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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의 새로운 보고 탯줄과 태반

윤리문제 없는 인체 만능세포

지금까지 탯줄과 태반은 아기가 태어난 후 감염성 폐기물로 취급돼 소각되거나 땅에 묻혔다. 하지만 여기에 난치병을 고칠 수 있는 귀중한 생명재료와 21세기 생명공학을 이끌 소중한 재료가 들어있다면…. 첨단 생명공학으로 다시 이용되는 탯줄과 태반의 과학을 살펴보자.


서울 시내의 한 산부인과. 숨이 넘어갈 듯한 산모의 비명과 고통 속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엄숙한 순간,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처음 맞이하는 것은 다름아닌 간호사의 따끔한 볼기짝이다. “으왕”하는 울음소리도 잠깐, 아기는 이내 엄마와의 유일한 연결끈이었던 탯줄을 잘리고 신생아실로 옮겨진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아는 분만실의 모습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산모는 ‘후산’을 위해 10-15분 가량을 더 누워있어야 한다. 10개월 동안 아기와 엄마를 연결했던 탯줄과 태반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이때 나온 탯줄과 태반은 위생 봉지에 담겨 냉동고에 보관된다. 그러면 수거계약을 맺고 있는 적출물 업체가 냉동차로 수거해간다. 적출물 업체가 병원측으로부터 받는 비용은 탯줄과 태반 한개당 5백-1천원. 탯줄을 화장장에서 소각처리할 경우와 거의 비슷한 비용이다. 감염성 폐기물 처리에 관한 법령에 따르면 탯줄은 다른 인체 조직의 일부와 마찬가지로 감염성 폐기물로 분류된다. 그래서 화장장에서 소각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버려지는 탯줄에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귀중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면 어떨까. 최근 탯줄의 혈액 속에 소중한 ‘조혈모세포’가 다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탯줄&태반



골수이식의 새로운 희망

지금까지 조혈모세포는 골수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조혈모세포(hematopoetic stem cell)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혈액세포를 만드는 모세포다. 골수의 이상으로 조혈모세포가 혈액세포를 생산하지 못하는 난치성 혈액질환자와 재생불량성 빈혈환자의 경우, 유일한 치료수단은 골수이식뿐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탯줄에도 다량의 조혈모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골수이식의 경우는 그동안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환자에게 꼭 맞는 골수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골수이식을 위해서는 ‘조직적합성항원’(HLA, Human Leukocyte Antigen)이 일치해야 한다. 타인의 골수를 이식할 경우, 사람의 몸은 이를 외부의 적으로 간주해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면역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조직적합성항원이다. 적이 아니라 ‘자기편’이라는 일종의 표식이다.

그런데 조직적합성항원은 사람의 유전자가 조금씩 다르듯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가장 이상적인 골수는 유전자 구성이 비슷한 형제나 친척 등 혈연의 골수다. 유전자 구성이 비슷하면 조직적합성항원도 어느 정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 혈연의 골수를 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골수를 이용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조직적합성 항원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찾기다.

또한 골수를 필요로 하는 환자 수에 비해 제공되는 골수는 너무 적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신의 골수를 제공하겠다는 자원자는 약 4만명으로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골수공여 의사를 밝힌 자원자의 경우에도 정신적, 물리적 부담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실제 골수기증을 요청했을 때 거부율이 70%에 이른다. 실제로 국내의 경우를 보면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 중 약 40-50% 정도만이 형제 또는 타인의 골수를 제공받고 있으며, 나머지 환자들은 적합한 골수공여자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실정이다.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하면 태반과 탯줄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수정란이 분열을 계속하 는 동안 탯줄과 태반도 분열을 통해 자신의 모 습을 만든다.



