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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새벽 3시 30분. 수성과 금성, 초승달이 삼각형을 그리고 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집을 나섰다. 지금껏 경험한 어떤 취재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한 시간 반쯤 흘렀을까. 동이 틀 무렵 도착한 경기도 용인시 명지대 전통가마에서는 이미 땔감을 가마에 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약 12시간 동안 불을 때서 전체 가마를 뜨겁게 달굴 겁니다. 그런 뒤에 도자기를 넣은 각 방에도 불을 넣는 거죠.”
도예가 서광윤 씨가 거대한 가마 앞에 뚫린 구멍에 커다란 소나무 장작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47년 동안 도자기를 만들어 온 서 씨는 명지대 세라믹아트공학과 최고기술자과정에 재학 중인 만학도다. 반세기 동안 도자기를 만들며 장인의 경지에 오른 그가 늦깎이 학생이 된 이유는 바로 오늘 가마에서 실험할 ‘유약’ 때문이었다.
유약은 흙으로 도자기의 몸(소지)을 만들어 초벌구이를 한 뒤 입히는 액체 상태의 혼합물이다. 유약을
바른 소지가 가마에서 뜨거운 열을 받으면(소성) 비로소 도자기가 아름다운 색과 광택을 발하게 된다. 소지가 몸이라면, 유약은 옷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도자기의 가치가 달라진다. 종종 도예가들이 가마에서 갓 나온 도자기를 깨 버리는 이유 중 하나는 유약이 만든 색과 광택이 마음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세라믹아트공학과 대학원생 대부분은 현재 활동 중인 도예가다. 이들은 기성품 유약을 사서 쓰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스스로 유약을 만들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유약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익혀 이전에 없었던 자신만의 새로운 유약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서 작가와 황동하 세라믹아트공학과 교수는 몇 개월 동안 개발한 유약을 입힌 작품과 실험용 시편 총 70여 점을 이틀 전 이미 가마에 넣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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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시간 동안 불을 때서 전체 가마를 뜨겁게 달굴 겁니다. 그런 뒤에 도자기를 넣은 각 방에도 불을 넣는 거죠.”
도예가 서광윤 씨가 거대한 가마 앞에 뚫린 구멍에 커다란 소나무 장작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47년 동안 도자기를 만들어 온 서 씨는 명지대 세라믹아트공학과 최고기술자과정에 재학 중인 만학도다. 반세기 동안 도자기를 만들며 장인의 경지에 오른 그가 늦깎이 학생이 된 이유는 바로 오늘 가마에서 실험할 ‘유약’ 때문이었다.
유약은 흙으로 도자기의 몸(소지)을 만들어 초벌구이를 한 뒤 입히는 액체 상태의 혼합물이다. 유약을
바른 소지가 가마에서 뜨거운 열을 받으면(소성) 비로소 도자기가 아름다운 색과 광택을 발하게 된다. 소지가 몸이라면, 유약은 옷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도자기의 가치가 달라진다. 종종 도예가들이 가마에서 갓 나온 도자기를 깨 버리는 이유 중 하나는 유약이 만든 색과 광택이 마음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세라믹아트공학과 대학원생 대부분은 현재 활동 중인 도예가다. 이들은 기성품 유약을 사서 쓰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스스로 유약을 만들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유약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익혀 이전에 없었던 자신만의 새로운 유약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서 작가와 황동하 세라믹아트공학과 교수는 몇 개월 동안 개발한 유약을 입힌 작품과 실험용 시편 총 70여 점을 이틀 전 이미 가마에 넣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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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서광윤 씨가 직접 개발한 유약을 발라서 소성시킨 도자기. ▶
광택이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고, 색이 부분부분 미세하게 다르게 나왔다. 전기나 가스 가마에서는 나올 수 없는, 전통장작가마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담고 있다.
광택이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고, 색이 부분부분 미세하게 다르게 나왔다. 전기나 가스 가마에서는 나올 수 없는, 전통장작가마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담고 있다.
