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배가 너무 아파….”
임신 중인 아내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화들짝 놀란 남편은 아내를 업고 허둥지둥 산부인과로 달려간다. 예정일이 아직 4개월이나 더 남았기 때문에 갑작스런 진통에 남편의 머릿속은 걱정으로 가득하다.
“아기가 나오기 직전입니다, 조산이에요!”
“뭐라구요? 이제 24주밖에 안됐는데….”
남편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아내는 의료진들에 둘러싸여 분만실로 들어가고 있다. 얼마 후 간호사로부터 산모가 무사하다는 얘길 듣고 나서야 남편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문제는 아깁니다. 조산되는 바람에 폐가 다 자라지 않았어요. 좀더 지켜봐야합니다.”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들은 남편은 또 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세상에 너무 일찍 나와버린 아기. 과연 부모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날 수 있을까.
임신 24주가 현대의학의 치료 한계
현대의학으로는 이 아기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치료를 한다 하더라도 일단 태아가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폐가 성숙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수년 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9월 조선의대 송창훈 교수와 서울의대 이국현 교수 연구팀은 폐가 덜 자란채로 태어난 동물의 태자가 모체 밖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인공태반시스템을 개발했다.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 성과다.
엄마 뱃속에 있던 태아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꼬박 40주가 걸린다. 질병이나 사고 같은 여러 이유로 만삭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기를 조산아라고 한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보내는 하루는 밖에서의 한달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하다. 조산아가 사망률이 높고 출생 후에도 질병에 걸리기 쉬운 이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 37주 미만에 태어난 아기를 조산아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세계적으로 태어나는 아기 중 8-10%가 조산아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송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1년에 약 50만건의 분만이 있는데, 그 중 5만명 정도가 조산아라고 한다.
임신 30-40주에 태어나거나 몸무게가 2kg이 넘는 조산아는 현대의학으로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꽤 높다. 이 시기쯤이면 태아의 폐가 어느 정도 성숙해 있기 때문에 탯줄을 끊은 다음에도 인큐베이터 안에서 산소를 공급해주면 호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안 폐와 다른 장기가 정상적으로 발육을 마칠 때까지 필요한 영양분이나 약물을 주면 충분히 잘 자랄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런 조산아의 호흡을 돕기 위해 첨단 인공환기법이 많이 개발됐다.
그러나 제아무리 인공환기법이 발달해도 이런 치료는 조산아가 폐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24-26주 이전에 태어난 조산아는 대부분 폐가 발달하지 않은 미숙아다. 이들에게는 첨단 인공환기법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40주를 채우고 태어난 신생아의 몸무게는 대개 3kg 남짓이다. 24주 이전에 태어난 조산아는 대부분 5백g이 채 안된다. 1kg 미만의 조산아를 극소체중아라고 하는데, 이들의 생존율은 매우 낮다.
의학계는 폐 안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이뤄지는 폐포가 만들어져 태아가 최소한의 호흡을 할 수 있게 되는 시기를 24-26주로 보고 있다. 결국 폐호흡에 의존한 조산아 치료의 한계가 24주인 셈이다. 의사들은 이 시기를 ‘딜레마 기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치료해도 살 가능성이 적고, 치료 후 살아나도 뇌 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 임신 27주 조산아의 생존율이 약 70%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송 교수와 이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태반은 이 같은 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인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폐가 미숙한 조산아의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을까.
연구팀이 실험에 이용한 동물은 염소. 임신한 염소를 전신마취한 후 제왕절개한다. 자궁에서 태자의 뒷다리 부분을 탯줄이 보이도록 꺼낸다. 사람 태아와 마찬가지로 염소 태자의 탯줄도 정맥(제대정맥)과 동맥(제대동맥)으로 이뤄져 있다. 제대동맥은 태아의 몸에서 태반 쪽으로 나가는 혈관이고, 제대정맥은 태반에서 태아의 몸으로 들어오는 혈관이다. 즉 태아는 일반적인 경우와 반대로 정맥으로 깨끗한 피가 들어와 몸을 순환한 다음 동맥으로 나간다. 태어난 후 곧바로 정맥과 동맥이 일반 성인처럼 바뀐다.
