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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사나이 가는 길을 막는 건 누구?

정자가 난자를 만나 태아가 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이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불임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중 하나만 차단하면 피임이 가능하다. 정자들의 가상 레이스를 통해 남성을 대상으로 한 불임과 피임 연구 현황을 알아본다.


 1. 정소 
 젠다루사

엄친아 씨의 정자가 넘어졌군요. 엄친아 정자의 속도가 느려진 것은 쥐꼬리망초과에 속하는 ‘젠다루사’로 만든 알약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흔한 식물이라고 하는데요. 인도네시아 아이랑가대 생약및식물화학과 밤방 프라조고 교수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이 약은 정자가 난자를 향해 움직이는 데 필수적인 효소를 약화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연구팀은 35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세 차례에 걸쳐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99.96%로 피임에 성공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수치는 시판되고 있는 어떤 피임약보다 성공률이 높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식품의약청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고, 1년간의 안전성 검사가 끝나면 바로 판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세계 최초의 남성 경구피임약이 되겠네요!
 


 2. ​정관 
 바살젤

엄친아 정자가 또 죽었네요. 시작부터 흐름이 좋습니다. 이번에는 길이 막혀버리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네요. 길을 막고 있는 건…, 물컹물컹한 젤입니다. 보통 이렇게 정관이 막혀버리는 경우는 정관수술을 할 때뿐인데요. 지금 정관을 막고 있는 건 미국 비영리의료연구재단인 파시머스 재단이 개발한 주사형 피임약 ‘바살젤’입니다. 성분이 고분자 화합물이기 때문에 본인이 원할 때 젤을 분해하거나 빼낼 수 있습니다. 토끼를 대상으로 바살젤을 실험한 결과, 1년간 정액 샘플에서 정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14개월 뒤 젤을 제거한 토끼에서는 정자 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하네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바살젤은 성공적으로 임신을 막았으며, 사람을 대상으로한 첫 임상시험은 2018년에 시작될 예정입니다.



 3. 질 

(손을 휘휘 내저으며) 저기, 정액에 엉겨 붙어가지고 못 나가는 정자 누굽니까! 또 엄친아 정자입니까! 그런데 엄친아 정자 주변에 Y자 모양의 부스러기들이 잔뜩 있는데요. 항체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피임약 전문 제약사 ‘에핀파르마’의 마이클 오랜드 대표는 정액응고 및 액화에 관여하는 ‘에핀’ 단백질을 수컷 보닛마카크 원숭이 9마리의 혈관에 주입했습니다.

사정 이후 정액은 순간적으로 굳었다가, 다시 액체로 변해 질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에핀은 이 같은 정액의 액화에 관여하는 단백질입니다. 그런데 에핀을 혈액에 주입하면 에핀을 항원으로 인식해 항체가 만들어집니다. 원숭이 실험 결과, 항체 때문에 에핀이 정액 성분과 결합하지 못했고, 응고된 정액이 다시 액화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정자가 응고된 정액을 탈출하지 못해 피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드 대표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독성에 대한 검사가 완료되면, 사람에게서 피임의 효과를 확인한 뒤 남성 피임약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doi:10.1126/science.1099743).
 

 4. 자궁경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친아 정자 한 마리가 더 죽었어요. 또 어떤 피임약이 완벽한 엄친아 정자를 막은 걸까요? 정자는 질에서 자궁으로 올라가면서 난자 막을 뚫는 데 필요한 물질을 분비할 수 있는 능력(수정능력)을 획득합니다. 사람의 경우 약 6시간이 걸리는데요. 수정능력이 없는 정자는 난자 막을 뚫지 못하는 등 제대로 수정을 할 수 없습니다. 미국 렌셀러폴리테크닉대 화학과 미크 플래트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자의 특정 단백질에 인산이 붙는 것(인산화)을 막으면 수정능력 획득에 관여하는 신호전달체계가 작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doi:10.1021/pr800796j). 수정능력 스위치를 끄는 셈입니다. 플래트 교수는 “이를 이용하면 효과적인 피임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5. 나팔관 

엄친아 정자는 또 죽었어요. 파죽지세로 피임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망원경을 들며) 자세히 보니까 꼬리 모양이 좀 이상합니다. 꼬리가 위 아래로 힘차게 움직여야 하는데, 허리가 구부러진 것처럼 머리와 꼬리가 맞닿아있어요. 무언가가 정자 꼬리에 칼슘이 공급되는 걸 막은 모양입니다.

정자 꼬리에는 ‘CatSper’라는 칼슘 채널이 있습니다.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정자의 ‘ABHD2’ 단백질과 결합하면 칼슘 채널이 열리고요, 여기로 대량의 칼슘이 유입되면 꼬리가 아래를 치면서 움직이게 됩니다. 미국 UC버클리 분자및세포생물학과 폴리나 리시코 교수팀은 뇌공등(Tripterygium wilfordii )이라는 식물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인 ‘프리스티메린’과, 민들레 뿌리와 망고 등에 들어있는 ‘루페올’이 프로게스테론과 ABHD2의 결합을 막아 정자 꼬리의 움직임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5월 30일자에 발표했습니다. 칼슘 유입이 원활하지 않은 엄친아 정자의 꼬리는 파워킥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네요(doi:10.1073/pnas.1700367114). 연구팀은 현재 이 물질이 실험실 환경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임신을 막을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피임약으로 만들어진다면 엄친아 씨가 아주 기뻐하겠네요!

