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제철은 「21세기형 제철소」로 자랑할 수 있읍니다
철은 국력의 척도라고 일컬어져 왔다.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인 영국을 지탱한 것이 철강산업이었으며 세계를 주름잡는 일본의 자동차산업 뒤에도 철강산업이 있었다. 사실 기계 조선 자동차 등 중공업과 도로 상하수도 건설 등 기간산업에 철강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다.
지난 5월7일 광양제철소 1기설비가 준공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9위의 철강생산국 대열에 끼게 되었다. 선진국에선 이미 사양화(斜陽化)의 길을 걷고 있는 철강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철강협회의 김학기(金鶴起·56)부회장을 만나 한국 철강산업계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알아보았다.
-광양제철소의 1단계 공사완료로 우리나라의 연간 조강(粗鋼)생산능력이 1천7백50만t으로 늘어났읍니다. 우리보다 앞선 철강 선진국의 실태는 어떻습니까?
"철강 생산량으로 볼 때 세계 최대의 철강국은 소련이고 그 뒤를 일본 미국 중공 서독이 따르고 있지요. 개별 기업으론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미국의 '유에스 스틸'이 가장 큽니다. 포철도 포항과 광양의 제철소를 합치면 자유세계 5위의 제철소가 됩니다.
세계 철강업계가 설비의 확장은 커녕 축소를 서두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창 때 1억 2, 3천만t을 생산하던 일본도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엔고(円高)에 따른 경쟁률 저하가 겹친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생산량이 1억t을 밑돌았읍니다."
-선진국의 철강산업이 고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우선 철강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읍니다. 어느 정도의 GNP 수준에 도달하면 항만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어느 정도 완료하게 됩니다. 철강 수요의 30~40%를 차지하는 토목·건축공사가 줄어드니 자연히 철강수요도 떨어지게 되지요."
김 부회장은 오일쇼크 이후의 산업구조 변화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고 에너지가 덜드는 쪽으로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항공기 자동차의 예에서도 그런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서구와 미국의 철강공업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읍니다. 오래 전에 완성한 설비가 이미 노후화했는데 이것을 새로 바꾸자니 건설비가 엄청나게 들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요. 조강 1t을 생산하는데 드는 건설비가 광양제철소의 경우 6백37달러였는데 미국에서는 1천달러가 넘습니다. 그래서 매년 2~3천만t씩 설비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지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런 사양화의 우려가 없읍니까?
"적어도 우리 세대에서는 그런 사태가 닥칠 것같지 않습니다. 경제성장이 지속됨에 따라 철강의 소비증가율이 매년 7~8%에 달하지요. 이런 예는 세계에서도 드뭅니다. 국민 1인당 철강소비량도 작년에 2백76kg이었는데 선진국 수준인 5백kg에는 크게 모자랍니다. 게다가 상하수도 설비율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우리의 사회간접자본의 투자수준이 아직 낮아 철강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겁니다."
다른 장치산업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제철소와 같이 거대한 설비를 필요로 하는 산업에서는 뒤늦게 이 분야에 뛰어든 개발도상국이 최신의 설비를 갖춰 노후시설을 안고 있는 선진국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광양제철소가 좋은 예이다.
연 인원 7백20만명, 1만6천대의 불도저, 6만대의 크레인 등이 동원돼 건설된 광양제철소는 최신예 기능을 두루 갖춘 '21세기형 제철소'로 불리우고 있다. 각 공정별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설비와 기술을 선택적으로 도입, 최신 기술을 골고루 채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로(高爐)에서 압연(壓延)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라인이 한 지붕밑에서 이뤄지는 연속 자동공정체제가 마련돼 있다. 이같은 설비로 고로에서 쇳물이 나오고부터 압연공장에서 핫코일이 생산되기까지 보통 4~5일 걸리던 것을 8시간 30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개발도상국은 이러한 최신설비 외에도 인건비가 싸고 이에 따라 제철소 건설비가 싸게 먹혀 제품의 원가를 낮출 수 있는 잇점을 가지고 있다.
