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프레임 속, 나이, 성별, 인종도 모두 다양한 사람들이 글씨가 적힌 손바닥을 활짝 펼쳐 보이고 있다. 독일의 사진 작가 헤를린데 쾰블이 진행한 ‘과학의 매력’ 프로젝트다. 쾰블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해 위대한 업적을 남긴 60인의 과학자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그는 e메일 인터뷰에서 “한 장의 사진으로 과학자들 각자의 캐릭터를 묘사하고 싶었다”며 “호기심, 헌신, 열린 마음가짐 등 과학자들이 자신만의 공식이나 철학을 손에 쓰는 장난스러운 모티브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손바닥에서 그 사람의 삶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셈이다. 자, 그럼 과학자들의 손바닥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자.
인생 업적을 남기다
과학자들 가운데 누가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을 손바닥에 남긴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이가 프랑수아 바레-시누시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명예교수다. 그는 손바닥에 바이러스를 그렸다. 그는 1983년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의 원인이 되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를 발견했다. 이 발견은 AIDS 진단법과 예방법을 만들어냈다. 바레-시누시 교수는 그 공로로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분자세포생물학과 및 화학과 교수도 그에게 2020년 노벨화학상을 안겨준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을 그렸다. 크리스퍼-캐스 9은 유전자의 원하는 부위를 잘라내는 일종의 유전자 가위다. 이를 이용하면 거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다.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업적을 내기까지, 여성 과학자로서 남성이 주류인 과학자 사회에 맞서 싸워야 했다. 바레-시누시 교수는 1970년 초 과학자로 연구를 시작할 당시 직업을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다우드나 교수 또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여성은 과학계로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멋지게 자신의 일을 증명해냈다.
메시지를 전하다
손바닥에 임팩트 있는 문장을 적은 과학자도 있다. 페이스 오지어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IAVI 인간면역학연구소 공동 소장은 손에 ‘말라리아를 역사 속 존재로 만들자(MAKE MALARIA HISTORY)’라는 문장을 적었다. 말라리아 백신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케냐에서 태어났다. 케냐에서는 아직도 말라리아가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그의 손에 담긴 문장에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판 젠웨이 중국과학기술대 양자물리학 및 양자정보학과 교수는 ‘세상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The world is made up of Atoms!)’라는 유쾌한 메시지를 손바닥에 담았다. 그는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이론 중 하나인 양자 얽힘 분야의 대가로 ‘양자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2017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인물’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쾰블 작가가 마지막으로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전했다. “많은 청소년들이 과학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합니다. 이스라엘 화학자 데이비드 아브니르는 과학을 한마디로 “성공한 바로 다음 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학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과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면 과학은 가장 흥미로운 분야예요. 이전에 없던 것을 창조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