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중요한 성취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도구 사용이다. 그만큼 중요한 능력이다. 그런데 최근 영장류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야생 원숭이는 석기를 만들 줄 안다는 보고까지 나오면서 영장류의 도구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인간의 고고학적 기준으로 봤을 때 오늘날은 ‘영장류들의 석기시대’일지도 모른다. 무려 세 종의 영장류가 석기시대를 열었다. 가장 먼저 석기시대를 연 영장류는 인간과 유전자가 가장 유사한 침팬지다. 돌 망치를 받침대로 이용해 단단한 견과류를 깨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에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해안에서 침팬지 석기 유물을 조사한 결과, 침팬지는 무려 4300년 전부터 돌을 이용해 견과류를 깨 왔다. 틀림없이 이 기술은 침팬지 집단에서 후대로 체계적으로 전달됐을 것이다. 실제 아프리카에서 야생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침팬지 새끼들은 부모가 견과류를 깨는 동안 항상 곁에서 행동을 지켜보고 때때로 직접 도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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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친 원숭이가 인류 초기 뗀석기를 만든다?
침팬지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석기시대에 동참한 영장류는 브라질에 사는 카푸친 원숭이다. 카푸친 원숭이는 신세계 원숭이에 속하는 종으로, 꼬리를 잘 쓰며 매우 똑똑하다. 돌을 이용해 딱딱한 열매를 깨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침팬지처럼 점잖게 앉아서 돌 받침대에 견과류를 놓고 돌을 톡톡 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먹보다 큰 열매를 단단한 나무 둥치 위나 돌, 바닥 위에 잘 고정시켜 놓은 뒤, 아주 세심하게 고른 큰 돌을 머리 위까지 치켜 들었다가 온 힘을 다해 내리친다.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수차례 반복해 결국 견과류를 깨 먹는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카푸친 원숭이는 약 700년 전부터 돌을 이렇게 썼다.
2013년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카푸친원숭이는 돌을 이용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암컷 원숭이가 종종 수컷들 근처에 돌을 슬쩍 놓고 오는 행동을 하는데, 연구 결과 자신의 발정기(임신 가능 기간)를 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돌 같은 물리적 도구를 사회적 의사소통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뜻인데, 특히 종 전체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번식에 관련된 의사소통이라는 점에서 학계에 매우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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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연구에 숨은 의미는 크다. 인류의 구석기시대를 재조명해야 할 수도 있다. 구석기 유물에서 발견되는 뗀석기가 지금까지의 믿음과는 달리 어쩌면 목적 없이 우연히 만들어졌거나, 실제 필요한 도구를 제작하기 위한 전 단계일 수도 있다. 구석기 초기 시대의 석기들은 인류가 동물 뼈에 붙은 살점을 발라먹기 위해, 또는 딱딱한 나무 껍질 등을 벗기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인류가 이 석기들을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목적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뾰족한 돌을 활용한 것이라면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영장류 중 석기시대에 진입한 막내는 마카카 원숭이 중 게잡이 원숭이라고 불리는 종이다. 동남아시아 전역 해안가에 흩어져 산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태국의 피아남야이 섬에 사는 무리에서만 돌 도구가 발견된다. 이 섬의 원숭이들은 돌을 망치처럼 이용해 큰 바위에 붙은 굴과 해안가의 게 등을 내리쳐 부순 뒤 그 속의 맛있는 속살을 먹는다. 섬에 사는 무리 중 한 개체가 이 행위를 시작하고, 나머지 개체들이 따라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이들이 언제부터 이런 돌 도구를 사용했는지 밝히기 위해 이들 서식지 주변의 퇴적층을 조사했고, 결국 원숭이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들을 발견했다. 후속 연구에서는 이 지층의 나이가 65년쯤 됐으며, 따라서 2세대 이상의 원숭이들이 돌 도구를 사용해 왔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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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가장 자주 관찰된 사냥 도구는 흰개미 낚시 도구다. 침팬지와 고릴라 무리에서 자주 발견된다. 흰개미 낚시의 핵심은 개미 집에서 개미를 외부로 꺼내는 일이다. 흰개미가 있는 곳까지 구멍을 낼 수 있는 단단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제거하고 끝을 이빨로 물어 여러 갈래로 만든 개미 낚시용 나뭇가지를 준비한다. 흰개미 종류에 따라 개미집 모양, 위치, 생태가 다른데, 침팬지들은 이에 따라 도구를 조금씩 다르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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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는 창도 이용할 줄 안다. 2005년 학계에 처음 보고된 아프리카 세네갈 사바나침팬지의 갈라고원숭이 사냥 행동은 연구자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다. 침팬지는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 나무 둥치 안에서 자고 있는 갈라고원숭이를 사냥한다. 2015년에 발표된 후속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사냥 방식은 주로 암컷들이 이용한다. 도구를 이용해 사냥 성공률을 수컷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다. 침팬지 사회는 대부분 전문적인 사냥 실력과 탄탄한 조직을 갖춘, 육체적으로 건장한 수컷의 독무대였다. 이 연구결과는 도구와 사냥, 그리고 암컷과 수컷의 사회구조에 대해 더 정교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숙제를 남겼다.
영장류 도구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도구를 사용하는 행동이 특정 개체나 특정 무리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문화라는 점이다. 영장류의 석기시대가 아직은 초기라는 의미다. 인간의 지속적인 환경오염과 서식지 파괴 때문에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영장류들이 도구를 쓰는 문화를 더 전파하면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영장류의 도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류의 석기시대를 엿볼 수 있다. 인류의 진화사를 새롭게 조망할 기회도 얻게 됐다. 전세계 영장류들을 보호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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