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튜닝의 끝은 순정이요, 아이스크림의 끝은 바닐라니라.”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뭐니뭐니해도 바닐라 맛이 최고다. 딸기, 초콜릿, 민트, 쿠키, 치즈 등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차고 넘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천연 바닐라 향료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의 고급스럽고 풍성한 향미는 먹어본 사람만 안단다. 프랑스의 한 유명 제과사는 산지가 서로 다른 천연 바닐라 향료를 조합해 최상의 맛을 내는 마카롱을 개발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호사를 누리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대 바닐라 산지인 마다가스카르의 바닐라 작황이 좋지 않아 천연 바닐라 향료의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향료가 값이 올라봤자라고? 모르는 소리다. 모든 디저트에 들어가는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가 좋은 향이라 인지하지 못했을 뿐, 사실 바닐라는 사프란 다음으로 비싼 향료다. 최상품 바닐라의 가격은 3년 전 1kg당 200달러(한화 약 23만 원)에서 최근 500달러(한화 약 59만 원)까지 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향사 중 한 명인 오재순 아로마라인 대표는 “천연 바닐라 값이 오르면 대체제로 인공 향료를 쓰기도 한다”며 “그러나 제품을 꾸준히 먹었던 소비자는 금방 알아채고 불만을 토로한다”고 말했다.
식품과학의 발달로 인공 향료도 많은데, 사람들은 왜 천연 바닐라 향료를 고집할까. 정말 천연 바닐라만의 특색이라도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혹시…, 허세?
인공 바닐라 향 세기가 천연 바닐라의 3배?
바닐라 향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천연(Natural)’, ‘천연과 동일한(Natural-identical)’, 그리고 ‘인공(Artificial)’이다.
천연 바닐라 향료는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난초과 식물(Vanilla planifolia)에서 나온다. 콩 꼬투리처럼 생긴 바닐라 풋열매는 향기가 없고,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수확해 수개월 동안 반복적으로 발효하고 건조해야만 우리가 아는 특유의 바닐라 향이 난다. 이걸 잘라서 에틸알코올과 물을 섞은 용액에 넣어 끓여 향료를 추출한다. 첫 추출 때 휘발성이 큰 향기물질을 먼저 뽑아내고, 그 뒤 혀에 작용하는 맛 물질인 탄수화물과 지질, 단백질 등을 추출한다. 박지영 롯데중앙연구소 향료팀 책임연구원은 “어떤 업체는 향 물질과 맛 물질을 한 번에 뽑아내기도 한다”며 “천연 바닐라의 풍성한 향미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뽑아내느냐가 각 향료업체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천연과 동일한 향료는 바닐라 향을 내는 주요 성분인 ‘바닐린’을 실험실에서 합성해 만든 것이다. 바닐린은 벤젠고리에 알데히드기, 수산기, 에테르기가 하나씩 붙은 복잡한 분자다. 1876년 화학자 페르디난드 티만과 빌헬름 하르만 박사가 처음 합성했다. 보통 식물 껍질을 이용한다. 식물의 세포벽을 이루는 리그닌은 방향성 알코올로 이뤄진 복잡한 고분자인데, 여기에 바닐린 구조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바닐린의 화학구조는 천연이나 합성이나 똑같기 때문에 예전에는 이렇게 만든 향료도 천연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완벽한 천연을 바라는 소비자의 요구가 반영돼 이제는 합성으로 분류한다.
마지막으로 인공 향료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화학적으로 합성해서 비슷한 향을 낸다. 에틸바닐린이 그 예다. 에틸바닐린은 식물 뿌리 껍질에서 추출한 사프롤을 이용해 이성질체화, 산화, 가열, 축합반응 등 몇 가지 화학반응을 거쳐 만든다. 오 대표는 “에틸바닐린은 바닐린과 비교해 향의 세기가 3배”라고 말했다.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뭐니뭐니해도 바닐라 맛이 최고다. 딸기, 초콜릿, 민트, 쿠키, 치즈 등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차고 넘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천연 바닐라 향료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의 고급스럽고 풍성한 향미는 먹어본 사람만 안단다. 프랑스의 한 유명 제과사는 산지가 서로 다른 천연 바닐라 향료를 조합해 최상의 맛을 내는 마카롱을 개발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호사를 누리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대 바닐라 산지인 마다가스카르의 바닐라 작황이 좋지 않아 천연 바닐라 향료의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향료가 값이 올라봤자라고? 모르는 소리다. 모든 디저트에 들어가는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가 좋은 향이라 인지하지 못했을 뿐, 사실 바닐라는 사프란 다음으로 비싼 향료다. 최상품 바닐라의 가격은 3년 전 1kg당 200달러(한화 약 23만 원)에서 최근 500달러(한화 약 59만 원)까지 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향사 중 한 명인 오재순 아로마라인 대표는 “천연 바닐라 값이 오르면 대체제로 인공 향료를 쓰기도 한다”며 “그러나 제품을 꾸준히 먹었던 소비자는 금방 알아채고 불만을 토로한다”고 말했다.
