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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플루 팬데믹 공포, 한반도 피해는 이제 시작!

일요일이었던 지난 8월 16일, 느긋하게 TV를 보면서 점심을 먹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속보에 밥맛이 확 달아났다. 전날 국내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이하 신종 플루) 첫 사망자가 발표된 지 하루 만에 두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는 뉴스였기 때문이다. 5월 2일 국내 첫 감염자가 확인된 이래 2000여 명의 확진 환자가 집계될 때까지 사망자가 없어 “감기보다도 증세가 약한 것 같다”며 방심했던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별일이 없었지만 겨울을 보내고 있는 남반구에서는 신종 플루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8월 24일 현재 신종 플루 사망자를 보면 아르헨티나가 439명으로 522명의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브라질이 368명으로 3위, 호주가 132명으로 5위, 칠레가 128명으로 6위다. 그나마 남반구는 신종 플루 초기에 겨울을 맞았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지는 않았다. 9월 23일 추분을 기점으로 남반구와 북반구의 입장이 바뀐다. 게다가 북반구는 이미 바이러스가 꽤 퍼진 상태이기 때문에 가을로 접어들면서 남반구보다 훨씬 큰 규모로 신종 플루가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



예년 같으면 ‘독감예방백신이 준비돼 있으니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접종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줘도 한 귀로 흘리던 사람들이 신종 플루 백신개발 현황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종 플루 백신은 빨라야 11월 초에 나오고 그나마 정부가 국내 제약사(녹십자)가 내년 2월까지 만들 생산량 600만 명 분량을 전량 사들여 초·중·고 학생, 군인이나 의료인, 임신부 같은 취약집단에 먼저 접종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낭패한 심정이다.



계절성 플루보다 독해

각국이 백신확보에 사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 제약사 제품을 들여오기도 어려워 사실상 국민 다수는 ‘맨주먹으로’ 바이러스와 대면해야 한다. 물론 치료제로 타미플루나 리렌자가 있지만 두 사망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때를 놓치면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신종 플루 바이러스는 도대체 얼마나 ‘센 놈’일까.

7월 24일자 ‘사이언스’에는 동물실험으로 신종 플루 바이러스와 전형적인 계절성 플루 바이러스의 병원성을 비교한 논문 두 편이 나란히 실렸다. 실험동물은 페럿(흰족제비)을 사용했는데, 페럿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사람과 가장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두 논문의 결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신종 플루가 계절성 플루보다 증상이 좀 더 심하다는 결론은 일치했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의학센터 론 포우키어 박사팀은 멕시코에 다녀왔다가 감염된 3살짜리 아이의 체액에서 분리한 바이러스를 페럿의 비강에 접종했을 때 3일이 지나자 기관지와 폐까지 바이러스가 확산됨을 확인했다. 계절성 플루 바이러스를 접종한 대조군에서는 비강에서만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신종 플루를 앓은 경우 체중감소는 12%로 나타나 계절성 플루(10%)보다 심했고 회복에 걸리는 시간도 6일로 계절성 플루보다 이틀 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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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우키어 박사는 “스페인 플루 바이러스를 접종할 경우페럿이 죽는 것에 비하면 신종 플루의 병원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증상이 경미한 환자에게서 분리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테렌스 텀페이 박사팀은 병세가 다른 3명에게서 얻은 신종 플루 바이러스로 동물실험을 했다. 증세가 경미한 아이에서 얻은 바이러스(CA/04), 호흡기 질환으로 중태에 빠졌던 29세 여성에서 얻은 바이러스(MX/4482),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아이에서 얻은 바이러스(TX/15)를 각각 페럿에 접종했다. 그 결과 CA/04에 감염된 페럿은 독감을 가볍게 앓고 회복됐지만 TX/15에 감염된 페럿 6마리 가운데 1마리는 체중감소가 극심해 열흘 만에 안락사시켰다. MX/4482의 경우도 6마리 가운데 3마리가 2주간의 실험이 끝날 무렵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체중이 감소해 안락사됐다. 텀페이 박사는“세 바이러스의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해 보면 몇 군데가 다르다”고 밝혀 신종 플루 바이러스는 변종에 따라 병원성에 차이가 클 수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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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는 왜 겨울에 창궐할까

늦여름 무더위가 끝나가는 게 아쉬운 요즘이다. 날이 춥고 건조해지면 신종 플루가 급증할 거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플루 바이러스는 계절성을 띠는 걸까.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생물학과 에드워드 홀름즈 교수는 2007년 ‘네이처 리뷰 지네틱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플루엔자가 왜 6개월을 주기로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지는 아직 모른다”며 “이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모두 입증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즉 바이러스가 저온에서 더 오래 살아남아서 그렇다거나 숙주(사람)의 면역성이 추울 때 떨어진다는 설명, 겨울철에는 실내에 모여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원인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아직 플루 바이러스의 행태에 대해 모르고 있는 셈이다.


