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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공기 잡는다

문화재 보호하고 기후 예측하는 전산유체역학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인간 어뢰’로 불리는 호주의 수영 선수 이안 소프는 전신수영복을 입고 3관왕을 차지했다. 당시 수영 금메달 33개 가운데 25개를 가져간 선수들은 모두 전신수영복을 입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미국의 ‘수영 신동’ 마이클 펠프스는 스피도가 개발한 전신수영복을 입고 6관왕을 차지했다. 물론 소프 역시 아디다스가 개발한 전신수영복을 입고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전신수영복을 만드는 데는 전산유체역학(CFD, Computer Fluid Dynamics)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했다. 컴퓨터상에서 수영선수의 몸을 3차원 그래픽으로 만든 뒤 이들의 몸을 지나는 물의 복잡한 흐름을 수치적으로 측정한 것. 이를 통해 물의 흐름과 저항을 최소로 만들었다. 소프와 펠프스는 전산유체역학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최근 전산유체역학은 항공, 해양, 도시설계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다. 공기나 바람, 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유체의 복잡한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전산유체역학보다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의 장경판전. 허남건 교수팀이 컴퓨터로 3D 모델을 만든 뒤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모두 격자로 나타냈다.


팔만대장경 보호할 바람길 내기

2005년 6월 경남 합천의 해인사는 평상시와 달리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법보전의 비로자나 불상 표면에 금칠을 다시 하는 과정에서 불상 내벽에 중국 당나라 연호인 ‘중화(中和) 3년’이란 글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중화 3년은 서기 883년에 해당한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던 비로자나 불상이 통일신라시대의 목불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해 12월 경북대 임산공학과 박상진 교수는 비로자나 불상에서 목재 표본을 채취해 질량분석이온빔가속기로 분석한 결과 불상이 9세기 것임을 확인했다.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불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오래된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비로전을 새로 지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해인사가 어떤 곳이던가. 국보 32호인 팔만대장경이 60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로전을 새로 지으면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고(藏經板庫)를 비롯해 건물들의 배치가 바뀐다.

이는 팔만대장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경판고는 건물 앞과 뒤의 상하 창문 크기를 달리해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으로 공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해 목판을 최상의 환경에서 보존하고 있다. 만약 비로전이 들어선다면 장경판고를 통과하는 공기의 흐름이 바뀌어 팔만대장경이 쉽게 썩을 수도 있다.

서강대 기계공학과 허남건 교수는 지난해 말 전산유체역학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장경판고 주변의 건물 배치를 공사 전과 후로 나눠 컴퓨터에 3차원으로 모델링한 뒤 건물 주변의 풍향과 풍속, 숲의 지형에 따라 장경판고의 기류와 환기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다행히 비로전을 새로 지어 건물 배치가 달라져도 장경판고 주변의 공기 흐름은 전과 비슷했다. 장경판고의 환기량 역시 기존과 별 차이가 없었다. 허 교수는 “신축하는 비로전의 높이나 크기, 위치를 공기의 흐름을 심각하게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1998년에도 전산유체역학 기법을 사용해 장경판고를 둘러싼 담장 구조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에 최적의 공기 흐름을 만든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전산유체역학 같은 첨단 기술이 없던 시절에 주위 자연환경을 고려하고 건물을 적절히 배치하며 자연 환기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 선조들의 지혜가 경이로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비로전을 새로 지으면서 바뀌게 될 건물 위치(원)를 공사 전(01)과 후(02)로 나눠 3D 그래픽으로 나타냈다. 이 모델을 토대로 장경판전(빨간색) 주변의 풍향과 풍속, 환기량 등 공기 흐름을 시뮬레이션한다.


지름 1.5mm 물줄기 다스린다

“변기 물을 한번 내릴 때마다 보통 6만~50만 개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섞인 물방울이 튄다.”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과학의 눈으로 따라간 책 ‘시크릿 하우스’에서 변기편을 읽고 나면 아무리 급해도(?) 변기를 사용할 마음이 싹 가신다. 변기가 그리 위생적인 공간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비데가 이런 변기의 개념을 확 바꿔놓고 있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비데는 ‘엉덩이에 꽃을 피우는’ 우아하고 세련된 변기를 대변하거나 ‘룰루~’라며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들 만큼 깨끗하고 상쾌한 변기를 연상시킨다.

비데(bidet)는 프랑스어로 원래 조랑말이란 뜻이다. 16세기경 서양의 귀족들이 더운물을 담아놓고 뒷물을 하던 용기에서 유래했다. 그러다 요즘에는 치질이나 변비 같은 항문질환을 치료하거나 항문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위생 세정기로 자리 잡았다.

보통 항문 주변에는 1000여개의 잔주름이 있다. 배변 뒤 이 잔주름들 때문에 오염물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휴지로 애써 이를 닦아내려면 피부에 과도한 자극을 주기 쉽다. 그래서 휴지 대신 물로 세척하는 비데가 인기를 끄는 것이다.

문제는 비데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다. 물줄기가 너무 세거나 너무 약하면 사용하는 사람은 불쾌하게 느낀다. 그래서 최근 비데 업계는 사용자가 원하는 ‘맞춤형 물줄기’를 뿜어줄 노즐을 개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나 항문 질환을 앓는 환자는 부드러운 물살을, 변비가 있는 사람은 강한 물살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웅진코웨이는 국내 최초로 하나의 노즐에서 여러 종류의 물줄기를 분사하는 기술을 개발해 최근 특허 출원까지 마쳤다. 여기에도 전산유체역학 기법이 적용됐다.

