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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한가해. 꽃다운 27세다. 과학동아 기자로 일에만 파묻혀 지내다 보니 연애는 뒷전이 돼 버렸다. 국내 과학언론계의 최고봉인 과학동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외로움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그래, 난 열혈 기자다.

오늘은 동료들과 함께 오랜만에 3대 3 미팅에 나간다. 들리는 소문으로 이번에 나오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대단한 킹카란다. 이들을 만나서 마음을 뺏기지 않은 여자가 없을 정도라는데…. 아니 뭐 나는 이 남자들에게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과학전문기자로서, ‘미팅 제왕’들의 매력에는 어떤 과학적 비밀이 숨어 있는지, 단순히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다.

오로지 취재! 취재를 위해 미팅을 결심하게 됐다는 말씀!

남자의 상처에서 강한 남성성을 느낀다

약속장소에 들어서자 2명의 남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도착하지 않은 1명은 갑자기 일이 생겨 좀 늦을 것 같단다. 매력남이라더니 매너꽝이네. 평범한 외모의 두 사람도 어딜 봐서 킹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역시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되는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반창고입니다. 만나 뵙게 돼 반가워요.”

자세히 보니 서글서글한 눈매가 인상적이다. 구릿빛 피부도 매우 남자답다. 그런데 뺨에 있는 상처는 뭐지? 싸워서 생긴 흉터인가? 묘한 남성다움이 느껴진다.



 
 
한가해의 취재 수첩 #1
여자들은 남자의 얼굴에 난 상처를 힘든 시련을 극복한 증표라고 여기고 이를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영국 리버풀대와 스털링대 연구팀은 220명의 남녀에게 상처가 없는 얼굴 사진과, 같은 얼굴인데 상처를 그려 넣은 사진을 보여줬다.

그 결과 여자들은 얼굴에 상처가 있는 남자 사진에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 연구는 지난해 11월 국제저널인 ‘성격과 개인차’에 실렸다. 단 이런 경향은 칼에 베인 것처럼 폭력이 연상되는 상처에만 적용된다.

여드름이나 수두 같은 상처 자국은 오히려 여자들에게 남자의 면역력이 약하다는 인식을 준다고. 왜 여성이 남성의 상처에 매력을 느끼는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연구진은 “여자들은 상처가 있는 남자가 위험을 무릅쓰는 용맹함이 있기 때문에 여성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거라고 느끼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정신과 김준기 교수는 “여자는 상처 입은 남자를 자신이 치유해줘야 한다 생각할 때 남자의 상처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며 실험결과를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남자가 상처에서 얻은 정신적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면 오히려 여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휴 그랜트식 유머에 끌린다

이 남자들 생각보다 재밌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다는 반창고와 저자세 씨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미친 개를 만나 혼비백산했던 얘기로 벌써 수십 분째 신나게 떠들고 있다.

“저희 집이 그 길 끝에 있었거든요. 정신없이 뛰어서 집에 다다랐는데 대문은 잠겨 있지, 미친 개는 바짝 따라오지…. 그래서 ‘자세야, 우리 이제 어쩌지?’라고 이 친구에게 물었는데, 세상에 이 친구는 어느새 저희 집 담을 넘은 거 있죠. 하하, 이 친구 이렇게 남자답게 생겼어도 겁이 엄청 많아요.”

“하하, 맞습니다. 제가 겁이 좀 많습니다. 이 근육도 사실은 빨리 도망가기 위해 키운 거죠.”

