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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싸인’의 ‘아이돌 살인사건’

소녀탐정 ㅊ씨의 S(cience)-File ➒





2011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싸인’은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배경으로 한 수사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첫 회를 장식한 에피소드는 실제 1995년에 일어났던 가수 ‘듀스’의 고(故)김성재 씨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김성재 씨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김 씨의 여자친구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소리 없는 살인, 비구폐색성 질식사

드라마에서 서윤형의 여자친구이자 살인범인 강서연은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의 딸입니다. 그래서 검찰에서는 서윤형 사건을 자살로 종결 지으려고 하죠. 하지만 법의관 윤지훈은 서윤형의 기도에서 작은 섬유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검은 끝났습니다. 사인은 비구폐색성 질식사입니다.”

질식사는 결핍성 질식사, 경부압박질식사(의사, 교사, 액사 등), 기계적 질식사(자세성 질식사, 압착성 질식사 등), 질식사 복합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비구폐색성 질식사는 결핍성 질식사에 속하는 사인으로, 코와 입이 동시에 막혀 사망하는 경우입니다. 손바닥이나 이불, 베개, 쿠션 등을 얼굴에 덮어씌우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비구폐색성 질식사는 법의관들 사이에서는 ‘소리 없는 살인’, ‘법의관의 제1의 적’이라고 불립니다. 증거가 거의 남지 않고, 사인을 확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앙법의학센터에서 2012년에 한 법의부검을 분석한 결과, 결핍성 질식사는 64건이었는데요. 전체 질식사에서는 40대가 24.7%로 가장 많았던 반면, 비구폐색성 질식사는 10세 미만이 55.2%로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쿠션 등으로 얼굴을 짓누르는 경우, 성인은 대부분 이에 저항할만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드라마 속에서 검찰은 서윤형의 사인은 비구폐색성 질식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윤지훈이 서윤형의 기도에서 발견한 작은 섬유 조각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미세 증거가 발견됐다고 해결은 아니다

드라마에서 살인을 저지른 강서연은 저항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서윤형에게 소량의 독극물을 먹인 뒤 쿠션으로 살해했습니다. 윤지훈이 찾은 섬유 조각은 이 쿠션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증거물이었던 겁니다. 쿠션의 섬유가 붙어있다는 이유 하나로 범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냐고요? 아주 예리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국과수에서는 ‘군집 특성을 가진 증거의 개별화’를 적용합니다. 군집 특성이란 특정한 사람이 아닌 다른 여러 사람도 가질 수 있는 특성입니다. 혈액형이 대표적인 예로, 쿠션의 섬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섬유로 만들어진 쿠션이 여러 개인데다, 쿠션을 만진 사람이 여러 명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이런 증거를 ‘그 사람’에 맞는 증거로 개별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피해자와 사건 용의자 사이에 서로 미세 증거가 오고 갔음을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예컨대 피해자의 손톱에서 용의자의 옷 섬유가 발견되고, 반대로 용의자의 손톱에서 피해자의 옷 섬유가 발견되는 경우죠. 혹은 용의자에게서 여러 종류의 군집 증거를 찾아내는 방법인데요. 용의자의 손톱 아래에서 피해자의 상의, 하의 등의 여러 특징적인 섬유가 발견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방법 모두 서윤형 살인사건에는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윤지훈이 서윤형의 시신에서 발견한 건 쿠션의 섬유뿐이었으니까요. 사인을 밝히는 데에는 결정적 증거였을지 모르지만, 범인을 확정 짓는 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윤지훈은 강서연의 혐의를 밝히려다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됩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기지만, 타락한 법과 정의는 그 흔적마저 모두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뒷맛이 씁쓸한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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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 일러스트

    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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