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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삼엽충 시대 태양계에 무슨 일이?

지층에서 캐올린 소행성 역사

4억6600만 년 전 삼엽충이 지구의 바다를 장악했을 무렵, 태양계를 공전하던 소행성들 사이에서 큰 충돌이 생겼다. 이 사건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천문학자들은 지층 속에서 그 단서를 발견했다.


4억6700만 년 전.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삼엽충 무리 곁으로 먼지 같은 물체가 물살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삼엽충에겐 먹이가 아니니 관심 없는 먼지일 뿐이었겠지만, 이 물질은 보통 먼지가 아니었다. 우주에서 온 운석 알갱이였다.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에서 지구까지 날아온 이 운석 알갱이는 해저면에 안착해 긴 여행을 마쳤고, 그대로 퇴적물 사이에 끼어 단단한 석회석으로 변해 갔다. 4억6700만 년 전 소행성의 역사를 타임캡슐처럼 간직한 채.

시간이 흘러 바다였던 곳은 육지가 됐다. 그리고 어느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와 강변에서 돌을 골라 내기 시작했다. 4억6700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소행성 타임캡슐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PART 1​우주에서 땅 속으로…
‘네이처 천문학’ 1월 23일자에는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 미국과 스웨덴, 러시아 공동연구팀이 러시아 북서부의 린나강에서 채취한 미소운석을 분석한 결과, 4억 6700만 년 전 우주에서 지구로 유입된 운석의 구성 성분이 오늘날 지구로 날아오는 운석과는 크게 달랐다는 것이다(doi:10.1038/s41550-016-0035).

미소운석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은 알갱이들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띠에서 날아오다 지구로 떨어진다. 매 시간 지구로 떨어지고 있지만 불빛을 뿜으며 낙하하는 큰 운석과 달리 조용히 지구에 안착한다. 하지만 그 양이 적지 않기 때문에 퇴적암 속에 일부가 보존된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4억6600만 년을 전후로 소행성 띠에서 큰 충돌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그 충돌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추적했다.
대다수 소행성은 태양계에서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띠에 분포한다.
여기서 충돌이 생기면 파편 일부가 지구로 날아와 운석이 된다.

 
 
특별히 러시아의 린나강 유역을 주목한 이유는 과거 러시아와 스웨덴, 중국 등의 오르도비스기 지층을 연구하던 다른 연구팀이 연구 가치가 높은 미소운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소운석이 지구 전역에 광범위하게 떨어졌으며, 그 양이 한동안 빠르게 증가했다는 연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는 조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미국 필드자연사박물관의 필립 헥 박사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린나강 퇴적층은 퇴적 속도가 느린 먼 바다에서 생성돼 입자가 강하게 응축돼 있다”며 “우주에서 온 미소운석이 희석되지 않고 남아있기 좋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육상퇴적물이 적어 운석 입자를 골라내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연구팀이 땅을 파서 우주를 연구한 방법은 한마디로 ‘막노동’에 가까웠다. 한눈에 봐도 물살이 빠른 강변에 아슬아슬하게 기대어 물 밖으로 노출된 4억6700만 년 전 지층의 석회암 시료들을 채집했다(왼쪽 아래 사진). 그런 뒤 시료를 강한 산성 용액인 염산(HCl)과 불산(HF)에 넣어 크롬 스피넬 알갱이들만 남기고 다른 성분들은 녹여버렸다. 크롬 스피넬은 크롬(Cr)과 스피넬(MgAl2O4)이 결합된 광물로, 외계 운석의 성분 가운데 변성작용의 영향을 받지 않는 유일한 성분이다. 헥 박사는 “수 kg의 암석을 녹였을 때 알갱이 몇 개가 나오면 많이 나오는 것일 정도로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크롬 스피넬을 찾았다 해도 이게 외계에서 온지 확신하긴 힘들다. 이때에는 운석을 구성하는 산소 성분의 동위원소 구성을 조사한다. 산소의 동위원소인 O-16, O-17, O-18 사이의 비율을 측정한 뒤 지구표준값과 비교해 보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크롬 스피넬 알갱이에 이 방식을 적용해 시료가 외계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주 화석으로 밝힌 과거와 현재
미소운석의 구성 성분을 분석한 연구팀은 흥미로운사실을 발견했다. 4억6700만 년 전에 지구로 온 미소운석은 4억660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지구상에 떨어지고 있는 운석들과 성분 비율이 눈에 띄게 달랐던 것이다. 이는 4억6600만 년 전을 기점으로 지구를 향해 날아온 운석의 구성 성분이 달라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운석은 구성 성분에 따라 석질운석, 철질운석, 석철질운석으로 나뉜다. 현재까지 발견된 운석들은 규산염광물로 주로 이뤄진 석질운석이 전체의 약 94%를 차지한다. 석질운석은 둥근 알갱이처럼 보이는 ‘콘드룰’이 눈에 띄는 콘드라이트와, 콘드룰이 없는 아콘드라이트로 나뉜다.

연구팀이 4억6700만 년 전 지층의 미소운석을 분석해 당시 소행성 띠에서 지구로 날아온 파편들의 구성 성분 비율을 예측한 결과, 콘드라이트가 아콘드라이트에 비해 1.3배 정도 많았다. 반면 4억660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지구로 향하고 있는 파편들은 콘드라이트가 무려 11배나 많다.