식품과학의 발달로 인공 향료도 많은데, 사람들은 왜 천연 바닐라 향료를 고집할까. 정말 천연 바닐라만의 특색이라도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혹시…, 허세?
인공 바닐라 향 세기가 천연 바닐라의 3배?
바닐라 향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천연(Natural)’, ‘천연과 동일한(Natural-identical)’, 그리고 ‘인공(Artificial)’이다.
천연 바닐라 향료는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난초과 식물(Vanilla planifolia)에서 나온다. 콩 꼬투리처럼 생긴 바닐라 풋열매는 향기가 없고,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수확해 수개월 동안 반복적으로 발효하고 건조해야만 우리가 아는 특유의 바닐라 향이 난다. 이걸 잘라서 에틸알코올과 물을 섞은 용액에 넣어 끓여 향료를 추출한다. 첫 추출 때 휘발성이 큰 향기물질을 먼저 뽑아내고, 그 뒤 혀에 작용하는 맛 물질인 탄수화물과 지질, 단백질 등을 추출한다. 박지영 롯데중앙연구소 향료팀 책임연구원은 “어떤 업체는 향 물질과 맛 물질을 한 번에 뽑아내기도 한다”며 “천연 바닐라의 풍성한 향미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뽑아내느냐가 각 향료업체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천연과 동일한 향료는 바닐라 향을 내는 주요 성분인 ‘바닐린’을 실험실에서 합성해 만든 것이다. 바닐린은 벤젠고리에 알데히드기, 수산기, 에테르기가 하나씩 붙은 복잡한 분자다. 1876년 화학자 페르디난드 티만과 빌헬름 하르만 박사가 처음 합성했다. 보통 식물 껍질을 이용한다. 식물의 세포벽을 이루는 리그닌은 방향성 알코올로 이뤄진 복잡한 고분자인데, 여기에 바닐린 구조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바닐린의 화학구조는 천연이나 합성이나 똑같기 때문에 예전에는 이렇게 만든 향료도 천연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완벽한 천연을 바라는 소비자의 요구가 반영돼 이제는 합성으로 분류한다.
마지막으로 인공 향료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화학적으로 합성해서 비슷한 향을 낸다. 에틸바닐린이 그 예다. 에틸바닐린은 식물 뿌리 껍질에서 추출한 사프롤을 이용해 이성질체화, 산화, 가열, 축합반응 등 몇 가지 화학반응을 거쳐 만든다. 오 대표는 “에틸바닐린은 바닐린과 비교해 향의 세기가 3배”라고 말했다.

발효된 ‘검은 황금’, 그 향은 흉내내기 어렵다
여기서 잠깐, 인공 바닐린의 향이 더 강하다면 굳이 비싼 천연 향료를 쓸 이유가 있을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은 인공 향료가 천연 향료보다 향의 세기나 지속성 등에서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닐라는 예외에요. 인공 향료의 장점을 뛰어넘는, 천연 바닐라 향료만의 장점이 있죠.”
오 대표가 고무줄로 묶은 천연 바닐라 열매 한 다발을 내밀었다. 콩 꼬투리 같은 초록색 열매가 아니었다. 전처리 과정을 이미 거쳐, 빼빼 마르고 진한 초콜릿 색깔을 띠었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아이스크림이나 각종 과자에서 나는 단내가 날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더 시큼하고 고린 냄새가 났다. 코코아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최상품은 좀 더 고린 냄새가 납니다. 발효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죠. 코코아, 초콜릿, 홍차 같은 ‘검은’ 식품들의 특징입니다. 이런 발효 식품은 발효 과정에서 성분이 무척 다양해집니다. 그 성분들이 섞여서 내는 특유의 풍미를 인공적으로 흉내 내기가 어려워요.”
심지어 산지에 따라서도 향미가 다르다. 지역마다 강우량이나 일조량 등 기후 조건과 토양 성분이 달라서 바닐라 빈의 성분과 조성도 다르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각 지역의 발효기술도 영향을 준다”며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재배되는 바닐라 중 최상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가 다양한 향료의 성분을 분석한 그래프를 보여줬다. 다른 향을 분석한 그래프는 비교적 단순했는데, 바닐라 향의 그래프는 한눈에 보기에도 몹시 복잡했다. 오 대표는 “함량이 적은 성분은 일일이 합성해 섞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품에 따라서는 인공이나, 천연과 동일한 합성 향료가 더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급스럽고 자연스러운 향미가 중요한 식품에는 천연 바닐라 향료만한 것이 없다.