줄기세포 함께 이식하면 성공률 증가

탯줄혈액의 조혈모세포를 이용한 이식은 어떨까. 일반적인 골수이식의 경우 조직적합성 유전인자 6개가 모두 일치해야 수술의 성공률이 높다. 하지만 탯줄혈액의 조혈모세포는 3개의 유전인자만 맞으면 실제 이식이 가능할 뿐더러 이식수술 후 면역학적인 부작용이 훨씬 적다. 탯줄의 조혈모세포는 골수의 그것에 비해 미성숙한 원시세포 단계이기 때문이다.

아주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현수 교수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의 혈액세포를 세포성장 단계 중 완성단계인 10으로 본다면 골수의 조혈모세포는 5 정도이고 탯줄혈액의 조혈모세포는 3 정도”라고 말한다. 즉 탯줄의 조혈모세포는 조직적합성 유전인자가 모두 일치하지 않더라도 환자의 몸에 이식된 후 골수 내 환경에 맞게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김교수팀은 지난해 11월, 탯줄혈액 이식수술의 성공률을 높이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김교수는 골수 속의 줄기세포(stem cell)가 조혈모세포를 잘 자라게 하는 미세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 착안, 혈액질환자에게 조혈모세포만을 이식하는 대신 조혈모세포와 줄기세포를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이런 방법으로 수술을 시행한 결과, 조직적합성이 틀렸던 환자도 이식수술 후 1년이 경과했음에도 재발 또는 합병증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김교수는 “조직적합성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골수이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면역반응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며 “새로운 이식법은 조직적합성 불일치 환자나 고령의 환자에게 보다 안전한 치료방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줄기세포란 무엇일까. 그리고 김교수는 줄기세포를 어디서 구했을까.
 

최근 탯줄혈액 내의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가 주목받고 있 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는 윤리적, 사회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적혈구 어머니의 어머니 격

줄기세포란 여러차례 반복해서 분열이 가능하고,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여러 조직으로 분열할 수 있는 분화능력을 가진 세포를 말한다. 이런 여러가지 특성 중에서도 조직이나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 때문에 줄기세포는 질병치료나 장기이식을 위한 연구로 과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후산을 통해 나온 탯줄에는 약 70-1백mL 정도의 혈액이 들어있다. 이 탯줄혈액 속에는 조혈모세포뿐 아니라 생명공학계의 가장 큰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줄기세포도 들어있다. 김교수 팀은 탯줄혈액에서 발견되는 조혈모세포뿐 아니라 줄기세포도 함께 이용, 탯줄혈액 이식수술의 성공률을 높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 조혈모세포와 줄기세포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여러차례 반복해서 분열이 가능하고, 스스로 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두세포는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세포발생학적으로 엄밀히 말한다면 이 둘은 서로 다르다. 특히 탯줄혈액에서 발견되는 줄기세포를 ‘중간엽 줄기세포’(mesenchymal stem cell)라고 부르는데, 나중에 이로부터 분화되는 세포 중의 하나가 조혈모세포다. 조혈모세포가 적혈구의 어머니 격이라면, 중간엽 줄기세포는 조혈모세포의 어머니 격인 셈이다.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세포가 발생하면, 세포덩어리는 점차 분화를 계속해 한 조직의 특정세포로 발생한다. 이때 세포를 둘러싼 주위 환경이 매우 중요한데, 주변 여건에 따라 신경세포가 되기도 하고 혈액세포도 되기 때문이다. 적혈구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면 좀더 쉽게 이해된다. 먼저 새롭게 생성된 세포는 분화과정을 거쳐 중간엽 줄기세포 단계로 변한다. 이후 특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조혈모세포가 되고, 계속되는 분화를 통해 적혈구로 변하는 것이다.

탯줄혈액 속에는 이런 중간엽 줄기세포와 조혈모세포가 동시에 존재한다. 김 교수팀이 이식수술에 이용한 줄기세포는 바로 중간엽 줄기세포인 것이다.
 

