다. 그 결과 고리의 폭과 질량, 구성 성분 등이 밝혀졌다. 또한 고리가 독립적인 궤도상에 있는 수십 억 개의 파편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알려졌다. 파편의 지름은 수 마이크로미터(μm·1μm는 100만 분의 1m)에서 수 미터(m)로 다양했고, 밀도가 높은 고리에서는 파편들이 위성의 영향을 받아 물결처럼 일렁이는 ‘파도’가 관측됐다.
2009.07
엔셀라두스 바다에서 암모니아를 찾다
NASA 연구팀은 카시니의 이온 및 중성질량분광기(INMS)가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엔셀라두스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제트에 암모니아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네이처’에 발표했다.(doi:10.1038/nature08352)
암모니아는 마치 부동액처럼 용액의 어는점을 낮춰서 섭씨 영하 97도에도 액체 상태를 유지시킨다. 액체 상태의 용액과 유기물질이 존재한다면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더욱 높다.
올해 4월 NASA 연구팀은 이 바다에 수소 분자도 다량 들어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혔다. 연구팀은 뜨거운 내부 바닷물이 암석에 있는 유기물질과 상호작용해 수소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구의 심해 열수구와 유사한 환경이다. 연구팀은 빛 대신 화합물의 산화 환원 반응으로 에너지를 얻는 미생물이 지구에서처럼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NASA는 현재 ‘엔셀라두스 라이프 파인더’ 라는 카시니의 후속 임무를 고심하고 있다.
2010.11
‘레아’에서 산소를 발견하다
카시니는 얼음위성 ‘레아(Rhea)’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섞인 얇은 외기권을 발견했다. NASA 연구팀은 카시니에 장착된 이온 및 중성질량분석기의 데이터와 플라스마 분광기의 데이터를 결합해 1m3당 최고 500억 개의 산소 분자와 최고 200억 개의 이산화탄소 분자를 검출했다.
산소의 양 자체는 지구에 존재하는 것보다 약 5조 배적을 정도로 희박한 양이었다. 그러나 지구 밖 천체에서 산소 분자가 발견된 최초의 사례라 의미가 컸다. NASA 연구팀은 토성의 자기장에 갇혀있는 입자들이 얼음 표면에 화학 반응을 일으켜 산소가 방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는 얼음 표면에 추가적으로 복잡한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연구팀은 만약 화학 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면 레아의 대기가 현재보다 100배가량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3월에는 위성 ‘디오네(Dione)’에서도 1cm3 당 1개의 산소 이온을 가진 외기권이 발견됐다.
2010.12
토성의 괴물 폭풍을 추적하다
토성에는 20~30년마다 괴물급 폭풍이 발생한다. 카시니는 적외선 분광기를 이용해 2010년 12월 발생한 폭풍을 최초로 우주에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doi:10.1038/nature10205). 폭풍은 약 3개월 동안 토성의 북위 30도 부근을 돌면서 동서로 30만km에 걸쳐 거대한 구름을 형성했다. 사진에는 토성 대기의 깊숙한 곳에서 얼음 구름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생생하게 찍혔다.
이런 폭풍은 대류 현상이 잦은 가스형 행성에서는 흔히 나타난다. 목성에서도 자주 관측된다. 그런데 토성의 폭풍은 목성과 달랐다. 목성의 폭풍은 행성 외부로 높이 솟아오르는 반면, 토성은 그렇지 않았다.
또 평소 토성의 폭풍은 규모가 지구의 폭풍보다 훨씬 작은데, 괴물급 폭풍은 구름의 크기가 지구보다 10~20배 더 컸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 공동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괴물급 폭풍의 속도가 시속 500km에 이를 것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2013.12
육각형 제트류 구름, ‘영화’로 만들다
토성 북극에 나타나는 육각형 제트류 구름(위 사진)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로 꼽힌다. 지구가 2개 들어갈 크기의 영역 안에서 제트기류가 초속 100m로 빠르게 회전하는데, 전체적으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일부 작은 소용돌이는 시계 방향으로 돈다. 지구의 허리케인은 보통 일주일 정도 지속되지만, 이 육각형 제트류 구름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됐다. 앞으로 수 세기 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2009년 카시니는 토성의 가장 안쪽 고리 안으로 진입해 이런 육각형 제트 구름을 촬영해냈다. 보이저 우주선이 촬영한 이후 30년 만이었다. 카시니는 2013년 촬영을 업그레이드해 최고 해상도의 컬러 영상도 확보했다. 고 해상도 카메라로 북극에서 위도 약 70도까지의 영역을 10시간 동안 촬영한 뒤, 128개의 이미지를 합쳐 육각형 구름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는 ‘영화’를 제작했다.
2015.01
2017.09
‘굿바이 키스’를 하다
카시니는 올해 4월 말 토성 고리를 통과하면서 마지막 임무로 토성 근접 비행인 ‘그랜드 피날레’를 시작했다. 시속 12만km 속도로 토성과 그 고리 사이 궤도를 22바퀴 돌고 최종적으로 토성 대기에 근접하는 ‘죽음의 비행’이었다. 카시니는 그 과정에서도 토성 자기장과 중력, 고리에 대한 정보를 지구로 전송했다. 9월 12일에는 타이탄에 11만9049km까지 접근하며 타이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NASA는 여기에 ‘굿바이 키스(the goodbye kiss)’라는 로맨틱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9월 15일, 카시니는 한국시간으로 저녁 8시 55분경 토성의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고도 1500km 지점에 도달하자 엄청난 열이 발생해 1분 만에 선체가 소진됐다. NASA 연구팀은 토성계에 존재할지 모르는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 카시니를 불태웠다. 카시니가 동력원으로 사용하던 플루토늄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돼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카시니는 마지막까지도 임무를 다했다. 불타 파괴되기 1분 전까지도 토성의 대기에서 플라스마 밀도, 자기장, 온도, 대기 조성 등 8가지 데이터를 측정해 거의 실시간으로 지구로 전송했다. 토마스 주부첸 NASA 과학임무본부장은 임무 종료를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오늘(9월 15일)은 카시니 임무의 마지막 날이자 새로운 시작”이라며 “카시니가 발견한 타이탄과 엔셀라두스는 지구 밖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말했다. 카시니 프로젝트의 담당자인 린다 스필커 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은 “카시니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과학적 성과는 수년 동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그가 평생 동안 보내온 데이터의 산에서 겨우 표면을 긁어냈을 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