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채 9시가 되지 않은 밤이었다. 신도시의 주공 아파트 단지로 우주선 한 대가 진입했다. 인류의 역사에서는 처음 있었던 일이지만 우주선의 크기가 만두 가게에서 쓰는 쟁반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우주선인지 알아 채고 놀라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아파트 8동의 경비 영감님은 빛나는 우주선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놀라지도 않았다.

“또 7층 아저씨인가 보네. 건물 근처에서 드론 함부로 띄우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해도 듣지를 않아, 듣지를 않아. 요즘 사람들 다 자기 잘난 줄 알지 누가 경비 말을 듣나.”

체념적인 경비 영감님의 혼잣말과는 달리 그 우주선의 내부는 대단히 긴박했다.

“시리우스 회피 기동을 실시하라!”

“황제 폐하, 시리우스 회피 기동은 우주선에 너무 무리가 큽니다.”

“어쩔 수 없다. 지금 회피 기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힐이힐의 탐사 로봇에 붙잡힐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게 끝이다. 이 행성에 이렇게 공기가 많을 줄 몰랐다. 우주선이 움직일 때마다 휘익휘익 바람 소리가 나니까 이힐이힐의 고성능 진동 감지 장치로 그 소리가 일으키는 공기의 진동을 감지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확률 밀도 함수 붕괴 장치 일시 정지! 시리우스 회피 기동 준비 완료!”

“시리우스 회피 기동 개시!”

황제가 외치는 소리와 함께 우주선은 이상한 빛을 내뿜으며 아주 빠르게 잠깐 진동했다. 그러나 잠시 후 빛은 사라졌다. 우주선은 깜깜한 밤하늘에서 눈에 뜨이지 않게 되었고, 또한 제대로 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우주선은 비틀거리다가 아파트 건물 11층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토착 종족이 건설한 인공 구조물 쪽으로 추락합니다.”

“충격에 대비하라!”

“황제 폐하, 황제 폐하를 모시고 우주의 운명을 걸고 싸울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 말 마라, 치클! 나야 말로 너와 같은 신하가 이처럼 나를 도와 주어 서글프지만 기쁜 황제 노릇이었다.”

“추락 전 3, 2, 1”

그리고 우주선은 창문이 열린 집의 방충망을 향해 충돌했다. 더워서 창문을 열어 놓은 이 집의 주인은 낡은 철사로 된 방충망이 외부에서 침입하는 모기나 풍뎅이 같은 생명체들을 차단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듯 했다. 그러나 소마젤란 은하에서 날아 온 황제의 우주선이 충돌하는 것을 막아내기에는 부족했다.

우주선은 방충망을 부수고 방 안으로 들어 왔다. 불이 꺼진 방 안은 캄캄했다. 그래도 바깥에서 새어 들어 오는 달빛 때문에 방 안에 아기 침대 하나와 그곳에서 자고 있는 9개월 가량의 지구인 아기 한 명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닫힌 문 바깥에서는 이 집의 다른 거주자인 아기의 부모가 아기를 재워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그 순간 대략 이러했다.

“그래도 우리 형편에는 일단 전세를 알아 봐야지. 그거 말고는 답이 없잖아.”

“요즘처럼 금리가 낮은데 우리도 집 사는 것도 알아 봐야지. 알아 보지도 못해?”

방충망이 부서지는 소리는 작지 않았다. 하지만 두 지구인 부부는 점차 격정적으로 치닫는 자신들의 논쟁에 빠져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방 안의 아기만이 무엇인가를 눈치 챘는지 조금씩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 어서 빠져 나오십시오. 우주선이 폭발하면 옥체가 위험하십니다.”

“하하, 치클. 우습구나. 이 우주선이 폭발한다면 이 태양계 자체가 증발할 것이다. 내가 네 다리를 아무리 빨리 놀려 본다 한들 목숨을 얼마나 더 오래 부지할 수 있겠느냐.”

황제는 지구인의 표현 방식으로 번역한다면 허탈한 웃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행위를 하였다. 이윽고 황제와 치클은 우주선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우주복을 입고 있는 황제와 치클의 몸에는 팔뚝만한 크기인 네 개의 다리가 달려 있었는데, 그 네개는 똑같이 생겨서 지구인의 팔 역할도 다리 역할도 필요에 따라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신을 죽여 주십시오. 제가 이 행성으로 도망가자고 했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행성에 이렇게 공기가 많아서 소리가 많이 날 것이라는 점을 그만 간과했습니다. 이힐이힐의 기체 진동 추적 기술은 우주 제일인데, 이렇게 소리가 많이 나는 곳으로 황제 폐하를 이끌다니, 이 모든 것이 신의 무거운 죄입니다.”

