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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5일 충북 보은군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그 다음날 전북 정읍시, 이틀 뒤 경기 연천군의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그 뒤 다시 충북 보은군 곳곳에 있는 소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번에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혈청형이 대부분 O형이다. 그런데 2월 8일 경기 연천군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혈청형이 A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거의 같은 시기에 O형과 A형이 동시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초기에는 구제역 백신을 맞은 뒤 항체가 생긴 비율(항체 형성률)이 지극히 낮았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농가마다 백신 접종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백신을 제대로 맞혔던 농가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물백신’ 논란도 일었다. 과연 올해 구제역이 유행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1 밀집해서 사육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소와 돼지를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키우는 밀집 사육 방식을 탓했다. 그만큼 구제역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 전파율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는 “친환경 복지 축산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는 영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 구제역이 유행했다”며 “밀집 사육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기 어렵다”고 밝혔다. 밀집 사육으로 인해 농가 안에서 구제역이 빨리 퍼질 수는 있겠지만, 이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까지 빠른 속도로 전파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구제역과 관련해서는 바이러스가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차단방역이 가장 중요하다.

송 교수는 “무조건적인 소독보다는, 축산환경에 적합한 소독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축의 분변이나 혈액 같은 유기물이 쌓여 있으면 소독을 하더라도 이 안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까지 잡기 어렵다”며 “소독하기 전 뜨거운 물로 축사를 깨끗하게 청소해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2 농가에서 백신 접종을 잘못했다?
구제역 백신은 바이러스를 포르말린 같은 화학약품으로 병원성을 없앤 불활성화 백신이다. 세포 안에서 증식할 수는 없지만 면역계가 이를 항원으로 인식해 항체를 만든다. 특히 바이러스의 구조단백질을 차단하는 항체를 만들어, 진짜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세포에 들러붙는 걸 막는다.

국내에서는 2010~2011년 구제역이 발생한 뒤 전국적으로 백신 접종 정책을 도입했다. 법적으로 50마리 이하의 농가에서는 공중수의사가, 50마리 이상의 농가에서는 자체적으로 백신을 접종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백신을 보관하거나 접종하는 방법이 조금 까다롭다보니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농가에서 백신을 잘못된 방법으로 보관했거나 접종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백신은 냉장 보관했다가 접종하기 몇 시간 전에 상온에 둬야 하며, 주사기를 근육에 직각으로 꽂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백신을 맞더라도 효능이 떨어진다. 송 교수는 “농가에서는 수없이 많이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백신 관리나 접종 방법을 몰라 제대로 못했다는 추측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백신을 맞고도 구제역이 발생하는 원인을 농가에 돌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한편 일부 농가에서 구제역 백신을 맞으면 젖소의 우유 생산량이 감소한다거나 임신한 소는 유산한다, 한우 육질이 떨어진다 같은 우려 때문에 백신 접종을 소홀히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백신을 맞으면 육질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일부 젖소는 유산을 하거나 우유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 구제역 백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불활성화 백신에 들어있는 면역증강제 때문이다. 면역반응을 증강시키기 위해 넣는 이 물질은 오일 성분으로, 스트레스나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송 교수는 “사람마다 백신을 맞았을 때 부작용이 다른 것처럼 동물도 각각 다르다”면서 “이런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은 5% 이내”라고 말했다. 확률이 극히 낮은 부작용을 걱정하기보다는 백신을 접종해 구제역을 예방해야 한다.

 
3 효능이 떨어지는 ‘물백신’이다?
경기 연천군에서는 수의사가 직접 백신을 맞혔는데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백신 자체의 효능이 떨어지는, 일명 ‘물백신’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이 RNA로 변이가 많아 아형이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아형의 바이러스가 유행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른 유형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효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구제역 백신은 원료로 사용한 균주와 실제 유행한 바이러스와의 ‘면역학적 상관관계’가 0.3이 넘으면 효과가 있다고 본다. 2011년 이후로 영국 백신 제조회사인 메리얼사에서는 ‘O1 마니사(O1 manisa)’ 균주를 백신의 원료로 쓰고 있다. 2014년 12월, 충북 진천에서 유행했던 구제역 바이러스 균주 3개를 분리해 O1 마니사 균주와의 면역학적 상관관계를 분석해봤더니 각각 0.42, 0.29, 0.59였다.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4 야생동물이 옮겨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경기 연천군에서 발생한 A형 구제역 바이러스가 북한으로부터 전파됐다고 주장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고라니와 멧돼지처럼 비무장지대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야생동물이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송 교수는 “오히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항상 구제역이 유행하고 있는 지역을 다녀온 사람이 구제역을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천 농장주가 지난해 9월 베트남을 여행했으며, 당시 그 지역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와 유전정보가 99.8%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2월 5일, 충북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의 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농장에서 사육하던 젖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한 뒤 굴삭기를
이용해 농장 옆에 있는 논에 매몰하고 있다.


5 바이러스의 생존 능력과 전파력이 높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보다도 생존력이 강하다. 두 바이러스는 구조적으로 큰 차이점이 있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캡시드 바깥을 지질로 된 막(외피)이 둘러싸고 있지만, 구제역 바이러스는 외피가 없이 캡시드가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그런데 소독제에 대해서는 두 바이러스의 희비가 뒤바뀐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수돗물이나 비눗물(계면활성제) 등에 닿으면 외피의 지질이 녹으면서 바이러스의 구조가 망가진다. 손만 잘 씻어도 독감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구제역 바이러스는 강산(pH6.52 이하)이나 강염기(pH11.22 이상)에만 약하기 때문에, 구연산이나 가성소다로 소독해야 한다. 이렇게 외부 환경에 대한 저항력이 높기 때문에 구제역 바이러스는 다른 바이러스에 비해 오랫동안 더 멀리 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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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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