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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최면에 걸릴까. 어릴 때부터 기자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되는 상상도 많이 했고 그 주인공의 상황에 이입돼 눈물짓기 일쑤였다. ‘이번에 괜히 한번 해 봤다가 최면에 빠지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있었다.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지난 3월 3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설기문마음연구소를 찾았다.

설기문 소장(전 동아대 교육상담심리학과 교수)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악수하는 척 손을 내밀더니 그 손으로 갑자기 눈을 가렸다. 그러면서 “내게 몸을 맡깁니다. 당신은 위험하지 않아요!”라고 속삭였다. 그 말과 동시에 발을 걸었고 기자는 바닥에 누운 상태가 됐다.

설 소장은 쉬지 않고 말을 붙였다. ‘하늘을 봤더니 하늘이 노랗지요’. ‘거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팔을 위로 들어요’.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신은 너무 편안한 상태거든. 누구도 부럽지 않아’ 등을 얘기했다.


설 소장 : 가장 돌아가고 싶은 때가 언제에요?
기자 :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이요.
설 소장 : 그때가 좋았군요. 곧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무슨 말을 할 거죠?
기자 : 철이 없어서 미안했다고요.
설 소장 : 아버지가 대답하나요?
기자 : 네. 괜찮다면서 웃었어요…(중략).
설 소장 : 이제 깨어날 거예요. 하나 둘 셋하고 이마를 ‘탁’ 치면 눈을 뜰 거예요. 그런데 아직 일어나진 못 할 거예요. 지금 자세가 너무 편해서 그래요. 내가 일어나라고 이마를 두드려야 일어나게 될 거예요!



설 소장의 진행에 맞춰 30여 분이 지난 뒤 일어섰다. 결론을 말하면 진짜로 아버지를 만나거나 최면에 빠지지는 않았다. 잠시 누워서 설 소장이 이끄는 대로 대답하고 행동했을 뿐 최면에 걸린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설 소장은 “긴장한 채로 취재하러 와서 몸에 의심이 있고 거부하려는 마음이 강하다”며 “사람마다 최면에 빠져드는 정도, 최면 감수성이 다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최면에 들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면에 잘 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이를 ‘최면 감수성’이라 한다. 인성검사를 보듯 설문조사 형식으로 측정하며, 국제최면학회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10% 정도의 사람이 최면 감수성이 높다고 보고돼 있다. “나는 최면 감수성이 낮아서 최면에 절대 걸릴 수 없느냐”고 물으니 “본인의 이성보다 감정이 두드러지는 순간이라면 가능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최면, 들으면 들을수록 아리송했다.


최면 이거 진짜야?
사실 공황장애, 강박장애, 정신분열증, 조울증, 다중인격 등 마음과 관련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최면‘치료’는 꽤 효과적인 선택으로 인정 받고 있다. 19세기 무의식과 의식의 작용을 탐구하는 정신분석학에서 출발한 최면은 1958년 미국의학협회에서 공식 의료기술로 인정했다. 최면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연 발생적인 최면’으로 특별히 걸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걸리는 최면이다. 공부, 연극, 영화, 사랑 등에 몰두해 있는 상태나 백일몽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일반적 의미로 쓰이는 ‘정식 최면’으로 다른 사람이 특정인을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것이다. 셋째는 ‘자기 최면’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걸어 최면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16 리우올림픽에서 펜싱의 박상영 선수가 ‘나는 할 수 있다’를 반복해 되뇐 끝에 결국 우승을 따낸 것과 같다.