태자의 제대동맥과 제대정맥을 체외순환 회로에 연결한다. 몸안의 혈액을 몸밖으로 빼냈다가 다시 몸안으로 넣는 과정을 체외순환이라고 한다. 그런 다음 태자를 곧바로 인공양수가 담긴 수조 속으로 옮긴다. 모체의 양수와 동일한 성분으로 된 인공양수 속에 있는 태자의 심장이 뛰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
체외순환 회로는 크게 혈액이 흐르는 관(이하 체외혈관), 인공폐, 열교환기, 펌프로 구성돼 있다. 제대동맥 혈액은 체외혈관을 따라 펌프를 통과해 인공폐로 들어간다. 혈액이 인공폐를 지나는 동안 산소가 공급되고 이산화탄소는 제거된다. 그런 다음 열교환기로 들어간다. 열교환기를 순환하는 더운 물이 몸밖으로 나와 차가워진 혈액을 따뜻하게 해준다. 이 혈액이 제대정맥을 통해 다시 태자의 몸으로 들어간다.
체외순환이 이뤄지는 동안 수조에서는 태자의 혈압, 혈액의 양, 혈액 속 산소량, 심전도, 뇌파 등의 변화가 기록된다. 온도조절장치도 있어 인공양수의 온도를 조절해 태자의 체온을 유지한다. 또 제대동맥에서 나온 혈액에 태자의 발육에 필요한 단백질, 당분 같은 영양소나 호르몬을 넣어준다. 실제로 엄마 뱃속에서 태반이 하는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공태반시스템을 이용해 연구팀은 염소 태자를 48시간 동안 살리는데 성공했다.
10년 후 사람에게 적용 가능
그런데 연구팀은 많은 실험동물 중 왜 하필 염소를 선택했을까. 염소는 보통 임신한지 1백50일이면 새끼를 낳는데, 실험에는 임신한지 1백20-1백30일 된 염소를 사용했다. 이 시기의 염소 태자가 사람 조산아와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정상 출산한 염소 태자의 몸무게는 2-3kg이므로 조산된 태자의 몸무게도 사람 조산아와 비슷하다. 같은 포유류라도 돼지나 개는 한번에 새끼를 여러마리 낳고 크기도 사람에 비해 매우 작아 실험이 어렵다.
염소 같은 초식동물이 다른 동물에 비해 태반과 탯줄이 튼튼한 것도 한 이유다. 육식동물이 나타나면 새끼를 밴 상태에서도 뛰어 도망쳐야 하기 때문에 새끼가 충격에도 견딜 수 있게 태반이 잘 발달돼 있다. 따라서 수술하기가 쉽고 실험 도중 태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적다. 같은 이유로 염소 대신 양도 가능하다.
송 교수는 인공태반이 “아직은 동물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며 “사람 조산아에게 활용하기까지는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무리 모체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하더라도 인공장치 속에서 태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혈액은 몸밖으로 나오면 굳어지므로 체외혈관을 흐르면서 굳지 않게 유지해야 한다. 적혈구, 백혈구 같은 혈액성분 입장에서 제대정맥 밖은 외계 환경이다. 체외혈관이나 인공폐 모두 이들에겐 이물질인 셈. 따라서 혈액성분이 체외혈관벽에 붙거나 부딪쳐 깨지기도 하고 염증 같은 면역반응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경우 태자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인공태반에서 동물이 최소 1주일까지는 생존해야 한다. 지난 1997년 일본 준텐도대 부인과 요시노리 쿠와바라 교수(2002년 작고)는 인공태반에서 염소 태자를 3주나 생존시킨 바 있다. 이는 수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인공폐를 일본 자체적으로 개발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국내 연구팀에서 사용한 인공폐는 이틀이면 수명이 다한다.
