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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Ⅳ 생명과학자들의 최대고민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인가?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는 발견들이 줄을 잇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같은 행위를 거침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분자생물학의 급진적인 발달을 바탕으로 한 유전공학기법은 종전의 관념으로는 불가사의했던 기적같은 일들을 가시화해 가고 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이러한 것중 가장 간단한 보기를 들면 감자(potato)의 세포와 토마토(tomato)의 세포를 세포융합해 얻은 제3의 생물체인 포마토(pomato)가 있다.

한 식물체의 땅속부분에서는 감자가 열리고 지상줄기에서는 토마토가 열리는 괴물같은 식물은 유전공학기술의 위력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보기에 불과하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명체의 창조란 신(神)의 고유권능에 속하는 치밀한 분야로서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구역이다.

신이 창조한 모든 기존생물체는 식물도감이나 동물도감에 대개 수록되어 있으나 인간이 창조한 포마토는 신의 식물도감에서 빠져있고 앞으로 인간이 엮어나가게 될 두꺼운 인조(人造)식물도감의 어느 페이지엔가 삽입돼야 할 새로운 종(種)의 식물체다.

바야흐로 인간은 유전공학적인 기법으로 내밀한 신의 뒤뜰을 숨 죽인 채 넘겨다보고 있으며 오만불손하게도 신비에 싸여있는 생명의 창조라는 신의 고유권능에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수완, 즉 인간의 손의 능력은 새 생명체의 창조(혹은 생명체의 변조)라는 기능을 획득, 신의 손을 닮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손능력의 혁신적인 개발은 인격의 승화를 수반하는 것이 긴요하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유전공학기술은 인류에게 파멸을 초래할 판도라(Pandora)의 상자가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손이 신의 손을 닮아간다면 인간의 인격도 신의 신격으로 닮아가야 마땅하다.

만에 하나라도 인격이 수격(獸格)으로 타락한 과학자가 있어서 이러한 기법을 악용할 때는 인류의 운명은 술취한 운전사의 버스를 탄 격이 되는 것이다. 다소 비약한 감은 있으나 기본적으로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할 때 불가피하게 대두되는 것이 첨단생명과학 기술인 유전공학의 윤리성에 관한 문제다.

두개의 생명관

생명현상을 화학반응식이나 수식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생명이란 물질수준에서 해석될 수 없는 신비성을 갖는 것인가. 생기론자(生氣論者)는 생명을 물리화학적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혼적 요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기계론자(機械論者)는 정신작용까지도 생물체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물리화학적 변화의 절묘한 조화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면서 생명을 물질적인 요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의 장군멍군식 논쟁은 무척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감각성 흥분성 등이 유독 생물체에만 있는 점, 그리고 고등동물에서 보이는 기억 희로애락 등의 정신적인 문제를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기계론자의 약점이었다.

그런데 신경흥분 정도에 따른 생물전기현상이 점차로 알려지면서 기계론자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또 근래 기계론자를 아주 유리한 입장으로 몰고 간 분자생물학적 실험결과가 스웨덴과 미국의 교수팀에 의해 각각 보고됐다. 즉 스웨덴의 히든, 랑게교수팀은 쥐에서 기능에 대한 기억물질이 RNA핵산임을 밝혀냈다. 또 이 물질을 다른 쥐에 이식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기억도 옮겨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러한 지식이 더욱 개발돼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적용될 때 몇 십년에 걸친 학교교육도 기억은행에 보관돼 있는 기억물질의 주사로 간단히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비록 이러한 실험이 아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의 가치관 생명관에 충격적인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사람은 분자생물학적 시각으로 본 생명과학의 진보는 일종의 종교개혁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영국의 학술전문지인 네이처(Nature)지는 1982년판인 5893호에 실린 논문에서 미국의 워싱턴주립대학 펜실베이니어주립대학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및 솔크연구소가 공동연구를 통해 성공시킨 슈퍼생쥐(보통 생쥐의 경우 다 자랐을 때 암컷은 22g, 수컷은 26g인데 비해 이 슈퍼생쥐는 암컷 41g, 수컷 44g이었다)의 생산에 성공했음을 보도했다.

'송아지만한 돼지' '타조만한 닭'하는 식으로 상상해 나가다 보면 아주 유쾌해지지만 '6백만달러의 사나이'같은 초능력을 갖는 '거인 골리앗'까지 떠올리다 보면 섬칫해지지 않을 수 없다.
 

