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을 활용하면 모든 행동을 신중하게 제어하고 기록할 수 있습니다. 아동이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 순간에도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죠. 무의식적인 반응을 내비쳐 수사가 한쪽으로 편향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컴퓨터과학및공학과 신디 베델 교수가 e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대학원생 자카리 헨켈 연구원과 함께 범죄 피해 아동의 수사면담에 로봇을 중개자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방 안에 아동과 로봇만 남겨 수사면담을 하는 방식이다. 이 때 사람 경찰관은 뒤에 숨어 CCTV나 유리창으로 관찰하면서 로봇을 원격 조종한다. 이른바 ‘로봇 포렌식’이다.
원격 조종 로봇으로 수사면담…의도적·무의식적 편향 줄인다
학대나 성폭행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는 주로 집처럼 사적인 공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 아동의 증언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아동 진술의 신빙성. 3세 이상의 아동은 경험을 정확히 진술할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어른에 비해 환경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조사관이 의도적으로 답변을 유도하는 경우다. 이런 정황이 발견되면 범인이 감형을 받기도 한다. 2013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상습 아동 성추행범에게 징역 5년, 정보공개 7년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정보공개 5년으로 감형했다. 경찰이 피해 아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은 다 얘기했다. 너도 그랬지”라며 유도심문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의도하지 않은 비언어적 요소에 아동이 영향을 받는 경우다. 예를 들어, 아동이 특정 답변을 할 때 부모나 조사관이 눈을 크게 뜨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면 아동이 그 방향으로 진술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아동 수사면담 지침에는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 높낮이 등 비언어적 요소도 중립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그러나 특수 훈련을 받은 경찰조차 이런 지침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사람이라서다. 영국 형사사법합동수사부(CJJI)가 2014년 12월 발간한 아동 성 학대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이 아동 수사면담 지침을 거의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잘못된 수사로 얼마나 많은 아동이 학대 받는 환경으로 돌아갔을지는 알 수 없다. 베델 교수는 “만약 원격 조종 로봇을 수사면담 중개자로 활용하면, 조사관은 표정이나 몸짓 등 전달 방식을 고민하지 않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아동 수사면담을 꾸준히 연구한 심리학자인 이승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는 “수사에 앞서아동과 친밀한 관계를 쌓아야만 아동 진술의 신빙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방대한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며 “특히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가 어린 아동일수록 로봇보다는 충분히 훈련 받은 전문가가 면담해야 정확한 진술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베델 교수는 “아동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인식하듯 로봇을 인식한다”고 반박했다. 사람이 로봇에 감정 이입을 한다는 간접 증거는 많다. 예컨대, 2015년 초 미국의 로봇공학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로봇을 발로 차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곧 학대 논란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겉모습이 개와 비슷한 로봇을 실제 개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베델 교수는 “대상이 사람에서 로봇으로 바뀔 뿐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은 비슷하다”며 “우리 연구에서는 로봇이 자신을 소개한 뒤 아동의 취미가 무엇이고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묻는 과정을 통해 아동이 로봇과 친밀한 관계를 쌓도록 했다”고 말했다.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컴퓨터과학및공학과 신디 베델 교수가 e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대학원생 자카리 헨켈 연구원과 함께 범죄 피해 아동의 수사면담에 로봇을 중개자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방 안에 아동과 로봇만 남겨 수사면담을 하는 방식이다. 이 때 사람 경찰관은 뒤에 숨어 CCTV나 유리창으로 관찰하면서 로봇을 원격 조종한다. 이른바 ‘로봇 포렌식’이다.