(임신 실패)
아, 이게 웬일인가요!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던 덜렁이 정자! 비틀대고 있네요. 덜렁이 씨는 아기를 너무나 갖고 싶어 하는데, 정말 안된 일입니다. ‘항정자 항체’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난자를 뚫고 들어가지를 못하네요. 항정자 항체는 보조생식술의 발달로 연구가 중단된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밝혀진 바가 많지 않죠. 정자 수나 모양에는 이상이 없다니 참으로 미묘한 일입니다. 현행 정액검사는 다 통과하고 이번 레이스에 참가한 거잖습니까. 계명찬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몸 안에 이미 생긴 항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며 “평소 정소를 보호하고 면역반응이 정상을 유지하도록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형광으로 빛나는 SP-10 항체가 정자의 머리에 붙어 있다.

저쪽에서는 비가 내리는 것 같아요. Y자 모양의 항정자 항체군요. 누가 항체를 뿌린 모양입니다. 덕분에 엄친아 씨는 임신을 또 피할 수 있게 됐네요. 저 항체는 성숙한 정자의 첨체에만 존재하는 ‘SP-10’ 단백질의 항체입니다. 첨체는 정자 머리 끝에 있는 기관으로, 난자 막을 뚫는 데 필요한 단백질이 들어 있습니다. SP-10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일본 게이오대 의대 토시오 하마나티 교수팀이 수컷 쥐에게 이 항체를 주입했더니 실험 쥐의 정자가 암컷 쥐의 난자와 결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doi:10.1095/biolreprod62.5.1201). 첨체의 단백질이 수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한 메커니즘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단백질들을 이용한 항정자 항체 피임약 연구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6. 자궁내막​ 

(임신 실패)
앗, 흥부자 정자! 드디어 난자와 만났습니다. 몇 년 째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흥부자 씨가 덩실덩실 춤을 추겠는데요! 앗, 잠시만요! 이게 웬일인가요! 자궁내막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자꾸 미끄러지네요. 학술지 ‘생식및불임’ 2013년 2월 6일자에 게재된 논문(doi:10.1016/j.fertnstert.2012.12.049)에 따르면, DNA 분절과 불임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배아가 발달하려면 DNA에서 RNA로 전사가 일어나 여러 필수 단백질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흥부자 정자가 음주가무를 즐긴 탓에 DNA가 끊어져 전사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 겁니다. 당연히 발생에 필수인 단백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합니다. 이 경우, 착상이 잘 안 되거나 착상이 되더라도 초기 유산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죠. 흥부자 정자를 구할 방법은 없을까요? 그냥 정자를 잘 선정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고배율(6600배율)로 정자의 모양을 검사하고 배아를 이식하기 전 유전자의 이상 유무도 확인합니다. 최근에는 건강한 정자일수록 히알루론산에 잘 결합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체외수정시술 시 정자를 고를 때 이 물질을 이용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7. 배아​ 
(임신 실패)
레이스가 길어질수록 탈락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요섹남 정자인데요, 아…, 이를 어쩌나요. 태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고 신경관 결손이 생기고 있는 현장입니다. 그러게 엽산을 많이 먹은 뒤에 출전을 했어야 하는데….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엽산을 먹지 않은 수컷의 2세와 엽산을 많이 먹은 수컷의 2세를 비교 분석했을 때, 전자에서 선천성 결손의 발생 비율이 30%가량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doi:10.1038/ncomms3889). 추가 분석 결과, 엽산 결핍으로 발달과 대사 과정에 관여하는 정자의 유전자에서 DNA 메틸화(유전자 발현 조절 기작) 수준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듣고 계신가요? 남성도 금주, 금연하고 엽산 섭취한 뒤에 계획 임신하셔야 한다고요!
 

체외수정 반복해도 괜찮을까

정자를 인위적으로 골라 난자에 직접 주입해 배아를 만드는 체외수정 방법인 정자미세직접주입술(ICSI)로 태어난 남성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생식 능력이 떨어질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doi:10.1093/humrep/dew245) 벨기에 브뤼셀대병원 임상유전학센터 플로렌스 벨바 교수팀이 ICSI로 태어난 남성 54명을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남성 57명과 비교분석한 결과, 운동성이 있는 정자의 수가 절반에 불과했다. 또, 총 정자 수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상이라고 정의한 수치(총 3900만 개, 1mL당 1500만 개)보다 낮을 확률이 각각 4배, 3배에 달했다. 정자의 질이 떨어지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만약 그 원인이 Y염색체 미세결실이면 아들에게 100% 유전된다. 영국 에든버러대 생식건강센터 리차드 샤프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ICSI는 남성 불임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로 미루는 시술”이라고 말했다. 계명찬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체외수정으로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인구가 늘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시술은 비싸다. 이대로 가다간 돈이 많은 사람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미래가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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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최지원 기자
  • 도움

    계명찬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 김동석 차병원 비뇨기과 교수 이건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일러스트

    박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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