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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깡충좀벌(Copidosoma floridanum)은 크기가 약 1mm에 불과한 기생벌이다. 어미는 나방의 알 속에 알을 낳는다. 나방 알이 애벌레가 될 동안, 꼬마깡충좀벌의 자식들은 그 안에서 숙주의 피를 마시며 자라난다. 대개 어미 기생벌은 숙주 안에 아들 하나, 딸 하나씩 두 개의 알을 낳는다. 이들은 각자 무성생식해서 수천 마리에 달하는 일란성 쌍둥이가 된다. 즉, 한 숙주 안에 매우 많은 수의 쌍둥이 자매들과 아주 많은 수의 쌍둥이 형제들이 함께 기생한다. 두 무리는 물론 친남매 사이다.
오라비들 죽이고 장렬히 산화한 기생벌 암컷 병정들
이제부터 흥미롭다. 유충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기생벌로 자라지만, 일부는 번식을 포기하고 불임성 병정계급으로 자란다. 병정들은 턱이 억세고 몸이 길고 날씬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수컷 병정은 제대로 못 자라고 암컷 병정만 수십 마리가 살아남는다. 암컷 병정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할까. 자신과 피를 나눈 친오라비 수컷들을 공격해서 거의 다 죽여버린다! 일란성 쌍둥이인 번식성 친자매들은 절대 해치지 않는다. 결국, 무사히 어른이 되어 숙주를 빠져 나오는 꼬마깡충좀벌들은 대다수가 암컷이다. 수백, 수천의 오라비들을 학살한 암컷 병정들은 껍데기만 남은 숙주에서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다. 문자 그대로 ‘너 죽고 나 죽자’는 물귀신 작전이 자연계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막가파식 공멸 전략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근연도가 마이너스(-)면 ‘악의적 행동’ 진화할 수 있어
이미 말했듯이, 조지 프라이스는 포괄 적합도 이론을 제안한 해밀턴의 1964년 논문이 과연 맞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피붙이만 챙기는 이타성뿐만 아니라, 세계 만민을 다 사랑하는 진정한 이타성도 진화할 수 있기를 내심 바랐기 때문이다. 소망과 달리, 프라이스는 “몇 가지 작은 흠결을 제외하면” 해밀턴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스는 해밀턴에게 그 흠결을 알려줬다. 내 적합도(=평생 낳는 자식 수)의 하락을 감수하면서 상대방의 적합도를 낮추는 악의적인 행동에 대한 해밀턴의 분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어디가 잘못됐길래?
해밀턴의 이론이 어떻게 이타적 행동의 진화를 설명하는지 잠시 복습하자. 이타적 행동은 그 행동을 하는 당사자의 적합도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일정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이타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기게 되므로 그 유전자는 자연 선택된다. 그 조건은 물론 ‘해밀턴의 규칙’이다. 상대방이 얻는 이득(b)이 충분히 커서 두 개체 간의 유전적 근연도(r)를 곱하고도 그 값(rb)이 행위자가 입는 손실(c)보다 더 크다면, 이타적 행동은 선택된다.
해밀턴은 1964년 논문에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악의적 행동은 결코 선택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왜 그럴까. 악의적 행동이 상대방에게 손실을 끼친다는 말은 곧 상대에게 마이너스 이득(b<;0)을 준다
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악의가 선택되려면 rb>;c여야 한다. 근연도 r은 0과 1 사이의 수이니, 좌변 rb는 0 또는 음수이다. 그런데 우변 c는 양수다. 따라서 이 부등식은 영원히 성립할 수 없다고 해밀턴은 결론 내렸다.
“천만에! 때론 성립할 수 있어”라고 프라이스는 어깃장을 놓는다. 유전적 근연도 r에 주목하시라. 만약
r이 음수라면, 좌변 rb는 양수가 된다. 따라서 rb>; c라면, 즉 상대방에게 끼치는 손실(b)의 절댓값이 충분히 커서 두 개체 간의 유전적 근연도(r)를 곱하고도 그 값(rb)이 행위자가 입는 손실(c)보다 더 크다면, 악의적 행동은 자연 선택된다. 번식능력이 있는 친오라비들을 수백 마리 죽이고 자신도 죽는 꼬마깡충좀벌의 암컷 병정들처럼 말이다. 요컨대, 근연도가 음수면 동반 파멸을 꾀하는 악의적 행동이 이론적으로는 자연 선택될 수 있음을 해밀턴 본인이 후속 논문에서 직접 바로잡으라고 프라이스가 알려준 것이다.