적혈구 어머니의 어머니 격



생물학계의 ‘태양중심설’

최근까지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은 주로 수정 후 며칠이 지난 ‘배아’를 대상으로 맞춰져 있었다. 예를 들어 불임치료를 위해 생산된 잉여배아를 사용하는 방법과 수정을 거치지 않고 복제술을 이용해 배아를 얻는 방법으로 줄기세포를 주로 구했다. 모두 배아에서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는 그것을 얻는 방법으로 인해 윤리적, 사회적 논쟁을 빚어왔다. 배아 역시 엄연한 생명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1년 7월호 특별기획 기사 ‘만능 줄기세포 어디서 얻어야 하나’를 참조).

이처럼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그 무궁무진한 이용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사회적 문제로 인해 실현되기 쉽지 않다. 새로운 대안은 배아가 아닌 성체에서 제시되고 있다. 골수를 비롯한 신체 여러 곳에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주최한 ‘인간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토론회에서 윤리적 문제가 많은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탯줄혈액에도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탯줄혈액은 그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간엽 줄기세포는 성인의 골수나 조직 말단에서 발견되는 성체줄기세포와는 어떻게 다를까. 성체줄기세포를 배아에서 발견되는 배아줄기세포와 대비되는 의미로 쓴다면, 중간엽 줄기세포도 일종의 성체줄기세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조금 다른 성질을 갖는다.

김영진 라이프코드 의학연구소장은 “중간엽 줄기세포의 특징은 아직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성체줄기세포보다 특정 조직으로의 분화능력이 좀더 우수하다. 이같은 결과로 유추해 볼 때 중간엽 줄기세포는 성체줄기세포보다 조금 더 이전 단계의 세포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같은 특징으로 인해 많은 과학자가 탯줄혈액을 주목하고 있다. 골수이식을 대체할 수 있는 조혈모세포도 중요하지만 줄기세포의 새로운 발견장소로서의 가치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탯줄의 줄기세포가 성체줄기세포의 일종이라는 점을 들어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연구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세포발생 단계상 더 후대의 것이므로 특정조직으로 분화시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탯줄 줄기세포의 이런 단점에 대해 김 소장은 “물론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보고되는 연구결과를 보면 단정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는 돌고 있다’는 날벼락 같은 주장을 폈지만, 최근 생물학에서도 예전에 정설로 여겨졌던 개념들이 무너지고 있다. 속속 발표되는 탯줄혈액을 이용한 연구결과를 보면 생명공학에서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비견될 만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생물학계의 태양중심설’은 줄기세포에 의한 세포분화와 장기 발생에 관한 개념 파괴다. 지금도 생물학 교과서에는 수정란이 배반포기 단계를 거쳐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 등의 각 배엽이 분화해 장기와 조직이 생기는데, 한 배엽의 세포가 다른 배엽의 세포로 분화될 수 없으며 또 일단 특정 세포로 운명이 결정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스웨덴의 조나스 프리젠 박사팀은 이같이 고정된 세포의 운명에 관한 패러다임에 정면 도전했다. 연구팀은 어른 쥐의 뇌에서 다양한 신경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를 분리하고 이 세포를 다른 쥐의 배반포에 주입해 자궁에 착상시켰다. 교과서대로라면 주입된 성체줄기세포는 장차 태어날 쥐의 뇌나 신경계통으로만 변해야 옳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세포는 신경계, 피부 등 외배엽 장기뿐 아니라 내배엽, 중배엽 장기까지 형성했다. 성체줄기세포의 고정된 운명을 뒤엎는 결론이었다. 학계에서는 주입한 세포들에 또다른 세포가 섞여 있었을 것이라며 이 증거를 반박했으나 2001년 미국 예일대의 다이언 그라우즈 박사는 이 논란에 못을 박았다.

그녀는 쥐의 골수에서 뽑아낸 줄기세포를 염색한 뒤 이를 임신한 어미 쥐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태어난 쥐의 몸에서 염색된 세포의 행방을 추적했다. 이 결과 이 세포들은 신체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장기로 분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인에게서 발견되는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이 제한돼 있다는 전통적 관념을 뒤엎는 거역할 수 없는 반증이었다.

