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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정복의 꿈이 현실로

에이즈는 지속적인 개선에 그쳐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과거 난치병으로 알려진 치명적 질환들이 하나씩 정복되는 추세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은 암을 비롯한 각종 난치병 치료의 물꼬를 확실하게 틀 것이다. 하지만 병원균과의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인간의 세포를 공격하는 에이즈 바이러스(위, 파란색)와 암세포(아래, 보라색). 암과 에이즈는 현대 불치병의 대명사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이제 20세기의 사고와 관행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전개될 것이다. 21세기의 미래기술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할 것 같다. 과거의 관념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기술이 등장하며, 그 덕분에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진 일들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현대 의학으로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판명된 난치병 역시 획기적으로 정복될 전망이다.

암과 에이즈. 난치병의 대명사로 알려진 질환들이다. 그런데 편의상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의 관점에서 이들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암은 기본적으로 특정 유전자의 이상 때문에 발생한다. 만일 암덩어리가 생성되는 유전자 수준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밝힌다면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무난히 개발될 것이다. 즉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돼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이 밝혀지면 암이 정복되는 일이 꿈만은 아닐 것이다.

암세포 말려 죽이는 고사 작전

그러나 에이즈는 다르다. 에이즈는 인간의 유전자와 무관하게 바이러스가 외부에서 침투함으로써 발생한다. 더욱이 바이러스를 비롯한 각종 병원균은 신약에 대해 끊임없이 내성을 갖춰나간다. 따라서 병원균과의 싸움은 ‘완전한 근절’보다는 ‘지속적인 개선’ 정도의 양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유전자 지도를 완성해 궁극적으로 ‘유전병 사냥’에 나서기 위해 시작됐다.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난치병은 암을 비롯해 뇌신경계 질환(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씨병 등), 혈액질환(혈우병 등), 대사분비계 이상(당뇨병 등), 그리고 류머티스가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성과를 이용해 개발될 신약에 의해 정복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는 암의 사례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자.

하루가 다르게 현대 의학이 발달하고 있지만 암은 아직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난치병이며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질환이다. 그러나 앞으로 10-25년 내에 암의 진단과 예방, 그리고 치료가 모두 완벽하게 이루어져 암의 정복이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주변 세포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분열하다가 어느 시기에 도달하면 분열을 멈추고 죽음에 이른다. 그런데 암은 세포 분열을 통제하는 특정 유전자의 한 부분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세포의 무한증식을 초래함으로써 발생한다.

지난 20여년 간의 연구 결과 암의 발병원인과 특성이 비교적 상세히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근거한 새로운 암치료제가 가까운 미래에 임상에 사용될 전망이다. 현재 암치료의 연구 경향은 크게 두가지, 즉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방법과 주변의 혈관을 차단해 암세포를 ‘말려 죽이는’ 고사(枯死) 작전이 있다.

암세포가 자살을 한다는 말은 보통의 세포처럼 어느 순간 분열을 멈추고 죽는다는 의미다. 세포에서 자살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핵심적인 유전자가 p53이다. 흥미롭게도 모든 암의 55% 정도에서 p53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만일 이 돌연변이를 막을 수 있다면 암세포 역시 자살할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의 한가지 해결책은 p53을 암에 직접 주입하는 유전자 치료법이다. 최근 기존의 화학요법제로 치료받는 생쥐에게 p53을 주입하자 암세포가 크게 감소했다는 고무적인 보고가 들렸다.

이와 달리 p53이 정상인 암세포의 경우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중이다. p53이 정상이라면 왜 세포가 자살하지 못할까. 해결의 단서는 p53이 정상인 암의 30% 정도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단백질(Mdm2)에서 찾아졌다. 이 단백질은 p53이 만들어낸 단백질과 결합해 p53의 기능을 억제한다. 그렇다면 이 단백질들의 결합을 방해하는 약물을 만들어내면 암세포의 자살이 이뤄질 수 있다.

어느 방법이 성공하든 p53을 타겟으로 삼는 항암제는 오로지 암세포에만 작용하기 때문에 주변의 정상 세포에 해가 없다. 그래서 기존의 화학요법제와 달리 머리털이 빠지거나 몸의 백혈구가 파괴는 등의 부작용은 사라질 전망이다.


에이즈환자


에이즈 백신 접종 10년 후 가능

항암제 개발의 두번째 경향은 암세포 주변의 영양분 공급로를 차단시키는 방법으로 진행중이다. 암세포가 성장하고 옆으로 퍼지려면 주변에 새로운 혈관이 생성돼야 한다. 이 혈관의 형성을 차단하면 암세포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더이상 자랄 수 없고, 결국 사멸에 이른다.

