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Knowledge] 산사태 예측, 그 어려운 걸 꼭 해내겠답니다


장마철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산사태의 90%가 집중되는 시기다. 5년 전 18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우면산 산사태(사진)와 13명의 사망자를 낸 춘천 마적산 산사태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7월에 일어났다. 사전 예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자연재해 예측은 변수가 너무 많아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반드시 해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등산복과 스틱을 꼭 챙기라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산이 높아 봤자’라는 생각으로 반팔과 반바지, 그리고 카메라를 챙겼다(집을 나서기 전 가방에서 노트북을 빼놓은 건 최근 기자가 내린 판단 중 가장 탁월한 결정이었다).

동행하는 연구진의 ‘예보’를 무시한 결과는 참혹했다. 왜 동물들이 네 발로 산을 오르는지 절감했다. 소리만 들으면 마치 히말라야 고산을 등반하는 산악인인 줄 착각할 정도로, 기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네발(?)로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홀로 반팔과 반바지를 입었다는 데서 오는 민망함은 덤이었다(지금 기사를 쓰면서 팔에서 ‘허물’을 벗겨내고 있다).

그렇게 기자는 6월 2~3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 지질환경융합연구센터가 지리산에 설치한 산사태 관측 시설을 점검하는 데 동행했다. 우면산과 마적산 사건 이후 산사태를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2014년 산사태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현재 지리산과 설악산 등 모두 12곳에 관측 시설이 구축돼 있다.

기존에는 산사태 예보를 할 때 강우량만을 기준으로 했다. 그러다 보니 ‘비가 많이 오니 산사태를 조심하라’는 두루뭉술한 예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산사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한 사례도 없다. 동행한 채병곤 지질연 지질환경융합연구센터장은 “기존에는 1시간 단위로 측정한 강우 자료를 토대로 강우량 20mm 이상일 때 경보를 냈는데, 이 방식은 최근 국내 강우 패턴과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우 강도가 1시간 내에도 크게 변하는데, 급격한 강우 강도 변화와 누적 강우량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1시간 동안의 평균 강우 기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국립타이완대와 함께 강우 강도 및 누적 강우량을 함께 고려하는 예측 기법을 연구한 결과, 우면산 산사태도 발생 전에 3회 정도 미리 예보할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 누적 강우량만 더하면 산사태 예보가 가능한 걸까. 그건 아니다. 채 센터장은 “비가 똑같이 와도 산사태가 나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며 “더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강우조건과 지질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질연에서 설악산과 지리산에 관측 시설을 설치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비가 올 때 지층이 물을 머금은 상태와 토양 입자들 사이의 결합력 변화, 지층과 경사면의 움직임 변화 등을 측정해서 더욱 정밀하게 산사태 위험도를 평가하려는 것이다.



산사태 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산사태 관측 시설이 설치된 곳은 해발 1915m 천왕봉을 기준으로 남서쪽의 제석봉과 북동쪽의 중봉, 그리고 산 하부 중산리 계곡 인근이다. 지리산은 육지에 상륙한 태풍이 처음 만나는 고산지대로, 태풍이 지나가면서 많은 양의 비를 뿌린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태풍이 천왕봉을 지나기 전과 후의 강우량 변화와 그에 따른 산사태 위험도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제석봉과 중봉에 장비를 설치했다.