“치클. 그런 말 말거라. 이힐이힐이 사용하는 결맞음 통신기가 사용하는 파장이 이 행성에 풍부한 단백질 분자의 크기와 비슷해서 이 행성으로 숨으면 이힐이힐의 통신이 교란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니었느냐? 어찌 일부러 그러한 일이겠느냐?”

“그러나 황제 폐하, 생각보다 단백질은 많지도 않고 대부분의 물체는 규소와 칼슘 화합물로 되어 있으니, 교란 효과도 별로 크지 않을 듯 합니다.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치클은 괴로워하였다. 황제는 손에 들고 있던 컴퓨터를 조작하여 아파트의 벽면과 바닥을 조사해 보았다. 치클이 말한 대로, 아파트는 시멘트 재질로 되어 있었을 뿐, 단백질 생명체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가 말했다.

“어쩌겠느냐. 이 행성이 나의 무덤이 될 모양이다. 이 또한 초끈의 뜻 아니겠느냐? 이힐이힐이 웜홀 기술을 개발했을 때, 그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어느새 이힐이힐의 기술력과 경제력이 우리 제국을 크게 능가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현명하지 못하고 내가 부덕한 탓이다. 이제 3차 퀘이사 대전에서 패배하고 그 많은 우주전함을 모조리 잃었으니, 이 머나먼 외딴 행성에 숨어 들었다가 이힐이힐의 탐사 로봇에 발각되어 외로이 죽는다 한들, 무슨 억울할 것이 있겠느냐? 다만 2억 년 동안 이어 온 선대의 조종세업이 내 대에서 끝나게 되어, 그 종묘사직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황제의 말을 듣고 치클은 네 개의 다리를 물결치듯 진동하였다. 무거운 예의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치클이 말했다.

“황제 폐하, 그와 같이 약한 마음은 먹지 마소서. 7000만 년 전 반란이 일어나 선대 황제 폐하께서 중성자별에 갇히셨을 때, 황제 곁에는 오직 구형 컴퓨터 한 대뿐이었으나 결국 해킹으로 재기하여 다시 우주를 제패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또한 1억 2000만 년 전 아히히히 종족이 공격해 왔을 때에는 선대 황제 폐하께서 네 다리 중 셋을 잃을 정도로 위험하셨지만 결국 백색왜성 전투에서 승리하시고 다시 우주를 구하셨습니다. 지금 황제 폐하께서 패배하셨다고는 하나, 아직 얼마든지 우주를 날 수 있는 우주선이 곁에 있고, 또한 미약한 힘이나마 저와 같은 신하가 있지 않습니까? 제 온몸이 붕괴되는 참 쿼크와 같이 쪼개지도록 힘을 다할 터이니, 반드시 이힐이힐의 추적에서 벗어나 다시 우주를 되찾으십시오.”

황제는 잠시 말이 없었다. 대신 말이 나온 김에 컴퓨터로 우주선을 점검해 보았다. 치클은 다시 말했다.

“안드로메다 은하계에서 동맹군이 우리를 돕기 위해 오고 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반드시 빠져 나가셔야 합니다. 우주선은 아직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회피 기동을 하느라 에너지를 다 소모했을 뿐입니다. 잠시 후 영점 에너지 충전이 끝나면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선은 이힐이힐의 진동 탐지에 걸리지 않도록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숨어 있는 수밖에 없겠구나.”

그런데 바로 그때, 황제와 치클의 눈 앞에 있는 물체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기가 깬 것이다.

“황제 폐하, 저 쪽에서 상당한 양의 단백질 구조가 감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움직이는 것이 바로 단백질 덩어리란 말인가?”

“아마 저것은 단백질로 되어 있는 이 행성의 토착 생명체인 듯 합니다.”

“위험성을 평가하고 공격력, 지구력, 지적 능력을 평가해 보도록 하라!”

황제의 명령에 따라 치클은 우주선의 컴퓨터를 이용해 움직이기 시작한 아기를 조사해 보았다.

“위험성 낮음, 공격력 낮음, 지구력 낮음입니다.”

“지적 능력은?”

“이 행성의 생명체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좋다. 만유 언어 번역 프로그램을 이용한 의사 소통을 시도하라!”