매우 유머러스한 두 사람. 그중에서도 영화 ‘노팅힐’에서 어수룩하게 나왔던 영국 영화배우 휴 그랜트처럼 자신을 낮추는 농담을 스스럼없이 구사하는 저자세 씨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한가해의 취재 수첩 #2
유머 있는 남자는 언제나 인기가 많다. 남성은 남성호르몬 때문에 선천적으로 여성보다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 노리치대병원 샘 슈스터 교수는 지난해 6월 ‘영국의학저널’에서 “남자가 농담, 특히 공격성이 담긴 유머를 여자보다 잘 하는 이유는 여자가 경쟁자들에게 보일 관심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모든 유머가 여자의 환심을 끌지는 않는다. 미국 뉴멕시코대 길 그린그로스 박사팀이 64명의 여학생에게 남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가장 매력적인 남학생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많은 여학생들은 자신을 낮추는 유머를 한 사람을 골랐다. 자신을 낮추는 발언이 지나치면 자칫 이성에게 나약하게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그린그로스 박사는 “자신을 낮추는 유머는 상대방에게 자신이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추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이 연구는 지난해 6월 ‘진화심리학’에 소개됐다.


눈동자가 큰 남자가 매력적

식사가 끝나가자 비로소 나머지 한 명이 도착한다. 이미 반창고와 저자세 씨의 매력에 마음을 뺏겨 버린 나는‘뉴 페이스’의 등장에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나석흘이라고 합니다. 이런 멋진 숙녀분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무척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사과한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남자의 눈동자가 이렇게 클 수 있을까. 그의 눈동자에 내가 다 보일 지경이다. (급 환해지며) 호호, 괜찮아요. 늦을 수도 있죠. 호호~.






 
 
한가해의 취재 수첩 #3
우리는 탐나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으면 자꾸 바라보게 된다.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 이른바‘동공 확대 효과’다.

배란기의 여자는 이런 인간의 특성을 본능적으로 더 잘 인식한다. 영국 에든버러대 엘리너 스몰우드 박사팀은 여성 10명에게 눈동자의 크기를 조작한 남자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눈동자가 큰 사진을 가장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연구는 지난 1월‘성격과 개인차이’에 실렸다.

“이는 배란기의 여성이 남성의 커진 눈동자를 남자가 자신에게 보이는 성적 관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말했다. 단 이런 경향은 배란기가 아닌 여성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는 이유

드디어 커플 결정의 시간이 왔다. 눈을 감고 원하는 사람을 가리킨 뒤 셋을 센 다음 눈을 뜨고 확인하는, 조금은 유치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커플을 정하기로 했다.

나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했다. 반창고, 저자세, 나석흘 씨 세 사람 모두에게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소문대로 세 사람에게는 각자 거부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자, 눈을 감고~ 찍으세요.”

나는 눈을 감지 않고 친구들의 선택을 몰래 지켜본다. 미숙이는 반창고 씨, 진경이는 저자세 씨를 찍었다. 왜 나석흘 씨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거지? 나는 괜찮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별로였던 걸까. 연애 경험이 많은 진경이가 저자세 씨를 고른 걸 보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저자세 씨를 선택할까.

 
 
한가해의 취재 수첩 #4
짝짓기 대상을 결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할 경우 암컷 초파리는 이미 다른 암컷이 선택한 수컷을 선호한다. 프랑스 진화유전체종분화 연구소 프레데릭 메리 박사팀이 지난 5월 국제저널인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한 결과다.

실험에서 암컷 초파리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해 잘 자라지 못한 수컷 초파리가 매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수컷이 다른 암컷과 짝짓기하는 행위를 보면 구애를 받아들이는 기이한 현상을 보였다. 메리 박사는 “이런 특징은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동국대 교양교직학부 장대익 교수는 이 현상을 ‘배우자 모방 선택’으로 설명했다. 장 교수는 “암컷이 남들이 선택한 수컷을 다시 선택하는 이유는 후대에게 이로운 좋은 정자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임신을 해야 하는 암컷은 짝짓기 상대를 선택할 때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안전하고 보장된 상대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희대 자율전공학부 전중환 교수는 “물고기나 새와 같은 동물 실험에서는 유사한 결과가 나온 적이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없다”며 “사람에도 배우자 모방 선택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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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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