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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생태계 민통선 희귀식물

향로봉 일대에서 황철나무 서식 첫 확인

동아 사이언스와 동아일보 문화센터가 주최하는 중∙고교 과학교사를 위한‘ 자연생태계 학습탐사’가 SK의 후원으로 4년만에 재개됐다. 과학동아는 지난 7월30일부터 8월3일까지 4박5일 동안 16명의 과학교사와 함께강원도 민통선지역을 탐사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의 보고로남아있는 분단의 현장에서 흔한 들꽃에서부터 희귀종까지 다양한 식물을 만났다.

민통선! 왠지 가슴 한구석을 찡하게 하는 단어다. 민통선지역은 민간인통제선 북방지역(CCZ, civillan control zone)의 약자다. 말 그대로 지난 50여년 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농사도 짓지만, 많은 곳이 비무장지대(DMZ)와 마찬가지로 지뢰로 덮여있다. 민통선지역은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잉태된 곳이지만 개발이 제한된 만큼 자연생태계가 보존되고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이번 생태탐사는 강원도 민통선지역 가운데 해안과 습지, 그리고 내륙평지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다양한 식물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민통선지역을 3개 지역으로 나눠 각각의 식생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한꺼번에 비교하는 탐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황철나무, 부채붓꽃, 금강초롱, 쥐방울덩굴, 눈양지꽃 등과 같이 국내에서 보기 힘든 식물을 만나기도 했다.

제1일 열매에서 짠맛 나는 붉나무
 

진부령 부근에서 만난 마타리(Patrinia scabiosaefolia) 군락. 키가 60- 1백50cm로 비교적 크다.


7월30일 오전 10시 16개 시도에서 선발된 제21회 자연생태계 탐사팀이 장대비를 뚫고 강원도 민통선지역으로 힘차게 출발했다. 빗길에도 불구하고 진부령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예정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마전선도 탐사팀이 도착하자 잠시 쉬어가는 듯했다. 탐사팀은 여장을 풀자마자 숙소 뒤쪽으로 예비 탐사를 떠났다. 해발 5백70m인 이곳은 백두대간의 능선에 위치한다. 멀리 남쪽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봉우리인 마산(높이 1천52m)이 보였다.

처음 만난 것은 자작나무와 토끼풀. 자작나무는 잘 몰라도 토끼풀은 흔하게 보던 식물이라 친근한 눈길이 갔다. “여기에 심겨진 자작나무는 우리 고유종이 아니라 조경용으로 들여온 외국산의 일종 베르코사자작나무이고, 토끼풀은 원래 북유럽에서 들어와 우리 땅에 정착한 귀화종”이라는 탐사팀 지도교수 이병천 박사의 설명을 듣자 몇몇 대원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자세히 보니 토끼풀에 피어난 꽃이 하얀색 외에 붉은색도 보였다. 이름도 붉은 토끼풀이란다. 토끼풀 군락 가운데 우뚝 솟은 식물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보니 줄기에 온통 짧은 가시털이 있는데, 바로 돼지풀이었다. 이박사는 “이것도 6.25 동란기에 미군의 구호물품인 밀을 들여올 때 씨가 같이 딸려온 귀화종”이라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토끼풀은 토끼가 알아서 잘 먹지만, 돼지풀은 꽃가루가 많이 나와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때문에 돼지에게도 안먹인단다.

