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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거대질량 블랙홀 엔진 달고 우주를 밝히다

1908년 최초로 방출선이 관측된 활동성 나선은하 NGC 1068.
작은 원 안의 그림은 밝게 빛나는 은하핵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다.


1908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워드 패드와 베스토 슬라이퍼는 특이한 나선은하를 발견했다. 지구에서 약 4700만 광년 떨어진 고래자리 A 은하(NGC 1068)였는데, 다른 은하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한 방출선이 관측됐다. 방출선은 전자가 고에너지 상태에서 저에너지 상태로 바뀔 때 나타나는 가시광선 스펙트럼(전자기파를 파장에 따라 늘어놓은 띠)으로, 은하가 에너지를 내뿜고 있음을 암시했다. 1943년 미국의 천문학자 칼 키넌 세이퍼트는 NGC 1068과 유사한, 이상하리만큼 넓은 방출선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나선은하 6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훗날 이 같은 나선은 하들은 그의 이름을 따 ‘세이퍼트 은하’라고 불리게 됐다. 그러나 실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상한 천체가 속출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파 관측 천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1950년대 말 또 다른 괴상한 천체가 등장한다. 이 천체는 겉보기엔 마치 밝은 별처럼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강력한 전파를 내뿜고 있었다.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태양 같은 별(항성)들은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빛나므로 전파는 거의 방출하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시광선 스펙트럼도 무척 특이해서, 당시까지 알려진 그 어떤 원소의 스펙트럼으로도 분류할 수 없었다. 천문학자들은 이 미스터리 천체에 ‘퀘이사(준항성체, quasi-stellar object)’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천체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실마리는 1963년에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천문학자 마르텐 슈미트는 처녀자리에 위치한 3C 273이라는 전파광원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이 방출선이 사실 적색편이에 의해 긴 파장으로 크게 치우친 수소원자의 방출선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이 발견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적색편이는 물체가 내는 빛의 파장이 늘어나 보이는 현상이다. 빛을 내는 대상이 멀어질 때 주로 발생한다. 특히 외부은하의 적색편이는 우주팽창 때문에 생긴다.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수록 은하에서 빛이 출발한 이후 우주는 더 많이 팽창하는데, 이 때문에 빛의 파장도 그만큼 더 많이 늘어난다. 즉, 적색편이 값이 크다(허블의 법칙). 이를 거꾸로 적용하면 천체의 적색편이 값으로부터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슈미트는 3C273의 적색편이 수치를 계산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별처럼 반짝이는 이 천체가 실은 우리은하 너머 약 20억 광년 떨어져 있는 존재이며, 그 먼 곳에서 관측이 가능할 정도로 엄청나게 밝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슈미트의 발견은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이를 계기로 세이퍼트 은하를 비롯해 특이한 방출선이 관찰되는 다양한 천체가 급부상했다. 주로 광도가 매우 높고, 일반 은하에 비해 자외선, 적외선, 전파, X선 등을 훨씬 많이 방출하는 천체들이었다. 훗날 이 천체들이 실제로는 거대한 은하의 아주 좁은 중심부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천문학자들은 이를 ‘활동성 은하핵(AGN, Active Galactic Nuclei)’이라고 불렀다. 이런 핵을 품은 채 막대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은하는 ‘활동성 은하’로 분류했다.


➊초기 우주에 이미 태양 질량의 수백 배에 달하는 거대한 별이 있었고, 이 별이 수명을 다한 뒤 태양보다 100배 이상 무거운 중간질량 블랙홀이 돼 거대질량 블랙홀로 자랐다는 가설.

➋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거대한 기체 덩어리가 급격히 수축하면서 곧바로 태양 질량의 수만 배에 달하는 중간질량 블랙홀이 만들어진 뒤, 거대질량 블랙홀로 자랐다는 가설.

 
[ 확대]

우리은하 바깥에 있는 괴물 엔진?