 
김상욱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최면을 아직도 옛날 어느 부족의 주술의식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최면은 이미 반세기 전에 의학으로 인정돼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영돈 대한최면의학회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최면학은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정신의학의 한 분과로 무의식을 살피는 과학”이라며 “다만 ‘전생 요법’처럼 최면을 비과학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회의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면, 뇌는 알까?
오랫동안 명상을 한 사람은 뇌의 dACC부위와 dLPEC, PCC 부위의 연결이 약해져 걱정이 줄고 심신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의 연구결과 최면에 걸린 사람도 이 부위의 연결이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생 요법은 다양한 매체에서 최면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함께 등장한다. 대중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검고 긴 의자에 몸을 누인 뒤 최면을 걸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전생 또는 미래의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에 대한 견해는 판이하게 갈렸다. 변 회장은 “사람이 살다가 보고 들은 게 나올 수 있고, 꿈을 꾸는 것처럼 무의식에 감춰뒀던 게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전생요법이 과학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와 별개로 최면은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하고 재현가능한 치료법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면 상태의 생리학적 증거들
뇌과학은 최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최면에 걸렸을 때 뇌에 나타나는 생리변화를 측정한 연구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스티븐 코스린 교수팀은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통해 피험자가 어떤 색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최면으로 바꿀 수 있음을 확인하고 2000년 8월 ‘미국정신의학회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색을 실제로는 보여주지 않으면서 ‘지금 색을 보고 있는데 보이는가?’하고 물었을 때, 색을 보여줬을 때와 좌뇌의 활성이 비슷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질문만으로 그 활성 정도를 강하게 하거나 약하게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doi:10.1176/appi.ajp.157.8.1279).

2009년 6월에는 스위스 제네바대 연구팀이 최면 상태로 인한 거짓마비 상태에서 뇌속 운동피질이 활성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뉴런’에 발표했다(doi:10.1016/j.neuron.2009.05.021).
2016년 7월에는 최면 상태가 긴장이 풀어진 상태이며, 최면으로 행동과 의식을 분리할 수 있다는 뇌과학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정신의학및행동과학과 데이비드 스피겔 교수팀은 MRI를 통해 최면상태에서 뇌의 혈류변화를 측정한 결과를 학술지 ‘대뇌피질’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우선 545명의 건강한 참가자를 모집한 뒤, 최면 감수성이 높은 57명을 추렸다. 이들이 쉬고 있을 때, 기억을 회상할 때, 최면에 빠졌을 때 등 총 세 가지 조건에서 뇌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최면에 빠졌을 때에는 걱정에 관계하는 배측전방대상피질(dACC)의 활성이 크게 줄었다. 또 배측면전두엽피질(dPC)과 측두엽의 옆에 놓인 삼각형 모양의 뇌섬 사이의 연결이 증가했다. 운동조절, 감정 등을 관장하는 뇌섬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최면으로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배측면전두엽피질과 후방대상피질, 중앙전두엽 간의 연결은 약해졌는데, 행동과 의식이 분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마치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달리기를 멈춰도 몇 걸음 더 나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가 무언가에 빠지면 그것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행동을 계속하는 것과 같다고 부연했다. 스피겔 교수는 “최면을 거는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뇌 영상 분석으로 찾은 것”이라며 “앞으로 최면각성 상태 때 뇌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더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doi:10.1093/cercor/bhw220). 이에 대해 정용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정신과 관련한 뇌 변화를 보는 것은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중 검증을 해야 한다”며 “나라별로 다양한 사람을 최대한 모아 결과가 우연한 것인지 충분히 납득할 만한지 데이터를 쌓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각하지 못할 뿐, 우리는 최면에 걸려있다
연인들은 함께 있을 때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한다.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기다리던 영화를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끔 시간이 느려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설 소장은 “최면 의자에 앉아서 흔들리는 시계추를 보면 눈물을 흘린다는, 최면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는 고정 관념을 깨야한다”면서 “최면은 누구나 겪게 되는 일상 속 체험”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턱을 괴거나 다리를 꼬기도 한다. 평소 생각 안 나던 것이 어느 순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다. 설 소장은 “그 모든 것이 무의식이 걸어놓은 최면에 따른 것”이라며 “민감한 정도가 다를 뿐, 조건만 맞으면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게 최면”이라고 말했다.



+ 더 읽을거리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최면, 무의식에 이르는 길’(1998.5)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199805N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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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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