젖은 풀숲가에는 억새와 비슷하게 생긴 큰기름새가 이슬비를 맞으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자리를 옮겨가자 비교적 키가 크고 노란 꽃이 예쁘게 핀 식물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마타리란 이름을 듣자 이들이 전설적인 독일의 미녀 첩보원 마타하리처럼 도도하게 하늘을 향한 듯이 보였다. 대원들은 몇무리로 나눠 이동했는데, 한무리는 열매에서 소금맛이 난다는 나무 둘레에 모였다. 다름아닌 붉나무였다. 붉나무의 열매는 자라면서 흰가루로 뒤덮이는데, 여기에 짠맛을 내는 칼륨성분이 많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것은 씨앗이 성숙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즉 동물에게 먹히지 않고 곰팡이가 피는 것을 막는다. 또한 씨앗이 천천히 발아하도록 만든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에서 터득한 붉나무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이 밖에 진부령 부근에서는 도라지, 산수유, 개망초, 산고들빼기 등 말로만 듣던 식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다릅나무, 노루오줌, 물레나물, 꽃며느리밥풀, 금꿩의다리, 타래난초, 꽃창포 등 희한한 이름을 지닌 식물을 만날 수 있었다. 목재의 안쪽과 바깥쪽 부분이 색깔이 다르다는 의미에서 원래 다른나무였다가 개명된 다릅나무, 뿌리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 노루오줌, 실을 잣는 물레를 연상시키는 물레나물, 끝부분이 입술처럼 생긴 꽃잎에 유독 수술 두개만이 커 밥풀처럼 보이는 꽃며느리밥풀, 줄기가 아주 가늘어 하늘하늘한 꿩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금꿩의다리, 꽃이 실타래처럼 꼬이면서 피는 타래난초, 조상이 단오에 끓인 물에 넣고 머리를 감던 창포와 비슷한 꽃창포. 이 중 금꿩의다리와 꽃창포는 습지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다.

저녁 시간에는 우리 땅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슬라이드쇼가 이어졌다. 이를 준비한 이박사는 대원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꽃과 나무가 외국으로 무분별하게 유출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식용식물 중에서는 얼레지, 곰취와 같은 일부 종류만 집중적으로 채집돼 훼손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사실 얼레지와 같은 산나물이 항암제로 효과가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었다.

제2일 며느리밑씻개에 가시가 많은 이유
 

화진포 해안에서 만난 순비기나무(Vitex rotundifolia). 바닷가 모래땅에서 옆으로 자라면서 뿌리가 내리 고, 보통 커다란 군락을 형성한다. 달걀 모양의 잎과 입 술 모양의 보라색 꽃이 인상적이다.


7월31일 아침 걱정했던 큰비는 오지 않았다. 드디어 민통선지역으로 탐사를 떠났다. 일정은 동해안 일대의 식생을 살펴볼 계획. 오전 9시30분 민통선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대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새벽까지도 장마비가 제법 내렸기 때문에 출입허가가 쉽게 나지 않았다. 많은 비로 인해 민통선지역 안전지대로 지뢰가 흘러나왔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 다행히 민통선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엔 굵은 빗방울이 앞을 가로막았다. 물론 탐사팀은 이에 굴하지 않고 우의와 우산으로 무장한 채 고성군 송현천 계곡으로 식생 조사를 나섰다. 맨먼저 탐사팀을 반기는 것은 고고하게 피어난 노란빛이 도는 붉은색 꽃이었다. 참나리였다.

얼마쯤 갔을까. 길가에서 참나무의 일종인 신갈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이병천 박사는 잎을 만지며, “잎뿌리가 귀를 닮은 것(이저, 耳底)은 참나무 중에서 신갈과 떡갈나무인데, 이렇게 잎 뒷면에 털이 없어 잎의 앞뒤 색깔이 같은 것이 바로 신갈나무”라고 설명했다. 반면 떡갈나무는 잎 뒷면에 털이 있어 잎의 앞뒤 색깔이 다르다. 참나무 중 잎뿌리가 날카로운 것은(예저, 銳底) 갈참과 졸참나무나, 잎모양이 긴 타원형인 굴참과 상수리나무의 구별방법도 이와 비슷하다. 갈참과 졸참나무 중 갈참나무가, 굴참과 상수리나무 중 상수리나무가 털이 없어 잎의 앞뒤 색깔이 같다. 물론 졸참과 굴참나무는 잎 뒷면에 털이 있어 앞뒤 색깔이 다르다.