여기서 잠깐, 인공 바닐린의 향이 더 강하다면 굳이 비싼 천연 향료를 쓸 이유가 있을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은 인공 향료가 천연 향료보다 향의 세기나 지속성 등에서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닐라는 예외에요. 인공 향료의 장점을 뛰어넘는, 천연 바닐라 향료만의 장점이 있죠.”
오 대표가 고무줄로 묶은 천연 바닐라 열매 한 다발을 내밀었다. 콩 꼬투리 같은 초록색 열매가 아니었다. 전처리 과정을 이미 거쳐, 빼빼 마르고 진한 초콜릿 색깔을 띠었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아이스크림이나 각종 과자에서 나는 단내가 날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더 시큼하고 고린 냄새가 났다. 코코아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최상품은 좀 더 고린 냄새가 납니다. 발효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죠. 코코아, 초콜릿, 홍차 같은 ‘검은’ 식품들의 특징입니다. 이런 발효 식품은 발효 과정에서 성분이 무척 다양해집니다. 그 성분들이 섞여서 내는 특유의 풍미를 인공적으로 흉내 내기가 어려워요.”
심지어 산지에 따라서도 향미가 다르다. 지역마다 강우량이나 일조량 등 기후 조건과 토양 성분이 달라서 바닐라 빈의 성분과 조성도 다르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각 지역의 발효기술도 영향을 준다”며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재배되는 바닐라 중 최상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가 다양한 향료의 성분을 분석한 그래프를 보여줬다. 다른 향을 분석한 그래프는 비교적 단순했는데, 바닐라 향의 그래프는 한눈에 보기에도 몹시 복잡했다. 오 대표는 “함량이 적은 성분은 일일이 합성해 섞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품에 따라서는 인공이나, 천연과 동일한 합성 향료가 더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급스럽고 자연스러운 향미가 중요한 식품에는 천연 바닐라 향료만한 것이 없다.

바닐라 향 대량 생산 가능할까
작황이 안정세로 들어선다 해도, 천연 바닐라 향료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구 자체가 느는 데다, 완벽한 천연만을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제과 업체들은 인공 바닐라 향료를 대량생산할 방법을 찾으면서도,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대응해 천연 바닐라 향료의 고급스럽고 풍성한 향미를 놓치지 않을 방법을 고심하는 중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식물학자 버거 몰러 교수팀은 2014년 녹색 바닐라 열매 안의 특정 세포가 효소로 작용해 자유 페룰산을 바닐린 글루코사이드로 바꾸면서 바닐라 향이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DOI:10.1038/ncomms5037).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변형 효모를 이용해 바닐린을 생산할 수 있었다. 식물유전학자들은 이 같은 연구를 통해 바닐린을 더 많이 만드는 새로운 바닐라 난초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미생물이 신진대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향을 모아 향료를 만드는 ‘생물전환법’을 연구하고 있다. 바닐라 향도 포함된다. 생물전환법으로 만든 향료는 천연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 최고의 향신료 바닐라, 전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디저트 맛으로 자리잡은 바닐라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즐길 수 있을까. 천연 바닐라 향료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다면, 그 안에 담긴 노고와 그에 비례하는 고급스러운 풍미에 좀 더 집중해 봐야겠다.
작황이 안정세로 들어선다 해도, 천연 바닐라 향료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구 자체가 느는 데다, 완벽한 천연만을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제과 업체들은 인공 바닐라 향료를 대량생산할 방법을 찾으면서도,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대응해 천연 바닐라 향료의 고급스럽고 풍성한 향미를 놓치지 않을 방법을 고심하는 중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식물학자 버거 몰러 교수팀은 2014년 녹색 바닐라 열매 안의 특정 세포가 효소로 작용해 자유 페룰산을 바닐린 글루코사이드로 바꾸면서 바닐라 향이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DOI:10.1038/ncomms5037).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변형 효모를 이용해 바닐린을 생산할 수 있었다. 식물유전학자들은 이 같은 연구를 통해 바닐린을 더 많이 만드는 새로운 바닐라 난초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미생물이 신진대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향을 모아 향료를 만드는 ‘생물전환법’을 연구하고 있다. 바닐라 향도 포함된다. 생물전환법으로 만든 향료는 천연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 최고의 향신료 바닐라, 전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디저트 맛으로 자리잡은 바닐라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즐길 수 있을까. 천연 바닐라 향료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다면, 그 안에 담긴 노고와 그에 비례하는 고급스러운 풍미에 좀 더 집중해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