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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는 언제부터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요?”
대학에서 발달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 으레 받는 질문입니다. 낙태 허용과 같이 공방이 벌어지는 사회 이슈에 과학적인 해답을 기대하며 질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저는 과학자이기에 해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배아가 언제까지 세포 덩어리인지, 그리고 언제부터 살 권리를 가진 개체인지는 생명윤리의 영역이니까요. 그 대신 과학자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은 배아 발달 시기 중 언제 심장이 완성되는지, 언제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신경계가 발달하는지, 또 언제 공기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폐가 발달하는지 등입니다. 배아 발달 과정은 이처럼 점진적입니다. 

 

 

배아 연구, 왜 14일일까
그런데 최근 과학의 영역에서도 인간 배아의 ‘나이’를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간 배아 연구의 기본인 ‘14일의 규칙’에 대한 것인데요. 이제까지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를 배양할 수 있는 기간은 수정 후 14일까지였습니다. 14일이 지나면 인간 배아를 모두 폐기해야 합니다. 이는 미국의 윤리권고위원회와 영국의 생명윤리에 관한 정부위원회인 ‘워녹위원회’가 각각 1979년과 1984년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시작됐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11개국이 ‘14일의 규칙’을 법률로 정해놨고, 5개국이 권고사항으로 두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인간 배아 배양을 14일보다 짧은 7일로 제한한다고 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드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왜 한 달도 아니고, 절반인 15일도 아닌, 14일일까요. 배아의 세포층이 한 겹에서 세 겹(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으로 분화하는 중요한 시점이 바로 수정 후 14일째이기 때문입니다. 
14일 이전에는 배아가 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머리가 생길 부분, 엉덩이가 생길 부분 등이 결정됩니다. 워녹위원회는 수정 후 약 17일째에 신경계가 발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보다 2~3일 전에 인간 배아 배양을 멈춰야 배아가 고통을 느낄 가능성이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14일의 규칙은 인간 배아 실험을 제한하는 목적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수정 후 2주까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배아를 연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이기도 합니다. 

 

기술 발달로 흔들린 ‘14일의 규칙’
14일의 규칙은 사실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있으나마나 한 규칙이었습니다. 인간의 배아를 14일 동안 여성의 몸 밖에서 배양할 기술이 없었거든요. 길어야 7일 정도였습니다. 과학자들은 배아가 자궁에 착상하는 시기(수정 후 6~7일)가 지나면 더 이상 배아를 실험실에서 배양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5월, 새로운 기술로 배아를 14일까지 실험실에서 배양한 연구 논문 두 편이 발표됐습니다(오른쪽 사진).doi:10.1038/ncb33, doi:10.1038/nature17948 인간 배아를 14일까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랫동안 실험실에서 배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겁니다. 14일의 규칙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죠. 
게다가 2015년에는 미국 록펠러대 연구팀이 배아줄기세포를 조금 특이한 패턴으로 배양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배양한 세포들이 마치 정상 배아가 발달하는 것처럼 세 겹의 세포층을 형성했습니다.doi:10.1038/nMeth.3016 
물론 이렇게 만들어낸 세포들은 정상 배아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러나 정상 배아처럼 발달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기에 배아 연구로 봐야 하는 지에 대해 논란이 뜨겁습니다. 만약 이들을 큰 의미의 ‘배아’로 본다면, 수정된 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배아를 어떻게 14일의 규칙으로 규제할 수 있을까요. 
과학계는 찬반 의견이 갈립니다. 유산이나 선천적 기형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인간 배아 연구가 가능한 기간을 14일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요, 한 번 늘렸다간 앞으로 같은 논란이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기간을 늘려 생명의 존엄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14일의 규칙’ 바꿔야 한다면? 
영국 에든버러대 소속 생명윤리학자인 사라 찬 연구원은 14일의 규칙을 바꾼다면 다음 두 조건을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doi:10.1007/s40778-018-0135-7
첫 번째 조건은 날짜에 기반해 규칙을 세울 것. 한 마디로 만약 ‘이러이러한 구조가 생기는 때까지 배아를 배양해도 좋다’고 정하면 배아에서 해당 구조가 생겼는지 아닌지 사람들마다 다른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숫자로 객관적인 기준을 부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조건은 전 세계가 보편적인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나라에서만 인간 배아 연구가 15일 이상 가능하다고 하면 관련 연구가 모두 그 나라로 몰릴 수도 있으니까요. 14일 논쟁의 결말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암 환자들에게 재발만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또 있을까요. 독한 항암제로 암세포를 모조리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용케도 살아남은 암세포는 환자들이 다시 찾은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갑니다. 이번 글은 암 연구에 차용된 성체줄기세포의 이야기입니다. 
 

