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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거꾸로 자라는 땅속 마천루, 지하도시


 

지하도시를 이해하려면, 먼저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이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지하공간을 가장 먼저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고대인들이 이미 파놓은 동굴을 넓히면서 그들만의 거대한 ‘땅 속 천국’을 만들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카파도키아에 있는 36개의 지하도시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18층에 이르는 지하도시가 지하 60m 깊이까지 뻗어 있고, 최대 2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주거용 공간은 물론 교회와 학교, 포도주 저장 창고, 심지어는 규율을 어긴 사람을 감금하는 감옥까지 있다. 그리고 다른 지하도시로 연결된 ‘지하도로’도 있다.

중장비 없이 어떻게 이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 지하도시의 첫 번째 조건인 암반이 좋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카파도 키아 지역은 인근 에르시에스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으로 이뤄져 있다. 응회암은 석기나 뼛조각만으로도 충분히 파낼 수 있을 정도로 무르다. 따라서 처음 동굴을 파기 시작한 기원전 8세기 고대인들은 특별한 도구를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

동굴의 입구를 내고, 지상에서 일정 깊이까지 파내는 작업은 불과 물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기에 노출된 응회암은 노출되지 않은 부위보다 단단하게 굳는다. 불을 피워 돌을 뜨겁게 달군 뒤 차가운 물을 뿌리면 순간적으로 바위가 수축하면서 균열이 생기는데, 이 틈을 파고 들어가는 방법을 당시에 많이 썼다. 연기 때문에 불을 피우며 작업하기 어려운 구간부터는 석기와 뼛조각을 썼을 것이다.

이렇게 굴착된 응회암은 공기에 노출되면서 다시 단단해진다. 청동과 철기 등 금속 제련 기술이 발전한 뒤에는 좀 더 편리한 기구를 써서 도시를 건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지표면에서 55m까지 수직으로 파고 들어간 환기구를 만드는 등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에는 12세기까지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호텔, 박물관, 대학, 공원까지 모두 지하로

카파도키아 이후에도 인류는 다양한 형태의 지하공간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주로 교통이나 군사, 저장 등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공간이 많았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는 형태는 거의 없었다.

지하도시가 다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다. 인구밀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지하 공간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건물에 지하층을 만들었고, 지하철이 생긴 뒤에는 지하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구상 중인 지하도시는 실존 모델이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다. 언더그라운드 시티는 1962년에 건설된 지하쇼핑센터를 1984년~1992년에 걸쳐 확장한 뒤 2008년 최종 완공한 것이다. 면적이 여의도의 네 배에 달한다(총 면적 12km2). 시청에 건설될 지하도시의 면적은 여의도와 비슷하다.

캐나다가 언더그라운드 시티를 건설한 이유는 평균 기온이 영하 10℃에 이르는 몬트리올의 춥고 긴 겨울 때문이다. 지상에 나가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아파트와 호텔, 은행, 사무실, 쇼핑몰, 박물관, 대학, 공연장, 지하철역과 기차역 등 모든 것을 갖췄다. 하루 평균 50만 명의 사람들이 언더그라운드 시티 안에서 지내며, 120개의 통로가 지상과 연결돼 있다.

미국 뉴욕시는 현재 2021년 개장을 목표로 세계 최초의 지하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맨해튼 지역의 지하에 60년 이상 방치된 폐 전차역을 공원으로 개조하는 ‘로라인’ 프로젝트다(122쪽 사진). 로라인은 축구장 두 배에 달하는 넓이로, 깊이가 지표면에서 불과 10m 안팎에 불과한 지하공간이다. 뉴욕시는 인공광이 아닌 자연광을 지하로 끌어들여 식물이 자라게 할 계획이다.


 
잘 깎고, 튼튼히 세워야 안전한 지하도시

장수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현대 지하도시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암반 채굴과 공간 지지 및 보강, 지하수 배출, 환기와 채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먼저 채굴을 보자. 1960년대 이후 개발된 강력한 거대 굴착 장비 덕분에 지금은 어떤 조건의 암반도 어렵지 않게 뚫을 수 있다. 특히 거대 중장비 ‘쉴드 TBM’은 암석을 부수고 파편을 외부로 배출하며 터널 벽면에 콘크리트 조각을 붙여나가는 것까지 자동으로 한다. 사람은 기계를 조종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터널이 붕괴되는 등 위험 상황이 발생해도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다.