치클은 아기를 향해 우주선의 소통기를 조준했다. 소통기는 소리, 빛, 온도, 촉감, 냄새로 대화하는 우주의 온갖 지적 생명체들과 의사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여 의사를 전달하고자 했다.

“지구의 토착 종족이여! 우리는 평화와 우호의 목적으로 그대들을 찾아 왔다. 그대들이 우리를 돕는다면 우리의 발달한 기술을 전수해 주마. 그러니, 지금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우리를 공격해 온 이힐이힐을 피해 황제 폐하께서 은신하시는 데 협조해 주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기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언어를 가질 만큼 지적 수준이 발달하지 않은 생명체인 듯 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는 상당히 높고 거대한 인공 구조물입니다. 언어조차 갖고 있지 않은 생명체가 이렇게 거대한 집을 건설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 행성의 생명체들은 전자기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과 화학 에너지를 이용한 이동 수단까지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데, 언어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런 도구들을 모두 만들었단 말입니까?”
 

『치클은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아기들이 아파트를 짓고, 아기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컴퓨터에 수집된
자료로는 아무리 살펴 보아도 이 행성에 사는 동물 중에서는 이 아기의
종족이 그나마 지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치클은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아기들이 아파트를 짓고, 아기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컴퓨터에 수집된 자료로는 아무리 살펴 보아도 이 행성에 사는 동물 중에서는 이 아기의 종족이 그나마 지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치클은 고민했다.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보았지만,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아기가 전기와 자기 방정식을 이용해서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개발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황제가 말했다.

“역시, 우주는 넓고, 우리가 모두 이해하기에 이 우주는 너무나 신비롭기만 하구나.”

잠시 후, 두 사람이 아기와 자신들의 안전 거리를 계산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기는 이제 작게 울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 토착 생명체가 공기를 진동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짧은 파장의 음파가 생성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이힐이힐이 이 소리를 감지할 위험이 있습니다. 황제 폐하,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피할 곳이 없다. 아직 우주선은 충전 중이다.”

황제는 당황했다. 치클도 다급하게 외쳤다.

“도대체 저것이 왜 소리를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치클의 고통스러운 의문은 아기를 키우는 수많은 부모들이 언제나 밤마다 품는 의문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황제가 말했다.

“어떤 감정을 발산하는 행동인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다른 동족을 부르기 위한 행동인 것일까?”

실제로 아기의 부모는 그때 잠깐 아기의 우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집값과 전세 시세에 대한 논쟁의 화염은 이제 경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인격과 감정에 대한 다툼으로 번지고 있었다. 따라서 둘은 자신들만의 논쟁에 극히 집중하고 있었고, 잠깐 동안 아기의 우는 소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황제는 판단을 내렸다.

“우선 감정 발산 행동이라는 쪽으로 추정하기로 한다. 저 토착 생물의 감정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분석하라.”

“황제 폐하, 제 분석으로는 중력이 강한 행성에 있는 동물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상승에 대한 동경을 이용하는 것이 어떤가 합니다.”

“좋다. 반중력 광선을 이용한다. 토착 생물의 무게 중심에 초점을 맞추고 반중력광선을 발사하라!”

“발사!”

치클이 외치며 컴퓨터를 조작하자, 우주선에서는 엷은 빛이 아기를 향해 발사 되었다. 이 광선이 아기에게 비치자 아기의 몸은 조금씩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기는 아직 목을 잘 가누지 못해 허리가 위로 들리고 목이 뒤로 약간 꺾이는 힘겨운 자세가 되었다.

“토착 생물의 머리 부분이 불안하다. 목 부분을 지지할 수 있도록 반중력광선을 한 발 더 발사하라.”

“발사! 머리를 잘 받친 형태로 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목표물의 고도를 측정하라.”

“지상에서 0.4미터 정도입니다.”

“좀 더 높이 상승시킨다.”

“반중력광선 출력 상승!”

얼마 후, 아기는 보통 사람들이 아기를 안아 주는 높이 정도로 허공에 떠 있게 되었다. 그러자 아기는 잠깐 울음을 멈추는 듯 하였다. 그러나 아기는 곧 다시 울기 시작했다.

“토착 생물이 내는 소리가 멈추지 않습니다!”

“체공 각도가 문제일지 모른다. 세타 각도를 0도에서 90도로, 파이 각도를 90도에서 0도로 변환하라.”