AGN이 내뿜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컨대, 가시광선 관측으론 하늘 전체에서 가장 밝은 퀘이사인 3C 273의 평균 겉보기 등급은 12.9이다. 거리를 고려하면 절대등급이 무려 -26.7에 달한다. 이는 태양의 약 2조 배, 우리은하의 약 100배에 달하는 밝기다. 반면 크기는 엄청나게 작아서, 3C 273의 지름은 우리은하 지름의 60만 분의 1이다. 새끼 손톱만한 LED 하나가 야구장 전체를 밝히는 셈이랄까.

AGN의 ‘엔진’을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시작됐다. 1970년대 말, 천문학자들은 뜻밖의 결론을 마주했다.
답은 블랙홀. 그것도 괴력에 걸맞게 아주 거대한 블랙홀이어야만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블랙홀은 별이 죽어서 만들어지는 ‘별 질량 블랙홀’인데, 당시 별 질량 블랙홀로 기체가 유입되면서 고온의 빛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터였다. 천문학자들은 AGN의 엔진이 같은 원리일 거라고 추정했다. 설사 AGN이 태양처럼 빛을 내는 항성이라고 가정해도, 이렇게 좁은 공간에 밀집시키면 결국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었다.

AGN의 정체는 알게 됐지만, 더 큰 수수께끼가 줄줄이 제기됐다. 대표적인 문제가 거대질량 블랙홀의
기원이다. 빛은 속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우주에서 먼 거리 너머를 보는 건 과거를 보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발견된 가장 먼 퀘이사는 거리가 130억 광년쯤 된다.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퀘이사의 나이는 고작 8억 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처럼 거대한 블랙홀이 (천문학에서는 짧은 시간인) 8억 년 만에 만들어졌다고? 시쳇말로 ‘멘붕’이었다.
 

거대질량 블랙홀은 도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블랙홀이 자라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자기 질량에 해당하는 광도만큼 빛을 내면서 천천히 자란다. 이 과정에서 안쪽으로 작용하는 중력과 외부로 방출하는 복사 압력이 평형을 이룬다. 만약 자기 질량보다 더 큰 광도를 내면 과도한 복사 압력 때문에 기체들이 흩어진다. 강착원반이 와해된다는 말이다. 이를 ‘에딩턴 한계’라고 한다. 만약 태양 질량의 수 배에 불과한 별 질량 블랙홀이 기체를 계속 흡수해 거대질량 블랙홀로 자랐다고 가정하면, 에딩턴 한계를 고려했을 때 8억 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거대질량 블랙홀의 씨앗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두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첫째는 초기 우주에 이미 태양 질량의 수백 배에 달하는 거대한 별이 있었고, 이 별이 수명을 다한 뒤 태양보다 수백 배 이상 무거운 중간질량 블랙홀이 생겼다는 설이다. 현재 우주에서는 기체가 수축할 때 금속 원소가 냉각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태양보다 150배 이상 무거운 별이 탄생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초기 우주에는 냉각제 역할을 할 금속 원소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탄생한 우주 최초의 별들은 질량이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가설은 초기 우주에서 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거대한 기체 덩어리가 급격히 수축하면서 곧바로 태양 질량의 수만 배에 달하는 중간질량 블랙홀이 만들어진 뒤, 기체를 흡입해 거대질량 블랙홀로 자랐다는 설이다.

이 가설들을 검증하려면 태양 질량의 1000~10만 배 정도 되는 중간질량 블랙홀을 연구해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중간질량 블랙홀이 거의 관측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간질량 블랙홀이 실제로 드물어서인지, 아니면 거대질량 블랙홀에 비해 빛이 약해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발견한 중간질량 블랙홀이 주목 받고 있다. 김민진 한국천문연구원 은화진화그룹 선임연구원은 활동성 은하인 NGC 5252에서 약 3만 광년 떨어진 공간을 떠도는 블랙홀을 발견해 학술지 ‘천체물리학’ 2015년 11월 20일자에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이번에 발견한 광원은 별 질량 블랙홀보다 훨씬 밝기 때문에 중간질량 블랙홀로 추정된다”며 “은하의 중심이 아닌 곳에서 블랙홀이 발견되는 건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거대질량 블랙홀의 형성 과정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성 은하핵의 표준모형을 찾아라!

