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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왜 어떤 간지럼은 고문이 될까?

‘간지럼’,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행동입니다. 만지는 건데 웃음이 나고, 웃음이 나다가도 조금 지나면 아프고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가, 어떤 상황에서 간질이냐에 따라 웃음이 날지 화가 날지 다릅니다. 도대체 간지럼의 정체는 뭘까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아침부터 심통이 났습니다. 어린이날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거든요. 엄마, 아빠와 동물원에 가자고 했던 약속은 산산이 깨졌습니다. 아침도 안 먹고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이 녀석. 엄마는 비장의 무기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살며시 미소를 머금곤 양손으로 딸의 겨드랑이를 간질이기 시작합니다.

‘꺄르르르르 꺄르르르르.’

딸은 자지러질 듯 웃으면서 몸을 배배 꼽니다. 그래도 한바탕 웃었더니 기분이 풀렸는지 엄마 손을 잡고 방을 나서네요.



엄마와 딸 사이에, 형제끼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몸 여기저기를 손으로 간질이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곤 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촉감이라는 자극만으로 사람이 웃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단순히 살살 만지기 때문에 웃는 걸까요. 그렇다면 왜 바람이 옆구리를 지나갈 때나, 벌레가 팔위를 기어가고 있을 땐 웃음이 나지 않는 걸까요. 손으로 간질이는 것보다 훨씬 가벼운 자극인데 말이죠. 사실 간지럼(tickling)은 아주 오래된 미스터리입니다.

근질근질~ ‘가려움’

일단 간지럼을 두 개로 나눠보겠습니다. 제가 나눈 건 아니고 미국 심리학의 개척자인 그랜빌 홀이 1897년에 ‘생리의학 사전’이라는 책을 통해 분류했습니다. 하나는 ‘외부자극에 의한 가려움(Knismesis)’입니다. 벌레가 팔 위를 누비는 상황을 생각하시면 됩니다(벌써 근질근질 하시죠?). 굉장히 성가신 가려움이죠. 몸 전체의 피부에서 나타나는데 특징은 아주 약한 움직임으로 발생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느껴지면 ‘벅벅’ 긁거나 문지르고 싶어지죠.

가려움은 연구가 많이 진행됐습니다. 아토피피부염, 두드러기, 피부 건선 등 관련된 피부질환이 많고, 하나같이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죠. 과거엔 가려움증이 통각의 일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통각의 세기가 약하면 가려움이 발생한다고 생각해 왔죠. 하지만 최근 다른 견해가 나왔습니다.

촉감에는 촉각, 통각, 압각, 냉각, 진동 등 여러 감각이 있고 종류마다 감지하는 말초신경의 구조가 각각 다른데요. 통각을 제외한 대부분은 기계적 자극 수용체(mechanoreceptor)라는 구조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에 반해 통각을 느끼는 통점은 아무것도 씌워 있지 않은 자유신경말단(free nerve ending)이죠.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자유신경말단이 다시 가려움 신경과 통각 신경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오우택 서울대 약대 교수는 “통각의 말초신경과 가려움 말초신경이 형태는 유사하지만 세포막의 구성성분이 다르다”며 “통각이 약하다고 해서 가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려움을 느끼는 회로가 따로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키득키득~ ‘간지럼’

두 종류의 간지럼 중 다른 하나가 바로 오늘 주목할 ‘웃음이 나는 간지럼(Gargalesis)’입니다. 이것은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잘 일어나며, 가려움보단 더 강한 촉감에 의해 생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간지럼도 가려움과 마찬가지로 이전에는 통각으로 여겨졌습니다. 스웨덴 신경생리학자 잉베 조테르만은 1939년에 솜털로 고양이를 살살 간질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고양이의 통각과 관련된 신경들이 반응했고, 이를 본 조테르만은 간지럼이 통각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뒤의 연구들도 간지럼은 통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했죠. 그런데 1990년, 이와 반대되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영국 신경질환국립병원의 피터 나탄 교수가 척수손상으로 통증을 못 느끼는 환자들이 간지럼을 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간지럼을 통각으로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간지럼의 원인은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됐습니다. 현재는 촉각과 통각의 혼합이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는데요, 나흥식 고려대 의대 교수는 “그 외에도 압각과 진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감각들과의 연관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왜 간지럼을 타게 됐을까

왜 가려움을 느끼는지는 설명하기 쉽습니다. 가벼운 자극이라도 문지르거나 긁는 반응을 해야 곤충이나 기생충 같이 몸에 해로운 것을 1차적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간지럼은 다릅니다. 딱히 간지럼을 타지 않는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크게 불편한 점은 없어 보입니다. 진화적으로 간지럼을 갖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 서로 간에 친밀해지는 작용을 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가벼운 스킨십을 통해서 부모자식 사이에, 형제 간에 유대감을 증진시킨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하필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친밀감을 증대시키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방어 능력을 학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간지럼을 타는 신체부위는 사람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목, 겨드랑이, 옆구리, 생식기 등은 인간의 취약점이기도 하죠. 어릴 때부터 부모가 아이의 취약점을 가볍게 건드리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약부위를 알고, 방어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엮어서 설명하면 조금 자연스러워집니다. 김성호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까운 사이에서 간지럼을 태우면서 서로 유대감을 끈끈하게 하는 동시에, 자식들한테 어디가 취약한 부분이니 방어하라는 것을 학습시키는 것”으로 간지럼의 진화를 설명했습니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야

가려움과 간지럼은 원인이 되는 자극의 세기가 다릅니다. 예상 외로 웃음이 나는 간지럼을 일으키는 자극의 세기가 더 강하죠.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웃음’의 여부입니다. 가려움을 느낄 때는 손으로 긁고 말지만, 간지럼은 긁지 않고 몸을 움츠리며 웃게 됩니다.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간지럼인데 도대체 왜 웃는 것일까요.