원격 조종 로봇으로 수사면담…의도적·무의식적 편향 줄인다
학대나 성폭행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는 주로 집처럼 사적인 공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 아동의 증언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아동 진술의 신빙성. 3세 이상의 아동은 경험을 정확히 진술할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어른에 비해 환경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조사관이 의도적으로 답변을 유도하는 경우다. 이런 정황이 발견되면 범인이 감형을 받기도 한다. 2013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상습 아동 성추행범에게 징역 5년, 정보공개 7년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정보공개 5년으로 감형했다. 경찰이 피해 아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은 다 얘기했다. 너도 그랬지”라며 유도심문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의도하지 않은 비언어적 요소에 아동이 영향을 받는 경우다. 예를 들어, 아동이 특정 답변을 할 때 부모나 조사관이 눈을 크게 뜨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면 아동이 그 방향으로 진술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아동 수사면담 지침에는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 높낮이 등 비언어적 요소도 중립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그러나 특수 훈련을 받은 경찰조차 이런 지침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사람이라서다. 영국 형사사법합동수사부(CJJI)가 2014년 12월 발간한 아동 성 학대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이 아동 수사면담 지침을 거의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잘못된 수사로 얼마나 많은 아동이 학대 받는 환경으로 돌아갔을지는 알 수 없다. 베델 교수는 “만약 원격 조종 로봇을 수사면담 중개자로 활용하면, 조사관은 표정이나 몸짓 등 전달 방식을 고민하지 않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아동 수사면담을 꾸준히 연구한 심리학자인 이승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는 “수사에 앞서아동과 친밀한 관계를 쌓아야만 아동 진술의 신빙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방대한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며 “특히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가 어린 아동일수록 로봇보다는 충분히 훈련 받은 전문가가 면담해야 정확한 진술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베델 교수는 “아동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인식하듯 로봇을 인식한다”고 반박했다. 사람이 로봇에 감정 이입을 한다는 간접 증거는 많다. 예컨대, 2015년 초 미국의 로봇공학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로봇을 발로 차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곧 학대 논란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겉모습이 개와 비슷한 로봇을 실제 개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베델 교수는 “대상이 사람에서 로봇으로 바뀔 뿐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은 비슷하다”며 “우리 연구에서는 로봇이 자신을 소개한 뒤 아동의 취미가 무엇이고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묻는 과정을 통해 아동이 로봇과 친밀한 관계를 쌓도록 했다”고 말했다.

아이는 로봇과 비밀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동이 성인보다 로봇과 비밀을 더 공유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베델 교수팀은 8~12세 아동 6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2016년 8월 미국 콜롬비아대에서 열린 로봇-인간 상호교류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절반은 어른이 직접, 절반은 원격 조종 로봇을 이용해 20분씩 이야기를 나누게 한 결과 9명이 지난달에 따돌림을 당했다고 고백했는데, 이 가운데 7명은 로봇과 면담한 경우였다.

“아동은 성인을 주로 자신을 통제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로봇을 중개자로 활용하면 이런 개념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실제로 로봇을 ‘너의 선생님이야’라고 소개할 때보다 ‘너의 친구야’라고 말했을 때 상호작용을 더 많이 해요.”
이효신 교수는 “범죄 피해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동에게도 로봇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전제로 과학자들은 장애아동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박성기 KIST 로봇연구단 책임연구원팀은 2014년, 자폐아동의 사회화 훈련을 돕는 로봇 ‘카로’를 개발했다. 아동을 닮은 휴머노이드로, 6~7세 평균키 110cm로 제작됐다. 자폐아동과 눈을 맞추거나 표정을 인식하고 놀이치료도 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이다.
물론 이 로봇이 범죄 피해 아동에게도 효과적이리란 보장은 없다. 박 연구원은 “로봇은 형태를 무척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며 “학대 피해 아동을 면담하는 데 인간형 로봇과 비인간형 로봇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적합한지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센서의 종류와 배치, 데이터 처리 방법을 최적화하는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는 로봇을 원격 조종하는 사람이 아동의 표정이나 행동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베델 교수는 “상용 센서는 대부분 성인을 대상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아동에게 적용하려면 세밀하게 개선해야 한다”며 “로봇이 파악한 의미를 아동과 함께 검증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가 완료되면 로봇은 아동이 눈치 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람보다 훨씬 정확하게 아동의 상태를 파악하게 될 전망이다.
사람 면접관 돕는 인공지능으로 발달할 것
향후 법적, 윤리적 논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아동이 로봇의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공개하고 싶지 않은 정보를 의도치 않게 폭로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진술이 전부 기록에 남고 로봇이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아동에게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베델 교수는 “로봇에게 성인 경찰관과 비슷한 옷을 입히는 등 로봇을 수사관으로 명확히 표시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최종 목표는 수사면담을 돕는 뛰어난 인공지능이다. 베델 교수는 “현존하는 아동 수사면담 지침과 과거 면담에서 수집한 데이터,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과 현재 수사면담의 상태 등을 종합해 로봇 수사관의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 로봇 포렌식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승진 교수는 “현재는 경찰, 해바라기센터, 대검찰청 등 각 기관에서 독립적으로 면담자 교육을 하고 있다”며 “아직 교육 내용도 표준화돼 있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더 읽을거리
Zachary Henkel et al. ‘A Robot Forensic Interviewer - The BAD, the GOOD, and the Undiscovered’ (doi:10.1145/3029798.3034783)
Cindy Bethel et al. ‘Secret-Sharing: Interactions Between a Child, Robot, and Adult’
(doi:10.1109/ICSMC.2011.6084051)
Cindy Bethel et al. ‘Using Robots to Interview Children About Bullying: Lessons Learned from an Exploratory Study’ (doi:10.1109/ROMAN.2016.7745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