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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조산아의 희망, 인공자궁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엄마 뱃속은 작은 수정란이 아기가 되고, 세상에 나와 살 수 있도록 다양한 기관들이 발달하는 곳이다. 이 기간은 꼬박 40주나 걸린다. 그런데 질병이나 사고 등 여러 이유로 일찍 태어나는 아기들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 37주 미만에 태어난 아기를 조산아로 정의한다. 세계적으로 태어나는 아기 중 약 10%가 조산아다.


생과 사의 경계, 24주
피치 못하게 엄마 뱃속에서 일찍 나온 아기들, 특히 임신 24주 이내의 아기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임신 23주차 미만 조산아들의 생존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23주차는 15%, 24주차는 55% 정도로 올라간다. 25주차에는 80%까지 높아진다. 이렇게 일주일 간격으로 생존 가능성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이유는 폐의 발달에 있다.

임신 24주 이전 태아의 폐는 숨을 쉴 준비가 안 돼 있다. 폐 속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이뤄지는 허파꽈리(폐포)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태아는 임신 23~24주에 허파꽈리에 공기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면서 호흡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후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허파꽈리에는 양수가 가득 차 있다. 양수가 차 있는 동안 허파꽈리는 호흡을 위해 모양과 기능이 좀 더 정교해 진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허파꽈리 속 양수는 빠지고 공기가 들어차면서 응애~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비로소 첫 호흡을 시작한다.

허파꽈리가 발달하지 않은 임신 24주 이전의 아기들에게 현재까지 개발된 의학 기술로는 어떻게도 호흡하게 해 줄 방법이 없었다.


양수 가득 찬 인공자궁에서 탯줄로 호흡을
지난 4월 25일, 사람으로 치면 임신 24주 이전에 해당하는 태아 상태의 양이 인공자궁에서 건강하게 자랐다는 연구 결과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됐다. 미국 필라델피아아동병원 연구팀이 인공자궁을 만들어 양 태아를 최대 28일(678시간) 동안 자라게 한 것이다(doi:10.1038/ncomms15112).

인공자궁은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는 투명한 비닐 백으로 만들었다. 이 안에는 멸균된 따뜻한 인공 양수가 가득 차 있다. 양수는 펌프를 통해 조금씩 순환되며, 인공자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공극의 지름이 0.2μm인 필터로 걸러진다. 이 속에서 양 태아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처럼 탯줄의 혈관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이 있는 혈액을 공급받는다.

양의 탯줄도 사람 탯줄과 마찬가지로 제대정맥과 제대동맥으로 이뤄져 있다. 제대동맥은 태아의 몸에서 혈액이 나가는 혈관이고, 제대정맥은 엄마의 몸에서 태반을 거친 혈액이 태아의 몸으로 들어오는 혈관이다. 양 태아의 제대동맥에서 나온 혈액은 인공 폐와 혈액 온도조절장치, 영양분 공급 장치를 지나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영양분을 공급받고 다시 제대정맥을 통해 태아의 몸으로 들어간다.

혈액의 순환에는 펌프를 이용하지 않는다. 펌프로 혈액을 인위적으로 순환시킬 경우 양 태아의 연약한 혈관과 심장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양 태아의 심장 박동으로 인한 압력으로만 탯줄 속 혈관과 연결된 장치로 혈액이 순환하도록 했다.

연구팀은 인공자궁으로 수정한 지 105~108일 된 양 태아 다섯 마리와 115~120일차 양 태아 세 마리를 25~28일간 키웠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인공자궁 속에서 양 태아를 키울 수 있었지만 동물 실험 규정에 의한 실험 기간 제한으로 최대 28일 동안만 진행했다. 수정된 지 105일에서 120일 된 양 태아를 선택한 이유는 임신 23~24주 된 사람 태아와 태내 발달 정도가 생물학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임신 기간이 총 145일인 양은 대략 수정된 지 100~120일에 허파꽈리가 발달한다.

인공자궁 안에서 자라는 동안 양 태아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정상적으로 몸집이 커지고 체모가 자라는 것은 물론 폐와 간, 신경계 등 각 장기가 제대로 발달했다. 또 엄마 뱃속에 있을 때처럼 눈을 뜨거나 양수를 삼켰고, 활동적으로 움직였다. 연구팀은 인공자궁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양 태아의 3분의 1 크기인 사람 태아를 위해 시스템을 소형화할 계획이다.


2004년 우리나라도 인공자궁 만들었다
사실 인공자궁 연구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1997년 일본 준텐도대 연구팀은 플라스틱 통으로 만든 인공자궁에서 염소 태아를 3주 동안 성장시켰다. 2004년에는 송창훈 조선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와 이국현 서울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가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염소 태아를 48시간 동안 키우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실험을 주도했던 송 교수는 “현대 의학으로 28~29주에 태어난 아기는 거의 모두 살릴 수 있다. 그 이전에 태어난 조산아도 생존 가능성은 조금 낮아지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병원에서도 얼마 전 임신 25주에 570g으로 태어난 조산아를 살려냈다”며 “하지만 24주 이전, 허파꽈리가 발달하지 않은 조산아는 현대 의학으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인공자궁 연구가 꼭 필요한 이유다”고 말했다.

최초 연구로부터 20년이 지났다. 2004년 인공자궁을 개발했을 당시에도 10년 뒤에는 인공자궁을 사람 조산아 치료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구가 미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송 교수는 “인공자궁 실험 자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험에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 많은 연구 인력이 24시간 내내 인공자궁 곁을 지켜야 한다고. 송 교수는 “한국에서도 연구비와 전문 인력을 모아 연구팀을 갖추기만 하면 성능이 뛰어난 인공자궁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지난 2004년에 비해 의학은 물론 관련 장치와 소재가 발달해 인공자궁을 사람에게 적용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고, 10년 내에 실제로 조산아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수정된 지 111일 된 양 태아(왼쪽)가 인공자궁 안에서 24일 동안 자랐다(오른쪽). 몸집이 커지고 체모가 자라는 등 정상적으로 성장했다.


인공자궁, 임신을 대체할 수 있을까
4월 10일 ‘네이처 셀바이올로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인공자궁 내막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람의 자궁 세포를 배양해 만든 인공 자궁 내막은 성호르몬에 반응하고, 임신 초기에 배아에 영양을 공급하는 단백질로 알려진 자궁 유상액을 분비했다.

월경 주기에 따라 자궁내막이 점점 두꺼워지면서 임신을 준비하고, 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 생리 때와 같이 조직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연구팀은 인공자궁 내막을 이용해 자궁 관련 질병이나 임신 초기 자궁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연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doi:10.1038/ ncb3516).

인공자궁 시스템이나 인공자궁 내막과 같이 발전되고 있는 과학 기술을 이용하면 SF 영화처럼 아예 임신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송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들이 발달했어도 아직까지는 심장이나 간 자체를 만들어 이식할 수 없듯 현재 과학 기술로는 자궁을 완전히 대체하는 기술을 만들기 어렵다”며 “인공자궁은 조산아를 살리기 위한 연구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임신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더 읽을거리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숨 못 쉬는 조산아 살릴 수 있다’(2004.11)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411N039
특집 ‘엄마도 몰랐던 임신의 비밀’(2012.9)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209N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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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현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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