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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다. 염기서열은 1만 개 정도로, 1만8000개인 에볼라보다 짧다. 염기서열은 ‘막 단백질(membrane protein)’ 같이 형태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NS1, NS2A 같이 기능을 하는 단백질로 크게 나뉜다. 기능성 단백질은 숙주 내에서 바이러스 유전자를 복제하고 다시 조립하는 역할을 한다. 지름은 40~60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로 보통 인간세포보다 200분의 1이나 작다.
지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게 된 것 같지만, 사람에 비유하면 간단한 인상착의 정도다. ‘키가 170cm, 몸무게 70kg의 남성이 범인이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최신 정보가 아닌, 대유행 전에 밝혀진 사실이 대부분이다. 지카바이러스를 ‘검거’하기 위해서는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지카의 침입 흔적 : 성관계와 컨페더레이션스 컵
영화 속에서 사건을 맡은 수사팀이 현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침입 경로다. 지카바이러스도 얼마 전까지 정확한 감염 경로가 논란이었다. 모기에 물리거나, 감염된 환자의 혈액을 수혈 받았을 때 감염된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성관계를 통해 전염되는지가 쟁점이었다. 그런데 올해 2월 27일 프랑스 정부가 처음으로 성관계에 의해 환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이들의 자세한 정보가 처음 공개됐다 (doi:10.1056/NEJMc1604449).
프랑스 파리에 사는 24세 여성은 2월 23일 고열, 근육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내원했다. 그녀는 최근에 수혈을 받은 적이 없으며, 지카바이러스 발생지역을 여행한 적도 없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여행한 곳은 일본 오키나와였다.
지카바이러스와 그녀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얼마 전 브라질에서 돌아온 46세 남자친구였다. 그는 파리에 돌아오기 직전부터 고열과 발진에 시달렸지만 2월 23일 여자 친구와 함께 병원을 찾았을 때는 모두 회복된 상태였다. 그들은 2월 11일부터 몇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의료진은 23일 두 사람의 침과 소변을 채취해 검사를 했고, 두 사람 모두에게서 지카바이러스의 RNA를 발견했다. 주목할 점은 남자의 경우 첫 증상이 나타난 지 2주 뒤에도 소변에서 RNA가 검출됐다는 것이다. 약 20일이 지난 3월 2일에도 남자의 정액에서 RNA가 발견됐다. 성관계에 의한 감염이 확인된 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지역을 다녀온 남성은 증상이 없더라도 반드시 8주 이상 콘돔을 사용하기를 권고했다.
현장 검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지문 감식이다. 바이러스는 유전자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지카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 분석 결과도 10건 이상 나왔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China CDC)는 중국 본토에 올해 2월 처음으로 상륙한 지카바이러스의 서열을 분석했고, 가장 피해가 큰 브라질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서열을 분석한 결과도 서너 건 이상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치명적인 돌연변이는 보고되지 않았다.
유전자 서열을 기반으로 한 연구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영국 옥스퍼드대와 브라질 에반도르 샤가스 연구소 공동연구팀이 4월 15일 ‘사이언스’에 발표한 결과다(Science 15 Apr 2016: Vol. 352, Issue 6283, pp. 345-349). 이들은 브라질에서 채취한 7개의 바이러스 샘플의 시간을 거꾸로 추적해 브라질에 지카바이러스가 최초로 상륙한 것이 2013년 5~12월 사이라고 추정했다. 이 시기는 바이러스가 이미 유행하던 지역에서 브라질로 입국하는 여행객이 증가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2012년 후반부터 지카바이러스 유행 국가에서 브라질을 방문한 방문객 수가 50% 이상 증가했다. 브라질의 지카바이러스는 앞서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했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바이러스와 서열이 가장 유사했다. 때문에 연구팀은 2013년 6월에 브라질에서 열린 피파 컨페더레이션스컵을 방문했던 폴리네시아 여행객이 브라질에 바이러스를 옮긴 보균자일 수 있다고 추정했지만, 확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성적 감염 첫 발견 프랑스 파리에 사는 24세 여성은 성접촉으로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진 첫 사례다. 그녀는 브라질에서 돌아온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9일 뒤에 첫 증상이 시작됐다. 주목할 점은 증상이 시작된 지 거의 20일이 지나서도 남자친구의 정액과 소변에서 지카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것이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5/S201606N035_2.jpg)
지카의 몽타주 : 독특한 글리코실화 패턴
두 번째 단서는 겉모습이다. 범인을 잡을 때 몽타주를 그리는 것처럼 생명과학자들도 지카바이러스의 생김새 파악에 나서고 있다. 구조를 정확히 알면 약점을 파악할 수 있어 백신이나 신약을 개발할 때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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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카바이러스는 너무 작아서 광학현미경으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가시광선 파장의 절반 거리(약 200nm)보다 크기가 작은 물체에 반사된 가시광선은 현미경 렌즈를 통과하며 보강·상쇄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구조생물학자는 이런 가시광선의 한계를 넘어 구조를 파악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구조를 파악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X선 결정법이다. X선 결정법은 우선 단백질을 차곡차곡 쌓아 결정을 만든 뒤 고에너지 X선을 쏜다. X선은 결정과 충돌하면서 흩어지고 우리는 이 흔적을 측정할 수 있다. 단백질 결정 뒤쪽의 평면에 산란된 모양을 수학적인 방법을 통해 3차원으로 바꿔 구조를 알아낸다.
