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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술읽혀요| 나의 일본 유학 일기

 

 

도쿄대에는 ‘미타카 프리즌’이라는 악명 높은 대학 기숙사가 있다. 정식 명칭은 ‘도쿄대학 미타카 국제학생기숙사’다. 일본 지방에서 수도인 도쿄로 상경한 1~2학년 대학생들이나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원생들이 주로 지내는 곳이다. 


방세는 한화로 월 20만 원 전후다. 50만~70만 원 정도인 비싼 도쿄 월세와 비교해 보면 절반 수준으로 저렴하다. 이렇게 좋은 조건에도 학생들 사이에서 프리즌, 즉 감옥이라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유배지처럼 학교에서 뚝 떨어져 도쿄 외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쿄대의 기숙사인데, 학교 다닐 만은 하겠지.’


나와 같은 유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이곳에 우선 배정된다. 처음에는 다들 별생각 없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익히 상상했던 화려한 도쿄 시내 중심은 아니더라도 ‘학교 다니는 데 지장은 없을 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첫 통학길에 바로 생각이 달라진다. 기숙사는 학교에서 굉장히 멀다.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타야 하며, 1시간 이상 걸린다. 기숙사 입지도 꽤 특이해서 주변에 논밭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본부가 기숙사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이에 대해 아무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나, 기숙사생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소문은 있다. 지금의 미타카 기숙사 부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작전본부가 있던 전략적 요충지였고, 전쟁이 끝나고 헐값에 나와 있던 그 땅을 도쿄대가 사들여 아무 생각 없이 기숙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다.


비록 외진 곳에 있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주변에 놀 거리가 딱히 없으니 기숙사생들끼리 어울려서 놀 일이 많았고, 그 덕분에 금방 친해졌다. 주변에 밥 먹을 식당도 마땅히 없으니 쓸쓸한 자취생들을 좁은 기숙사 방으로 불러 밥을 해 먹는 재미도 있었다. 


문득 그때 만났던 친구 중에 생활력이 강한 중국인 유학생 친구가 한 명 떠오른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양배추 한 개를 사 오더니 그것만으로 일주일 내내 삶고 볶고 지져 먹으며 끼니를 해결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도심에서 떨어진 황량한 논밭에 사는 장점도 있다. 주변에서 민원 들어올 걱정 없이 드론을 날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친구들과 기숙사 뒤뜰에 가서 드론을 날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또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벚꽃으로 유명한 이노카시라 공원이 있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독특한 방식으로 전시하는 지브리 미술관도 공원 내에 있다. 


기숙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의 취미는 학교가 끝난 뒤 맛집 탐방 겸 마을 구경 삼아 자전거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이노카시라 공원을 비롯해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하곤 했다. 마을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했고, 동화에 나올법한 귀여운 카페와 빵집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나도 토토로처럼 지브리 영화 속에 나올법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사는 건 달랐다. 숲이나 밭이 근처에 있어서인지 기숙사에는 바퀴벌레가 득실거렸다. 게다가 인적이 드물어서 해가 지면 주변이 급속히 어두워졌는데 이것이 낙후된 기숙사 건물과 합쳐져 마치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가 살 법한 분위기를 풍겼다. 날이 갈수록 공부량은 늘어나는데 통학시간은 길다 보니 결국 해 뜰 때 학교에 가고, 해 질 때 집에 돌아와 지쳐 쓰러지는 일상이 계속됐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만 보고 동경했던 생활환경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통학이 너무 불편해서 학교 다니기가 싫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점점 기숙사 ‘탈출’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때 기숙사 친구들은 방값이 워낙 싸니 “우리는 미타카 프리즌에서 살아남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자”며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입학 1년 만에 학교 캠퍼스와 딱 붙어있는 자취방을 구해서 미타카 프리즌을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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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안재솔 일본 도쿄대 전자정보공학부 3학년
  • 에디터

    조혜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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