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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5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멤리스터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문이 발표됐다.
멤리스터는 1971년 미국 UC버클리 레온 추아 교수가 발표한 논문 “멤리스터-잃어버린 회로소자”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이 논문은 2017년 2월 현재 무려 3402회나 인용됐다). 전자회로의 수동소자 (증폭ㆍ전기에너지 변환 등 능동적 기능 없이 에너지를 소비, 축적, 통과시키는 소자)는 저항(R), 커패시터(C), 인덕터(L) 세 가지다. 추아 교수는 여기에 한 가지 더,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잃어버린 소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밝혔다.
수학이 먼저 ‘예언’한 회로소자
당시 물리학계와 전자공학계가 모두 주목할 만큼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구현해낼지가 고민이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다가, 30여 년 만인 2008년, 휴렛팩커드(HP) 사가 ‘네이처’에 멤리스터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멤리스터가 뉴로모픽에 필요한 차세대 메모리 소자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멤리스터 연구는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뒤인 2015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한 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잃어버린 멤리스터는 아직 찾지 못했다’라는 이 논문의 저자 사샤 폰게르 중국 난징대 고체마이크로구조국립연구소 연구원은 “HP가 개발한 멤리스터는 진짜 멤리스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관절 잃어버린 소자, 멤리스터가 무엇이기에 이런 논란이 생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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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리스터의 진짜 물리적 성질은?
‘진짜 멤리스터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멤리스터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추아 교수의 논문을 살펴보자. 평소 물리계의 대칭성을 중요시 여겼던 추아 교수는 전자회로를 구성하는 수동소자가 비대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자회로에는 네 가지 기본 변수가 있다. 전류(I), 전압(V), 전하(q), 전압의 플럭스(Φ, 이하 플럭스)다. 전하는 흘러간 전류의 합을 의미하며, 플럭스는 시간에 따른 전압의 합을 의미한다(Φ=V·t). 이들이 두 개씩 짝지어 만들 수 있는 조합은 총 여섯 가지. 이 중 다섯 가지는 잘 알려진 관계다. 대표적으로 옴의 법칙(V=I·R)이 있다. 전압과 전류의 관계식으로, 이 관계는 저항(R)으로 정의된다.
전자회로에는 R 외에도 두 가지 수동소자가 더 있다. 축전기로 알려진 커패시터(C), 코일로 알려진 인덕터(L)다. 각각 전하와 전압, 플럭스(Φ)와 전류의 관계를 정의한다. 여기서 딱 한 가지 채우지 못한 관계식이 있다. 바로 플럭스와 전하의 관계다. 추아 교수는 이 관계를 정의하는 수동소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이 소자에 멤리스터(M)라는 이름을 붙였다. 멤리스터는 아래와 같은 관계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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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회로소자
각 변에 놓인 네 개의 변수는 전압(V), 전류(I), 전하(q), 플럭스(Φ)다. 이들을 엮어주는 수동소자는 저항, 커패시터, 인덕터가 있고, 전하와 플럭스의 관계를 제외한 모든 관계식은 이미 밝혀져 있다. 이 소자가 발견된다면 전하의 변화만으로 자기장을 제어할 수 있어, 전자회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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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리스터를 물리학적으로 넓혀서 생각하면, 저항 값처럼 모든 물체에 대해 M 값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M이 큰 물체는 작은 전하의 변화에도 큰 자속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M이 작은 물체는 그 반대다. M을 정의할 수 있다면 저항에 따라 도체와 부도체를 구분하는 것처럼, M에 대해서도 물체들을 분류할 수 있다.
