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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현장을 가다

천 년의 푸르름 되찾을 수 있을까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현장을 가다

으스스했다. 훤한 대낮인데도. 3월 13일 찾은 경남 김해 대동면의 한 야산은 녹색 비닐로 포장한 ‘소나무 무덤’으로 채워져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고사한 나무들을 약제 처리한 뒤 방수 천으로 덮어 놓은 것이다. 군데군데 봉분처럼 솟아 있는 모습이, 거대한 공동묘지를 연상케 했다. 놀라는 기자에게 김동수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 박사는 “방제가 깔끔하게 잘 됐네요”라며 힘없이 웃어 보였다.

“저희도 밤에 보면 으스스 하지예. 기분이 묘합니더. 제주도에서는 몇 백 년 된 큰 소나무도 많이 죽었십니더. 맨날 보는 저도 충격을 받았을 정도니까, 오죽하겠십니꺼. 많이 안타깝지예. 볼 때마다…, 볼 때마다 걱정입니더. 빨리 없어져야 할 낀데….”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목 추이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첫 피해 발생

소나무재선충병은 나무가 선충(실처럼 생긴 동물)의 일종인 소나무재선충(Bursaphelenchus xylophilus)에 감염돼 말라 죽는 병이다. 주로 소나무, 해송, 잣나무가 피해를 입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10월, 부산 동래구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전 해부터 한 두 그루씩 말라 죽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132그루가 그해에 집단으로 고사했다. 부산시는 당시 임업연구원에 원인규명을 의뢰했다. 그 결과, 소나무재선충에 의한 피해로 판명됐다(한겨레신문, 1988년 12월 17일 보도). 학계는 부산에 들여온 일본원숭이 우리의 재료가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나무였던 것으로 추정
했다.

3월 13일 찾은 경남 김해 대동면의 한 야산. 녹색 방수 천으로 감싼 고사목의 모습이 선명하다.
[3월 13일 찾은 경남 김해 대동면의 한 야산. 녹색 방수 천으로 감싼 고사목의 모습이 선명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을 이 곳은 1차 방제를 마치고 거대한 ‘소나무 공동묘지’로 변해있었다. 흰 표식은 예방주사를 놓은 나무라는 표시다. 송진이 많으면 약제가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예방주사는 송진이 적은 겨울에만 놓을 수 있다.]

소나무재선충의 서식지는 원래 북미 대륙이다. 길이 1mm 미만의 가는 실처럼 생겼다. 한 쌍이 20일 만에 20만 마리로 급속히 증식한다. 혼자서는 이동할 수 없고 곤충을 날개 삼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가 선충을 나르는 매개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솔수염하늘소는 주로 남부지방에 살면서 소나무와 해송을 죽인다. 북방수염하늘소는 주로 중북부지방에 분포하고 잣나무에 피해를 준다. 기타 다른 하늘소류도 고사목에 살지만, 소나무재선충병을 전파하지는 않는다.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는 6~9월 사이에 죽은 나무에 알을 낳는다. 애벌레는 나무 껍질로부터 중심부로 1cm 들어간 지점에 자리를 잡는다. 서서히 움직이면서 길이가 3cm 정도인 터널을 만든다. 겨울을 잘 나고 완전히 큰 애벌레는 4월, 터널 끝에 번데기 방을 만든다. 만약 이 나무가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나무라면, 고사목에 남아 있던 선충 수천~수만 마리가 번데기 안으로 들어간다. 소나무재선충을 실은 매개곤충은 약 20일 뒤인 4월 하순부터 지름 5~8mm 가량의 구멍(탈출공)을 만들어 빠져나간다. 탈출은 8월 상순까지 계속된다. 이들은 건강한 소나무에 착지해 나무에 상처를 내면서 새순을 갉아 먹고, 소나무재선충은 이때 새로운 소나무에 침입한다.

소나무재선충과 솔수염하늘소의 생태

가을에 감염된 소나무는 이듬해에 고사한다. 지난 3월 11일 찾은 경기 광주 곤지암읍 근방 야산의 모습. 1차 방제를 하는 동안 말라 죽은 피해목들이 마치 단풍처럼 숲을 붉게 물들였다
[가을에 감염된 소나무는 이듬해에 고사한다. 지난 3월 11일 찾은 경기 광주 곤지암읍 근방 야산의 모습. 1차 방제를 하는 동안 말라 죽은 피해목들이 마치 단풍처럼 숲을 붉게 물들였다.]

