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Knowledge] ‘DHL’ 이노베이션 센터에 가다

드론으로 피자 배달 받는 날은 언제?




눈보라로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긴급 의약품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구조대는 곧바로 의약품을 실은 드론을 띄운다. 드론은 수직 상승해 고도를 높인 뒤, 로터(프로펠러)의 각도를 바꿔 고속으로 전진 비행한다. 8분 뒤, 드론은 해발 1200m에 있는 우편함에 도달한다. 우편함의 지붕이 자동으로 열리고, 드론은 동체부에 수납했던 의약품을 내려놓는다. 배달부터 하역까지 전과정이 사람의 조종 없이 이뤄진다.

미래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종합물류기업 도이치 포스트 DHL그룹(이하 DHL)이 드론 ‘파셀콥터(Parcelcopter)’를 이용해 올해 1~3월 독일 바바리안 지방의 라이트 임 빙클 마을에서 수행했던 세 번째 파셀콥터 프로젝트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빨리 물건을 배송해야 하는 물류배송 업계에서 드론은 ‘핫’한 수단이다. 구글, 아마존 등 세계적인 기업이 도전장을 내민 가운데, DHL은 가장 먼저 정부의 물품 배송 허가를 받아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9월 22일 본 중앙역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트로이스도로프의 ‘DHL 이노베이션센터’를 방문해 파셀콥터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헬리콥터와 비행기를 합친 드론

“어? 드론이 아니네요?” 보는 순간 ‘멘붕’ 상태에 빠졌다. 흔히 드론이라고 하면 여러 개의 로터가 하늘 방향으로 설계된 비행체를 떠올린다. 수직으로 이착륙할 수 있고 방향전환 등 비행 제어가 쉬워 가장 대중화된 드론이다. 하지만 DHL 이노베이션센터에서 본 파셀콥터는 작은 비행기였다. 역시 드론에 속하긴 하지만 날개가 있고 그 끝에 여러 개의 로터가 추가된 독특한 모습이었다. 날개가 고정된 비행기와, 로터가 회전하는 멀티콥터의 장점을 모두 취한 설계였다.

실제로 파셀콥터는 날개의 각도를 90°까지 조절했다. 이륙할 때는 로터를 하늘로 향하게 해 수직으로 이륙하고, 비행할 때는 로터를 수평으로 바꿔 전진 비행하는 식이다. 안드레아스 비킹 DHL 제품 개발 부사장은 e메일 인터뷰에서 “기존의 멀티콥터 드론은 눈보라가 심한 지역이나 고도가 높은 산악 지역에서 비행이 어려웠다”며 “올해 초 새로 개발한 파셀콥터 3.0은 산악 지역에서 8.3km 거리를 최고 시속 126km로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행기+멀티콥터’ 전략은 지난 3년간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DHL은 2013년 파셀콥터 1.0으로 라인 강 너머 1.2km 떨어진 목적지에 물건을 배송하는 프로젝트를 성공했다. 또 2014년에는 파셀콥터 2.0을 이용해 12km 거리에 있는 북해 연안 유이스트 섬까지 사람의 조종 없이 의료물품을 배송했다. 의약품과 같은 긴급구호물품에 한해 정부가 지정한 경로로만 배송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유럽 최초로 물품 배송 허가를 받고 성공시킨 사례였다.

비행 플랫폼과 자동화 기술은 독일 아헨공대, 전문업체 마이크로드론과 함께 개발했다. 드론이 자율비행하기 위해서는 GPS와 방위 측정용 컴퍼스 모듈이 탑재돼야 한다. 드론이 GPS 위성이 보내온 전파를 수신해서 현재 위치를 알고, 컴퍼스 모듈로 동체의 정면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면 스스로 위치를 재확인해가며 지정된 경로대로 움직일 수 있다. 비킹 부사장은 “향후에는 도심에서 파셀콥터 프로젝트를 할 계획”이라며 “배터리 기술이나 비행 기술은 이미 상용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돼 있다”고 말했다.
 