고갯길을 올라 부처꽃, 층층이꽃, 개박하, 나비나물, 댕댕이덩굴, 쥐손이풀 등을 지나치자 초롱처럼 생긴 잔대가 탐사팀을 마중나왔고, 잎 모양은 고사리와 같지만 크기가 자그마한 처녀고사리가 조신하게 잎을 드리우고 서있었다. 또 며느리밑씻개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풀도 탐사망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줄기에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을뿐만 아니라 긴 삼각형 모양의 잎에도 잔가시가 많이 보였다.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던 며느리가 죽어서 핀 꽃이 꽃며느리밥풀이라고 하는데, 옛날엔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이런 잎과 줄기로 밑을 닦으라고 며느리에게 줬을까.

길모퉁이를 돌아 꿩의다리, 인동덩굴(정식명칭이 인동초가 아니다), 버드나무, 개암나무 등을 조사하자 동행한 정훈장교가 길을 막아선다. 비가 많이 와 더이상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 같았다. 일단 탐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해금강과 금강산이 보인다는 통일전망대를 들렀다.

민통선을 빠져나온 탐사팀은 오후에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먼저 고성군 명파리 해안을 조사했다. 이곳은 배봉천이라는 하천과 연결되는 곳이다. 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갯방풍, 갯완두, 갯메꽃, 해란초 등을 만났다. 다음은 화진포 해안을 찾아갔다. 역시 해안 식물인 순비기나무와 해국이 군락을 지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북쪽 습지대에만 사는 희귀종인 부채붓꽃을 발견했다. 한쪽 평지에서는 금불초, 벌노랑이가 노란 꽃을 뽐내며 경쟁하고 있었다. 또한 바닷물 속에 뛰어든 일부 대원들은 다시마, 우뭇가사리뿐만 아니라 창자처럼 생긴 창자파래를 건져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고성군 학야리 습지대에 들렀다. 탐사팀은 마치 정글의 습지를 지나듯이 풀숲을 헤치고 나갔다. 습지식물인 털부처꽃, 부들, 송이고랭이 등이 발견됐는데, 이 가운데 털부처꽃이 대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갑작스런 소나기가 탐사팀을 숙소로 재촉했다. 하지만 탐사팀 중 열혈 대원들은 숙소로 돌아온 저녁시간에도 낮 동안 채집해온 식물을 동정(同定)하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제3일 귀여운 동자꽃에 얽힌 슬픈사연
 

스님을 기다리다 얼어죽은 동자의 슬픈 얘기를 간직한 동자꽃(Lychnis cognata). 주황색 꽃은 어린 동자의 얼 굴일까.
 

8월1일 다행히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뉴스시간에 흘러나왔다. 원래 최종목적지는 향로봉이었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동안 비로 인해 길이 파헤쳐져 차로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향로봉 지대인 칠절봉을 목표로 두고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야 했다. 그래도 날씨는 등산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구름이 오락가락하며 따가운 햇살과 숨바꼭질을 했다.

산을 오르며 이틀 동안 배웠던 풀과 나무 이름을 복습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미역줄나무, 서어나무, 굴참나무, 지렁쿠나무, 피나무, 가래나무, 버드나무 등이 여기저기서 탐사팀을 기다렸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국화로 지정된 함박꽃이 꽃은 지고 잎과 붉은 열매자루만 달고서 길섶에서 아는 체 했고, 닭의장풀(달개비)은 하늘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탐사팀 중 안필헌 교사가 식물을 동정하는 방법을 일러줬다. “잎이나 줄기를 짓이겨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물론 참당귀로 오인해 사고가 잦은 지리강활과 같은 독초는 맛보면 안된다. 생강나무의 가지를 자르자 진짜 생강냄새가 났다. 이번엔 박대호 교사가 생강나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강원도가 배경인 김유정의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사실 생강나무꽃”이라고 말했다. 생강나무 열매에서도 기름을 짜는데 동백나무가 살지 않는 북쪽지방에서는 이를 동백기름이라 불렀고, 자연스레 생강나무꽃도 동백꽃이라 불렸다는 것. 물론 자세한 정황은 확인해봐야 할 듯 싶다.

