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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사람과 컴퓨터를 잇는 다리를 만든다

서울공대카페 53 컴퓨터공학부

거대한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평범해 보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디스플레이였다. 화면을 꾹꾹 누르고 있자니 서진욱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멀리서 멀티탭을 가지고 와 테이블의 전원을 켰다. 익숙한 윈도우 시작 화면이 뜨고, 여러 단어들이 서로 다른 크기로 배열됐다. 서 교수가 화면 속 단어들에 손을 대자 단어의 크기가 커지고 오른쪽으로 움직이자 단어들의 배열이 바뀌기 시작했다.


창의적인 작업이 가능한 HCI 분야
워들(wordle) 프로젝트다. 워드(word)와 클라우드(cloud)를 합친 말로, 단어 구름이라는 뜻이다. 긴 글줄을 입력하면 글에서 많이 쓰인 단어는 크기가 크게, 적게 쓰인 단어는 작게 만들어 예쁘게 배치해 준다. 워들은 이를 구현하는 도구로, 2007년에 IBM이 개발했다. 편리한 도구지만 단점이 있다. 결과물을 보여주는 레이아웃이 정해져 있어 사용자가 선택할 수 없다. 예컨대 연애편지에 있는 단어들을 하트 모양으로 배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 교수는 이 단점에 주목했다. 사용자가 레이아웃을 정할 수 있고 단어의 크기나 위치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개발했다. 더구나 한글도 가능하다. 서울대 미술관(MOA) 1층에는 서 교수의 방에 있는 것과 같은 디스플레이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방문객들은 자유롭게 단어를 배치해 볼 수 있고, 다 만든 이미지는 바로 페이스북에 올릴 수도 있다.

사람이 기준이 되는 연구다 보니, 서 교수의 연구들은 하나같이 흥미롭다. “회사에서 ‘PC 카톡’ 쓰시죠? 사실 업무 중에 이걸 쓰는 게 눈치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움찔거리는 기자를 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끼 텍스트를 띄우는 연구를 한 적도 있습니다.” 메신저에 글을 쓰면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워드 창에 업무와 관련한 내용이 저절로 쓰여지는 프로그램이다. “오늘 저녁에 뭐해?”라는 메시지를 쓰면 동시에 모니터 화면의 워드 파일에는 “지난 22일 서진욱 서울대 교수가…”와 같은 글이 저절로 입력된다.



대학 때 들었던 인문학 수업들, 연구의 밑거름
서 교수의 연구는 컴퓨터공학부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다. ‘휴먼컴퓨터인터랙션(HCI)’이라는 분야로 사람과 컴퓨터 간에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컴퓨터 연구에는 하드웨어에 가까운 연구가 있고, 사람에 가까운 연구가 있다. 그 중간에 있는 게 C언어나 자바와 같은 언어로 만든 응용 프로그램들이다. 서 교수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응용 프로그램이나 하드웨어와 관련한 내용을 많이 가르친다”며 “아직까지 (서 교수의 연구처럼) 사람과 가까운 연구가 활발한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도 석사 과정 때까지는 인공지능을 연구했다. 그가 이 재미있는 연구를 만나게 된 건 미국으로 유학갔을 때였다. 서 교수가 간 미국 메릴랜드대에는 HCI 분야의 대가 벤 슈나이더만 교수가 있었다. 서 교수는 원래 데이터베이스를 공부하러 갔지만, 슈나이더만 교수의 조교로 활동하면서 연구 진로가 아예 바뀌었다.

“HCI 수업을 들으니 컴퓨터공학과에 이렇게 재미있는 과목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어요. 이후 보조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됐죠.” 서 교수가 슈나이더만 교수의 조교가 될 수 있었던 건 학부 시절 들었던 인문학 과목들 덕분이었다. 당시 조교 지망자가 많아 경쟁률이 3대 1 정도로 꽤 높은 편이었는데, 슈나이더만 교수가 서 교수의 성적증명서를 가만히 보더니 “정치학 개론, 사회학 개론 같은 비전공과목을 많이 들은 것이 인상 깊다”며 뽑았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HCI 연구를 할 수 없어요.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관심을 갖는 게 이 연구의 시작입니다.”


201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 사진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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