악의적 행동 = 혈연이 손 안 대고 코를 풀게 도와주는 이타성
뭐? 유전적 근연도가 음수가 될 수 있다고? 해밀턴은 1964년 논문에서 근연도는 ‘관계 계수’, 즉 두 개체가 어떤 유전자를 공통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공유할 확률(따라서 0과 1 사이의 수)에 매우 가깝다고 했다. 가깝다고만 했지, 똑같다고 말한 적은 없음에 유의하시라. 1964년 당시에도 해밀턴은 근연도의 진짜 의미가 ‘개체군 평균에 비해’ 행위자와 상대방이 유전적으로 얼마나 유사한지 나타내는 척도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명확한 수식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프라이스 방정식 덕분에 해밀턴은 해밀턴의 규칙을 더 간결히 도출하는 지름길을 찾았다. 그뿐만 아니라, 해밀턴은 두 개체 사이의 유전적 근연도가 음수일 수도 있으니 ‘너 죽고 나 죽자’는 악의적 행동도 때로는 자연 선택될 수 있음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됐다.
마이너스 근연도는 언뜻 황당하게 들린다. 실은 그렇지 않다. 마이너스 근연도는 행위자와 짝지어진 상대방이, 개체군에서 아무나 무작위적으로 뽑은 개체에 비해 행위자와 더 멀게 연관돼 있음을 뜻한다. 근연도는 개체군 평균에 비해 두 개체가 유전적으로 유사한 정도임을 상기하자. 만약 상대방이 행위자의 유전자를 그 유전자의 개체군 평균 빈도보다 더 높은 빈도로 가지고 있다면, 두 개체는 긍정적으로 연관된다(r >; 0). 끼리끼리고 유유상종이다. 내가 상대에게 준 이득의 일부는 내 이득이 된다. 만약 상대방이 행위자의 유전자를 개체군 평균보다 더 낮은 빈도로 가지고 있다면, 두 개체는 부정적으로 연관된다(r <; 0). 반대끼리 끌린다. 내가 상대에게 준 손실의 일부는 내 이득이 된다. 만약 상대방이 개체군에서 무작위적으로 뽑은 개체라면, 두 개체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r = 0). 나 때문에 상대방이 이득을 보건 손해를 보건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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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의 진화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악의적 행위자가 손실을 감수하면서 상대방에게 해
를 끼쳤을 때, 피해를 본 상대방의 주변 이웃은 덕분에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줄어드는 뜻밖의 이득을 누린다. 손 안 대고 코를 푼 이 이웃이 만약 악의적 행위자와 긍정적으로 연관된(r >; 0) 혈연이라면, 악의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에게는 결국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기는 길이 열린다. 즉, 악의적 행동은 그로부터 엉겁결에 이득을 볼 혈연을 위한 일종의 이타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근연도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A, B, C 셋 다 혈연이고, A는 B보다 C에 더 가깝다고 하자. 이때 A는 상대적으로 먼 B를 공격함으로써 더 가까운 C에게 간접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다. A의 관점에서, B를 겨눈 악의는 C를 챙기는 이타성이다.
악의적 행동은 자연계에 흔한가?
‘너 죽고 나 죽자’며 달려드는 악의적 행동은 이론상으로는 진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가까운 혈연을 그냥 도와주면 그만이지 굳이 먼 혈연 혹은 생판 남을 공격해 가까운 혈연에 부수적인 이득을 주는 행동이 자연계에서 흔히 진화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실제로 해밀턴은 1970년 ‘네이처’에 낸 논문에서 극도로 쪼그라들어 멸망 직전의 개체군에서나 악의가 잠시 나타나리라고 추측했다.
그동안 몇몇 동물에게서 악의적 행동의 실제 사례로 여겨지는 행동들이 발견됐다. 실망스럽게도, 대부
분은 자신의 손실을 감수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진정한 악의가 아니라 남을 해친 행위자가 결국엔 장기적인 이득을 챙기는 이기적 행동이었다. 예를 들어, 땅다람쥐 암컷은 종종 옆 둥지의 이웃이 낳은 새끼들을 죽인다. 이 행동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악의적인 행동 같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신과 자기 자식들이 자원을 둘러싼 이웃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게 해주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병역 기피 연예인이 보도된 인터넷 기사에 굳이 악플을 다는 행동처럼, 제삼자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처벌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악의가 아니라 긴 안목에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이득을 위한 이기성이다.