어느 정도 높이에 이르자 홀로 산다는 의미인 독활(獨活)이라는 약간은 거만한 이름의 산악식물이 나타났고, 주황색 꽃이 귀엽게 핀 동자꽃이 눈에 들어왔다. 이병천 박사는 빙 둘러싼 대원들에게 동자꽃에 얽힌 얘기 한토막을 들려줬다. 옛날 강원도 산골짜기 어느 자그마한 암자에 스님과 동자가 살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스님은 한겨울 동안 먹고살 식량을 시주받기 위해 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마을로 내려간 스님은 엄청나게 내린 눈을 만나 약속한 날짜까지 암자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암자 마당끝 언덕에서 기다리던 동자는 그만 얼어죽고 말았다. 늦게 돌아온 스님은 죽은 동자를 발견하고 땅에 묻어줬다. 그랬더니 무덤가에선 그해 여름부터 동자의 얼굴을 닮은 꽃이 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꽃을 동자꽃이라 불렀다고 한다.

사진기자와 동자꽃에 대해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데, 저만치 앞서 간 일행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난 걸까. 이박사는 꽤 키가 큰 나무 앞에 서서 흔하지 않은 나무라며 설명했다. “이름은 황철나무로 버드나무 종류 중에서는 가장 큰 나무”라며 “주로 개마고원, 백두산 등 북한 산악지역에 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과 개방산에서만 자생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한 “향로봉 일대에서는 이번 탐사를 통해 처음 확인된 것”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황철나무가 여럿 보였다.

좀더 오르자 보라색 꽃들이 서로의 미모를 뽐냈다. 꽃대에 하얀색이 도는 것은 물봉선이었고, 밥풀처럼 두개의 수술이 돋보이는 것은 새며느리밥풀이었다. 자세히 보니 ‘밥풀’의 색이 보라색으로 꽃며느리밥풀 색인 하얀색과는 달랐다. 건너편 길섶에는 해발 8백m 이상에만 자란다는 시닥나무가 묵묵히 서있었다.

이때 갑자기 안개구름이 몰려왔다. 뿌연 안개 속에서 초롱처럼 생긴 꽃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도라지꽃처럼 보라색 꽃을 피운 것은 도라지모싯대, 모양은 비슷하지만 흰색 꽃을 피운 것은 흰모싯대, 모싯대와 달리 꽃모양이 종처럼 생긴 금강초롱이 신비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금강초롱은 오대산에서 금강산에 이르는 강원도 북부산악지역에만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이다.

탐사팀은 한바탕 소나기를 맞으며 해발 1천1백72m 높이의 칠절봉 정상에 올랐다. 소나기가 그치자 동행한 정훈장교가 향로봉 일대를 설명했다. 아쉽게도 동굴봉(높이 1천3백30m)에 가려 향로봉(높이 1천2백96m)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하산하면서 정상에 걸린 구름이 향로 연기같은 향로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4 · 5일 아기 젖 뗄 때 사용한 소태나무
 

