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는 유난히 장기간 이동해야 하는 전쟁이 많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국 전쟁이 6월에 발발했고, 약 1500여 년 전에 일어난 고구려와 수나라와의 전쟁 역시 6월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6월이다. 6월이 날이 좋아서(?)였을까. 많은 나라들이 6월에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다양한 ‘기후조건’ 때문이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박두진 씨가 작사하고 김동진 씨가 작곡한 ‘6.25 노래’다. 필자는 어린 시절 해마다 6월이 오면 이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다.
6월에는 한국전쟁을 포함해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고구려와 중국의 수나라가 최초로 맞붙었던 전쟁,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던 날도 6월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작전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히틀러가 러시아를 공격한 것도 모두 6월이다.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일어난 3차 중동전쟁도 6월에 시작됐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6월에 시작된 전쟁들은 주로 장기간 이동해야 하는 전쟁이 많았다. 그저 우연일까. 위의 사례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이유를 분석해봤다.
나폴레옹 전투
“나는 이제 모스크바로 출발한다. 한두 번의 전투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고, 러시아 황제는 내게 무릎을 꿇고 애걸할 것이다.”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러시아 정복을 위한 전쟁에 나섰다. 나폴레옹이 많은 날 중 6월의 어느 날을 선택한 것은 기후조건 때문이다. 프랑스가 위치한 북반구 중위도 지역은 6월부터 10월까지가 전투기동에 가장 좋다. 서안해양성기후 때문에 여름에 폭염이 자주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5, 6월에 강한 저기압이 통과하는 횟수가 적어 여름은 선선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러시아는 여름에 진흙펄이 많지만 가을로 접어들면서 진군하기에 좋다.
6월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식량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서다. 식량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병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위장이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식량을 본국에서 가져가야 한다면 수송병력만 해도 엄청날 것이고, 국가재정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때문에 대다수의 전쟁은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전개됐다.
북반구 중위도 지역은 6월에 식량 수확이 시작된다. 이 때부터 보리나 밀, 채소 등의 식량조달이 가능해지고, 가을 수확시기까지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폴레옹은 식량을 안정적으로 조달 받기 위해 전쟁을 6월에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월에 시작해 가을에 끝낼 수만 있다면 군복 등 보급품 부담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폴레옹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단기간의 승리를 목표로 진군한 나폴레옹 부대는 예상치 못한 폭염으로 계획보다 늦은 9월 14일에 러시아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텅 비어있었고, 나폴레옹 부대는 모스크바에서 체류해야만 했다. 러시아의 추위는 너무나 혹독했다. 나폴레옹 부대가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무렵인 10월 24일의 최저기온은 영하 17.7°C 였고, 강력한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했던 12월 6일에는 영하 38°C까지 떨어졌다. 60만 대군이었던 부대는 점점 줄어 프랑스에 도착한 인원은 고작 1600명에 불과했다. 혹한에 정예군을 빼앗긴 나폴레옹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나라만 해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국 전쟁이 6월에 발발했고, 약 1500여 년 전에 일어난 고구려와 수나라와의 전쟁 역시 6월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6월이다. 6월이 날이 좋아서(?)였을까. 많은 나라들이 6월에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다양한 ‘기후조건’ 때문이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박두진 씨가 작사하고 김동진 씨가 작곡한 ‘6.25 노래’다. 필자는 어린 시절 해마다 6월이 오면 이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다.
6월에는 한국전쟁을 포함해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고구려와 중국의 수나라가 최초로 맞붙었던 전쟁,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던 날도 6월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작전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히틀러가 러시아를 공격한 것도 모두 6월이다.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일어난 3차 중동전쟁도 6월에 시작됐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6월에 시작된 전쟁들은 주로 장기간 이동해야 하는 전쟁이 많았다. 그저 우연일까. 위의 사례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이유를 분석해봤다.
나폴레옹 전투
“나는 이제 모스크바로 출발한다. 한두 번의 전투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고, 러시아 황제는 내게 무릎을 꿇고 애걸할 것이다.”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러시아 정복을 위한 전쟁에 나섰다. 나폴레옹이 많은 날 중 6월의 어느 날을 선택한 것은 기후조건 때문이다. 프랑스가 위치한 북반구 중위도 지역은 6월부터 10월까지가 전투기동에 가장 좋다. 서안해양성기후 때문에 여름에 폭염이 자주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5, 6월에 강한 저기압이 통과하는 횟수가 적어 여름은 선선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러시아는 여름에 진흙펄이 많지만 가을로 접어들면서 진군하기에 좋다.
6월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식량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서다. 식량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병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위장이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식량을 본국에서 가져가야 한다면 수송병력만 해도 엄청날 것이고, 국가재정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때문에 대다수의 전쟁은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전개됐다.