작년 전세계의 주목을 크게 받았던 앤지오스태틴과 엔도스태틴은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혈관의 형성을 억제해 암세포의 크기를 뚜렷이 줄인다는 점이 입증됐다. 그러나 이들은 대량생산이 쉽지 않고 실험이 잘 재현되지 않아 현재 임상시험이 보류되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임상시험에 돌입할 새로운 화합물을 개발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암과 달리 에이즈는 외부의 병원균의 침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난치병이다. 에이즈는 전세계적으로 3천만명이 넘는 감염자와 1천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고 현재에도 매일 1만6천여명을 감염시키고 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에이즈는 불치의 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10여종이 넘는 에이즈치료제가 개발됐으며, 특히 여러 치료제를 혼합해서 바이러스의 기능을 억제하는 ‘칵테일 요법’이 등장함으로써 일단 에이즈를 무력화시키는데는 성공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 에이즈환자의 사망률이 1996년을 전후해 현저히 감소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몇년 사이 미국 환자의 사망률이 매년 절반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수준으로는 에이즈 환자가 약을 계속 복용하기만 하면 사망에는 이르지 않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즉 에이즈는 불치병에서 ‘다스릴 수 있는 병’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에이즈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통해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특성을 가진다. 그래서 오랜 시간 많은 비용을 투자해 개발한 치료제를 쉽사리 무력화시킨다. 따라서 치료제보다는 백신을 개발해 감염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1987년 이후 세계 25개 회사가 실험용 에이즈 백신을 개발해 왔고, 현재 임상시험에 돌입하고 있는 후보가 상당수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에이즈백신은 기존의 백신보다 개발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에이즈백신을 만들기 위해 일단 어느 정도 무력화된 에이즈 바이러스(또는 바이러스 유전자)를 인체에 투입하고, 이때 몸에서 생긴 항체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에이즈 바이러스는 어찌나 신출귀몰한지 자신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즉 에이즈 바이러스는 인체의 면역계가 감지할 수 없도록 자신의 유전자 기능을 몰래 숨겨두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껏 개발한 백신을 접종받았다 해도, 몸에 들어온 에이즈 바이러스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숨겨둔 유전자의 기능을 발휘하면 말짱 헛일이 되고 만다.

또다른 난관도 있다. 에이즈 백신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일단 건강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험해야 한다. 즉 백신을 접종하고 난 후 에이즈 바이러스를 투입해야 하는 다소 위험한 실험이 행해진다.

기초 연구자들은 이 위험성 때문에 수천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실시하기 전에 반드시 백신의 면역반응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백신 연구자들은 사용중인 기존의 백신도 임상시험 전에 증명된 적이 없으며, 오직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서만 백신의 효력이 증명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어느 쪽이 옳든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에이즈 백신의 접종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21세기는 치매나 파킨슨씨병과 같은 뇌질환과의 싸움이 본격화될 것이다. 사진은 뇌의 표면을 촬영한 모습.


뇌질환과 맞서는 시대

20세기가 주로 암이나 에이즈에 대항해 싸우는 시대라면 21세기는 인류가 치매와 같은 뇌질환과 맞서야 하는 시대가 전개될 전망이다. 이 사실은 신약개발의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내년에 연구개발비를 책정한 분야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미국 제약업계는 내년에 총 연구개발비로 올해보다 17% 늘어난 2백40억달러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투자되는 분야가 알츠하이머형 치매, 정신분열증, 우울증, 간질, 파킨슨씨병 등이 해당하는 뇌신경계 질환이다(26%). 다음으로 암, 골다공증, 당뇨병 등과 같은 악성종양·대사장애 분야(21%), 심장순환계 질환(15%), 각종 병균에 의한 감염성 질환 분야(14%) 등이 주요 투자 흐름이다.

20세기 들어 많은 신체 기관의 비밀이 베일을 벗었지만 뇌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의 미래학자 제프리 피셔에 따르면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2012년에 발병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지고, 2015년에 치매발병 유전자의 작동원리가 알려지며, 2020년에 먹는 약으로 간단히 치료를 할 수 있고, 2021년에 그 치료율이 95%에 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제프리 피셔의 예견대로라면,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이 공감하듯이 앞으로 20년 후에는 평생을 쌓아온 학식이나 덕망을 순식간에 파괴시키는 끔찍한 치매를 비롯한 다양한 뇌질환을 퇴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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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임세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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