광물로 요리하는 유약 레시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도예에 문외한인 기자는 도자기 유약을 일종의 물감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도자기에 바르고 구우면 색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 유약을 바르기 전의 소지는 점토질의 흙을 물레에 돌리면서 모양을 만든 뒤 말려서 단단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유약을 바르는 소지는 모양을 형성한 뒤 800~900℃의 온도에서 초벌구이를 한 것이었다. 또 유약은 물감이 아니라 물과 각종 광물, 나무와 식물을 태운 재를 넣어만든 혼합물이었다. 무엇을 섞는지에 따라서 다른 색이 나타나는 것이다.
황 교수의 연구실 한편에는 흥미로운 상자들이 높게 쌓여 있었다. 부여 장석, 청주 백운석, 청주 석회석, 부여 규석, 합천 카올린(고령토), 함평 점토, 계룡산 황토, 하남 황토 등의 광물과 흙을 산지별로 구분해 담아 놓은 것이었다. 거기에 참나무재, 조개 등이 더해져 있었다. 마치 유명 식당 주방에 식재료들을 산지별로 정리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유가 뭘까. 황 교수는 “같은 재료라도 산지에 따라서 구성 성분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유약을 만들었을 때 나오는 색이 다르다”고 말했다. 같은 종류의 식재료도 품종이나 산지에 따라서 맛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비유하자면, 유약은 다양한 재료를 섞어 만드는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산지에서 온 재료를 섞어서 원하는 빛깔과 광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재료와 산지의 종류만큼 수없이 많은 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유약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음식에 넣는 소금이나 간장처럼 모든 유약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필수 재료도 있다. 규석과 장석, 석회석 등이다. 이들 재료를 넣는 이유는 유약에 꼭 필요한 화학성분을 얻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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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의 색은 기본 재료에 추가로 다른 재료를 넣어서 만든다. 황 교수가 이번 실험을 위해 제작한 유약은 커피재를 넣었다. 커피를 추출하고 남은 분말을 건조한 뒤 태워서 유기물을 제거하고, 곱게 갈아서 다른 재료와 섞은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색을 찾기 위해 재료의 조합비를 다르게 하면서 유약을 만들고, 백자 시편과 분청사기 시편에 각각 발랐다. 유약은 소지의 흙 속에 들어 있는 성분과도 반응해서 색을 내기 때문에 성분이 같은 유약이라도 철분이 전혀 없는 백자와 철분을 함유한 청자에 발랐을 때 색이 다르게 나온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재현 어려운 이유는 유약“기후와 식생 등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이 모두 유약에 영향을 미칩니다. 수백 년 이상 시간이 흐르면서 식생과 토양이 달라졌죠.”
전통 도자기 유약은 크게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백자 유약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지만 고려청자의 비취빛과 조선백자의 우윳빛이 도는 백색은 현대 기술로 재현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황 교수가 그 이유를 기후와 식생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하자 의아했다. 도자기의 소지나 유약을 만드는 성분인 흙과 식물의 관계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유약과 소지를 만들 때 사용하는 흙에는 나뭇잎과 죽은 식물이 분해돼 들어가 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만들던 가마터 주변의 흙은 현재 그 성분이 크게 달라졌다. 기후가 변하면서 자라는 식물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나라가 폐허가 된 뒤 조림사업을 하면서 식생 분포가 달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이유로, 같은 장소에서 흙을 채취해 소지와 유약을 만들어도 성분 구성과 비율이 전과 같을 수 없다. 황 교수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유약을 만드는 레시피(제조법)도 남아 있지 않고,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구조도 현재와 달라서 똑같이 재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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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완성하는 ‘춤추는 불’
5월 22일 새벽부터 해가 저물 무렵까지 쉼 없이 장작을 넣어 가마 속 온도를 1300℃ 안팎까지 올린 황 교수와 서 작가는 가마가 식기까지 나흘을 기다렸다. 도자기를 꺼내던 5월 26일 현장을 찾아가자 모두 기대하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를 집어넣는 구멍만 남기고 내화벽돌로 막아 놓은 가마 입구는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서 작가는 입구에 쌓은 벽돌을 떼어내고 비좁은 가마 속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도자기를 꺼냈다. 토굴에서 나온 도자기에 손을 대자, 아직까지도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었다. 1300℃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흙덩이에 불과한 도자기가 쇠붙이도 녹아버릴 고온에서 온전한 형상을 유지한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위에 그려진 무늬와 색, 빛깔은 마치 치열하게 싸워 얻은 전리품처럼 보였다.