치클은 황제의 명령에 따라 아기를 공중에 띄운 각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 듯한 모양으로 공중에 떠 있던 아기는 서서히 회전하여 이제는 마치 서 있는 듯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아기는 그 자세가 마음에 드는지, 울음이 다시 줄어 들었다.

“안정화된 듯 합니다.”

“그러나 아까처럼 완전히 안정화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행성은 공전 주기에 비해 짧은 주기로 자전하는 행성입니다. 그러니 아마 이 행성의 생명체들은 태양 빛에 따라 움직임을 조절하는 특성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까 저 토착생물이 하고 있는 행위는 태양 빛이 없는 시기에 신체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고도의 안정을 취하는 수면 행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 토착 생물은 소리 내는 것은 멈추었지만 아직 수면 상태는 아니란 뜻이겠구만.”

황제는 근심스러워 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아기는 잠이 들기는커녕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토착 생물이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안정감 있는 온도 조건을 맞춰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토착 생물을 따뜻하게 감싸 준다는 것은 안정감을 높일 수도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우주선의 광자빔을 쏘면 한 지점의 온도만 높아질 것입니다.”

당황한 황제와 치클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 정도 소리라면 이힐이힐이 감지하지 않겠는가?”

“그럴 위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무슨 수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신, 너무나 무력하옵니다.”

“좋다. 우리가 입고 있는 우주복을 이용한다. 우주복의 표면온도를 상승시킨 뒤, 우리가 우주복을 입은 채 직접 저 토착생명체에게 접촉하는 것이다.”

“황제 폐하, 그 방법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저 토착 생명체가 무슨 독성과 사나운 습성을 갖고 있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옥체를 가까이 하신단 말입니까? 베가 태양계에서 텔레파시 종족에게 42621호 탐험대가 지배 당하여 수소폭탄 8000발을 황궁으로 발사했던 사건이 기억나시지 않으십니까? 이 토착 생물이 무슨 위험한 능력을 갖고 있을 지 어찌 안단 말입니까?”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어명이다! 우주복 온도를 높여라.”

“현재 온도 29.8도 입니다.”

우주복 온도가 아기의 체온과 같은 36.5도로 상승하자마자, 황제와 치클은 공중에 떠 있는 아기에게 바짝 붙었다. 치클은 마지막 순간까지 황제를 만류했지만, 황제는 거침이 없었다.

황제와 치클은 그 몸과 다리로 공중에 떠 있는 아기를 감싸안은 듯한 모양이 되었다. 그러자 아기는 편안함을 느꼈는지 다시 울음을 멈추었다. 황제와 치클도 잠시 안도할 수 있었다.

“토착 생물이 소리를 발산하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로구나. 언제 이힐이힐이 우리를 찾아낼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아슬아슬했노라. 아직은 초끈의 뜻이 짐과 제국의 운명을 저버리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아기가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다시 토착 생물이 소리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아, 짐이 방정 맞고 경망스러운 말을 해서 화를 불렀구나. 우주의 누구를 또 원망하겠느냐?”

“황제 폐하,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소리가 조금이라도 덜 나도록 구조물 안쪽으로 이동이라도 해 보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어쩌면 좋단 말이냐, 아아, 어쩌면 좋단 말이냐.”

황제는 통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치클은 포기하지 않고 반중력 광선을 조작하여 안고 있는 아기를 조금씩 움직였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치클은 아기를 안은 채 옆 쪽으로 몇 발자국 이동한 듯한 형국이 되었다.

“제국이여, 선대 황제시여, 2억 년의 대업이여, 이제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황제 폐하, 고정하십시오. 이 토착 생물을 고공에 위치시킨 채로 이동하니 토착 생물이 소리 내는 것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뭐라? 그것이 참말이냐?”

치클은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다시 아기를 안은 채 몇 걸음 정도 되는 거리를 다시 더 움직였다. 같이 아기를 안고 있던 황제도 따라 갔다. 과연 가만히 안고 있으면 아기가 곧 우는 듯 했지만, 아기를 들고 움직이면 아기는 울음을 조금 그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행동을 반복하면 분명히 이 토착 생물의 안정도를 최고로 높여서 잠 자는 상태로 진입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옵니다.”

“치클,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은 경의 마음이야 말로 바로 제국의 보물이다. 어찌 경과 같은 위대한 호걸이 나와 같은 못난 황제를 만나 이런 고통을 겪게 되었단 말인가?”

“당치 않으십니다. 황제 폐하, 부디 그런 말씀을 거두시고, 이 토착 생명체를 움직여 주소서.”