수정란을 둘로 나눠 인공수정에 사용, 유전적으로 동일한 쌍둥이 양이 태어났다.


남자가 아이를 낳는다

유전공학기법 중에는 세포융합촉진제(PEG, 센다이바이러스 등)나 전기장을 이용, 자발적으로는 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체세포나 성질이 다른 두 생식세포를 인공적으로 융합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건조지작물과 다수확작물의 세포융합으로 가뭄에도 견디고 수확량도 많은 작물을 개발하려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세포융합 시도는 식물간 뿐만 아니라 동물세포간에 혹은 동물세포와 식물세포간의 융합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브룩해븐(Brook Haven)국립연구소에서는 사람의 세포와 담배잎 세포의 융합을 성공시킨 바 있다. 또 스웨덴에서는 사람의 세포를 당근의 세포와 융합시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다른 생물세포간의 융합 실험의 성공사례는 장차 인체에 유용한 생리활성물질을 담배잎이나 당근에서 따낼 날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함축하고 있어 일편 고무적이다. 하지만 종(種)내에서만 전승돼야 할 유전자를 무질서하게 뒤죽박죽 헝클어 놓은, 다시말해 신의 엄격한 계율(戒律)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이기도 하므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불'(火)에 비유되기도 한다.

얼마전 일본의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는 침팬지에게 인간의 정자를 수정융합시켜 '원숭이 인간'의 탄생을 시도했다. 이미 그 초기단계에서의 성공을 학계에 보고한 바 있는데 찬사를 받기는 커녕 우리 인간의 악랄한 지적 호기심의 단면을 드러냈다는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성에 모멸감을 안겨주는 참담한 실험이었다. 모든 생명과학 기술은 양면의 칼과 같아서 쓰기에 따라서 사뭇 다른 효과를 유발한다.

수년전 프랑스의 바댕테(Badinter)여사가 '양쪽 모두'(L'un et L'autre)라는 저서를 통해 남성의 임신 가능성을 시사하자 구미(歐美)가 온통 이 문제를 최대화제로 삼은 적이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Le Monde) 독일의 디 자이트(Die Zeit) 미국의 뉴스위크지가 86년 7월에 이 토픽을 기사 또는 논평으로 다룸으로써 그 열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요컨대 그 원리는 남자의 복강(腹腔)벽에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수정란을 착상시키고 일정한 기간동안 여성호르몬주사의 도움으로 태아를 성숙시킨 뒤 개복(開腹)수술로 출산을 기도한다는 착안이었다. 물론 상당한 위험이 수반되기는 하지만 자궁외 복강임산부의 경우를 모델로 삼아 짐작해 보면 이론적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35세 이하의 프랑스 남성중 약 3분의 1이 가능하다면 임신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 일본 도쿄대에서는 태아의 성(性)을 결정하는 두 종류의 정자를 의도대로 분리, 선별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를 이미 실용화된 시험관아기(testtube baby)기법에 연결시킨다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리스신화속의 아마존(Amazon)여인촌도 실현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년에 와서 남아출산율이 현저히 높아간다고 한다. 여기에는 인위적인 조작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양수검사법이나 초음파에 의한 태아의 성감별(性鑑別)을 금하는 입법조치가 이루어졌다. 아무튼 생명과학기술은 인류의 존영을 위해 쓰여져야 하며 인륜을 어기거나 생물의 종(種)을 파괴하는 학문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1984년 6월 미국 생화학회에서는 한 놀라운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윌슨(Wilson)박사팀은 현재 절멸(絶滅)돼 지구에서 사라진 남아프리카 당나귀, 즉 구아가(Guagga)의 1백40년전 박제표본으로부터 이 동물의 DNA 일부의 지문을 채취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또 이 DNA를 유전공학적으로 재조합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는 이미 절멸된 고대 생물의 유전정보를 현생생물의 생체내에서 발현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위성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동물의 유전자를 지구에 이식, 발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암시하고 있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생명과학의 발전에 따른 혼란은 가족관계의 파경을 초래할 수도 있다.