지하공간을 튼튼하게 지탱하고 보강하는 것은 지상에 세우는 일반 건축물처럼 기둥을 세우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인공적인 기둥을 쓸 수 있지만 암반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미국 캔자스시티에 건설된 ‘서브트로폴리스(SubTropolis)’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브트로폴리스는 문을 닫은 석회석 광산을 개조해 창고와 제조시설, 사무실 등으로 사용 중인 지하공간이다. 폐 광산을 개조하면서 일부 암반들을 굴착하지 않고 기둥 모양으로 깎아서 지하공간을 지탱하는 구조물로 활용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반연구소는 지난 수 년 동안 지하 공간을 만드는 주요 기술을 기존보다 향상된 형태로 개발해 왔다. 암석을 깎아내는 기술의 경우, 쉴드 TBM을 이용하면 깎아낸 단면의 형태가 넓은 평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분적인 굴착을 하거나 공간의 모양을 원형이 아닌 다른 모양으로 만들려면 ‘로드헤더’ 같은 장비가 필요하다. 로드헤더는 기다란 팔 모양 장치의 끝부분에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암석을 깎아내는 ‘커팅헤드’를 장착한 기계로, 소음과 진동이 적어 도심 지하공간 개발에 적합하다. 연구팀은 로드헤더의 핵심 부품인 커팅헤드를 암석 조건에 맞게 설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회전하며 암석을 깎는 부품인 텅스텐카바이드를 헤드에 박아 넣는 패턴에 따라 채굴 성능이 달라지는데, 조건에 따라 최적의 패턴을 설계하고 시공 결과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만들고자 하는 지하공간에 필요한 기둥의 형태와 위치를 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다. 계획 중인 지하공간의 전체 형태와 암반의 상태를 파악한 뒤, 어느 위치에 어떤 모양으로 암반을 남기고 나머지를 파낼지 알려주는 기술이다. 공간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건설비를 기존보다 약 20% 절약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렇게 만든 지하공간의 암반 기둥을 보강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시멘트와 고분자 유기화합물을 섞어 만든 재료를 강한 압력으로 암반 표면에 뿜어 강도를 보강하고 지하수가 새어 나오지 않게 만든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지하공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전체 기술을 독자적으로 새로 개발한 것”이라며  “올해까지 기술 개발을 모두 완료하고 국내 폐 광산 리모델링 사업에 실제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하에 태양빛 끌어와 식물 기른다

지하도시에는 빛이 없다. 카파도키아는 횃불을 써야만 했고, 서브트로폴리스는 조명으로 지하 공간을 밝힌다. 몬트리올 언더그라운드시티는 일부 구간을 아예 지상으로 노출시켰다. 지하와 지상을 나누는 흙을 제거하고 유리를 써서 자연광이 지하로 들어오게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조명으로 실내를 밝힌다.

반면 로라인에서는 지하공간을 노출시키지 않고 태양빛을 끌어들여 식물들을 키우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실험하고 있다. ‘로라인 랩’이라는 실험 공간을 만들어 지하로 끌어들인 태양빛을 이용해 식물들을 기르는 중이다(왼쪽 페이지 아래 사진).

방법은 이렇다. 지상에 포물선 모양의 유리접시를 만들어 태양빛을 모은다. 이 유리접시는 태양의 위치 변화를 쫓아가며 최대한 많은 빛을 모으도록 설계했다. 포물선의 초점 부위에 모인 태양빛은 광섬유 튜브를 따라서 지하로 전달된다. 이렇게 지하에 도달한 빛은돔 형태의 전등갓에서 여러 방향으로 반사되면서 공간을 밝힌다. 현재 로라인 랩에서는 70여 종 약 3000개체의 식물을 태양빛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기르고 있다.


미래도시 꿈꾸는 지하도시

지하도시를 개척하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우주를 탐사하려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깔려 있다. 현실적인 목적이라면 도전하지 않을, 새로운 지하도시를 계속해서 구상하는 이유다.

‘AB 엘리스’라는 건축 설계사무소는 러시아 시베리아에 버려진채 방치된 미르니 다이아몬드 광산에 인구 10만 명이 살 수 있는 친환경 도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에코시티 2020’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는 지름 1.2km, 깊이가 540m에 달하는 광산에 집과 수직형 농장, 숲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투명한 태양 전지로 덮은 유리 돔으로 지하도시를 덮어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만들고 도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 BNKR 건 축’이라는 설 계사무소는 ‘ 어스 크래퍼(Earthscraper)’라는 지하도시를 제안했다. 어스크래퍼는 초고층 건물이라는 뜻을 가진 스카이스크래퍼(skyscraper)에 대비되는 건축물로, 초고층건물을 지하에 거꾸로 박아 넣은 역 피라미드 형태다. 에코시티 2020 구상과 마찬가지로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지하도시는 300m 깊이까지 자연채광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를 위해 도시의 중앙 부분은 뚫린 형태로 설계했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다리를 배치했다. 지상 입구는 강화유리로 덮어 태양빛이 들어오는 것은 물론 지하에서도 하늘을 올려다 볼 수 게 했고, 로라인과 유사한 형태의 공원 수십 개를 만들어 항상 깨한 공기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위 사진).

고대와 현대, 그리고 미래의 지하도시는 저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첨단의 기술을 반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그 안에는 평안과 안전, 그리고 미지의 공간을 향한 열망도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00년 동안 지하도시 건축학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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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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