"포항제철에서의 인건비는 시간당 2.96달러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제철소는 시간당 11.53달러, 미국의 경우는 무려 22.53달러나 돼 경쟁상대가 되지 않지요. 또 철강 1t을 만드는데 드는 노동시간을 비교해 보아도 포항제철이 2.6시간, 미국과 일본이 6.5시간입니다. 그만큼 설비가 현대적이고 근로자가 근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뒤늦게 철강산업에 뛰어든 중진국들 간의 각축이 예상되는데, 우리나라의 유력한 경쟁상대국은 어느 나라입니까?
"개발도상국중 우리나라와 함께 철강으로 성공한 나라로 꼽히는 대만과 브라질이겠지요. 중공은 철강 생산량이 5천만t 정도로 규모는 크지만 낙후돼 있어 별 문제가 안됩니다."
철강산업이 기간산업으로서 중요하다는 사실은 최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신소재에 의해 가리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장차 플라스틱과 고분자 등의 신소재가 철강을 완전히 대체하는 날이 올것인지 궁금하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적어도 구조재로서 철강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미래에는 없을 것입니다. 철은 지구표면에서 산소 규소 알루미늄 다음으로 흔한 원소입니다. 금속 가운데 철만큼 값싸게 생산해 그만한 강도를 낼 수 있는 것은 없지요. 단위 강도(強度)당의 비용이 다른 금속에 비해 싸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기능적인 면에서 철은 다른 소재와 경합을 벌일 겁니다. 따라서 철강분야에서도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발맞춰 새로운 제품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예컨대 철의 가장 큰 약점인 녹스는 것을 방지하는 내식성 철강재가 개발되고 있고, 해양개발이나 혹심한 기후조건의 극지에서 쓰일 수 있는 철강재가 등장하고 있읍니다. 새로운 수요에 따른 제품의 다양화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읍니다."
80년대에 들어와 장기침체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철강업계는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노후설비의 통폐합, 제품의 고급화 그리고 비철강분야로의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한편 제철 기술에서 한 발 앞선 일본은 에너지 절감, 품질의 다양화와 신제품 개발 등의 목표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술수준과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다른 산업기술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시설을 도입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 수준급이지만 기반이 되는 기초기술은 아직 뒤떨어져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 기존시설을 최대한 이용해 제품고급화 및 고급강을 개발해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읍니다.
앞으로 현재의 보통강 위주의 생산체제에서 고급강 위주로 전환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예컨대 전체 조강 생산량에서 특수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3% 수준이지만 선진국 수준인 15%로 향상되어야 하겠지요. 특수강 분야는 산업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뒤늦게 출발했지만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겁니다."
-빈약한 국내 철강자원에 대한 대책은 마련돼 있는지요?
"철강산업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원료탄(석탄)을 모두 해외에 의존하고 있지만 장기공급계약이 체결돼 있어 걱정할 것은 못됩니다. 철광석은 주로 호주 인도 브라질 페루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고 원료탄은 미국 호주 캐나다에서 도입하고 있읍니다."
-외국의 예를 볼 때 대규모 제철소는 종종 큰 공해문제를 유발했읍니다만…
"제철소는 워낙 많은 양의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폐기물의 양도 커 '제철산업은 공해산업'이란 오명을 듣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공해문제에 무척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지요. 공해대책비가 전체 설비투자비의 10%는 될 겁니다."
김부회장은 포철내부에 공해로 죽은 나무가 없고 또 제철소의 폐수로 뱀장어 양식을 하고 있음을 들어 제철소가 공해를 일으키지 않음을 역설했다. 그러나 아무리 배출허용기준 이내의 오염물이라도 폐기물의 절대량이 많을 경우 전체 오염물의 양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선진국에서 제철소의 공해방지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철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지않게(?) 시종 잔잔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김부회장은 1954년 서울공대 금속과를 졸업했다. 그후 인천중공업 포항제철 등 제철현장에서 일해오다 80년부터 철강협회의 상근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동시에 한국금속학회의 부회장직도 만6년째 맡고 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김부회장은 기술개발능력의 육성과 설비투자의 계속을 들었다.
"선진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것은 설비개선투자를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