저항 값 바꾸고, 기억하는 소자
멤리스터 소자는 회로에서 아주 흥미로운 존재다. 흘러 들어오는 전류의 양에 따라 멤리스터의 저항이 변하기 때문이다. 배리스터(varistor)와 유사하다. 파이프에 흐르는 물로 비유를 하자면, 멤리스터는 흐르는 물의 양에 따라 직경이 변하는 파이프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단순히 저항 값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저항 값을 그대로 유지한다. 즉, 흘러간 전류의 양을 기억한다. 이는 비휘발성 메모리에 활용하기 적합한 특성이다. 인공지능의 개발과 함께 뉴로모픽 칩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이런 멤리스터의 성질이 다시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배리스터: 두 개의 전극을 갖는 전자 부품. 두 단자 사이의 전압 차가 작으면 저항이 높지만, 전압 차가 커지면 저항이 작아진다. 전압에 따라 저항이 바뀌는 대표적인 비선형 소자다.
뉴로모픽 칩의 성능은 우리의 뇌 신경을 얼마나 잘 모방하느냐에 달려있다. 뇌를 이루는 뉴런과 뉴런 사이를 시냅스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기억할 때 관련한 시냅스의 활성이 높아져 뉴런의 연결을 강화시킨다. 즉, 뇌세포 사이의 연결선이 많아지고 굵어진다. 뇌에서는 이 과정이 화학적으로 간단하게 이뤄지지만 이 기능을 컴퓨터 칩에 적용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전류의 양이 늘어나면 저항 값이 작아지고 또 이 값을 기억하는 멤리스터는 뇌의 시냅스와 기능이 유사했고, 공학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반도체 결함 역이용해 멤리스터를 만들다
HP가 개발한 멤리스터 역시 이 기능에 충실한 전자 소자다. HP 연구팀은 전류에 따라 저항 값이 변하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이들은 백금 사이에 이산화티타늄(TiO2) 층을 넣어 멤리스터를 구현했다. 이산화티타늄은 반도체를 코팅하는 데 많이 쓰는 물질로, ‘산소 공공(oxygen vacancy)’이라는 중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공공은 결정 구조에서 원자나 이온이 빠져 비어버린 자리를 의미한다. 반도체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공공은 결함의 주요 원인이지만, 멤리스터는 이를 역으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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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리스터의 TiO2 층은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눠져 있어 한 쪽은 산소 공공이 많고, 다른 한 쪽은 수가 적다. 이 상태에서 전위차가 발생하면 산소 공공이 이동하게 되고, 전류의 흐름이 원활해지며 전류량이 증가한다. 전원이 꺼져 전류의 공급이 끊긴 경우, 이 산소 공공의 분포를 보고 이전의 저항 값(흘러간 전류의 양)을 추정할 수 있다.
진짜 멤리스터는 어디에
HP의 멤리스터에 대한 평가는 극명히 갈린다. 이전의 저항을 기억하고, 이를 3차원으로 구현했다는 점만으로도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진짜 멤리스터라고 하기는 어렵다. 2015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의 논문에서도 “2008년 HP는 멤리스터를 단지 메모리 기능을 가진 비선형 저항으로 이해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황현상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HP를 포함해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멤리스터 연구들은 변하는 저항에만 집중했을 뿐, 멤리스터의 물리적 특성을 구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HP의 논문에서는 변하는 저항 값은 여러 번 언급했지만, 자속의 변화를 관찰한 흔적은 없었다. 즉, 처음에 제안됐던 것처럼 전하만으로 회로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자기장을 발생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소자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2008년까지 나노 단위에서 멤리스터를 구현하는 연구를 했던 김태희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는 “멤리스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원인에서 유발되는 자기저항현상(자기장에 의해 저항이 변하는 현상)인지, 전하량의 변화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실험적으로 증명하기가 까다롭다”며 “M 값이 큰 물질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데다, 어쩌면 모든 물체의 M 값이 동일하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는 등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멤리스터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처음에 제안됐던 멤리스터는 찾지 못한 상태다. 김 교수는 “쉽지 않은 연구겠지만, 멤리스터를 찾기만 한다면 전자 회로를 이용하는 모든 산업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전자기학에서도 큰 발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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