◀ 같은 소지에 같은 유약을 입혀도 가마 속 공기의 산소, 이산화탄소 비율에 따라 유약의 색이 다르게 나타난다. 공기 중의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유약이 발색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말 멋있다! 잘 나왔는데요? 박물관에 가도 손색없을 정도예요!”
서 작가가 꺼낸 도자기를 받아 든 황 교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 작가가 황 교수의 도움을 받아 새로 개발한 유약은 대성공이었다. 도자기마다 유약의 성분을 조금씩 달리 한 것도 있지만, 같은 유약을 바른 것이라도 어느 방에 들어 있었는지에 따라서, 방 안의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에 따라서 색이 제각각이었다. 노란빛이 도는 것과 황토색이 나는 것, 잿빛 윤기가 나는 것 등 매우 다양했다.
![전통장작가마에서 소성시킨 도자기들. 같은 성분의 유약을 바른 것도 있지만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 흙이 불과 바람의 영향을 받아 빚어 낸 예술작품들이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706/S201707N033_6.jpg)
실험용이 아닌 기존의 진사유약(산화구리 성분 첨가)을 바른 도자기들은 마치 잘 익은 사과 혹은 체리
처럼 붉은빛을 뗬다. 신기하게도 붉은빛이 균일하지 않았다. 더 진한 부분이 있고, 옅어지다 못해 청자처럼 비취빛을 띠는 부분도 있었다.
같은 유약에서 이렇게 다양한 색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유약이 불과 공기, 그리고 소지의 성분과 활발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혼합물인 유약 속 성분들은 불속에서 물리적인 변화와 화학적인 변화를 동시에 겪는다. 예컨대 유약 성분을 소지에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수분은 불 속에서 모두 증발돼버린다. 이때 초벌구이를 한 소지 속 수분까지 모두 빠져나가면서 도자기가 수축하고, 부피가 작아진다. 또 유약의 주요 성분인 규석의 이산화규소 성분은 녹아 나온 뒤 다시 굳으면서 도자기 전체를 투명한 유리질로 둘러싼다. 도자기를 외부 공기로부터 밀폐시키는 것이다.
그 사이 화학적인 변화도 나타난다. 붉은빛을 띤 진사 자기들은 넣을 당시에는 다른 자기들과 다름없는 우윳빛이었다(78쪽 사진). 하지만 불 속에 들어간 뒤 유약 속 산화구리 성분이 가마 내부의 이산화탄소와 반응하면서 산소를 잃어 환원되고, 구리 본래의 붉은 빛을 띠게 된 것이다. 환원된 정도에 따라서 더 짙거나 옅은 붉은색이 나타난다. 산화구리는 가마 내부의 산소와도 결합(산화)하는데, 이때는 탄산구리가 만들어져 붉은빛이 아닌 비취빛이 나타난다. 또 강한 불길이 도자기에 닿으면 구리 성분이 휘발돼서 붉은색이 사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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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도자기에 어떤 무늬를 그릴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가마 속에서 불길이 바람을 타고 춤추듯 움직이면서 도자기와 반응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마의 각 방은 서로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봉통(위 사진 속 구멍)에서부터 마지막 방까지 연결돼 있고, 굴뚝을 통해 연기가 배출된다. 즉, 입구에서부터 굴뚝까지 이어지는 공기의 흐름이 생기고, 각 방에 장작을 넣어 주는 구멍에서 유입되는 공기가 불길의 세기와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다. 황 교수는 “경험이 많은 도예가들은 장작을 가마에 넣는 것으로 불길을 조종하는데, 그걸 두고 ‘불장난을 친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길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도자기의 무늬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변함없다.