그러나 일본의 성과도 아직 실험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적용하기엔 이르다고 한다. 부작용이나 합병증에 대한 추가연구가 이뤄지고 장기간 생명유지에 필요한 장비가 갖춰진 다음에야 인공태반을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성과가 갖는 의미는 크다. 현재까지 극소체중 조산아나 폐가 미성숙한 조산아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출산 전 수술과 태아연구에도 활용
또한 인공태반은 태아수술에 꼭 필요하다.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태아의 선천성 기형이나 질병을 임신 중에 미리 발견해 분만 전에 치료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태아 심장수술은 분만 후보다 분만 전에 하는 게 결과가 더 좋다는 보고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다. 태아수술 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산모에게 조기진통이 발생해 임신을 더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심장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에 문제가 생긴 태아를 제때 수술해주지 않으면 출생 후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태아의 폐가 발달할 때까지 기다려도 위험하고 수술을 감행해도 위험하니 속수무책이다. 이런 경우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기도 한다. 인공태반시스템이 갖춰지면 태아수술 후에도 태아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인공태반은 태아연구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태아의학은 아직까지도 미지의 영역이다. 태아 자체가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약품 설명서를 읽다보면 ‘임산부는 복용을 금한다’ 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다. 약이 태아나 산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복용을 피하란 얘기다. 실험동물의 태자로 만든 인공태반시스템을 이용하면 모체와 태아 간에 약물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나아가 기형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이나 장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구하는데도 활용 가능하다.
사실 인공태반의 체외순환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수십년 전부터 심장수술을 하는 동안 혈액이 계속 흐르면서 산소를 공급받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용돼왔다. 이 교수는 지난 1991년 국내에서 심장수술 후 폐기능이 악화된 환자를 체외순환을 이용해 5일간 밤샘 끝에 소생시키기도 했다.
이런 이 교수에게 어느날 송 교수가 연락을 했다. 조산아를 살릴 방법을 고민하던 중 체외순환을 적용해보자고 제안한 것. 두 교수 연구팀은 수차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동물 인공태반시스템을 개발해냈다.
육중한 장비와 복잡한 원리일 거라고 짐작했던 인공태반시스템은 뜻밖에 매우 간단해 보인다. 그런데 왜 이 시스템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지 않은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인공태반 연구는 이미 1960-1970년대에 미국과 일본에서 시작됐다. 일본 동경대는 1999년까지도 연구를 계속했으나 그 후로 더이상 진전이 없다고 한다.
이 교수는 ‘힘들다’ 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일단 인공태반시스템에 한 생명이 들어오면 의료진을 비롯한 많은 전문인력이 며칠 동안 밤을 꼬박 새워가며 붙어있어야 한다. 수많은 검사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만만치 않다.
“태자를 2-3일 정도 살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해요. 경험과 기술력이 있으니 인력과 비용만 지원되면 수년후에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교수의 바람이다.
엄마 배 ‘밖’ 에서 자라는 태아?
이제 기자의 상상은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인공태반? 인공자궁? 그렇다면 언젠가는 여성이 임신으로부터 ‘해방’ 될 수 있지 않을까.
체외수정한 수정란을 실제 자궁과 똑같은 인공자궁에 착상시킨다. 그런 다음 인공태반으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주면 엄마 뱃속에서 굳이 10달씩 보내지 않고도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거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에 이 교수는 진지한 답변을 내놓는다.
“이 시스템도 결국 인공장기에요. 넓게 보면 최근 생명과학 분야의 화두인 줄기세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간을 이식할 필요 없이 실제로 줄기세포에서 간을 만들자는 거죠. 하지만 현재 간 자체를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궁이나 태반도 마찬가지죠.”
얼마 전 중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임신할 남성 후보자를 모집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남성 뱃속에 수정란을 착상시킨 다음 여성호르몬을 주입해 여성이 임신한 것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남성 임신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교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떠나 ‘생명체’ 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 줄기세포에서 아직 간을 만들 수 없는 이유는 생명체 안에서 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정 후 태반이 생기고 태아가 자라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현재 인공심장 개발의 선두주자격인 미국에서도 환자에게 인공심장을 일생 동안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인공심장은 이식할 수 있는 알맞은 심장을 구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수단인 셈.
인공태반도 조산아의 생명을 구하고 태아를 연구하는데 먼저 활용돼야 할 것이다. 그 이상의 스토리는 아직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