“좋다. 경은 우주선의 컴퓨터로 우리가 이 구조물 안에서 이동할 수 있는 궤적을 계산하고 반중력광선을 그에 맞춰 토착생명체에게 발사하도록 하라.”

이리하여, 황제와 치클은 아기를 안은 채로 방 안 이곳 저곳을 계속해서 걸어 다니게 되었다. 둘의 노력은 헛된 것만은 아니어서 열심히 걸어 다닐 때 마다 아기는 조용해졌다.

그러나 완전히 울음을 멈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기는 금방이라도 다시 큰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짧은 낑낑거리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었다. 그때마다 입을 벌리고 표정을 찡그리고 있어서, 아직 제대로 다시 잠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기도 했다.

“토착 생물의 안정도가 다시 조금씩 떨어집니다. 이대로라면 다시 음파를 발산할지도 모릅니다.”

아기를 안고 다니며 깊이 고민하고 있던 황제는 뭔가 생각난 표정을 지었다.

“치클, 토착 생물의 안정도와 상대 고도의 변화 주기를 분석하라. 푸리에 변환을 이용하여 그 주파수를 비교한다.”
 

『아기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치클과 황제는 너무나 실망하여, 혹시 자신들이
너무 빠르게 걸어 다녔기 때문에 아기가 불편해서 다시 깬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후회할 정도였다』

 

“황제 폐하, 참으로 영명하시옵니다. 토착 생물이 위 아래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느낄수록 안정도가 높아지는 경향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짐의 짐작이 맞았노라. 치클, 반중력광선의 출력을 코사인파 형태로 조절하도록 하라.”

황제의 지시에 따라 치클이 우주선을 조작하자, 그때부터 아기는 안은 채로 서서히 아래 위로 움직이는 모양이 되었다. 그 아래 위로 움직이는 것이 규칙적이고 리듬에 맞으니, 아기는 다시 점차 울음을 그쳤다.

“머리 앞쪽에 있는 두 개의 빛 반사체의 움직임도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치클은 아기의 두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두 빛 반사체를 단백질 외피가 덮고 있습니다. 현재 토착 생명체의 움직임은 가장 안정화된 듯 합니다.”

아기가 눈을 감자, 치클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쁨이 많아졌다.

“토착 생명체가 드디어 수면 상태로 진입하는 듯 합니다. 황제 폐하.”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하지 말라. 이때 잠깐 방심해서 다시 토착 생명체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안정화 작업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둘은 간곡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들고 걸어 다니며 아기를 위 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정말로 잠이 드는지 아기의 움직임은 완전히 없어지는 듯 했다.

그런데 돌연 갑자기 다시 아기가 눈꺼풀을 찡그러뜨리고 입을 씰룩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황제 폐하, 황제 폐하, 토착 생명체가, 토착 생명체가!”

그리고 아기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치클과 황제는 너무나 실망하여, 혹시 자신들이 너무 빠르게 걸어 다녔기 때문에 아기가 불편해서 다시 깬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후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특유의 냉철함을 되찾은 황제는 그렇다고 반대로 너무 늦게 걸어 다녔다면, 오히려 열의를 다해 빠르게 걸어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아기가 깨어난 것은 아닐까 의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황제 폐하, 큰일입니다. 이힐이힐의 탐사 로봇이 근방에 접근한 듯한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곧 이힐이힐이이 토착 생명체가 발산하는 음파를 감지해서 우리를 찾아낼 것 입니다!”

“침착하라.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다시 이 토착 생명체를 안정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토착 생명체가 소리를 발산하는 신체 기관을 찾은 뒤, 그 기관을 고출력 화학 레이저포로 사격하여 마비시키는 방법은 어떠한가?”

“황제 폐하,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기에는 우주선의 에너지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아, 황제 폐하, 너무나 원통합니다. 하룻밤에 별 하나의 에너지를 써서 불꽃놀이를 하고, 잠깐 사이에 성단 한 개의 에너지를 써서 체육대회를 하던 황제 폐하께서 고작 레이저포 한 발의 에너지가 부족하여 이와 같은 역경을 겪으시다니. 원통합니다! 원통합니다.”

“치클, 그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찌 되었건 토착 생명체의 신체 순환을 조사하라. 고주파 진동 반사를 측정하고, 투과 뮤온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라.”