이렇듯 줄기세포 분화에 있어서의 ‘지구중심설’이 파괴됨에 따라 줄기세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개념 또한 ‘코페르니쿠스적 변환’이 불가피하게 됐다.

서울대 수의대 강경선 교수는 “지금까지는 난치병 치료를 위해 배아줄기세포만이 다양한 종류의 조직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창고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과학과 윤리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성체 줄기세포에 대한 고정관념의 파괴는 이 둘의 갈등을 풀 기막힌 열쇠”라고 말한다.

그런데 줄기세포는 탯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태아를 둘러싼 태반에서도 중간엽 줄기세포가 발견된다.

알 수 없는 생명의 신비

‘애기 방석’으로도 불리는 태반은 탯줄을 통해 아기의 이산화탄소와 엄마의 산소를 교환해주고, 아기의 노폐물과 엄마의 영양분을 교환해주며 해독작용을 한다. 즉 태반은 태아를 대신해 소화기나 폐, 신장, 간의 작용을 하는 셈이다.

탯줄과 태반에 조혈모세포를 비롯한 줄기세포가 풍부한 이유는 뭘까. 탯줄과 태반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해답을 알 수 있다.

수정란이 산모의 자궁벽에 착상하면 탯줄과 태반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자궁내막의 세포들이 급격한 분열을 통해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수정란이 계속 분열하는 동안 탯줄과 태반도 분열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임신 4개월 정도면 탯줄과 태반이 완성되는데, 이때 배아의 세포는 각각 다른 조직으로의 초기분화를 마치고 사람의 모습을 갖춘다. 산모가 아이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도 이때다.

이처럼 탯줄과 태반은 세포분화가 왕성히 일어나는 분열조직이기 때문에 줄기세포가 많다. 주어진 기간 내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세포분열이 필요하고, 이때 만들어진 줄기세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태반은 줄기세포뿐 아니라 각종 호르몬과 다양한 생체물질로 가득하다.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은 태반에서 무언가 신비스런 물질을 찾아내고자 했다.

카를로스 미야레스 캬오 박사팀이 주축이 된 쿠바의 국립생명과학연구소 태반요법센터에서 20여년 간 사람 태반 연구를 통해 개발된 화장품은 주름 개선과 뛰어난 피부재생, 미백 효과로 세계각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태반화장품은 최근 국내에도 수입, 시판됨에 따라 많은 여성의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일부 과학자들이 사람 태반에서 발견되는 특정 사이토카인이 피부 재생과 노화 방지에 유익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한편 태반은 성장호르몬 등 각종 호르몬을 생산하는 곳으로 내분비계의 축소판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태반에 대한 여러가지 과학적 실험이 행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탯줄혈액과 더불어 무심코 버려졌던 태반도 이제는 생명자원으로 인식될 때다.


남겨진 난제들

탯줄혈액은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 21세기 생명공학의 보고로 여겨지고 있다. 탯줄혈액을 이용하면 골수이식의 고질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의 난제인 윤리논쟁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탯줄혈액이 우리에게 생명공학연구의 별천지를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탯줄혈액의 문제점은 우선 탯줄 하나에서 추출할 수 있는 조혈모세포의 수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한번에 채취할 수 있는 탯줄혈액은 평균 70-80mL인데, 이 중 조혈모세포 수는 2억-3억개 정도다. 이 양은 체중 40-50kg 이하인 소아환자들에게 이식할 수 있는 양이다. 성인에게 이식하기 위해서는 최소 4억개 정도의 조혈모세포가 필요하다.

