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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물을 단계적으로 분해시켜 제조하는 비법

원자력발전소의 폐열을 에너지원으로 이용

수소를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물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된 물질이기 때문에 수소로 분해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 1몰로부터 1몰의 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68.4kcal(2백86kJ)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만약 실온과 같은 낮은 온도에서 물을 분해시키려면 68.4kcal에 해당하는 전기와 빛(열) 등의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물을 약 3천5백℃ 이상으로 가열하면 직접 수소와 산소로 분리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이상적이지만 현 시점에서 3천5백℃ 이상의 막대한 열을 제공할 만한 장치를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물 분해 반응을 단계적으로 나눠 비교적 낮은 온도(1천5백℃이하)의 화학반응들로 구성해 전체적으로 물을 분해하는 폐사이클 반응을 만들 수 있는데, 이 방법이 열화학법에 의한 수소 제조 방법이다.

열화학법을 이용한 수소 제조 방법은 1960년대 말 미국의 펀크 교수에 의해 최초로 제안돼, 1970년대 초 유럽공동체의 부설 연구소인 이탈리아의 이스프라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로 실질적인 성공사례가 보고됐다.

원료의 추가 없이 수소 만드는 방법

물을 1천5백℃ 이하의 온도에서 분해시켜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은 물을 화학물질과 혼합해 여러 단계의 화학반응으로 나눠 연속적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열화학 사이클을 만드는 것이다. 이때 물은 계속 공급되며, 한번 들어간 화학물질은 밖으로 배출되는 일 없이 연속적으로 프로세스 안을 순환한다. 따라서 열화학 물 분해법은 폐사이클의 특성을 갖는다.

이탈리아의 이스프라 연구소가 세계 최초로 성공했던 사이클 반응을 예로 들어 알아보자. ‘이스프라 마크 Ⅰ’이라 불리는 이 화학반응은 사이클 물질로 수은(Hg)과 브롬화수은(HBr)을 사용했다. 이 물질은 사이클 내의 다단계 반응을 거쳐 다시 생성된다. 사이클이 진행되는 동안 물만 계속 공급되면 수소가 생산되는 것이다.

이스프라 마크 Ⅰ은 1천℃ 이하에서 물분해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보여준 것으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 현재는 미국과 독일, 일본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사이클 연구가 계속돼 2백가지 이상의 열화학반응이 개발돼 있다. 1976년 이후 2년마다 ‘국제수소에너지회의’(World Hydrogen Energy Conference)가 열리고 있어 최근의 연구동향을 알 수 있다.

열화학 사이클에 공급할 열원으로는 태양열 집열기에 의해 생성되는 약 8백-1천5백℃의 열과 원자력의 고온가스로에서 생성되는 약 1천℃의 열, 그리고 소각로에서 생성되는 약 9백℃의 열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중 원자력의 고온가스로에서 생성되는 열원을 이용하는 방법은 글로벌 수소제조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등 최근 매우 주목받는 방법이다.

반응의 원동력은 1천℃ 이상의 열

원자력의 고온가스로는 우라늄 또는 플루토늄 등의 원소가 핵융합 반응을 할 때 나오는 뜨거운 열을 헬륨 가스를 이용해 냉각시킨다. 이때 냉각제인 헬륨 가스는 1천℃ 이상으로 뜨거워진다. 이 열을 열화학 사이클의 열원으로 사용하면 열화학적 방법에 의해 수소를 만들 수 있다.

이같이 원자력발전소의 열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SI 사이클’과 ‘UT-3 사이클’이 있다. 두 방법을 차례로 알아보자.

먼저 SI 사이클은 열원으로 고온가스로의 냉각제인 헬륨가스의 열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크게 세가지 화학반응을 이용해 물을 분해한다. 각 사이클에 필요한 화학물질이 물 이외에 황과 요오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SI(Sulfur-Iodine) 프로세스’라 불린다(그림 1).
 

(그림1) SI 사이클


이 사이클은 1976년 미국의 제너럴 아토믹사에서 발표했다. 물 이외의 물질은 계속적으로 순환돼 사용되며, 수소를 만드는 흡열반응에서 고온가스로의 열을 필요로 한다. 이 사이클은 지난 1997년 10월 일본 원자력연구소가 실험실 규모의 장치를 이용해 시간당 10L의 수소를 48시간에 걸쳐 연속적으로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현재는 좀더 많은 양의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반응기 규모를 크게 하는 연구를 진행중이다. 일본 원자력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2010년 이후에는 SI 사이클을 이용해 시간당 3만L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통상 열화학 사이클은 반응성이 매우 낮고 반응물 분리가 어렵다. 또한 대부분은 실험실 수준으로 열역학과 화학반응의 이론적 측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 공정만이 실증단계 수준에 있다.

UT-3 사이클은 동경대에서 개발한 것(UT-3은 Unversity of Tokyo-3을 뜻함)으로 몇 안되는 실증단계의 공정이다. UT-3 열화학적 수소제조과정은 칼슘(Ca)과 철(Fe), 브롬(Br)화합물로 이뤄진 4개의 반응으로 구성돼 있다(그림 2).