암세포는 흔히 들어봤지만 ‘암줄기세포’라는 단어는 생소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 개념은 1930년대에 처음 나왔는데요.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암세포 중에서 줄기세포와 비슷한 특징을 갖는 세포들을 일컫습니다. 
줄기세포는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포분열을 계속해 자기와 같은 능력을 가진 세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여러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줄기세포의 능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소장과 혈액이죠(2018년 7월호 참조). 

 

암의 특이 성질 설명하는 암줄기세포 
정상 조직이 기능하는 데 꼭 필요한 줄기세포가 암조직에도 있다는 이론은 나오자마자 주목을 받았습니다. 암줄기세포는 암의 여러 가지 특이 성질을 설명하는 데 제격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암조직의 이질성(heterogeneity)입니다(오른쪽 아래 사진). 한 사람의 동일한 부위에서 채취한 암조직이라고 해도 암세포들이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모양만 다른 게 아니라 세포마다 발현하는 유전자들도 제각각입니다.doi:10.1038/nbt.2038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암세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암줄기세포로 답할 수 있습니다. 암줄기세포는 여러 세포로 분화할 수 있으니까요. 
암환자들이 걱정하는 재발 역시 암줄기세포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현재 항암 치료의 성공 여부는 암세포의 수가 얼마나 줄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요. 암세포를 아무리 많이 없애도 암줄기세포가 버젓이 살아 있다면 항암 치료 이후에도 세포분열을 통해 암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이로 인해 암이 재발할 수 있습니다. 

 

암줄기세포, 적은 수로 암조직 키워 
암줄기세포의 존재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연구는 1937년 발표된 백혈병 연구였습니다. 쥐의 암세포 중 딱 하나를 새로운 쥐에 이식한 뒤, 이식받은 쥐가 백혈병 증상을 보이는지 관찰했죠. 놀랍게도 암세포 하나를 이식받은 97마리 중 5마리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doi:10.1158/ajc.1937.276 
이는 혈액암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2003년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유방암 환자 9명으로부터 암조직을 떼어다가 특정 유전자(CD24)를 발현하는 세포와 그렇지 않은 세포로 나눴습니다. 그리고는 이 두 부류의 세포들을 쥐에 이식했는데요. CD24를 발현하지 않는 유방암 세포의 경우, 쥐에 이식되면 암조직을 형성한 데 비해(이때 필요한 세포의 수가 고작 100개였습니다), CD24를 발현하는 유방암 세포는 쥐에 아무리 많이 이식을 해도 암조직을 생성하지 않았습니다.doi:10.1073/pnas.0530291100


이후에도 뇌종양, 대장암 등에서 특정 유전자를 발현하는 적은 수의 암세포를 채취해 쥐에 이식해보고 암이 발달하는 것을 관찰한 연구들이 발표됐죠. 
이렇게 암줄기세포의 개념이 점점 확립되는 중에도 몇몇 과학자들은 암줄기세포의 존재 여부에 합당한 의심을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특정 암세포가 다른 개체에 이식됐을 때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암줄기세포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암세포가 예전과는 다른 환경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암줄기세포의 존재를 지지하는 연구자들조차 당시엔 확실하게 반박을 할 수 없었습니다. 특정한 세포가 암조직 전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이식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2년 8월 세 편의 논문이 동시에 발표됐습니다. 이식 실험 없이 특정 세포들에 유전자 변형을 일으켜 표시를 한 후 암을 유발하면, 표시한 세포들이 분열하면서 암 조직의 대부분을 이룬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암줄기세포 겨냥한 항암치료법 속속 
암줄기세포의 존재는 항암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일단 재발의 원인이 암줄기세포라면 항암 치료를 할 때 이 세포들을 확실히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암줄기세포를 목표로 하는 항암 치료법 연구가 여러 방면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암줄기세포가 가진 줄기세포의 특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치료법도 개발 중입니다. 가령 암줄기세포들이 더 이상 줄기세포로 남아 있지 않고 다른 세포로 분화하게끔 유도한 뒤 일반 항암 치료를 통해 이들 세포를 죽이는 겁니다.  
또한 줄기세포들이 분화하지 않고 줄기세포로 남아있으려면 그 주변에 위치한 세포들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암줄기세포의 주변 세포를 없애는 항암 치료법도 새롭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최영은
미국 바드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발생학 및 재생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우는 과학이 아닌 질문하는 과학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과학교육에 발을 담그게 됐다.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부에서 유전학, 발생학 등을 가르치며 새로운 대학 과학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yc709@georgetow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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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은 교수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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