현재 탯줄혈액을 이용한 이식수술은 두가지 이상의 조혈모세포를 혼합해 이식하는 방법을 쓴다. 이 방법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가지 조혈모세포만 이식하는 경우에 비해서는 효과가 떨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탯줄혈액 조혈모세포를 체외에서 대량으로 증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또한 탯줄혈액에서 발견되는 중간엽 줄기세포도 그 수가 매우 적다. 많은 수의 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는 골수나 배아가 훨씬 유리하다. 중간엽 줄기세포 연구가 해결해야 할 난제중 하나다.

더욱이 중간엽 줄기세포는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되는 조건을 찾기 매우 힘들다. 포천중문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의 정형민 소장은 “탯줄혈액을 이용해 근육세포나 신경세포를 만든 연구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연구는 수년 간에 걸친 시행착오의 결과였다. 탯줄의 중간엽 줄기세포는 아직까지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그 연구과정이 힘들다. 체외에서 증식시키기도 힘들고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되는 조건을 찾는 것도 까다롭다”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배아줄기세포는 체외에서 무한대로 증식시킬 수 있고, 많은 종류의 세포로 보다 쉽게 배양할 수 있다. 많은 생명공학자들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월 15일 과학기술부는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으로 총 9개 과제를 선정해 발표하고 사업단 공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 중에는 ‘세포응용연구’ 과제가 포함됐는데, 실제 내용은 ‘줄기세포연구’다. 과학기술부는 이 줄기세포 연구분야에 올해 90억원을 포함해 10년 간 총 1천억원을 투자할 것이며, 6월까지 사업단을 최종 선정해 사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많은 난제들이 남아 있지만 탯줄과 태반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는 또한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무심코 버려졌던 탯줄과 태반도 이제는 더이상 적출물이 아닌 생명자원으로 인식될 때다.


가족과 인류 공동의 건강 추구

최근 딸 채니와 아들 환희를 각각 출산한 김태욱·채시라, 조성민·최진실 부부는 아이들의 탯줄혈액을 탯줄혈액은행에 보관했다. 탯줄혈액은행이란 장차 발생할지 모르는 아기와 가족의 질병발생에 대비해 탯줄혈액을 일정기간 보관해주는 곳이다. 이처럼 탯줄혈액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보관하는 곳을 가족은행(Family Cord Blood Bank)이라고 한다. 가족은행에 탯줄혈액을 보관하려면 첫해에 약 1백만원, 이듬해부터는 10-15만원 정도의 보관료를 지불해야 한다. 개인적 목적이외의 탯줄혈액은행도 있다. 바로 공여은행(Public Cord Blood Bank)이다. 공여은행은 탯줄혈액을 기증받아 유전자 특성이 일치하는 환자에게 무상으로 탯줄혈액을 제공하는 공익기관이다. 미국의 경우 1992년 뉴욕혈액센터에 공여은행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약 2만 유닛(탯줄 하나에서 채취한 탯줄혈액의 단위)의 탯줄혈액을 보관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의 감독하에 전국 9개 공여은행에서 약 3천 유닛 이상의 탯줄혈액을 보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차원의 공여은행은 아직 설립돼 있지 않다. 대신 몇몇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공공 차원의 탯줄혈액 기증이 이뤄지고 있다. 1996년 가톨릭 탯줄혈액은행이 설립된 이래,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이 공여은행을 설치했다.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공여은행이 설치된 병원을 찾아 신청하면 탯줄혈액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한편 1997년 민간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주)라이프코드가 가족탯줄혈액은행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후 (주)히스토스템, (주)메디포스 등 벤처기업의 설립이 뒤따랐다.


탯줄혈액의 채취과정과 냉동보존

길이 60cm, 굵기 1.5cm 정도의 탯줄은 태아와 태반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신기하게도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도 탯줄이 꼬여서 태아의 목을 조르는 일은 절대 없다.

