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남의 자욱한 안개속에 펼쳐진 몽환의 세계, 천을 넘는 그 산봉우리들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양자강 남쪽에 펼쳐진 산악지방을 화남(華南)이라 한다. 그 남쪽 약55만㎢(한쪽변이 약7백50㎞)지대의 여기저기에는 용모괴위(容貌魁偉)한 거대한 산봉우리가 무리지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계림(桂林)일대는 그 기관(奇觀)으로 천하에 이름이 나 있다.
남화(南畵)의 세계가 실제로
그곳에서는 거인같은 산이 늘어서서 아침저녁으로 짙고 흐린 여러가지 환상적인 실루에트와 신선의 세계를 현출한다. 그 산수는 한없이 감색으로 푸르러지다가 또 때로는 벽옥으로 변하기도 하여 변환이 자재다. 이런것을 표현하는데는 그림과 시의 어느쪽에 장점이 있고 어느 쪽에 단점이 있는지 가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계림일대의 산수는 동양의 그림속에 오래 전부터 살아 있다. 산수화의 모티브로서 유현(幽玄)한 산봉우리 사이를 누벼가다가 떨어지는 맑고 찬물의 흐름끝에 문인들이 배를 띄우고 달을 즐기는 모습이 흔히 그려졌다. 이 남종화(南宗畵)의 모티프는 결코 가공의 세계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 무대는 중국의 화남에 있는 것이다.
계림을 두고 예로부터 '桂林山水甲天下'(계림의 산수는 천하일품)라 일컬어 왔다. '천을 넘게 헤아리는 봉우리가 들판을 빙 둘러 서있고'라 읊었듯이 높이 2백m전후의 거탑같은 산봉우리가 무수히 산재해 있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화남의 자연이 낳은 신선의 세계이며 실재하는 남화의 세계인 것이다.
남화는 7~10세기의 당나라시대에 일기 시작하여 13~14세기의 원나라 시대에 성숙되었다. 당나라시대 이후 1천년 이상에 걸쳐 문인들을 매혹시켜 떨쳐버리지 못하게 한 이 자연의 걸작은 어떻게하여 생성된 것일까.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조각
거인과 같은 산봉우리는 탄산칼슘을 풍부하게 함유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함유량이 50%를 넘으면 석회암이라 하는데 이곳의 것은 90%를 넘는 것이 많다. 또 탄산마그네슘을 함유한 백운암으로도 이루어져 있다.
이런것은 모래나 진흙과 함께 해저에 퇴적되었던 것으로 계림이 있는 광서(廣西) 창족자치구는 물론 서쪽의 운남성(雲南省)이나 귀주성(貴州省)등의 산악지대까지 마치고 있는 광대한 지역이 모두 이런 지대다.
이런것은 동쪽의 바다 저쪽에서 플레이트의 이동을 타고 온 것으로 중국대륙(혹은 아시아대륙)과 충돌하여 그 동쪽에 달라붙은 것이라는 것이 최근의 유력한 설이다.
석회암층의 두께는 3~10㎞나 되며 노출면적은 55만㎢나 되어 한반도의 배를 훨씬 넘는다. 계림 일대는 고생대데번기(Devon紀·약 4억년전)에서 중생대 삼첩기 초기(약 2억5천만년전)에 생성된 것이고 그 서쪽의 운귀(雲貴)고원은 수억년전에 생성된 것으로 모두 오랜 땅이다. 계림일대에서는 퇴적층이 지금도 수평가까이에 유지되어 있으나 대개 플레이트의 미는 힘으로 쭈글쭈글하게 변형되어 있다.
석회암지대가 긴 세월에 걸쳐서 비바람에 씻기면 용해되어 독특한 용식(溶蝕지형-카르스트 Karst)경관을 만든다. 그러나 그 생성된 모양은 한결같지가 않다. 암석의 순도, 화학·광물적 성질 뿐만 아니라 치밀성 등의 영향에 따라 다르다. 특히 균열의 발달상태가 중요하다. 균열에 따라 빗물이 단단한 바위 속으로 스며들게 되기 때문이다.
