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물드는 가을이다. 아직까지 푸른 빛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도 곧 누구는 붉은 빛으로, 누구는 노란 빛으로 물들 터다.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자 하는 이들은 매년 언제 단풍이 물들지를 궁금해한다. 그런데 이 예측이 봄철 개화만큼 쉽지가 않다고 한다. 식물이 변하는 건 똑같은데, 왜 단풍은 예측하기가 더 어려운 걸까.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국립산림과학원과 예보업체들은 개화 시기와 단풍 시기를 발표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다 보니 오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매년 개화에 비해 단풍이 오차 범위가 더 넓다. 같은 생물의 변화인데도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건 무엇 때문일까.
먼저 단풍 시기를 어떻게 예측하는지 알아보자. 현재 단풍 시기를 발표하는 곳은 국립산림과학원과 예보업체인 웨더아이, 케이웨더 총 세 곳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단풍이 물드는 순서를 이용해 시기를 예측한다. 단풍나무과(科)에만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는데 단풍이 드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서울의 홍릉숲에 있는 29가지 단풍나무를 예로 들면,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은단풍을 시작으로 옻나무, 삼손단풍, 초일단풍, 꽃단풍이 뒤를 잇는다. 10월 말이 되면 화살나무, 좁은단풍, 털단풍이 물들고, 야촌단풍으로 끝을 맺는다. 김선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사는 “첫 단풍의 시기만 잘 관찰하면 그 이후의 단풍 예측은 정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달 전에 미리 예측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단풍을 예측할 수 있는 회귀 모델, 얼마나 잘 맞을까
웨더아이와 케이웨더는 온도, 강수량 등의 외부 조건을 대입해 얻은 회귀모델을 이용한다. 단풍 시기는 기온이 낮을수록, 강수량은 적을수록 빨라진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춥고 건조한 겨울이 빨리 왔다고 느껴, 겨울을 날 준비를 이르게 시작하는 것이다. 독일 뮌헨공대아넷 멘첼 교수팀이 1951년부터 2000년까지 20종의 나무를 분석한 결과, 8~9월의 평균 온도가 1°C 높아질 때마다 단풍 시기는 최대 2일까지 늦춰졌다(doi : 10.1023/A:1022880418362).
하루에 햇빛을 얼마나 받았는지(광주기)를 변수로 삼은 회귀 모델도 있다. 미국지질조사소(USGS) 조나단 프리드먼 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잎이 지기 위해서는 광주기가 임계값 이하가 돼야 한다(즉, 낮이 일정 정도 짧아져야한다). 임계값은 나무의 종이나 자라는 장소의 위도에 따라 다르다. 정수정 중국 남방과학기술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단풍 시작일을 예측하는 온도-광주기 모델(TP 모델)을 개발해 ‘세계 생태와 생물지리학’ 2014년 11월호에 발표했다(doi: 10.1111/geb.12206).
이런 회귀 모델은 단풍 시작일을 얼마나 잘 예측할 수 있을까.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팀은 1989년부터 2014년까지 8개 관측소에서 관측한 단풍 시작일과 온도 자료를 기반으로 TP 모델이 우리나라의 단풍 시작일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구미를 제외한 광주, 남원 등의 대다수 지역에서는 예측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았다.
통계자료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이상 기후
단풍 시기 예측이 어려운 이유는 회귀 모델이 갑자기 변하는 기후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라서다. 회귀 모델은 통계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가 없다. 요즘과 같이 이상 기후가 계속될 때는 더더욱 예측이 어렵다. 올해만 해도 9월 평균 기온이 작년보다 2°C 가까이 높고, 강수량은 현저히 적은 등 예측하기가 어려운 기후 조건이었다.
