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억지로 들어줬던 일이 있는가. 또는 정말 가고 싶지 않은 행사인데 울며 겨자먹기로 가거나, 이미 바빠 죽겠는데 밤잠을 줄여가며 일을 추가로 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단지 ‘NO’라고 말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곤경에 빠트린 결과다.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부탁에 약하다는 점이다. 친한 사람의 부탁은 물론, 심지어 낯선 사람이 부탁하는 일에도 말이다. 예컨대 무거운 이삿짐을 함께 날라달라거나, 휴대전화를 잠깐 빌려달라거나, 너무 급해서 그러니 애써 기다리고 있는 줄을 양보해달라거나…. 이런 무리한 요청을 받았을 때 몇 명이나 부탁을 들어줄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다. 놀랍게도 70~80%나 된다.
NO 하지 못하는 이유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 때문
최근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자.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대학 캠퍼스에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서 그러니 도서관 책에 낙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이상한 부탁에 과연 몇 명이나 응했을까.
연구팀은 10명에 한 명꼴로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 3명 중 한 명 꼴로 응했다. 학생들은 ‘이런 행동은 옳지 않다’거나 ‘나중에 잘못될까봐 두렵다’고 느끼면서도, 단지 부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책에 낙서를 했다(doi: 10.1177/0146167213511825). 권위 있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지나가는 학생이 부탁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줬다는 점에서 다소 놀랍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은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동물이 무리로부터 소외받거나 고립되는 일은 일종의 사망선고다. 그래서 사람은 다른 이의 비난이나 칭찬에 자존감을 걸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도 모르게 다른 이의 생각을 읽고 그에 맞춰 행동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이 서로의 눈치를 본다.
또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가급적이면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기대에 못 미쳤다고 생각이 들면 불안과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행위도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일을 매우 꺼린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는 상부상조하라는 사회적인 규범이 있다. 남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압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거절하기가 어렵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동지애와 전문지식, 열정이 필요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분명히 거절할 수 있을까. 평소에 거절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둬야 한다. 상황에 따라 약한 거절부터 강한 거절을 하는 말을 연습해야 한다. 또 거절을 하는 상황에서 어색함이나 두려움을 느끼고, 식은땀이 흐르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도서관 책에 낙서를 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특히 권력이 약한 사람들일수록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고 내 주장을 펼치기 어렵다. 미국 콜롬비아대 경영학과 애덤 캘린스키 교수와 뉴욕대 경영학과 조 마기 교수팀은 “권력이 약한 사람은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으면 무시당하고, 내세우면 미움을 받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서 “권력이 약한 사람들은 영향력도 작고, 주장을 내세우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약자가 비교적 쉽게 자신의 주관을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지지하기 위해 이야기할 때와 전문 지식이 있을 때, 해당 분야에 열정이 있을 때”였다(doi: 10.1177/0146167206294413).
만약 누군가의 무리한 부탁에 주관 없이 휘둘리고 있다면, 전문지식과 열정을 쌓아보자.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신중하게 조언을 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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