산 하부 중산리는 지리산을 대표하는 지형과 식생조건을 가진 곳으로, 비가 땅에 침투하는 속도와, 물
이 들어왔을 때 흙의 응집력이 바뀌는 정도 등을 관측한다. 자료가 축적되면 나중에 지리산에 산사태가 생겼을 때 강우량과 흙의 응집력, 수분 상태가 어떨 때 위험한지 밝힐 수 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채 센터장은 쓰러진 나무 한 그루만 봐도 산사태 때문인지 살폈다. 마침 중봉과 제석봉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마치 날카로운 갈퀴가 파고 내려간 듯한 산사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채 센터장은 “우리나라 산사태는 폭이 5~10m 정도로 좁은 편인데, 토층의 발달 상태와 경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며 “지리산은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인데다 급경사지가 많아 특히 좁고 긴 형태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제석봉과 중봉의 관측 시설은 모두 과거 산사태가 발생한 장소에 설치돼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지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장치에 다가가 태양전지판과 강우계를 청소했다. 또 센서에서 특정한 자료가 제대로 전송되는지, 배터리는 충분한지 확인했다. 이날은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종종 강우계에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태양전지판이 눈에 덮여 전체 시스템 작동이 멈추는 등 보수가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점토 많은 지리산, 화강암 많은 설악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진짜 측정장비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땅에는 땅의 경사를 측정하고, 토양의 물 함량을 재며, 지반의 움직임을 알아내고 토석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지하는 센서 등이 마치 지뢰처럼 설치돼 있었다. 하늘에는 지형 변화를 관측하는 이탈리아 인공위성도 떠 있다. 측정한 정보는 수집, 전송장치를 거쳐 대전 지질연에 있는 상황실로 전송된다.

연구팀은 지난 1년 동안 관측한 자료를 분석해서 지리산이 설악산에 비해 흙 두께가 더 두껍고 빗물 침투 속도가 느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지리산과 설악산을 구성하는 흙의 유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점토광물이 많이 섞인 편마암이 대부분이고, 설악산은 화강암이 많다). 화강암 풍화토는 빗물 침투 속도가 빠르고 배수가 잘 되기 때문에 편마암 풍화토에 비해 사면 안정성이 높다. 지리산은 설악산보다 산사태에 취약할수 있다는 뜻이다. 채 센터장은 “시스템을 설치한 지 1년 밖에 되지 않았고, 작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새로운 정보가 많지는 않다”며 “적어도 3년은 측정을 해야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사태 잘 나는 지역은 따로 있다

연구팀의 목표는 국내 모든 지역에서 산사태가 발생하기 1시간 전에 예보하는 것이다. 모든 지역에 산사태 관측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전국 예보가 가능한 이유는 국내에서 산사태가 자주 발행하는 지질 종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기존 산사태 사고를 분석한 결과 편마암과 화강암, 점토암(이암)으로 이뤄진 지역에서 산사태가 많이 발생했다. 연구팀은 지질 종류별로 관측 데이터를 축적하고, 실험실에서 토양별로 인공강우를 뿌려 어떤 조건에서 산사태가 나는지를 알아볼 예정이다.

연구팀은 이미 1991년부터 발생한 6000개 산사태를 조사해서 산사태를 일으키는 핵심 요소 다섯 가지를 추려냈고, 이를 바탕으로 식을 만들었다. 여기에 실험 데이터와 누적된 관측 데이터를 더해 각 지질 종류별로 산사태가 얼마나 발생할지 확률을 정교하게 계산하는 식을 만들 계획이다. 채 센터장은 “우선 강우량으로 광역 경보 또는 주의보를 발령한 뒤, 지형과 지질 특성을 고려해서 세부 지역에 대한 2차 경보와 주의보를 내는 방식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대전 지질연 상황실에서 만난 최정해 지질환경융합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1시간 전에 예보하는 이유는 가장 예측 확률이 높으면서도 충분히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산사태 피해를 포함한 산림분야 총 복구비로 2007년 이
후 매년 100억 원 이상이 투입되고 있다. 2011년을 제외하면 인명피해가 크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떤 사고가 닥칠지 모른다. 특히 2010년 이후 연평균 강우량이 1970년 이전 대비 19%나 증가했을 정도로 산사태 위험이 높아지고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아직 연구 초기 단계지만, 산사태를 예보하겠다는 내 연구팀의 시도에 세계 곳곳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한국과 같은 시스템을 설치해서 서로 비교하는 공동연구를 제안해 왔고, 국제연합(UN) 산하 국제산사태컨소시엄은 한국과 영국, 노르웨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공식 산사태조기경보기술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 글·사진] 경남 산청, 대전=최영준 기자

🎓️ 진로 추천

  • 지구과학
  • 환경학·환경공학
  • 도시·지역·지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