홀름즈 교수는 “바이러스가 춥고 건조한 기후에서 가장 안정하다는 1960년 논문이 여전히 인용되고 있다”며 “겨울철에는 온도와 습도를 여름과 같이 해줘도 실험동물이 독감에 더 잘 걸린다”고 설명했다. 플루 바이러스의 온상이 1년 내내 고온다습한 열대지역이라는 점도 온도 가설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홀름즈 교수는 “인플루엔자의 역학(疫學)은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한 현상이지만 지역사회에서 퍼지는 데는 집과 학교를 오가며 접촉이 활발한 아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학기가 시작되는 가을이 두려운 이유다.

폐뿐 아니라 장에서도 바이러스 발견]

계절성 플루처럼 신종 플루에 감염될 경우 발열, 콧물, 기침, 목통증 같은 전형적인 독감 증세를 보인다. 체온이 37.8℃가 넘어야 ‘환자후보’가 돼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계절성 플루와 비교했을 때 신종 플루의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구토나 설사 같은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많다는 점이다(미국의 경우 24%). 실제 동물실험의 결과도 신종 플루 바이러스에 감염된 페럿의 내장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심각한 폐렴이나 호흡기 손상을 보이는 환자의 비율도 높다.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C)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8월 24일까지 전 세계에서 25만 3169명이 신종 플루에 감염돼 2572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돼 사망률이 1%에 이른다. 물론 이 수치는 확진 환자에 대한 비율이기 때문에 실제 사망률이 이렇게까지 높지는 않을 것이다. ECDC는 신종 플루의 사망률을 0.1~0.2%로 추정했다. 계절성 플루의 사망률은 0.01~0.1% 수준이다.

ECDC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례를 토대로 신종 플루에 취약한 세 집단을 발표했다. 먼저 만성질환자로 만성 호흡기질환자, 심혈관계 질환자, 대사질환자(특히 당뇨나 비만 환자)가 대표적이다. 두 번째 그룹이 임신부이고 세 번째가 어린이(특히 2살 미만)다. 그리고 사망자 가운데 젊은이나 건강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명시했다.

“계절성 플루의 경우 사망자의 90% 이상이 65세 이상의 노인입니다. 그런데 신종 플루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도 많이 죽고 있어요. 멕시코의 경우 사망자의 절반이 30~50대이고 미국도 3분의 1이나 이 연령대입니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계절성 플루와 달리 신종 플루는 젊고 건강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7월 ECDC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미국의 경우 5~24세가 확진환자의 58%, 입원환자의 34%를 차지했고 사망자 수도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 첫 사망자도 평소 건강한 56세 남성으로 태국을 여행하고 온 지 3일째인 8월 8일 발열 증세가 나타났고 하루 만에 상태가 악화돼 입원했으나 세균성 폐렴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1주일 만에 사망했다.

두 번째 사망자인 63세 여성도 평소 고혈압 같은 지병이 있었지만 노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 교수는 “두 사람은 폐렴과 폐부종으로 사망했고 다발성장기부전도 보였다”며 “이는 미국이나 멕시코의 사망 환자들과 비슷한 패턴”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플루 대유행을 대비해 대규모 백신 생산 체계를 마련하고 치료제를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김 교수는 그동안의 우려가 곧 현실로 나타날까 봐 전전긍긍이다. 지난 6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플루 경계를 6단계인 대유행으로 격상했음에도 우리나라는 국내 환자 수가 적고 증세가 심각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발생지인 멕시코와의 지리적 거리와 여름이라는 계절적 요인 때문에 확산이 늦춰진 것일 뿐 우리는 예외라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10월이나 11월에는 지금의 남미처럼 대유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는 7월 21일에야 국가 전염병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조정했다. 8월 24일 정부는 백신 700만 명분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예산 1084억 원을 투입키로 했다. 그러나 지금 다국적 제약회사가 만들 신종 플루 백신은 웃돈을 얹어줘도 구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치료제의 국내 재고량도 현재 타미플루 199만 명분, 리렌자 48만 명분으로 모두 247만 명분뿐인데, 이는 인구의 5%에 불과하다. 스위스가 100%, 영국과 프랑스가 50%, 일본이 25%의 치료제를 확보해둔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8월 24일 정부는 1250억 원의 예산을 긴급 배정해 총 1031만 명분(인구의 약 20%)의 치료제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예방보다 치료 쪽에 주력해야

한편 외국에서의 백신 확보가 사실상 어려워짐에 따라 국내 유일의 백신생산업체인 녹십자는 항원보강제(adjuvant)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항원보강제란 면역계가 백신을 외부에서 침입한 물질로 더 잘 인식하게 하기 위해 넣어주는 물질인데, 알루미늄 염 같은 무기물, 스쿠알렌 같은 유기분자, 때로는 세포막의 조각이 쓰이기도 한다.