때문에 개화는 ‘생물계절모형’을 추가로 이용한다. 생물계절모형은 식물이 주기적으로 보이는 생물학적 변화를 이용해 시기를 예측하는 모형이다. 예를 들어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은 봄에서 가을까지 꽃눈이 분화해 이듬해 봄에 개화한다. 겨울이 가까워져 오면 일종의 겨울잠인 내생휴면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휴면일의 기간과 온도가 개화 시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주기를 관찰한 데이터가 쌓이면, 기온 자료만으로도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과학동아 2015년 4월호 참조). 웨더아이는 개화 예보를 할 때 회귀 모델뿐만 아니라 기상청에서 개발한 생물계절모형도 함께 이용해 정확성을 높인다.
하지만 단풍은 생물계절모형이 없다. 김선희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개화에 비해 단풍은 데이터가 많지 않다”며 “개화는 곤충들의 짝짓기 시기와도 연관이 있고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만 단풍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소홀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화에 대한 관측은 1920년대부터 시작했지만, 단풍은 1979년부터 시작해 관측자료부터 약 6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박창균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기후물리연구실 연구원(박사과정) 역시 “단풍 시기에 대해 쓴 우리나라 논문은 한 편도 없다”며 “정확한 예측 모델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풍이 드는 현상은 추운 날씨와 관련이 깊다. 모든 식물의 세포에는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와 광합성을 돕는 보조색소가 있다. 노란색을 띠는 카로티노이드와 크산토필, 붉은색을 띠는 안토시아닌 모두 보조색소에 속한다. 단풍의 색은 이 보조색소 때문에 나타난다.
보조색소 중에서도 붉은 빛을 띠는 안토시아닌은 특별하다. 카로티노이드는 모든 식물이 가진 보조색소로 그 함량에 따라 노란 빛이 얼마나 진하게 보이냐가 결정되는 반면 안토시아닌은 가을이 되면 나무가 새롭게 만들어내는 색소다. 세포 내에 당이 많을수록 많이 합성된다. 때문에 햇빛이 많고 강수량이 많은(광합성이 잘 일어날 조건) 해에 단풍이 더욱 붉게 물든다.
월동준비에 전력을 다해도 바쁠 때에 굳이 에너지를 사용해가며 안토시아닌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선희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안토시아닌은 뜨거운 빛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어, 식물의 광피해를 줄인다. 두 번째 기능은 타감물질을 만든다는 점이다.
타감물질은 다른 식물의 생존을 막거나 저해하는 화학물질로, 단풍나무 근처를 가만히 살펴보면 다른 식물들은 거의 살지 않는다. 마지막은 나무를 괴롭히는 해충을 막기 위해서다. 영국 임페리얼대 짐 하디 교수팀은 진딧물이 붉은색 잎보다 노란색 잎에 6배나 많이 몰려드는 것을 확인했다(doi :10.1098/rspb.2008.0858).
관측 정확성도 높여야
관측 자료의 정확성이 낮다는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는 단풍의 시작일과 절정일을 두 가지 방법으로 관측한다. 전국 22개 관측소에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한 그루씩을 표준목으로 지정해 나뭇잎의 20%가 물들었을 때를 시작일로, 80%일 때를 절정일로 기록한다. 유명 산의 봉우리를 관측한 자료도 있다. 북한산은 백운대, 오대산은 비로봉, 한라산은 윗세오름이 기준으로, 봉우리부터 20%까지 물들면 단풍의 시작이라고 본다.
표준목의 데이터를 사용할 경우, 지역의 대표성 문제가 생긴다. 표준목의 변화가 실제로 그 지역의 기후나 환경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 윤진일 경희대 식물환경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이 생물계절관측 기상대를 대상으로 개화나 단풍의 예상 시기가 어긋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표준목이 지역을 대표하지 못해서라는 응답이 28.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산 봉우리의 관측 자료를 사용할 경우 대표성은 갖추고 있지만, 종의 구분이 없는 것이 문제다. 단풍나무나 은행나무조차 분류하지 않고 관측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나무 종별로 군락을 이루게 한 뒤 군락 전체의 단풍 현상을 관측한다. 미국의 하버드 삼림’이 대표적이다. 미국 하버드대가 생태학적 연구를 목적으로 관리하는 하버드 삼림에는 여러 식물의 군락이 형성돼 있다. 박창균 연구원은 “우리나라도 단풍 관측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