또 땅속에 스며든 빗물의 용해능력도 장소에 따라 차이가 크다. 계림지방에서는 두께 1~10m 정도의 표토가 덮여있다. 빗물이 이 층을 통과할 때 부식된 식물이나 대기속의 탄산가스가 잘 녹아 들게 되므로 석회암에 대한 용해력이 높아진다.
화남의 기후는 온난다습하여 연간평균강수량이 1천7백~2천㎜를 넘는다. 몬순성의 비는 5~8월에 많고 때때로 집중호우가 된다.
환몽(幻夢)과 같은 풍광에 접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이런 계절의 이른 아침이다. 이 지방에서는 우기에 내린 강수의 7할 가까이가 지하로 스며들어 버린다. 거기다 연평균 섭씨 21도, 여름에는 39도까지나 되는 높은 기온도 원추상(圓錐狀·Cone) 카르스트를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런 카르스트 외에 움푹 팬 땅이나 지하동굴 지하천 용식균열등 여러 형태의 지형도 있다.
2백만년의 유구한 세월이 걸린 작품
그러면 계림의 원추상 카르스트가 생성된 과정을 좀더 상세히 살펴보자.
"창문을 열고 우러러 보면 높이 솟아 오똑한 돌들은 천길 넘는 벽과 같고 그 저쪽 맑게 개어 푸른 하늘이 더욱 새파랗구나"
이것은 청나라 시대의 시인이 읊은것이다. 그 높이 솟은 돌들의 경사는 60~80도나 되고 어떤 것은 거의 수직으로 서있다. 그런 석탑은 세계적으로도 열대에서 아열대에 걸친 곳에서 밖에 볼수 없다. 그것은 어떤 변화를 거쳐 이루어진 것일까.
비교적 요철이 적은 지표의 기복이 그 뒤의 변화의 기초가 된다. 그림A에서 나타난 것처럼 낮은 곳에는 석회분의 잔재가 괸다. 거기에 식물이 자라 주위에서 부터 풍화가 진전되어 토양으로 두껍게 덮인다. 지하로 스며든 빗물은 지표 아래의 상태가 약간의 차이가 나도 용해능력에 현저한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낮은 곳에서는 더욱 빠르게 용해가 진전된다.
이윽고 그림 B의 단계가 되면 스며든 빗물이 석회암의 균열된 틈을 채워 그 가장 위의 면-지하수면 가까이에 수평으로 동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지표에서 용식이 진전되어 커다란 요철이 생기면 지하수면은 더 내려간다. 이렇게되면 이전의 지하동굴안은 물이 말라 동굴의 성장이 멈춘다.
이어서 그림 C의 단계가 되면 원추 카르스트 사이에 충적저지(沖積低地)가 넓어져 계강(桂江)과 같은 완만한 흐름이 유유히 흐르게 된다.
산봉우리는 거치른 바위 표면이 노출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당나라시대의 시인이 '산은 벽옥 동곳같이…'라고 형용한 것 처럼 녹색으로 덮인다. 높이는 1백m에서 3백m 정도다. 자연이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화남 일대의 석회암지대가 해저에서 융기하여 풍화침식을 받기 시작한 것이 언제쯤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수수께끼를 푸는 몇가지 열쇠는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지금은 고립되어 서있는 원추 카르스트 내부에는 종횡으로 동굴이 뻗어있다. 그리고 계림시 서쪽에는 충적지 위에 수평동굴이 있고 그 가장 위의 것은 약 2백만년전에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오르면 푸른나무가지 끝에 이르러 그 난간으로 계주(桂州)가 다하고" "강은 청라(靑羅)띠를 두른듯"이라 읊어지고 있는 계강의 흐름에는 이런 2백만년의 세월이 깃들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