요약하면, 과거에는 아콘드라이트의 비율이 지금보다 월등히 높았다. 특히 아콘드라이트 중에서 원시 아콘트라이트와 미분류 아콘드라이트 종류가 전체의 15~34%를 차지했는데, 이 역시도 4억6600만 년 전 이후(0.45~1%)와 크게 다
른 부분이다.

 PART 2땅 속에서 우주로…
과거와 현재에 지구로 날아오는 운석의 성분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운석의 탄생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운석은 대부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띠에서 탄생한다. 소행성들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지만, 수가 너무 많고 운동하는 속력과 방향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자주 충돌한다. 이때 발생하는 파편들 중 일부는 소행성 궤도를 빠져나와 지구를 비롯한 다양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일부는 소행성 궤도 안에서 다른 소행성들과 연쇄 충돌을 일으킨다. 이렇게 생긴 파편들을 모천체의 이름을 따서 종족(family)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소행성 띠에서 두 번째로 큰 천체인 베스타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은 베스타 종족이다.

지난 5억 년 동안 태양계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헥 박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4억6600만 년을 전후로 소행성 띠에서 발생한 새로운 충돌이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의 종류에 변화를 일으켰다. 충돌에서 나온 새로운 파편이 전부터 지구로 향하던 파편에 더해지면서 변화가 생겼다. 새로 충돌한 천체는 콘드라이트 성분이 풍부한 천체였을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스웨덴 룬트대 물리학과 비르거 슈미츠 교수는 “학계에서는 과거 5억 년 동안 태양계가 굉장히 안정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4억6700만 년 전에 지구를 향해 날아온 운석이 현재와 달랐다는 점은 꽤 놀라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행성과학그룹장에 따르면, 천문학자들은 달탐사를 통해 채집한 운석의 연대를 측정하고, 달의 운석충돌구(크레이터)를 관측해 약 38억 년 전에 많은 운석이 떨어진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그 때를 제외하면 태양계가 생성된 뒤부터 지금까지 운석 충돌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추정일 뿐 38억 년 전처럼, 추세에서 벗어나는 사건이 없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5억 년 이상 이어진 베스타의 연쇄 충돌
흥미로운 사실은 또 있다. 연구팀이 분석한 시료에는 약 10억 년 전 대충돌을 일으킨 소행성 베스타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성분들도 현재보다 많이 들어있었다. 베스타에는 대충돌로 지름 500km(베스타 평균 지름의 95%다!)에 달하는 크레이터가 생겼고, 부피의 1%가 파편으로 날아갔다. 학자들은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운석 중에서 현무암질(HED)의 아콘드라이트가 베스타의 파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팀이 모은 시료를 토대로 추정했을 때, 4억6700만 년 전에 지구로 온 소행성 파편들에는 HED 아콘드라이트가 10~29% 분포해 있지만, 현재는 6.6% 포함돼 있다. 이는 베스타의 연쇄 충돌로 생긴 파편이 지구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점차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연구팀은 소행성 띠에서 지구로 오는 파편의 출처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예컨대 4억6700만 년 전 샘플에서는 콘드라이트 중에서도 철함량이 매우 낮은(LL) 계열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131쪽 위 그림 참고). 반면 철함량이 높은(H) 계열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대로 H 콘드라이트가 많고 LL 콘드라이트는 적다. 이는 LL 콘드라이트를 보낸 모천체에서 시작된 연쇄 충돌이 현재는 끝난 반면, H 콘드라이트의 모천체가 일으킨 연쇄 충돌은 아직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태양계를 이해하는 창을 넓히다
최 그룹장은 “과거 남극에서 빙하를 뚫어 얼음 속에 담긴 미소운석을 연구하기도 했지만 그 방식으로는 불과 수백만 년 이전의 상황만을 연구할 수 있었다”며 “지층을 연구하는 방식을 이용하면 더 오래전의 운석을 연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소행성 띠에 대한 정보를 쌓으면 소행성 띠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띠는 여러 개로 나뉘는데, 띠 사이에서 소행성 충돌이 일어났는지, 화성과 목성의 중력에 의해 궤도 변화가 생겼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태양계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됐는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소행성 띠는 태양계 각 행성들이 형성되고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동시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소행성 띠에서 일어난 일은 지구를 비롯해 태양계 다른 행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목성과 토성은 주변을 지나는 소행성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궤도가 조금씩 움직인다. 그런데 학자들이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태양계 형성 과정에서 목성과 토성의 움직임 때문에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소행성들의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태양계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현재까지 밝혀진 증거를 토대로 그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진화 시나리오를 만드는데, 소행성 띠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증거가 더해지면 이전보다 더 정교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최 그룹장은 “소행성 띠의 진화 과정에 대한 증거가 많아지면 향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지구에 어떤 천체가 근접할지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자세하게 분석할 수도 있다. 현재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근지구소행성들도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띠에서 일어난 충돌 파편들이 유입돼 형성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헥 박사는 “더 많은 시기의 운석을 연구해서 태양계 천체들이 어떻게 형성됐고, 서로 상호작용했는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오르도비스기뿐만 아니라 실루리아기와 백악기 등 다양한 시기의 운석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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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 일러스트

    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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