복제생쥐가 등장해

암수개체를 달리하고 있는 식물은 벌이나 나비같은 곤충 또는 바람의 매개물 등을 통해 수분이 이루어져 씨앗을 맺고 자손을 남기고 있다. 이같은 수정 방법 외에도 식물은 삽목(꺾꽂이) 취목(휘묻이) 분주(分株) 등의 방법으로 복제돼 한 그루가 많은 복제그루로 될 수 있다.

동물에서는 이러한 복제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돼 왔으나 최근의 유전공학기법은 핵치환법(nuclear substitution)으로 동물의 복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미국의 거덴(Gurden)박사가 복제개구리의 창제에 성공한 데 이어 스웨덴의 호페(Hoppe)와 일렌세(Illensee)박사팀은 우리와 같은 포유류인 쥐에서 복제생쥐(클론생쥐)를 만드는 개가를 올린 바 있다.

이제 복제인간의 출현을 굳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우기기도 어렵게 되었다. 복제인간이란 성인의 몸을 이루고 있는 약 60조개의 세포중 어느 하나의 세포를 가지고도 한 개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때문에 생물학적인 자손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인 것이다. 생물체를 목적에 따라 양산(量産)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치명적인 반항일 수도 있다.

시험관내 수정을 통해 인류최초의 체외수정아 루이스 브라운(Louise Joy Brown)양이 1978년 영국에서 탄생된 이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는 체외수정과정에서 갖가지 인위적인 처리, 이를테면 유전자조작 세포핵치환 같은 기법을 인간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시험관아기에 부연해 떠오르는 것은 대리모(代理母)의 인권문제다. 산고(産苦)를 기피하는 어느 부인이 다른 여인을 고용, 자기의 자녀를 대신 출산케 했을 때 낳은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 사이에서 발생하는 권리 의무의 갈등이 사회문제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발생하는 대리모의 인권문제는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아기를 갖고자하는 부인이 액체질소의 정자은행(sperm bank)에 냉동보존된 성명미상의 과학자 예술가 철학자 등의 정자를 우생학적 관점에서 선별, 시험관 수정을 통해 임신 출산했을때 부계(父系) 중심의 기존 사회질서는 어떻게 되는가. 또한 두명의 아기를 원하는 부인이 같은 집안의 조상과 자손의 정자를 역순으로 사용, 시험관 수정을 통해 두 형제를 출산했을 경우 이때 태어난 두 형제의 계촌법(計寸法)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를 구체적으로 예시하지 않더라도 생명과학의 발전에 연유한 혼란들은 가족법과 기존사회질서에 파경을 초래할 개연성이 상존하고 있다.
 

인터페론의 생산라인. 어떤 제품이든 의약픔으로 인정받으려면 전임상 및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 시험을 통해 우리가 안심하고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여부가 판가름난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

유전공학 혹은 생명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가 안고 있는 난치병 식량문제 에너지문제 공해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하여, 제3의 혁명을 인류생활에 가져다 줄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가 지금까지 고찰한 바와 같이 반드시 정(正)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연의 섭리는 삼라만상속에 절묘한 균형과 조화가 자생(自生)하도록 자동조절시스템을 심어두고 있다. 만약 유전공학실험과정에서 새로운 변이형의 유해생물체가 생겨난다면 이는 생태계의 교란을 야기시켜 자연의 조화를 파괴할 것이다.

인간의 성비(性比)를 예로 하여 이러한 자연속의 내재율(內在律)을 살펴보자. 자연출산의 경우 남아의 출생률은 여아에 비해 높지만 유아기의 질병에 의한 남아의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장년이 되면 저절로 평형이 잡혀지게 돼 있다. 또 전쟁후엔 남아의 출생률이 자동적으로 현저히 높아져서 전몰희생으로 생긴 성비의 불균형이 교정되는 현상 등이 바로 자연의 내재율을 보여주는 산 증거다. 분자생물학에 기반을 둔 유전공학기술은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개척돼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태아의 성감별이 자연의 섭리를 깨는 자료로 활용된다면 이러한 일은 법의 힘으로라도 강하게 막아야 한다.

또한 유전공학기술은 생명의 존엄성을 토대로 한 철학의 바탕위에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이 생명체를 의도대로 할 수 있게 될 때 필연적으로 수반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의 소실은 현대 전통윤리관이나 가치관에 갈등과 동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인격이 신격에 접근하는 수준까지 끌어 올리는 작업을 함과 동시에 생명과학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199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한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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