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사! 오늘은 또 무슨 연구를 하시나? 이건 못 보던 플라스크인걸.”
“삼촌! 이 플라스크 사느라고 파리를 1백마리나 잡았어요. 엄마한테 말씀드려서 파리값 좀 2원으로 올려달라고 해 주세요. 이제 잡을 파리도 없단 말이예요.”
꼬마 이박사가 한창 오후 수업을 즐기면서 삼촌과 나눈 대화다. 어른 이박사가 된 이영욱 교수(39)에 따르면 오후 수업이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수업보다 더 재미있는 자신만의 연구수업이다. 당시 꼬마 이박사의 연구란 ‘학생과학’이라는 잡지에 나오는 실험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실험 재료를 마련하기 위해 구두를 닦고, 준비된 도구로 실험을 하고, 결과를 얻고 나름대로 이해를 하고 설명을 가슴 속 깊이 새겼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일까. 상기된 이교수 얼굴 사이로 미소가 흐른다.
이교수는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어렸을 때의 놀이가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둘다 좋아서 매달렸고, 과제를 계속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선 같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자신의 연구에 얼마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꼬마 이박사의 연구 교재
이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집에서 동네 형들이 보는 ‘학생과학’을 처음 접했다. 외국에서 전해오는 생생한 과학지식을 학생과학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점은 그 무엇보다 큰 매력이었다. 잡지에 쓰여있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속에 새겨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기본이고, 광고, 편집인,발행인 이름까지 모두 읽었다. 다음호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 외우다시피 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중계 방송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꼬마 이영욱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이교수의 꿈은 막연한 과학자에서 우주과학자로 바뀌었다. 사실 당시에는 천문학자라는 말을 몰랐다고 고백했다. 그 날 이후 신문에 등장하는 별, 우주, 하늘과 관련된 모든 기사를 스크랩했다. 아폴로 11호와 13호가 지구를 출발해 달에 도착하는 과정도 만화로 수없이 그렸다. 수업시간에 칠판에는 우주선들이 끊임없이 어른거렸다고 한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5학년때 가슴속 작은 불씨에 불을 지피는 일이 일어났다. 학생과학이 밤하늘과 만남을 주선시켜준 것이다. 학생과학에 자코빈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이교수는 예고된 날에 마당에 5시간 동안 서 있으면서 밤하늘을 온 몸으로 맞았다. 유성우는 기대보다 훨씬 못미쳤지만 “하늘이 자신을 부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흥분된 어조로 설명한다. 그 후 밤하늘은 이교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지금 외우고 있는 성도도 모두 중학교 2학년 때 실력이다.
날씨 좋으면 데이트 포기
하늘의 부름을 받은 어린왕자가 천문학과로 진로를 정한 것은 당연한 것일까. 아무런 주저 없이 연세대 천문학과에 첫번째로 등록했다. 하지만 입학 후 대학에 들어와보니 별과는 상관없는 것같은 수학과 물리만 공부하게 돼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때가 1980년. 일산에 천문대를 건설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대학 동기들과 ‘아웃사이더’란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 일산 천문대 건설 현장을 오가며 별관측 여행을 다니고 천문대의 돔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천문대가 열리고 천문학 수업이 시작되면서 이교수의 생활은 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았다. ‘은하수를 보았는가?’ ‘은하수는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끝나는가’와 같은 지도교수의 독특한 시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일산 천문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원없이 밤하늘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때의 에피소드 하나. 데이트를 하다가 날씨가 좋으면 여자 친구를 돌려보내고 일산으로 향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천문대에 있으면서 집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자 불시에 아버님이 천문대로 오셨던 일. 이 때 망원경에 빠져있는 이교수의 모습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하나면 족해
천문학 이외에 다른 것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이영욱 교수. 그런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을 만한 연구시설이 부족했고 직업으로서의 가치도 높지 않았다. 국내에서 진로를 결정해야하는 4학년 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박사후과정을 신청했을 때 느낀 좌절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중요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 문제이지만, 한곳이라도 있다면 족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현재 국내의 천문학 박사는 약 60명밖에 안되지만 10년 후 6백명은 더 필요하다는 게 이교수의 생각이다.
이영욱 교수는 오메가 성단이 1백억년 전 우리은하와 충돌한 작은 은하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결과에 자만하지 않는다. 앞으로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연구자의 기본 정신인 창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쳐야 가능하다.” 하지만 그 자신도 어떻게 미칠 수 있는지는 모른다. 단지 좋아하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