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에서 금속시대로 도약하면서 인류의 문명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리고 그 중심에 금과 은, 구리, 철, 주석, 납, 수은이 있었다. 이 금속들의 특징은 자연원소 상태로 존재해 쉽게 발견할 수 있거나, 비교적 추출하기 쉽다는 점이다. 금은 노란색으로 쉽게 눈에 띄고, 물렁해서 가공하기도 용이하다. 구리 역시 자연 상태로 많이 존재하고, 비교적 다루기 쉬우면서 금보다는 훨씬 단단해서 도구나 무기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철의 경우, 우주에서 온 운석의 도움이 컸다. 지표면 위에서 자연철을 찾기는 어렵지만 운석으로 떨어진 철은 상대적으로 찾기 쉬웠다. 다른 금속 재료에 비해 탁월한 강도와 가공성을 갖고 있어 세계를 재패한 신무기의 소재가 됐다.
금속의 수요가 점점 늘어감에 따라,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금속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선조들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 광물에서 필요한 금속을 추출해 내는 제련기술을 익혔다. 또 종류가 다른 금속을 섞어 더 뛰어난 성능으로 변신시키는 마법 같은 합금기술을 개발해 문명 발전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제한된 원소를 섞어 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재료가 필요했고, 탐구 끝에 현대문명의 근간이 되는 철과 알루미늄, 구리, 아연 등의 '현대 금속'이 등장했다. 철은 합금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더 다양한 범위로 확대 사용되면서 현대 문명의 대들보 같은 존재게 됐다. 알루미늄은 금속 원소 중 지각에서 가장 많은 비중(8.2%)을 차지하지만, 경제적으로 추출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제련법이 개발되면서 주방에서 항공기까지 철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금속이 됐다.
인류의 새로운 지평을 연 티타늄의 등장
원자번호 22번인 티타늄(Ti)은 1791년 영국의 성공회 목사이자 아마추어 광물학자인 윌리엄 그레고르가 자신의 교구인 메나칸 계곡의 검은 모래 속에서 처음으로 찾아냈다. 지역 이름을 따서 메나카이트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와 별개로 1795년 독일의 분석화학자인 마르틴 클라프로트가 금홍석(위 사진)에서 이 원소를 발견하고 거인신족 '티탄'의 이름을 따서 티타늄이라고 불렀다.
티타늄은 지각에서 아홉 번째로 많은 원소(5600ppm, ppm은 1kg 속에 1mg 들어있다는 뜻)다. 하지만 티타늄은 광물에서 추출하기가 어려워 비교적 최근 인류사에 등장했다. 1964년 룩셈부르크의 금속학자 월리엄 크롤이 새로운 제련법을 발명한 뒤에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의학과 항공우주 등 다방면에 티타늄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초음속 항공기나 우주 발사체, 우주선 등은 가벼우면서 고열에 견딜 수 있는 강한 소재가 필수적이다. 티타늄은 밀도가 4.5g/㎤로 7.8g/㎤인 강철에 비해 낮으면서도 강도는 높다. 철보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하다는 뜻이다. 또 녹는점이 1660℃로 상당히 높고, 좀처럼 부식되지 않기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고열을 견뎌야 하는 항공우주 분야에 안성맞춤인 소재다.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무해하기 때문에 거부반응으로 소재 선택에 어려움을 겪던 인공관절 등 생명의료분야에도 많은 도움을 주게 됐다.
필자가 늘 착용하는 안경태도 티타늄 소재로 만들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안경에 비해 무척 가볍고, 착용감과 내구성도 뛰어나다. 골프채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헤드가 티타늄으로 된 드라이버는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골프 마니아들의 필수품이 됐다. 가볍고 튼튼한 티타늄 프레임으로 만든 자전거 역시 인기가 높다. 티타늄 화합물인 이산화티타늄(TiO2)은 페인트의 안료와 자외선 차단제 등에 널리 쓰인다.
인간에게 처음 불을 건네주고 가혹한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와, 신들의 전쟁에서 패배해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은 아들 라스도 티탄족이다. 그들의 이름은 지금까지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