치클은 지구인으로 보자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듯한 감정 표현을 하면서, 그래도 황제의 명령대로 부지런히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 결과 치클은 아기의 혈액 순환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황제 폐하, 이 토착 생물은 신체를 순환하는 액체와 당분과인 화합물의 화학 반응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해서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글리제581C 행성 생물과 거의 비슷한 방식 아니더냐?”

“그러하옵니다. 황제 폐하.”

“그렇다면, 신체 순환 액체의 당 농도를 분석하고, 그 과거 농도를 추산하라.”

그러는 가운데 아기의 울음 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갔다. 그 소리를 듣고 금방이라도 이힐이힐의 로봇이 들이닥칠 듯하여, 치클은 네 다리가 모두 후들후들 떨릴 지경이었다.

황제 또한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용기를 내어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리면서, 분석 결과를 찬찬히 읽어 내려 갔다.

“치클, 보라. 이 토착 생명체의 신체 순환 액체 안에 있는 당분 농도가 낮아진 것을 암시하는 근거가 보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이 토착 생명체가 현재 에너지 부족을 느낀다는 뜻 아닙니까?”

“바로 그렇다. 이 토착 생명체가 아까부터 계속해서 음파를 발산한 것은, 바로 자신의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위기감으로 인해 신호를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

황제가 문제의 원인이 된 것을 제시하자 치클은 문득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치클은 배고픈 아기에게 먹일 음식을 찾기로 했다. 우주선의 모든 레이더와 감시 장치를 작동시키자, 인근 2광년 이내에 있는 온갖 물질이 조사되었다.

그리하여 우주선의 컴퓨터는 인근 상점에 있는 우유나 포장 이유식을 발견했음은 물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과일 나무 속의 과일즙이나 남아메리카 산맥의 한 목동이 끌고 가고 있던 염소의 젖까지 아기에게 적합한 에너지 원임을 알아냈다. 뿐만 아니라 인도양 깊은 바다 속에 살고 있는 한 심해 어류의 간 속에 아기에게 적합한 영양소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는가 하면, 지구 바깥 우주 정거장에 한 피자 회사가 홍보용으로 탑재시킨 마르게리타 피자의 치즈가 아기에게 적합한 음식이라는 점까지 발견 해 냈다. 심지어, 목성에 있는 유로파 위성 속에 있는 해저 곰팡이 비슷한 생물도 대충 아기가 먹을 수 있을 만하다는 사실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식재료들은 지금 황제와 치클이 구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었다. 그들이 손에 넣을만한 것은 아기 침대 바로 옆에 놓여 있는 플라스틱 젖병과 그 속에 든 분유뿐이었다.

“저것은 가루 형태의 단백질로 이 토착 생명체에게 주입할 경우, 분명히 에너지 원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다. 저 흰색 가루를 채취한 뒤에 주사기에 넣어 정맥 주사로 토착 생명체의 혈관에 바로 주입한다.”

“황제 폐하, 그런데 토착 생명체의 가죽에 주사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맥 주사 형태로 에너지를 주입하는 것은 흔한 방법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지 않은가?”

황제의 단호한 어명에, 치클은 젖병에서 분유를 빼내어 손에 들고 있던 권총 모양의 도구에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기에게 주사하려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나 주사 직전, 황제가 치클을 만류했다.

“잠깐! 멈춰라! 이것은 짐의 실수였다. 토착 생명체의 가죽 표면에 두뇌로 정보를 전달하는 정보 조직망이 발견되었다. 아마도 저것은 통증을 느끼는 신경망일 것이다. 주사를 한다면 저 신경망을 건드리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황제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러나 둘은 아이가 주사를 맞고 가장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끔찍한 광경을 동시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 공포감에 두 사람은 머리가 아찔할 지경이었다.

“토착 생명체의 체내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액체에 이 가루 형태의 에너지원을 용해시킨 뒤, 신체 내부로 연결되는 노출된 구멍을 통해 주입하는 방법을 시도한다.”

“토착 생명체의 체내에 가장 흔한 액체는 물이옵니다.”

“좋다. 중력 렌즈 압축장을 이용하여 공기 중에서 단열팽창을 일으켜서 이 행성의 대기 중에 있는 수분을 모은다.”

황제의 명령 대로 치클이 우주선을 조작하자, 아기의 젖병 위에 조그마한 구름이 생겨났다. 구름에서는 소나기 같은 비가 내려서 금방 젖병 안은 물로 차올랐다.

