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면 많은 걸 알아야 한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ISO, 화이트밸런스…. 조정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 초보라면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자동(Auto)’ 기능이다. 자동 모드에 놓으면 카메라가 외부 상황에 맞춰 적당한 값을 알아서 설정해준다. 계산과학·공학 분야에도 초보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친절한 소프트웨어가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2011년 개발한 개방형 교육․연구용 계산과학․공학 플랫폼, ‘에디슨(EDISON)’이다.
고등학생도 쉽게 다루는 프로그램
이공계 대학에서는 문제를 풀 때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많이 사용한다. 문제가 간단할 때야 손으로 풀어도 되지만, 변수가 많고 복잡해지면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런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대부분은 전문가용으로 개발돼 초보자가 사용하기 어렵다. 레이놀즈수·마하수 같은 매개변수를 수십 개씩 입력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매개변수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다루기 힘들다. 반면 에디슨은 매개변수의 기본 값이 예시로 설정돼 있어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에디슨은 공공재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미래창조 과학부의 계산과학·공학 인프라 사업의 일환으로 연구기관인 KISTI가 일반인들이 웹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슈퍼컴퓨터와 연동해 만든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조금원 KISTI 슈퍼컴퓨팅융합연구센터장은 “이전까지 수천만~1억 원에 이르는 외국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많은 대학에서 써왔다”며 “에디슨으로 그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에디슨 플랫폼에는 전산열유체, 나노물리, 계산화학, 구조동역학, 전산설계 등 크게 5개 분야의 시뮬레이션 콘텐츠 249종이 탑재돼 있다. 현재 국내 43개 대학에서 에디슨을 활용하고 있는데, 수업 교과목 수로 따지면 785개에 이른다.
에디슨의 일부 프로그램은 처음 다뤄보는 고등학생도 큰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편리하다. 대전과학고 2학년인 김재현, 오상준, 정민 학생은 올해 초 학교에서 연구를 하며 에디슨을 활용했다. 피아노 망치의 타격위치를 변화시켰을 때 음색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보는 게 연구주제였는데, 에디슨에 탑재된 콘텐츠 중 마침 적당한 게 있었다. 세 명의 학생은 매뉴얼을 보며 독학한 뒤 시뮬레이션을 돌려 기존 피아노와 전혀 다른 화음을 만들었다. 두 달에 걸친 연구 끝에 논문이 나왔다. 이 논문은 올해 3월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한 ‘제5회 에디슨 SW활용 경진대회’에서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재현 학생은 “학교 음악실에 내부를 볼 수 있는 그랜드피아노가 있는데, 망치가 줄을 때려 소리가 나는 원리가 신기했다” 며 “에디슨을 이용해 실제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앞으로 진로를 선택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원 수준의 연구까지 가능
디지털 카메라 사용에 익숙해지면 자동 대신 수동 모드로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에디슨도 마찬가지다. 실제 상황에 맞게 매개변수를 조절해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다. 이번 경진대회에서 고등부 대상을 받은 윤영준 씨(18․연구 당시 부산고 3학년 재학)는 에디슨을 이용해 초음속과 아음속에서 전투기의 비행효율을 높이는 에어포일(비행기 날개의 유선형 단면)을 설계했다. 조금원 센터장은 “심사위원이었던 서울대․카이스트 교수들이 윤 씨의 연구를 전문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에디슨에 연동된 슈퍼컴퓨터로부터 계산자원을 제공받아 사용할 수 있어 굳이 좋은 성능의 컴퓨터를 갖추지 않아도 됐다”며 “이번에 쓴 논문을 해외학술지에 제출하려고 준비중”이라고 했다. 그는 “에어포일이 손상됐을 때 비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다”며 “항공우주공학과로 진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에디슨 SW활용 경진대회는 매년 열린다. 작년까지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3월에 열린 올해 대회부터 고등학생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조 센터장은 “경진대회 전에 따로 교육을 하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이 매뉴얼을 보고 에디슨을 활용하는 법을 파악했다”며 “그만큼 이 플랫폼이 다루기 쉽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