소지와 유약, 공기가 함께 만드는 예술
흥미로운 점은 가마 속에서 유약의 색이 형성될 때 소지의 성분과 공기가 반응에 참여해서 발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도자기를 구울 때 소지를 구성하는 성분들이 유약으로 녹아 나오는데, 이때 공기중의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함께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색에 영향을 미친다. 유약 성분이 소지에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소지의 성분이 유약에 녹아나온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공기까지 유약의 발색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예컨대 장작을 가마에 넣으면 장작이 연소되면서 가마 내부 공기에서 산소 소모량이 많아지고 이산화
탄소가 증가한다. 이런 상황을 ‘환원 분위기’라고 한다. 반대로 바람을 불어넣어 주면 산소량이 많아지면서 ‘산화 분위기’가 형성된다. 황 교수가 실제 실험한 도자기 시편들을 꺼내자, 가마 속 공기의 산소와 이산화탄소 비율에 따라 나타나는 색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 교수는 재료와 불, 공기, 유약을 바르는 두께 등 모든 변수들을 하나하나 바꿔가면서 새로운 유약을 만드는 연구를 15년째 하고 있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이병하 명지대 교수 때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약 30만 개의 유약 실험 데이터를 축적해 왔고, 그 중에서 수백 종류 이상을 도예가들과 도자기 제조업체에 공급했다. 황 교수는 “새로운 유약을 개발하는 과정은 수만 가지 배합과 경우의 수에서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찾는 과정”이라며 “보통 원하는 유약 데이터 하나를 얻는 데 1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도자기가 완성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원리를 규명하는 연구도 함께 진행해 왔다. 황 교수가 안내한 분석실(왼쪽 페이지 아래 사진)에는 주사전자현미경(SEM)과 X선회절분석기(XRD), 자외선-가시광선 분광광도계 등 이공계 실험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분석장비들이 가득했다. 이런 장비들을 이용해서 유약 성분의 종류와 구성비를 정량화하고, 그 결과로 완성된 도자기의 유약 색상과 결정 구조, 구성 성분 등을 분석한다. 이를 토대로 도자기가 소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응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황 교수는 “현재 보관 중인 30만 개의 시편 데이터를 정리해서 세라믹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소지와 유약, 공기가 함께 만드는 예술
흥미로운 점은 가마 속에서 유약의 색이 형성될 때 소지의 성분과 공기가 반응에 참여해서 발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도자기를 구울 때 소지를 구성하는 성분들이 유약으로 녹아 나오는데, 이때 공기중의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함께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색에 영향을 미친다. 유약 성분이 소지에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소지의 성분이 유약에 녹아나온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공기까지 유약의 발색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예컨대 장작을 가마에 넣으면 장작이 연소되면서 가마 내부 공기에서 산소 소모량이 많아지고 이산화
탄소가 증가한다. 이런 상황을 ‘환원 분위기’라고 한다. 반대로 바람을 불어넣어 주면 산소량이 많아지면서 ‘산화 분위기’가 형성된다. 황 교수가 실제 실험한 도자기 시편들을 꺼내자, 가마 속 공기의 산소와 이산화탄소 비율에 따라 나타나는 색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 교수는 재료와 불, 공기, 유약을 바르는 두께 등 모든 변수들을 하나하나 바꿔가면서 새로운 유약을 만드는 연구를 15년째 하고 있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이병하 명지대 교수 때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약 30만 개의 유약 실험 데이터를 축적해 왔고, 그 중에서 수백 종류 이상을 도예가들과 도자기 제조업체에 공급했다. 황 교수는 “새로운 유약을 개발하는 과정은 수만 가지 배합과 경우의 수에서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찾는 과정”이라며 “보통 원하는 유약 데이터 하나를 얻는 데 1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도자기가 완성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원리를 규명하는 연구도 함께 진행해 왔다. 황 교수가 안내한 분석실(왼쪽 페이지 아래 사진)에는 주사전자현미경(SEM)과 X선회절분석기(XRD), 자외선-가시광선 분광광도계 등 이공계 실험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분석장비들이 가득했다. 이런 장비들을 이용해서 유약 성분의 종류와 구성비를 정량화하고, 그 결과로 완성된 도자기의 유약 색상과 결정 구조, 구성 성분 등을 분석한다. 이를 토대로 도자기가 소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응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황 교수는 “현재 보관 중인 30만 개의 시편 데이터를 정리해서 세라믹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