“적정 농도를 계산하라. 너무 짙어도, 너무 묽어도, 토착 생물은 이 에너지원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용기를 움직여 물 속에 에너지원을 용해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용해할 때 용기를 상하로 흔드니 공기 거품이 많이 생기는 위험이 관찰되었다. 거품이 많이 생기면, 토착 생명체가 이것을 받아들이기 불편해진다. 용기를 발바닥으로 붙잡고 좌우로 둥글게 비비듯이 움직여 녹이도록 해야 한다.”

한참 작업이 진행되던 중에, 치클이 특이한 신호를 보고 말했다.

“황제 폐하, 물과 가루 속에서 다른 생명체가 발견되었습니다. 크기는 200마이크로미터 이하 입니다.”
치클은 황제에게 물과 분유 속에서 발견된 세균 따위를 보여 주었다.

“아주 작은 생명체로군. 토착 생명체에게 끼칠 영향은?”

“토착 생명체에게 복통이나 기타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음파를 발산할 것입니다.”

“그러면 끝장이다.”

“이 작은 생명체에게 지성은 있는가?”

“지능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어쩔 수 없이 에너지원 속의 이 작은 생명체들을 모두 파괴한 뒤에, 토착 생명체에게 에너지 주입을 시작하겠다.”

“감마선 분자 파괴 빔 가동!”

치클이 우주선의 무기를 젖병에 조준했고, 젖병 속을 깔끔하게 살균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머나먼 행성의 작은 생명체들이여! 짐의 행동을 용서해다오.”

이렇게 해서 마침내 둘은 깨끗한 물로 분유를 타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아기의 입에 물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어디에 젖병을 물리는 것이 적합한지 알지 못해, 귓구멍에 젖병을 꽂으려고 하다가 또 한 번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둘의 위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기가 우유를 먹을 만큼 충분히 먹은 후에도 다시 울기 시작한 것이다. 둘은 절망했다. 잠시 후 괴이하게도 자연스럽게 아기가 울음을 조금 줄이고, 대신 독특한 가스를 발산하는 질퍽한 덩어리진 물체가 아기의 기저귀에서 새롭게 다량 발견되었다. 그제서야 둘은 아기가 울었던 근본 원인을 알게 되었다. 아기는 바로 그 행동을 하기 위해 힘이 들고 짜증이 났기 때문에 울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겪었던 마지막 고난은 제국의 역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보통 지구인들은 그와 같은 작업을 할 때, 물티슈,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 샤워기, 수건 등의 적합한 도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황제와 치클에게는 그 어떤 장비도 없었다. 대신 전자 스핀 정렬 광선, 우주 배경 복사 간섭 레이더, 타키온 감속기, 힉스 입자 유도 코일 따위를 이용해서, 아기를 깨끗하게 씻기고 엉덩이를 말린 뒤 새 기저귀를 입히고 헌 기저귀를 깔끔하게 말아 놓은 그 위업은 극한 상황에서 두 영웅이 보여 준 기적적인 능력 이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후 아기는 울지 않았다. 대신 기어다니며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아까보다는 덜 당황했다.

“이렇게 안 자면 밤낮이 바뀌어 건강을 해칠 텐데.”

“황제 폐하께서도 이렇게 이 토착 생명체를 돌보는 일을 계속 하시다 보면 언제 쉬시겠습니까? 옥체를 상하실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는 상당히 편안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곧 깨어졌다.

창문으로 이힐이힐의 탐사 로봇이 나타난 것이다.

“비슷한 음파가 근처 몇 군데에서 감지되어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특히 804호 집 토착 생명체는 정말 많이 울더구만. 무척 성가신 토착 생명체 아닌가?”

이힐이힐의 탐사 로봇이 치클과 황제와 아기가 있는 쪽을 향해 말했다.

탐사 로봇의 크기는 지구인의 공기돌 크기의 절반이 될까말까한 작은 크기였다. 하지만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채 웜홀 투과 장치와 결맞음 통신기를 이용해서 몇 백 광년 밖에서 자유롭게 원격 조종되는 모습을 보면 우주의 누구라도 신비감과 위엄을 느낄 만했다.

“단백질이 많은 행성으로 숨어 들어서 통신 교란을 이용한다는 발상은 칭찬할 만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우리 통신기의 성능을 얕봤다. 이 행성의 단백질로 칭칭 나를 완전히 감싸 놓는다면 모를까, 이 정도로는 아무 교란이 생기지 않는다. 한 마디로, 너희들이 한 행동은 부질 없는 짓이었단 말이다.”