백신 원료에 항원보강제를 넣으면 면역유발 능력이 2~4배 증가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양의 백신을 만드는 효과가 생긴다. 다만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추가적인 임상에 시간이 든다. 녹십자 이병건 개발본부장은 “생산량 1200만 도즈(두 차례에 나눠 접종하므로 600만 명분) 가운데 700만 도즈(원액)를 먼저 접종하고 남은 500만 도즈에 항원보강제를 넣어 2000만 도즈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든 2000만 도즈 중 700만 도즈는 원액을 받은 사람들(700만 명)이 2차 접종에 쓰고, 나머지 1300만 도즈는 650만 명이 쓸 수 있어 총 1350만 명이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다.“전염병은 물에 떨어진 잉크 방울과 같습니다. 초기에는 걷어내면 되지만 어느 정도 퍼지면 대응방식을 바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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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천병철 교수는 신종 플루 바이러스가 이미 지역사회에 퍼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환자로 확진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감염경로가 불명확한 ‘지역감염’으로분류된다. 결국 대규모로 발생할지도 모를 환자들을 적절히 치료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천 교수는 강조했다.

그렇다면 신종 플루는 언제쯤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까. 거의 매년 발생하는 계절성 플루의 경우 유행지역 인구의 약 10%가 증세를 보인다. 유행을 예측해 나온 백신을 맞는 사람도 있고 과거 비슷한 유형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항체가 형성된 사람도 있다. 감염돼도 증세가 없는 사람도 많다. 아무튼 인구의 다수가 항체를 갖고 있어야 플루는 수그러든다.

신종 플루의 경우 아직 백신도 없고 새로운 유형이기 때문에 현재 병원성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유행지역 인구의 약 30%가 독감을 앓고 난 뒤에야 잠잠해질 것이라고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는 예상하고 있다. 물론 백신을 맞아 바이러스 항체를 만드는 사람의 비율을 높이면 독감환자가 덜 발생하면서 신종 플루가 사라질 것이다. 백신을 확보할 때까지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가을학기에 휴교령을 내릴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는 이유다.

천 교수는 “플루 특성상 지금 시점에서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며 “그럼에도 개인의
위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의 주된 감염 경로인 손을 자주 씻고 사람
이 많이 모인 곳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불가피할 경우 되도록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좋다. 또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경우 손수건으로 입을 막아 주변 사람들에게 침이 튀지 않게 하는‘예의’도 필요하다.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어떤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될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의 보고서의 한 대목처럼 신종 플루에서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건 신종 플루의 예측불가능성뿐이므로.
신종 플루로 휘청거리는 아르헨티나



8월 24일 현재 신종 플루 사망자 수 439명으로 미국(522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인구 수가 4000만 명임을 고려하면 인구 3억 명인 미국에 비해 피해가 훨씬 심각하다. 남반구가 겨울로 들어갈 때 신종 플루가 퍼지기 시작한 요인도 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의 안이한 대처도 한몫했다는 뉴스가 ‘네이처’ 7월 16일자에 실렸다.

아르헨티나의 플루 전문가 위원회는 지난 6월 28일로 예정된 선거를 연기하라고 보건부에 권고했다. 당시 보건부의 그래시엘라 오카냐 장관은 각료회의에서 선거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튿날 사임했다. 위원회에 참여했던 호게 산 후안 위원은 “환기가 잘 안 되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신종 플루가 전파되기 쉽기 때문에 선거 연기를 요청했던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현재 아르헨티나 정부는 선거 강행으로 국민을 위험에 방치했다는 항목으로 고소된 상태다.

아르헨티나의 의사들은 “정부가 신종 플루가 오는 걸 알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며 “또 개인병원의 환자를 집계에서 빼기도 하며 의도적으로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영국 BBC 뉴스는 지난 8월 12일 ‘아르헨티나의 신종 플루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현지 취재를 한 뒤 방송했다.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은 “신종 플루 초기에 학교 폐쇄 조치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국민들에게 사태의 실상을 알리고 백신이 확보될 때까지는 확산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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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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