탯줄 안에는 동맥과 정맥이 있는데, 성인과는 반대로 정맥은 태반에서 태아쪽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길이고, 동맥은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를 운반해서 모체 혈액으로 내보는 역할을 한다. 즉 탯줄은 엄마와 아기를 이어주는 생명선이라 할 수 있다. 탯줄에서 혈액을 분리하는 과정은 무균상태와 세포 생존력, 그리고 최대한 많은 세포를 추출하기 위해 적어도 25가지 이상의 단계를 거친다. 먼저 탯줄이 자궁에서 분리돼 나오면 탯줄을 자른 뒤 철저히 소독한다. 아기로부터 분리된 탯줄정맥에 항응고제가 처리된 주사기를 찔러 탯줄혈액을 채취한다.

탯줄혈액에는 조혈모세포와 줄기세포뿐 아니라 적혈구, 백혈구 등 각종 혈액세포와 혈장이 존재하는데, 이를 분리해야 한다. 조혈모세포와 줄기세포 표면에는 ‘CD34’라는 특정 항원이 있다. 이 항원에만 반응하는 항체를 첨가하면 조혈모세와 줄기세포만 분리할 수 있다. 이렇게 분리된 조혈모세포와 줄기세포는 훗날 활용에 대비해 가장 쉽게 다룰수 있도록 몇개의 작은 냉동용기에 나눠 냉동저장된다.

냉동저장을 위해서는 냉동보존제 ‘DMSO’(Dimethylsulfoxide)를 반드시 첨가해야 한다. 세포 안팎에 존재하는 수분이 냉동과정에서 세포의 다른 부분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냉동보존제까지 첨가한 탯줄혈액은 특수 제작된 냉동용기에 담겨, 컴퓨터 제어로 1분에 1℃씩 온도를 내려, -1백96℃의 액체질소 냉동고에 보관된다.


아이의 무병장수 바라는 태항

옛날 우리 조상들은 태항이라고 불리는 항아리에 탯줄과 태반을 보관하곤 했다. 탯줄에 왠지 모를 힘과 효험이 있으리란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부산물인 탯줄을 소중히 여기는 풍습은 삼국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탯줄을 소중히 보관했다가 불로 태우거나 물에 띄워보내면서 다음 아이의 잉태에 재앙이 없기를 기원했다.

왕실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는 그 의식이 매우 복잡했다. 출산일이 임박해 오면 우선 ‘산실청’을 임시로 둬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의 모든 출산업무를 관장하게 했고, 산모는 물론 주위 사람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여러가지 규율을 엄격하게 교육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세태의식이라 해 그 아이의 탯줄을 깨끗이 씻어 백자항아리에 담아 길한 방향에 고이 모셔뒀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이것을 땅에 묻는 안태의식을 치뤘다. 이런 모든 과정은 아이를 출산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왕실의 큰 행사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실의 탯줄을 잘 보관한 공을 인정받아 신분이 올라가고, 그 반대로 탯줄을 잘못 다뤘다가 그 죄로 인해 곤욕을 치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우리 선조들은 태반 속에 생명의 근원이 있다고 믿었다. 출산 후 얻어진 태반을 소홀히 다루지 않고 태반 항아리(태항)에 담아 정결한 곳에 묻는 관습이 있었다. 특히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태반을 깨끗이 씻어 백자항아리에 담아 밀봉한 뒤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고 고이 보관했다. 이 태항은 왕실의 자손처럼 귀한 사내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이나, 과거에 급제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굴의 표적이 되곤 했다. 민간에서도 태줄이나 태반을 말려서 보관함으로써 자녀들이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태반 속에 무한한 자양분과 치유의 효력이 있다고 믿었다. 한편 외국에도 태반과 관련된 풍속이 있다. 케냐의 가쁘란 종족은 태반을 난로가 놓인 바닥에 묻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의 언어로 산파와 태반을 가리키는 단어는 같다. 하와이에서는 전통적으로 태반을 나무 아래에 묻었는데, 나무는 그 아이의 나무가 된다. 또한 일부 아시아인은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여자가 태반 위에 앉으면 운이 좋아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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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박현정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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