감염된 소나무는 솔잎이 아래로 처지며 시들기 시작한다. 기온이 높은 여름에 특히 증상이 빨리 나타난다. 감염된 지 한 달이 지나면 잎 전체가 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기 시작한다. 일단 감염되면, 3개월 안에 100% 죽는다. 9월 이후에 감염되면 증상이 늦게 나타나 이듬해에 고사하기도 한다. 실제로 3월 11일 찾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인근 야산에서는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죽은 잣나무들이 마치 단풍처럼 숲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기자를 안내한 정철호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사무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말을 잃었다. 한참 만에 입을 연 사무관은 나무 하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이 나무는 탈출공이 없는데? 이거 한 번 잘라봅시다”고 외쳤다. 작업자가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랐다. 가르는 족족, 반투명한 노란색을 띤 애벌레가 우수수 떨어져 나왔다. “나무마다 많게는 수십 마리의 매개곤충이 나옵니다. 엄청난 양이죠. 꼼꼼하게 방제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번집니다. 뒤늦게 나타난 고사목도 3월 말까지 2차 방제를 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이렇게 많이 번져서.”

[(좌) 매개곤충이 드나든 흔적. 아래 위로 긴 타원형은 애벌레가 침입한 구멍이고, 완전히 동그란 것은 번데기에서 우화한 성충이 탈출한 구멍이다. (우) 침입공만 있고 탈출공이 없는 고사목을 베어내자, 월동 중인 매개곤충 애벌레가 나왔다

[(좌) 매개곤충이 드나든 흔적. 아래 위로 긴 타원형은 애벌레가 침입한 구멍이고, 완전히 동그란 것은 번데기에서 우화한 성충이 탈출한 구멍이다. (우) 침입공만 있고 탈출공이 없는 고사목을 베어내자, 월동 중인 매개곤충 애벌레가 나왔다.]

조기진단 어려워… 고사목 제거하는 게 최선

지난해 산림청이 파악한 공식 피해목수는 218만 그루.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처음 발생한 이후로 최대치다. 그 여파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갈수록 피해 규모가 커지는 건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간 탓이 크다. 한혜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연구사는 “평균온도가 높은 해에 피해 규모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 10명뿐인 선충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선충과 매개곤충의 밀접한 상호작용의 결과예요. 고온 건조한 조건은 선충과 매개곤충 모두에게 좋은 환경이죠.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봄여름의 평균 기온이 높아지고 강수량이 줄었는데, 매개곤충의 활동을 부채질하는 조건입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을 치료할 수는 없을까. 한 연구사는 “잎의 갈변이 눈으로 확인되면, 말기 암 환자처럼 이미 손 쓸 수 없는 단계”라며 “나무는 크고 선충은 워낙 작기 때문에, 나무의 어느 부위를 채취해 검사하느냐에 따라 감염목인데도 재선충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무의 감염 여부를 조기에 진단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감염된 나무가 일찌감치 물리적, 화학적 반응을 보일지 여부를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특이한 반응을 관찰하지는 못했습니다.”

치료제 개발도 요원하다. 워낙 빨리 죽는 데다, 나무가 죽는 메커니즘조차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한 연구사는 “선충은 일반적으로 곰팡이나 토양세균을 먹는데, 유독 소나무재선충은 살아 있는 나무 세포를 먹는다”며 “세포가 마치 구멍 난 빨대처럼 파괴돼 소나무가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가장 유력한 설”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과민반응으로 세포가 자살한다는 설, 소나무재선충 독소에 의한 스트레스 설 등이 있다. 김동수 박사는 “꼭 지켜야 할 나무에 예방주사를 놓고 봄이 오기 전 말라 죽은 나무를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죽은 나무만 제대로 없애도 방제가 된다”고 말했다.

현재 방제는 고사목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소나무재선충병 진단을 받은 나무를 중심으로 반경 2km 안에 있는 죽은 나무를 전부 수거해 파쇄하거나 약제를 뿌려 방수 비닐로 감싸는 ‘훈증’ 처리를 한다. 선충이 아닌, 매개곤충을 없애는 게 목표다. 몸 안에 소나무재선충을 가진 매개곤충이 고사목을 탈출해 건강한 소나무에 날아가는 걸 막는다.

3월이 파쇄나 훈증 방제가 가능한 마지막 시기다. 4월부터는 매개곤충이 이미 나무를 탈출하기 시작한 뒤라서 고사목을 치우는 방제는 의미가 없다. 대신 매개곤충을 잡기 위해 공중에서 약제를 뿌리는 항공방제를 하거나, 사람이 살수차를 갖고 들어가 약제를 뿌리는 지상 방제를 한다.
 
