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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공포는 사람을 편협하게 한다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32



감정은 무조건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을 가끔 접한다. 하지만 쉽게 단정 지을 만큼 감정이 단순하지는 않다. 어떤 감정은 이성보다 더 정확하고, 더 빨리 우리에게 정보를 주며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공포’는 거대한 적을 경고하고, ‘분노’는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본능적인 감정의 반응
은 빠르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생존에 필수적이다.

감정은 이처럼 매우 유용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지나치게 움츠러들게 만드는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적당한 공포로 몸을 사리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공포로 아무 일도 못해서는 안된다. 오늘은 공포의 이런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공포는 밖으로 향한다

우선 공포는 우리의 마음을 편협하게 만든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에게 죽음의 공포를 자세히 떠올리게 하고, 다른 참가자에게는 일상적인 일을 기억하게 했다. 그 후 참가자에게 함께 과제를 할 가상의 파트너의 프로필을 보여 주고 상대가 얼마나 똑똑하고 좋은 사람일 것 같은지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무서운 생각을 했던 참가자는 자신과 종교와 정치적 신념이 비슷한 파트너를 좋게 평가하고, 그렇지 않은 파트너를 나쁘게 평가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를 좋게 생각하고 다른 이를 배척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지만, 무서운 기억을 떠올린 참가자는 평범한 기억을 떠올렸던 참가자보다 그 경향이 더욱 심했다(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990, Vol. 58, No. 2, 308-318).

나아가 공포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결과도 있다. 죽음의 공포를 떠올린 사람은 그렇지않은 사람에 비해 자신이 속한 국가를 칭찬하는 사람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자기 국가를 비난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실험에서 잠시 막연한 공포를 생각한 것만으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실제 공포는 실험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공포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배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불확실성을 잘 견디지못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한민족’과 같은 민족주의적인 가치를 선호한다. 피부색이 같은 사람에게 더 후한 평가를 내리고 다른 사람은 좋지 않게 봤다(Psychol Rev.2006 Jan;113(1):84-100). 또 다른 연구에서는 죽음의 공포를 떠올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국민을 돕기 위한 일에는 더 많은 돈을 기부하지만, 외국인을 돕는 데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는 결과도 있었다. 위의 결과들은 공포가 나와 가까운 이에게만 선택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증거다.

등잔 밑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

물론 이런 행동이 잠재적인 위협을 색출하고 믿음직한 사람과 단결해 눈앞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만 선택적으로 돕는 것은 믿을 만한 사람을 선별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여 위기 해결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외부인에 대한 지나친 배척과 맹목적인 민족
주의는 소수와 약자를 탄압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포에서 태어난 배타심은 본인의 집단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위기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본인이 속한 내부집단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깡그리 무시한 채 외부인에게 모든 잘못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대 심리학자 존 조스트 교수는 공포를 느끼면, 똑같이 나쁜 일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나쁜 대상보다 익숙한 나쁜 대상을 더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doi: 10.1111/j.0963-7214.2005.00377.x). 기왕 해코지를 당하더라도 ‘아는 놈한테 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모든 문제를 이방인에게 돌리며 국경을 닫고 우리만 잘 살아보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한 정치인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다. 그런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정말로 무섭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 모른다. 어려울 때일수록 공포의 이점을 취하고, 그 부작용은 면밀히 살피며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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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작가
  • 에디터

    송준섭
  • 일러스트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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