향로봉에서 발견된 희귀종 왜솜다리(Leontopodium japonicum). 소백산 이북 백두대간을 따라 자생한다. 서양 에서는 천사가 남기고 간 꽃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에델 바이스로 불린다. 아쉽게도 이번 탐사는 날씨 때문에 향로 봉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8월2일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게 내리쪼였다. 목표는 철책 바로 앞에 있는 내륙평지의 식생 탐사. 민통선을 지나자 최전방 GOP(일반전초, general outpost)가 보였다. 이를 뒤로 하고 4륜구동 차량으로 갈아탔다. 비포장 산악길을 올랐다. 돌부리라도 만나면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위험한 산모롱이를 돌 때면 저만치 보이던 수풀이 아찔할 정도로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산골짜기는 버드나무, 아카시나무(흔히 아카시아로 잘못 부른다), 소나무 등이 우거진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소나무 군락이인상적이었다. 보통 소나무는 최고로 자라야 키가 20m 정도인데, 이곳의 소나무키는 이를 훌쩍 넘어 25-30m나 된다. 아마도 경사가 급한 지역이라 좀더 햇빛을 잘 받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20-30분 동안 높이가 7백-8백m 정도 되는 산봉우리를 넘자 너른 평지가 나오고 작은 군부대도 보였다. 고성군 사천리 일대였다. 점심 식사 후 탐사팀은 비무장지대를 알리는 철책 앞까지 식물 조사에 나섰다. 칡덩굴에 꽃이 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시나무도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면 나뭇가지가 진짜 사시나무 떨 듯 흔들렸다. 철책 앞에 서자 더 이상 못 간다는 정훈참모의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탐사팀은 발길을 돌려 조금 전 차로 내려왔던 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길 양쪽 철조망엔 지뢰라는 푯말이 눈에 띄었다. 지뢰가 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표시였다. 탐사팀은 단지 손만 뻗어 풀과 나무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키버들과 갯버들이 길가에 많았다.

무척 단단해 다듬이 방망이를 만들던 박달나무와, 물고기를 잡는데 쓰는 작살을 만들던 작살나무를 지나자 이병천 박사는 대원 몇명에게 맛을 보라며 어떤 나무의 껍질을 줬다. 그런데 맛을 봤던 교사들의 표정이 모두 일그러졌다. 다름아닌 소태나무였다. 매우 쓴 것을 가리켜 ‘소태보다 쓰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바로 그 주인공이 소태나무다. 얼마나 쓰면 예전엔 아기에게 젖을 뗄 때 이용했을까.

길섶 철조망 위에 이상한 모양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 철조망에 걸어둔 뱀껍질에 벌들이 모여 벌집을 짓는 것이 아닌가. 그들에겐 철조망이 자연의 일부인 모양이다. 좀더 올라가니 잎모양이 박쥐를 닮은 박쥐나물, 전체모양이 우산을 닮은 우산나물, 꽃잎의 모양이 나비를 닮았다는 나비나물이 나타났다. 또한 줄기가 화살대의 뒷모습을 닮은 화살나무도 보였다.

오후 4시쯤 되자 정훈참모는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돌아가는 길이 멀어서 더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산에서는 금방 어두워지기 때문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쿵쾅거리며 넘었고 다시 차를 갈아타고서 민통선지역을 빠져나왔다. 도중에 잠깐 민통선지역에 내려 열매를 비비면 오이 냄새가 난다는 오이풀, 비교적 흔하지 않은 평지식물인 야산고비와 쥐방울덩굴의 자생을 확인했다. 숙소에 돌아오자 다시 밤안개가 피어올랐다.

8월3일 오전 4박5일의 이번 탐사를 평가하는 짧은 좌담회가 열렸다. 참가한 교사들 모두 한결같이 이번 탐사를 통해 익힌 내용을 학교에 돌아가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히 비가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짧은 일정 속에서 열정과 열의를 다해 다양한 식물을 한꺼번에 조사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탐사에서는 4백여종의 식물을 동정했다.

희귀종인 부채붓꽃 군락이 파헤쳐져 있어 안타깝다는 의견에서부터 희귀종인지 잘 모르고 부채붓꽃이나 눈양지꽃을 채집한 일이 후회된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특히 김철수 교사는“민통선지역에 대한 선입견을 깼다”며“이곳에서도 우리 지역에 사는 식물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민통선지역에 자생하는 키큰 소나무는 산업가치가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탐사의 지도교수였던 이병천 박사는“교사들이 식물의 한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00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 사진

    정경택 기자
  • 사진

    이병천 임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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