 

하역도 자동으로

전시장 한 편에선 대형 스크린을 통해 파셀콥터 3.0이 실제로 물건을 싣고 내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카이포트(Skyport)’라고 하는 착륙장 겸 우편함(오른쪽 사진)에 드론이 내리면, 드론의 문이 열리면서 실려 있던 화물이 자동으로 빠져나왔다. 화물은 스카이포트 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우편함 중 하나에 저장됐다. 화물의 주인은 접속 코드를 입력해 원할 때 짐을 꺼낼 수 있었다. DHL에서 최초로 도입한 자동 하역 시스템이다.

비킹 부사장은 “드론에 인공지능(AI), 스마트 기기, 무인자동차 기술 등이 결합하면 더 큰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DHL 이노베이션센터에는 구글글래스 등 스마트 안경으로 증강현실(AR)을 구현해 물류창고를 관리하는 기술이 전시돼 있었다. 직접 착용해봤더니 무더기로 쌓인 택배 상자 위에 제품의 목적지, 창고 내 위치, 수량과 같은 정보가 AR로 나타났다. 마커스 큐켈하우스 혁신트렌드리서치부 부사장은 “DHL이 네덜란드에 있는 물류창고에 이 기술을 시험 적용해 업무 효율을 25%나 개선했다”고 전했다. 이런 기능을 갖춘 드론이 있다면 창고에서 급히 물건을 찾아야 하거나, 방대한 양의 물품 목록을 작성할 때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4월 발간된 ‘DHL 물류동향레이더 2016’ 보고서에서도 드론과 무인자동차가 만나 물류배송 비즈니스에 혁신을 이뤄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가령 정체가 심한 도심에서 무인자동차로 물건을 배송할 때 드론을 띄워 교통 혼잡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또 무인자동차가 교외의 물류창고에서 도심에 있는 임시 보관창고까지 물건을 운반하면, 소형 드론이 도심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물건을 배송하는 등 협력이 가능하다.
 

 

“잘 나는 것만으로는 안 돼”

드론 배송을 시도하는 기업은 DHL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미국 네바다 주에 있는 드론 제조 스타트업 ‘플러티’가 미국 최초로 드론 자율비행에 성공했다. ‘플러티’는 800m 거리에 있는 주거지역에 생수와 비상식량 등을 운반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유통업체인 아마존 역시 지난 7월 영국 정부로부터 드론 배송을 위한 시험비행 허가를 받았다. 아마존은 조종사의 시야를 벗어난 드론 비행, 드론 여러 대의 동시 자율비행, 장애물 회피 비행 등을 시험할 예정이다. 드론 배송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에어’를 2013년 발표한 뒤 3년 만에 이뤄지는 시험비행이다.

취미용 드론에 비해 배송용 드론 서비스 출시가 늦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안전과 보안 문제다. 특히 드론해킹이 이슈가 되고 있다. 보통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강제로 비행경로를 바꾸는 일이 어렵지 않다. 지난 3월에는 미국 IBM의 현직 보안 전문가가 고가의 경찰 수색용 드론을 20달러에 해킹하는 방법을 공개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드론들이 복잡한 도심에서 사람이나 장애물과 부딪치지 않고 자율비행하는 기술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스라엘의 드론 스타트업 아브로보틱스는 드론 스스로 150m~1km 거리에 있는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기술을 지난 6월 발표했다. 기존 드론은 장애물을 인식할 때 소형 카메라를 이용하기 때문에 탐지할 수 있는 거리가 50m에 불과했다. 아브로보틱스는 레이더를 사용해 이 거리를 처음으로 1km까지 늘렸다.

DHL 비킹 부사장은 “자율비행하는 드론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서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다”며 “어떤 규제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을 구체적으로 더 많이 시도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DHL은 파셀콥터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독일 교통부 및 항공관제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맺었다. 파셀콥터만 지나다닐 수 있는 특수구간을 만들었고, 고도 30m 이하에서 시속 64km보다 천천히 비행해야한다는 구체적인 지침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물론 지역 주민들의 승낙도 중요했다. 비킹 부사장은 “분명한 가이드라인 덕분에 파셀콥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전체의 온라인 유통시장에 전문적인 드론 배송 솔루션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독일 본=이영혜 기자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전자공학
  • 기계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