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는 SF 추리 소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7월에 출간될 ‘깨어난 괴물(익스팬스시리즈1)’은 이미 미국 Syfy 채널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얻은 소설입니다. 지구와 화성, 벨터의 갈등으로 괴생명체, ‘포에베 버그’가 태어나게 되고, 줄리는 여기에 감염되고 말죠. 그런데 말입니다. 화성이나 소행성 등 우주복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에서 인간을 감염시키는 생명체가 살 수 있을까요.
사람을 감염시키는 병원체는 크게 세균(박테리아)과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둘 모두 유전 물질인 DNA(혹은 RNA)를 가지고 있죠. 하지만 균은 독자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생명체고, 바이러스는 숙주가 없으면 물질대사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큽니다. 바이러스의 숙주는 균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포에베 버그가 균인지 바이러스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소설 속 줄리가 남긴 문서에 단서가 있습니다.
‘나는 포에베 버그에 감염됐다. 어떻게 그랬는지는 확신이 안 가지만 갈색 오물이 사방에 있었다. 그건 혐기성이니 어딘가에서 접촉했음이 틀림없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두 개있습니다. 바로 ‘갈색 오물’과 ‘혐기성’입니다. 먼저 혐기성은 대사 과정에서 산소가 필요하지 않거나 산소를 싫어하는 성질입니다. 혐기성 세균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
을 겁니다. 식중독의 원인인 보툴리누스균이 대표적인 혐기성 세균입니다.
혐기성 세균은 있어도 바이러스는 없어
반면 혐기성 바이러스라는 말은 생소합니다. 바이러스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숙주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생존에는 산소의 유무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때문에 바이러스 앞에 혐기성을 붙이는 것은 어색한 표현입니다.
더구나 갈색 오물에 의해 감염이 됐다는 줄리의 기록을 보면 포에베 버그의 정체가 세균일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계속 언급했듯이 바이러스는 숙주인 사람이 죽고 나면 더 이상 물질대사를 할 수 없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인 바이러스는 생명체로서의 활동을 멈추고 존재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숙주로 하는 감염 바이러스 중 일부는 숙주가 사망하고 곧 죽어 버리죠. 포에베 버그가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라면 갈색 오물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 포에베 버그가 균이라고 해봅시다. 포에베는 1898년에 발견된 토성의 위성으로 표면 온도는 영하 198°C 입니다. 표면은 얼음과 고체 이산화탄소(드라이아이스) 등의 휘발성 물질로 이뤄져 있죠. 포에베 버그는 이 행성에서 퍼지기 시작한 생명체입니다. 과연 이런 극한 환경에서도 세균이 살 수 있을까요.
방사능과 극저온에서도 살아남는 세균
지구에서는 1990년대부터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세균이 발견됐습니다. 그 중에는 강한 방사능을 견딜 수 있는 세균도 있습니다.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가 대표적입니다. 스스로 DNA 조각을 연결시켜 생체를 복구시킬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방사능 물질이 있는 곳에서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주
는 지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한 방사능에 노출된 환경이기는 하지만요. 낮은 온도에서 살아가는 저온성 세균도 있습니다. 극지에서 사는 생물입니다. 이유경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미생물이 발견된 가장 은 영하 89.2°C”라고 말했습니다.
지구를 기준으로 보자면 포에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균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미생물은 지구로만 한정해도 전체 미생물의 1% 밖에 안됩니다. 가능성은 직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번 화는 아쉽게도 소설의 설정을 완벽하게 반박하지는 못했네요. 언젠가 지구인들이 행성을 활발하게 오고 가는 날이 온다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