북반구 중위도 지역은 6월에 식량 수확이 시작된다. 이 때부터 보리나 밀, 채소 등의 식량조달이 가능해지고, 가을 수확시기까지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폴레옹은 식량을 안정적으로 조달 받기 위해 전쟁을 6월에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월에 시작해 가을에 끝낼 수만 있다면 군복 등 보급품 부담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폴레옹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단기간의 승리를 목표로 진군한 나폴레옹 부대는 예상치 못한 폭염으로 계획보다 늦은 9월 14일에 러시아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텅 비어있었고, 나폴레옹 부대는 모스크바에서 체류해야만 했다. 러시아의 추위는 너무나 혹독했다. 나폴레옹 부대가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무렵인 10월 24일의 최저기온은 영하 17.7°C 였고, 강력한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했던 12월 6일에는 영하 38°C까지 떨어졌다. 60만 대군이었던 부대는 점점 줄어 프랑스에 도착한 인원은 고작 1600명에 불과했다. 혹한에 정예군을 빼앗긴 나폴레옹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독일의 히틀러 역시 10주 이내에 모스크바를 점령하겠다는 계획 아래 1941년 6월 22일 러시아를 전면 공격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에 속해있던 우크라이나 키예프 지역의 저항으로 모스크바 침략이 6주 가량 늦어졌다. 이 해에는 겨울이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고, 독일군은 겨울을 날 수 있는 준비를 전혀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12월 5일의 기온은 영하 35°C 였고, 6일은 영하 38°C 까지 내려갔다. 결국 6일, 히틀러는 독일군의 후퇴를 명령했다. 이 사례들을 보면 강대국 간의 전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동거리가 길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예상보다 전쟁 기간을 길게 만들었고, 겨울까지 이어지게 했다. 이들의 계획대로 6월에 시작한 전쟁이 가을에 끝났다면 전쟁하기에 아주 적합한 날씨였을 테고, 세계사의 판도가 지금과는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두 번째 전쟁 사례는 영국과 스페인의 전쟁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1588년 6월, 스페인 왕 펠리페 2세는 영국 침공을 위해 무적함대를 출전시켰다. 무적함대는 군함 130척에 해군 8000명, 육군 1만9000명, 그 외에도 3만 명이 승선한 거대한 함대였다. 강력한 무적함대로 먼저 영국의 해군을 제압한 뒤, 네덜란드 지역의 스페인 육군 2만5000명을 영국에 상륙시켜 점령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해군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고, 전 세계의 맹주로 떠올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에서 지지부진했던 연합군은 독일군이 주둔해있던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지역에 기습적인 상륙 작전을 결정했다(1944년 6월). 미군 250만 명을 포함해 총 350만 명의 병력이 참여한 대전쟁이었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독일의 패망을 앞당겼다.
스페인은 영국 본토의 상륙 작전을,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시기를 6월로 선택했다. 상륙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조수시간과 날씨다. 수많은 상륙 선박으로부터 안전하게 병력을 해안에 상륙시키기 위해서는 해안으로 향하는 바람이 초속 4.4~5.3m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기상예보장교에게 상륙작전에 가장 적합한 날씨와 조수의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6월이 기후조건이 가장 좋고, 조수를 고려하면 6일과 18일이 가장 적합합니다.” 결국 아이젠하워 장군은 6월 6일을 ‘D-데이’로 정했고, 결국 승리를 거뒀다.
기상예보장교가 자신 있게 6월을 추천한 이유는 유럽의 기후와 관련이 있다. 유럽은 겨울과 봄에 강력한 아이슬란드 저기압의 발달과 시베리아 고기압의 발달로 바람이 강하게 불고 폭풍이 자주 발생하는 특성을 보인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아조레스 고기압이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바람도 약해지고 폭풍 빈도도 낮아진다. 해상기동과 상륙작전에 가장 적합한 때가 바로 6월인 것이다. 두 전쟁 사례에서는 배의 이동과 상륙에 가장 적합한 날씨가 전쟁의 시작에 영향을 줬다.
제3차 중동전쟁
올해는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이 전쟁은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아랍 연맹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6일 전쟁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테러를 응징하고, 아랍 국가의 선제 공격을 막기 위해 기습적으로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이용한 기습 공격과 함께 이집트 북동부에 있는 시나이 반도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공군은 초반에 아랍 연맹을 무력화시켰고, 육군도 4일 만에 시나이 반도, 요르단 강 서안 지구, 골란 고원 등을 점령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아랍 연맹이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유엔 안보리)의 정전 결의안을 수락해 6일 만에 전쟁이 끝났다. 이 전쟁은 시기가 문제였지 언젠가는 반드시 벌어질 전쟁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하필 6월에 아랍 연맹을 기습 공격했을까.
가장 큰 기후적 요소는 함신(Khamsin, 캄신)이라고 부르는 바람이다. 함신은 이집트 사막지방에서 불어오는 강력한 모래폭풍이다. 이 폭풍이 불기 시작하면 일주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지금도 함신이 불어오면 중동 지역에서는 휴업 및 휴교령을 내린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는 미군이 승승장구하다가 함신이 불어온 날 이라크에 공격을 당해 헬기 네 대와 전투기 두 대를 잃는 등 고전하기도 했다. 그만큼 함신이 불어올 때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전력을 이동시키기 매우 어렵다. 함신은 3월에서 5월 사이에만 불기 때문에, 이 위험을 줄이고자 6월에 전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전쟁의 승패에 날씨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전쟁의 승패는 지금의 세계사를 완성했다. 만약 그때 전쟁의 시기를 6월로 잡지 않았더라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세계사를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장군이자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 하워의 말로 글을 맺는다.
“훌륭한 장군은 전략을 배우고, 유능한 장군은 병참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날씨를 아는 장군이다.”
반기성
공군 기상전대 대장,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기상청 정책 자문위원을 거쳐 현재 기상 정보 제공 회사인 케이웨더 예보센터장과 기후산업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1987년 태풍 ‘셀마’로 인한 한반도의 직접적인 피해를 예상하는 등 기상 예보의 한 획을 그었다. ‘전쟁과 기상’, ‘날씨 토크 토크’, ‘날씨로 돈 버는 남자’ 등 18권의 책을 쓴 인기 작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