이힐이힐 탐사 로봇의 말을 듣고 치클과 황제는 힘이 빠져 세 다리를 길게 뻗었다. 한편 탐사 로봇이 빛과 소리를 내며 움직이니, 아기는 재미있는지 웃으며 그곳으로 기어 갔다. 탐사 로봇이 치클에게 말했다.

“치클, 그대의 용맹함을 치하하노라.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대가 항복하여 황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굴하고 초라했다고 증언해주기만 한다면, 그대를 이힐이힐 상원의원으로 만들어 주마. 그리고 은하계 두 개를 지배하게 해 주겠다. 굳이 망한 제국과 망한 황제를 위해 덧없이 목숨을 낭비할 이유가 무엇이냐?”

“닥쳐라, 이 비열한 놈. 블랙홀이 물질을 내뿜고 우주가 수축한다 할 지라도 나의 충심이 조금이라도 흔들림이 있겠느냐?”

치클의 말이 끝나자 탐사 로봇은 좌우로 까닥거렸다. 탐사 로봇이 다시 말했다.

“정 그렇다면, 은하수 이쪽을 모조리 글루온 폭탄으로 폭파시켜서 너와 네 못난 황제를 깨끗이 분해해 주마. 그리고 성가신 이 행성의 토착 생명도 가장 무서운 방법으로 처벌해 주겠다.”

황제는 아기를 한번 돌아 보았다. 황제가 탐사 로봇에게 물었다.

“이 토착 생물은 너희 이힐이힐과 우리 제국의 전쟁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무슨 짓을 하려 하느냐?”

탐사 로봇은 지금껏 말한 것보다도 더 한층 가열차게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가장 무서운 방법으로 처벌할 거라니까. 우선 이 행성에 생물학자, 사회학자, 신학자를 20명씩 파견한 뒤에 철저히 저 생물에 대해 연구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각 분야에 대해 상금이 높은 상을 만들어서 5회 정도 시상식을 거행하고 홍보 행사도 많이 열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행성의 토착 생물에 대한 생물학자, 사회학자, 신학자 숫자도 많아지고 수준도 높아지면, 이제 종합 보고서를 펴내고, 그 종합 보고서에 근거해서 처벌 위원회를 만들어야지. 그리고 그 처벌 위원회에서 처벌 방법 결정관을 선출하게 하고, 그 처벌 방법 결정관이 처벌 방법을 연구한 뒤에, 의회와 정부의 승인과 동의를 얻게 한다. 그렇게 해서, 저 토착 생물의 신체 구조와 역사 및 문화, 관습과 예절을 다각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장 몸과 마음이 괴로워할 만한 처벌 방식을 개발한 뒤에 바로 그 방법으로 처벌할 것이….”

그러나, 탐사 로봇이 그때로서는 아기의 행동에 대해서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무릇 아기는 방바닥을 굴러 다니는 이상하게 생긴 것이라면 무엇이든 집어 먹는 버릇이 있기 마련이고, 깜찍하게 움직이는 탐사 로봇을 보자 바로 그 버릇 그대로 그것을 홀랑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어 버렸던 것이다.

아기의 작은 입 속으로 들어간 탐사 로봇은 그대로 통신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그 통신이 회복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 다시 아기의 몸 바깥으로 나와 기저귀에 도달했을 때였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안드로메다 은하계에서 나타난 동맹군과 함께 황제가 다시 제국을 회복하고 이힐이힐을 우주의 저편으로 멀리 쫓아낸 후였다.

아기가 그날 밤 다시 잠이 들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감격한 황제와 치클은 지구를 떠나기 전에 아기에게 보답으로 전수해 줄 만한 첨단 기술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워프 항해법이나 상온 핵융합 기술은 아무래도 아기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앞으로 아기의 몸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조작해 주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기로 했다.

이후, 아기는 왜인지 “치카우”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기의 부모는 도통 그 말뜻을 알 길이 없어, 그저 아기들이 흔히 입에 담는 의미 없는 옹알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우주 제국의 황제는 “황제의 영원한 친구이자 제국의 구원자”라는 뜻으로 수여되는 명예로운 칭호, “치카우”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지구의 소녀가 언젠가 훌륭한 우주 과학자로 자라나서, 혹시라도 우주 제국을 발견하고 다시 자신에게 연락해 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 2017년,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곽재식
화학자 겸 작가. 2006년 웹진 거울 32호에 발표한 단편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 맥주의 마음’이 MBC 베스트극장에서 ‘토끼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등 중단편 소설집과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등의 장편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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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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