악의적 행동의 실제 사례는 2007년에야 발견됐다. 진화생물학자 앤디 가드너 연구팀이 꼬마깡충좀벌
의 암컷 병정들이 친오라비들을 학살하는 현장을 찾은 것이다. 남을 해치는 어떤 행동이 이기성이 아니라 악의임을 증명하려면 두 가지를 보여야 한다. 첫째, 그 행동이 행위자의 적합도를 낮춤을, 즉 행위자가 평생 낳는 자식 수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꼬마깡충좀벌의 암컷 병정이 번식을 마다한 채 장렬히 생을 마감하는 행동은 병정 자신에게 손해다. 둘째, 행위자는 자신이 해코지한 상대보다 엉겁결에 이득을 얻는 주변 개체와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꼬마깡충좀벌자매들끼리는 모두 일란성 쌍둥이이므로, 암컷 병정들은 상대적으로 덜 가까운 친오라비들을 죽여서 자신과 클론인 번식성 자매들에게 도움을 준다.
요컨대, ‘너 죽고 나 죽자’는 악의적인 행동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연 선택될 수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서 악의가 관찰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유전자의 ‘이기성’은 개체 수준에서는 이타적 행동 뿐만 아니라 함께 파멸하는 악의적 행동도 진화시킬 수 있다.
를 끼쳤을 때, 피해를 본 상대방의 주변 이웃은 덕분에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줄어드는 뜻밖의 이득을 누린다. 손 안 대고 코를 푼 이 이웃이 만약 악의적 행위자와 긍정적으로 연관된(r >; 0) 혈연이라면, 악의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에게는 결국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기는 길이 열린다. 즉, 악의적 행동은 그로부터 엉겁결에 이득을 볼 혈연을 위한 일종의 이타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근연도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A, B, C 셋 다 혈연이고, A는 B보다 C에 더 가깝다고 하자. 이때 A는 상대적으로 먼 B를 공격함으로써 더 가까운 C에게 간접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다. A의 관점에서, B를 겨눈 악의는 C를 챙기는 이타성이다.
악의적 행동은 자연계에 흔한가?
‘너 죽고 나 죽자’며 달려드는 악의적 행동은 이론상으로는 진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가까운 혈연을 그냥 도와주면 그만이지 굳이 먼 혈연 혹은 생판 남을 공격해 가까운 혈연에 부수적인 이득을 주는 행동이 자연계에서 흔히 진화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실제로 해밀턴은 1970년 ‘네이처’에 낸 논문에서 극도로 쪼그라들어 멸망 직전의 개체군에서나 악의가 잠시 나타나리라고 추측했다.
그동안 몇몇 동물에게서 악의적 행동의 실제 사례로 여겨지는 행동들이 발견됐다. 실망스럽게도, 대부
분은 자신의 손실을 감수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진정한 악의가 아니라 남을 해친 행위자가 결국엔 장기적인 이득을 챙기는 이기적 행동이었다. 예를 들어, 땅다람쥐 암컷은 종종 옆 둥지의 이웃이 낳은 새끼들을 죽인다. 이 행동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악의적인 행동 같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신과 자기 자식들이 자원을 둘러싼 이웃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게 해주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병역 기피 연예인이 보도된 인터넷 기사에 굳이 악플을 다는 행동처럼, 제삼자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처벌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악의가 아니라 긴 안목에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이득을 위한 이기성이다.
악의적 행동의 실제 사례는 2007년에야 발견됐다. 진화생물학자 앤디 가드너 연구팀이 꼬마깡충좀벌
의 암컷 병정들이 친오라비들을 학살하는 현장을 찾은 것이다. 남을 해치는 어떤 행동이 이기성이 아니라 악의임을 증명하려면 두 가지를 보여야 한다. 첫째, 그 행동이 행위자의 적합도를 낮춤을, 즉 행위자가 평생 낳는 자식 수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꼬마깡충좀벌의 암컷 병정이 번식을 마다한 채 장렬히 생을 마감하는 행동은 병정 자신에게 손해다. 둘째, 행위자는 자신이 해코지한 상대보다 엉겁결에 이득을 얻는 주변 개체와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꼬마깡충좀벌자매들끼리는 모두 일란성 쌍둥이이므로, 암컷 병정들은 상대적으로 덜 가까운 친오라비들을 죽여서 자신과 클론인 번식성 자매들에게 도움을 준다.
요컨대, ‘너 죽고 나 죽자’는 악의적인 행동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연 선택될 수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서 악의가 관찰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유전자의 ‘이기성’은 개체 수준에서는 이타적 행동 뿐만 아니라 함께 파멸하는 악의적 행동도 진화시킬 수 있다.