2014년 소나무재선충병 발생 현황

같은 규모로 3~4년 방제해야 효과

3월 11일 경기도 광주 곤지암읍의 야산에서는 1차 방제가 막바지였다. 기울기가 어찌나 급한지, 익숙하지 않은 기자는 두 차례나 미끄러지면서 뒤로 넘어졌다. 강한 바람도 불어왔다. 카메라를 든 손이 곱았다. “위잉~.” 전기톱 모터 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 작업자의 몸이 몇 차례 휘청거렸다. “위험해 보인다”고 말하자, 강선화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주무관은 “지난해 사망 사고가 몇 차례 있었다”며 “올해는 안전모와 작업화를 갖추는 등 기본적인 안전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싹 말라 죽은 나무 한 그루가 금세 쓰러졌다. 작업자는 숨을 몰아 쉬면서 털썩 주저 앉았다. 다른 작업자들이 달려들어 조각난 나무를 옮겨 한 곳에 차곡차곡 쌓았다. 방수 비닐에 구멍이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주변 잔가지와 흙을 파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다가와 나무 더미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노란 약제를 골고루 뿌렸다. 그 모습이 마치, 망자의 명복을 빌며 봉분 위에 술을 뿌리는 것처럼 보였다. 타포린 소재의 녹색 방수 비닐을 나무 더미 위에 덮고, 비닐의 사방 가장자리는 땅에 묻었다. 고사목 안에 있는 매개곤충은 곧 죽을 터였다.

정 사무관은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고충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겨울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방제 특성상 언 땅 파는 게 제일 힘들어요. 그래도 여긴 조건이 좋은 겁니다. 해안가 절벽은 방제가 정말 힘들죠. 자른 나무를 헬기로 옮기기도 하고요.”

기자는 현장 취재를 다니는 동안 종종 작업자들이 터뜨리는 불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처리해야 할 양은 많고 인력과 예산은 부족하기 때문. 실제로 2007년 500억 원 규모로 책정됐던 방제 예산은 2011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가 피해가 확산되자 서서히 올라 겨우 예전 규모를 되찾았다. 익명을 요구한 취재원은 “병해충 방제는 3~4년 동안 꾸준히 같은 규모로 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며 “1~2년 안에 압축적으로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행정적인 계산일 뿐”이라고 귀띔했다. 현장 방제뿐만이 아니다. 소나무재선충의 기초 연구에 대한 지원도 예산이 들쑥날쑥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연구사는 “꾸준한 기초 연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병해충은 일단 눈에 띄기 때문에 빨리 없애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소나무재선충에 대한 기초 연구가 꾸준히 함께 이뤄져야 방제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요.”

다행히 올해 국립산림과학원은 방제 전략에 관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훈증처리, 나무예방주사 등 일관된 방법으로만 방제를 해왔는데,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쓰겠다는 것이다. 금강송이 많은 울진 소강리 등 주요 지역을 모니터링하고 피해가 발생하면 그때그때 방제하는 데 예산을 집중시킬 계획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이 발병한 지 100여 년이 된 일본은 이미 신사 등 주요 지역을 이렇게 특별 방제하고 있다.
훈증 방제 과정

천 년의 푸르름 되찾을 수 있을까


과연 한반도는 소나무재선충병을 잡을 수 있을까. 얼마 전 일본의 재선충병 전문가가 경주와 김해를 방문한 뒤 “2015년 방제하지 못하면 한반도 소나무는 멸종할 것”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발언을 했다. 하지만 산림청의 공식 의견은 다르다. 일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방제를 전혀 하지 않고 방치해도 소나무가 멸종하는 데 70년 이상 걸린다. 소나무재선충병의 연간 확산 거리가 3km라는 연구 결과에 기반한 계산이다. 해발 700m 이상까지는 매개곤충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단기간 내 소나무가 멸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총력으로 방제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멸종 위험이 훨씬 낮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지난 해에는 방제 관리감독에 미흡한 점이 많았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매뉴얼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강선화 주무관은 “피해가 극심한 지역마다 현장특임관과 책임담당관을 임명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당분간은 숲에서 말라 죽은 소나무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소나무재선충병이 처음 발병한 초기에 잡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외래침입종은 대응할 수 있는 적기가 있는데, 이를 놓치면 예정된 수순을 밟아갈 뿐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2010년 한국갤럽 조사). 우리나라 소나무는 전체 산림(637만 ha, 1ha는 1만 m2)의 약 23%인 147만 ha를 차지한다. 목재나 송이, 잣 생산 등 연간 998억 여 원의 경제적 가치도 창출한다(산림청). 소나무의 절개와 강인함은 외침에 대항해 떳떳한 기상을 이어 온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천 년의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 과연 올해는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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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경기 광주, 경남 김해=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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