과학의 역사가 늘 그랬듯, 천문학자들은 모든 AGN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을 세우려고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예를 들어, AGN은 방출선의 폭에 따라 넓은 것은 타입1, 좁은 것은 타입2로 분류한다. 수수께끼는, 방출선 폭을 제외한 나머지 스펙트럼은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이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AGN 통합모델’을 제시했다. ‘같은 AGN이라도 관측자를 향한 각도가 달라지면 방출선의 폭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천문학에서는 외관 때문에 가끔 속을 수 있다. 특히 하늘에 이차원적으로 투영돼 보이는 먼 거리 물체는 더 그렇다!).

AGN 통합모델을 자세히 살펴보자. 폭이 넓은 방출선은 주로 강착원반 바로 위에서 달궈진 뜨거운 기체 구름에서 나온다. 폭이 좁은 방출선은 중심부 제트를 따라 방출되는 기체에서 주로 나온다. 만약 어떤 퀘이사의 회전축이 관측자를 향해 있다면 강착원반 위의 뜨거운 기체 구름이 관측자에게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다. 동시에 폭이 넓은 방출선이 관측된다(타입1). 반대로, 회전축이 관측자와 비스듬하거나 수직 방향으로 놓여 있다면 뜨거운 기체구름은 블랙홀을 감싼 도넛 모양의 먼지구름에 가려진다. 제트와 함께 기체 구름이 뿜어져 나오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폭이 좁은 방출선만 관측된다. 이석영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서로 다르게 보이는 AGN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기하학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아름다운 모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판도 있다. 이 교수는 “타입1을 가진 은하가 타입2를 가진 은하에 비해 일반적으로 무겁다”며이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은하일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모델은 질량과 온도가 같은 일부 AGN들 만을 설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이 주제를 놓고 많은 천문학자들이 첨예하게 논쟁 중이다.

일부 AGN에서 전파와 가시광선이 동시에 강하게 측정된다는 사실도 미스터리다. 별 질량 블랙홀은 가시광선이 약해지면서 전파가 나온다. 가시광선을 내는 강착 원반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전파를 주로 내뿜는 제트의 활동이 세지는 진화를 겪기 때문이다. 전파와 가시광선이 동시에 강한 AGN은 기존의 별 질량 블랙홀의 진화 메커니즘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중심부의 거대질량 블랙홀이 무거울수록 전파가 세게 나올 거라는 예측도 있다. 전파를 많이 내는 은하 대부분이 무거운 타원은하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질량이 작은 나선은하는 대부분 전파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AGN의 전파는 블랙홀 질량과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최근에는 블랙홀이 빨리 회전할수록 제트가 세지면서 전파가 방출된다는 가설이 제시됐다”며 “그러나 스핀(회전)을 측정하기 어려워 아직 상관관계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AGN이 품은 은하 진화의 비밀은 무엇일까

천문학이란, 가장 밝고 가장 멀리 있는 천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말이 있다. 지구에서 수십 광년 떨어져 있으면서도 태양의 수조 배에 달하는 빛을 내는 AGN은 우주의 등불 같은 존재다.

천문학자들이 AGN을 연구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AGN에서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가 AGN을 품은 모은하의 진화에 어떻게든 막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예측되기 때문이다. AGN이 우리은하 근처보다는 주로 훨씬 먼 거리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AGN이 우주 초기에 더 흔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 자체로 은하의 초기 단계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과연 초기 우주의 AGN은 오늘날 어떤 존재가 됐을까. 2파트에서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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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별의 요람, 은하의 파괴자 활동성 은하핵
Part 1. 거대질량 블랙홀 엔진 달고 우주를 밝히다
Part 2. 무수한 기체 먹고 은하 ‘비만’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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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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