원기둥 형태의 노즐은 대개 지름과 높이가 밀리미터 단위로 매우 작다. 이번에 개발된 노즐도 지름 1.5mm, 높이 3mm로 길이가 짧은 빨대 정도다. 연구팀은 일단 노즐을 통과하는 물줄기를 기존의 직선수류 하나에서 직선수류와 회전수류 두 갈래로 나눠 설계했다. 이렇게 하면 노즐에서 분사되는 물줄기의 세기와 범위를 한꺼번에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설계대로 모형을 만들었지만 노즐이 워낙 작아 맨눈으로는 노즐 안에서 회전수류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또 노즐에서 분사되는 물줄기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설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경원테크 기술사업부 최윤석 팀장은 웅진코웨이 연구팀과 함께 컴퓨터상에서 노즐을 3D로 모델링한 뒤 시뮬레이션했다.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한 결과 최 팀장은 회전수류를 만드는 물줄기를 두 개로 나누고, 두 물줄기가 통과하는 관이 노즐을 중심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 도안을 수정했다. 노즐 안에서 회전수류가 제대로 형성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웅진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 진성월 대리는 “노즐은 비데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치”라며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분사되는 물줄기의 세기와 범위를 조절할 수 있는 점이 이번 노즐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맞춤형 물줄기 선사하는 노즐의 원리^직선수류(01)와 회전수류(02)로 물줄기를 나눠 설계하면 노 즐(03)을 통과하는 물줄기의 세기와 범위를 조절하기 쉽다. 길이가 3mm로 짧은 노즐 안에서 형성되는 물줄기는 컴퓨 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날씨 반란 잠재울 기후모델
 

대기 운동을 나타내는 유체역학 미분방정식을 얼마나 잘 푸느냐에 따라 기후모델의 정확도가 결정된다.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것은 슈퍼컴퓨터. 프랑스는 지난 6월‘NEC SX-8R’이라는 최첨단 슈퍼컴퓨터를 도입했다.


베트남 전쟁 중 미 공군은 수송기를 개조해 은과 납, 요오드 연기를 공중에 뿌려 구름을 만들었다. 호치민루트에 소나기를 뿌리기 위해서였다. 일명 ‘뽀빠이 작전’으로 불린 미군의 ‘기상 작전’은 정상적인 몬순 기간을 연장시켜 적의 보급로를 진흙탕으로 만들어 통행로를 차단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강인식 교수는 날씨를 잡기 위해 ‘뽀빠이 작전’ 대신 기후모델을 사용한다. 기후모델은 말 그대로 일정한 기간 동안 나타나는 평균적인 날씨, 즉 온도와 강수량, 풍속을 평균 내 기후를 하나의 모델로 나타낸 것이다. 대개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한다. 기상학자들은 기후모델을 이용해 미래의 지구 기후를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하길 원한다.

기후모델은 대기의 운동을 유체역학 미분방정식으로 나타낸 뒤 방정식의 해를 구한다. 그런데 이 해를 구하는 과정이 워낙 복잡해 슈퍼컴퓨터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최근 기후모델을 개발할 때 지구를 여러 개의 격자로 나눈 뒤 이 격자에서 일어나는 응결, 복사 등 대기의 물리적인 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격자의 크기가 작을수록 계산값과 예측값 사이의 오차가 줄어든다.

그런데 격자의 규모를 반으로 줄이면 계산량은 8배 이상 늘어난다. 결국 컴퓨터의 성능이 뛰어날수록 기후모델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즉 슈퍼컴퓨터가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라 기후 예측의 신뢰도가 결정된다. 현재 미국은 ‘블루진’(Blue Gene), 일본은 ‘어스 시뮬레이터’(Earth Simulator), 한국은 ‘크레이(Cray) X1E’라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한다.

강 교수팀은 독자적으로 ‘SNU 모델’이라는 기후모델을 만들었다. SNU 모델은 지난 2002년 세계 유수의 연구 기관들이 개발한 기후모델을 서로 비교하는 연구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계절 예측에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설립된 이집트 카이로센터는 SNU 모델을 도입해 기후를 예측하기로 결정했다. 5월 초 카이로센터를 다녀온 강 교수는 “후발주자였던 한국의 기후 연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감개무량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재 강 교수팀은 기후모델 격자의 한 변을 20km까지 줄인 SNU 모델을 완성했다.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기후모델이 채택한 격자의 크기가 300km인 점을 감안하면 초고해상도 기후모델인 셈이다. 강 교수는 “이 모델을 사용하면 태풍 같은 기상 현상을 훨씬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며 ‘메이드 인 코리아’ 기후모델을 자랑했다.
 

날씨 반란 잠재울 기후모델01강인식 교수팀은 격자의 한 변이 20km인 초고해상도 기후모델을 개발해 최근 태풍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02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어스 시뮬레이터’가 예측한 지구의 해수면 온도 분포. 어스 시뮬레이터는 2004년까지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컴퓨터였지만 최근 미국의‘블루진’에 왕좌를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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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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