지카바이러스에도 X선 결정법이 사용됐다. 숙주세포를 활용해 유전정보를 복제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NS1 단백질의 구조가 4월 18일 ‘네이처 구조분자생물학 온라인판’에 발표됐다(doi:10.1038/nsmb.3213). 지카와 같은 플라비바이러스에 속하는 뎅기열이나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단백질인데, 지카 NS1 단백질의 전체적인 구조 역시 다른 바이러스와 비슷했다. 다만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들이 중앙에서 꼬인 고리(loop) 구조의 전기적 분포가 달랐다. 뎅기열은 이 부분이 양의 전하를,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는 음의 전하를 띤다. 지카는 표면이 조금 더 복잡한 구조로 양전하와 음전하가 섞여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전기적 분포 때문에 NS1에 작용하는 백신이나 약물이 지카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X선 결정법은 널리 쓰이는 방법이지만 몇 가지 단점이 있다. 특히 단백질 결정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로 꼽히는데,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M)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낮은 해상도 때문에 잘 사용되지 않았지만 장비와 이미지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이제는 Cryo-EM으로도 4Å(옹스트롬, 0.1nm)까지 구분할 수 있는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Cryo-EM으로 지카바이러스의 구조를 알아낸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와 ‘네이처’의 온라인판에 각각 3월31일과 4월 19일에 발표됐다.
사이언스에 먼저 결과를 발표한 미국 퍼듀대 연구팀은 고해상도 이미지로 지카바이러스 껍질의 특이한 글리코실화 패턴을 확인했다(doi: 10.1126/science.aaf5316). 글리코실화는 아미노산 외에 당 성분이 단백질에 추가로 붙는 것을 의미하는데, 바이러스는 이 부위를 숙주 세포에 결합하는 닻으로 활용하곤 한다. 유괴범이 달콤한 사탕으로 순진한 아이들을 유인하는 수법과 비슷하다.
네이처에 연구 결과를 발표한 싱가포르 듀크-싱가포르 의학전문대학원 연구팀은 지카바이러스의 열역학적 안정성에 주목했다(doi:10.1038/nature17994). 지카바이러스는 뎅기열과 달리 40℃에 가까운 고온도 잘 견디는데, 고해상도 이미지로 껍질 단백질을 살펴본 결과 다른 바이러스보다 껍질 부분이 보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런 탄탄한 구조가 정자나 소변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는 비결이라고 추측했다. 연구팀은 고해상도 구조를 활용해 지카를 잡을 수 있는 항체를 연구 중이다.
범행 수법 : 분화 중인 피질세포만 노린다
마지막 퍼즐은 범행 수법이다. 지카바이러스가 유산이나 소두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실험쥐에서도 지카바이러스가 발생을 억제한다는 결과가 학술지 ‘셀’에 발표되기도 했다(doi:10.1016/j.cell.2016.05.008). 그러나 지카바이러스가 정확히 어떤 세포를 언제 어떻게 공격해서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태아의 발생을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도 연구가 어려웠다.
과학자들은 ‘오가노이드(organoid)’로 돌파구를 찾았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든, 조직과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는 3차원 세포 집합체다. 체외에서도 체내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지카바이러스가 오가노이드로 만든 미니 뇌의 발생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doi:org/10.1016/j.cell.2016.04.032). 연구팀은 3D 프린터를 활용해 오가노이드가 잘 자랄 수 있는 생체반응로를 만들었다. 이곳에 줄기세포로 작은 뇌 조직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조직이 완전한 성체로 자라는 동안 바이러스에 감염시켰다. 그 결과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오가노이드는 정상보다 뉴런을 적게 만들었고 조직의 크기도 작아졌다. 이미 알려진 대로 임신 초기에 가장 치명적이었으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졌던 임신 중기에도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았다.
UC샌디에이고 연구팀은 조금 더 범위를 좁혔다. 이들은 미니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성체 피질세포와 함께 바이러스에 감염시켰다. 그 결과 성인 피질세포보다 발달 중인 피질세포가 더 많이 죽었고, 세포분열 과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doi:10.1016/j.stem.2016.04.014). 오가노이드 간 비교를 했을 때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피질세포는 그렇지 않은 세포보다 성장이 6% 가량 떨어졌다.
정리하면 지카바이러스가 소두증을 유발하고, 특히 뇌의 발생 과정에 치명적이라는 것은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그럼에도 지카 검거까지는 아직은 길이 멀다. 예를 들어, 지카가 산모에서 태아로 넘어가는 과정은 미스터리다. 태반을 통해 넘어간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경세포에 침투한 뒤 어떻게 세포를 망가뜨리는지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자가 면역반응을 일으켜 스스로 자살을 하게끔 한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지만 증거가 더 필요하다. 브라질 정부는 올해 안에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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