 

(그림2) UT-3 사이클의 구성도


UT-3 사이클은 네개의 반응용기가 필요한데, 각 반응용기 속에는 네종류의 반응물질이 머물고 있으며, 이동 물질이 모두 기체로 구성돼 시스템의 운전이 간편하다. 1978년 카메야마와 요시다에 의해 제안된 이 공정은 계속적인 개선 노력을 거쳐 최근에도 공정 시뮬레이션과 기체분자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한국도 참여하는 국제 공동연구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태양에너지 및 기타 대체전원을 이용한 수소 생산기술에 대한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는데, 각 나라의 환경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성 산하 수소프로그램에서 열화학적 수소 생산기술로서 생물원료를 이용한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스위스는 금속산화물의 산화-환원 사이클을 이용해 수소를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주로 금속산화물을 이용한 2단계의 열화학 사이클 연구와 원자력발전소의 열을 이용한 수소 생산기술을 개발중이다.

국내의 열화학 수소 제조기술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극히 단편적인 기초연구가 간간히 진행되는 정도였다. 다행히 대체에너지 관계법이 공표된 이후 대체에너지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커져 1989년 6월부터 과학기술처(현재의 과학기술부) 특정과제로 선정돼 비교적 종합적인 수소관련 연구가 시작됐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1988년 원자력발전 폐열을 이용한 수소제조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후 한국에너지연구원에서 1989년에서 1992년까지 ‘열화학법에 의한 수소 제조기술’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주요 연구내용은 수소 생산에 적합한 열화학 사이클을 선정하는 것으로 염화구리(CuCl2)) 또는 황화구리(SCl2))를 순환물질로 이용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이때 열화학 사이클 분석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1989년의 연구에서 ‘KIER-1 사이클’이라는 독자적 열화학 수소생산 반응을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3월 24일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원자력 수소 심포지엄’을 개최해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이 올해부터 2014년까지 추진중인 초고온가스로(VHTR) 공동개발에 한국도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초고온가스로 역시 고온가스로와 비슷한 개념으로 헬륨가스를 1천℃로 가열한 다음 이 가스를 이용해 열교환기에서 물을 9백℃로 데우는 것이다. 여기에 황산과 요오드를 첨가하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할 수 있다. SI 사이클을 이용하므로 요오드와 황산은 계속 재사용된다. 이번 공동연구 참여가 결정됨에 따라 앞으로는 SI 사이클을 좀더 효율적인 반응계로 만들기 위한 관련 국내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열화학 수소제조법은 1천℃ 이상의 고온에서 이뤄지므로 반응기 재질이 고온에 견딜 수 있어야 하며, 반응 과정은 열 손실이 없도록 설계돼야 한다.


전기분해보다 대량생산에 유리

수소에너지의 실용화는 무엇보다도 값싼 수소 제조기술이 개발돼야 하며 화석연료가 아닌 물로부터의 수소를 만드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 열화학적 수소제조법의 경우 기본 가정이 1천℃ 정도의 높은 열원인데, 이는 고온가스로 또는 초고온가스로나 태양열 반응기로부터 얻을 수 있으며, 현재 일부 사이클은 상용화 또는 실증 단계에 있다.

그동안 제안된 열화학 사이클의 일반적인 문제점은 1몰의 수소를 얻기 위해 많은 몰수의 물질이 순환돼야 하는 것이었다. 여러 단계의 반응과정을 거치는 동안 물질의 감소가 없어야 하며, 에너지 출입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될 수 있으면 적어야 한다. 특히 순환물질로서 황과 할로겐, 알칼리금속과 같은 부식성이 큰 물질이 사용되는 경우는 반응기의 재질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열과 에너지 손실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설계를 하는 등 여러가지 개선책이 마련돼 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이클이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 반응 참여물질도 누출시 독성이 적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반응기의 재질이 높은 내구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은 아직도 해결해야할 큰 숙제다.

최근 많이 연구되고 있는 금속산화물의 산화-환원반응을 이용한 산화-환원 열화학 사이클은 2단계 정도로 비교적 단순하다. 이 공정은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환경친화적이며 2단계 사이클로 구성돼 공정이 단순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직은 산화-환원의 온도가 1천℃ 이상으로 다소 높은 편이며, 산화-환원에 필요한 사이클 시간이 20분 이상으로 길다. 또한 상업화 가능성을 입증할 만한 생산공정이 확립돼 있지 않다.

이런 문제점이 해결된다면 금속산화물의 산화-환원 기술은 전기분해법에 필적할 만한 수소 생산기술이 될 것이다. 특히 금속산화물의 산화-환원 기술은 전기분해법과는 달리 대량생산을 하면 수소생산 비용이 매우 절감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과 일본은 수소생산 기술에 대해 세계적인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소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불가피성을 하루 빨리 인식해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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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황갑진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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