아직까지 확립된 정론은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를 알아내기 위한 고민은 시작됐습니다. 찰스 다윈과 독일의 생리학자 에드워드 헤커는 19세기 말에 나름대로의 추측을 했습니다. 일명 ‘다윈-헤커 가설’입니다. 이 둘은 간지럼이 유머와 비슷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경련과 함께 근육수축이 일어나며 사람의 기분을 유쾌하게 하는 등 둘 사이엔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죠.

뇌도 다윈-헤커 가설에 동의할까요? 최근 뇌 영상기술로 간지럼에 대해 알아보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일 튀빙겐대의 한 연구팀은 2013년, 과연 유머와 간지럼이 뇌에서 똑같이 반응을 유도하는지 알아보고자 30명을 대상으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습니다. 그 결과 간지럼과 유머에 의한 웃음에서 뇌의 같은 부위가 반응했습니다. ‘중심후방 판개(Rolandic Operculum)’라는 부위로, 얼굴의 움직임과 음성, 그리고 감정적 반응과 관련된 곳이죠. 하지만 간지럼에 의한 웃음은 유머에 의한 웃음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시상하부(hypothalamus)에도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와 관련된 부위로 체온을 조절하고 배고픔이나 피로 등과 관련해 호르몬 분비를 조절합니다. 특히 긴박한 상황에서 몸을 긴장상태로 만드는 ‘투쟁-도피(fight or flight)’ 반응과 연관된 부위이죠.




예측 불가능한 간지럼

웃음이 나는 간지럼은 촉감이 전부일까요. 지금 실험을 하나 해보죠.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가장 간지럼탈만한 부위를 간질여보세요. 겨드랑이 아래나 발바닥 등 어디든 좋습니다.

웃음이 나셨나요?

단순히 촉감이 있다는 느낌은 들었을 테지만 웃음은 나지 않았을 겁니다. 똑같이 간질이는 자극인데 왜 내가 할 땐 웃음이 나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간질이는 것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얼마나 세게, 얼마나 오랫동안 간질일지를 다 안다는 것이죠. 남이 날 간질일 땐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예측할 수가 없죠. 사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추측했을 정도로 아주 오래된 정설입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사라-제인 블레이크모어 교수는 1998년에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남이 간질일 때와 스스로 간질일 때의 뇌 반응을 비교해봤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 곳은 소뇌(cerebellum)였습니다. 소뇌는 어떤 감각의 결과를 예측하는 역할을 하는데, 내가 나를 간질일 때는 이미 다 알고 있어 예측이 필요 없기 때문에 소뇌의 반응도 적습니다. 내가 나를 만질 때 일일이 간지럼을 탄다면 정말 피곤하지 않을까요.

남이라고 전부 간지럼을 타는 것은 또 아닙니다. 블레이크모어 교수는 로봇으로 간질이는 실험도 했는데 이때 실험 참가자는 간지럼을 타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본 로봇의 움직임은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움찔했을지 몰라도 사람과 같이 계속해서 세기나 위치가 바뀌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로봇도 만약 예상범위를 벗어나도록 속도나 범위를 계속 변화시키면 그땐 간지럼을 탔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간질이는 대상이 나와 친밀함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때의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서도 간지럼은 웃음이 될 수도 있고, 짜증이 될 수도 있고, 공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간지럼을 당하는 사람이 주체와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죠. 나흥식 교수는 “그래서 간지럼을 ‘정서적 감각(emotional sensation)’이라고도 부른다”고 말합니다.

인공지능이 간지럼 배운다!

간지럼은 단순한 촉감도, 귀찮은 행동 중 하나도 아닙니다. 이를 연구하는 것 또한 한낱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그치는 것은 아니죠. 최근 들어 심리학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간지럼을 비롯해 사람의 행동에 대한 연구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로봇입니다. 김성호 교수는 “간지럼은 운동과 지각의 통합과정을 밝혀 낼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공을 목표지점에 던질 때 감각으로 거리를 가늠하고 그만큼을 던집니다. 만약 공이 목표지점보다 멀리 갔다면 다시 던질 때 힘을 약하게 수정해 던지죠.

이 같은 ‘예측’과 ‘행동’, 그리고 ‘피드백’은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그런데 간지럼은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아무리 예측하려 해도 예측이 벗어나기 때문에 간지럼이 나타나고, 피드백과정을 거쳐도 또다시 예측을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대처를 우리는 간지럼에서 배울 수 있고 인공지능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단순히 기존의 컴퓨터공학만으로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며 “행동은 환경과 상호작용해서 끊임없이 운동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유기체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201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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